경이로운 미생물 기능
조 윤 래 명예교수(생명응용과학대학 생명공학과)
미생물은 인간 주변 환경생태계 어느 공간에서도 존재하면서 인류와 함께 공존해 왔다. 이러한 미생물은 끊임없이 활동하면서 인류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미생물은 인류에게 공포의 대상이기도 하면서 인류 생활 속에서 유용하게 이용되었다.
먼저 전염병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언제나 함께 하였다. 인류가 등장한 이후로 병원성 미생물은 많은 인간의 생명을 위협했고, 인간 사회에는 큰 공포로 각인되어 왔다.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인 천연두는 기원전 1만 년경부터 인류를 괴롭혀온 전염병이다.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5세의 사체에서 천연두 바이러스에 감염된 흔적을 볼 수 있으며, 감염자의 20~60%가 사망할 정도로 충격적으로 인간에 다가 왔으며 1977년 소말리아에서 마지막 천연두 발병의 보고가 있기까지 이 천연두 바이러스는 인간에게 지속적으로 질병을 야기했다(1).
14세기 중반에는 유럽에서 세균 페스트에 의한 흑사병이 발병되어 유럽 인구의 약 3분의 1이 사망에 이르게 되었으며, 전 세계로 전파되어 인류에게는 대재앙으로 다가왔다. 이러한 흑사병은 중세 유럽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왔는데, 유럽 봉건제의 약화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외에도 미생물은 콜레라 홍역 황열병 등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미생물은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질병의 원인이 되어 인간의 삶에 악영향을 미쳤으며 인간 식량자원인 작물에 질병을 야기하여 대기근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감자 역병(potato blight)은 Phytophthora infestans라는 곰팡이균에 의해 발생하며 균에 감염된 감자는 수확량이 크게 감소한다. 이 식물 질병은 1845년 프랑스에서 처음 발견되어 이후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1846년에는 감자가 주식인 아일랜드에 유행하여 대규모 기근이 발생하여 아일랜드에서 타국으로의 이민자가 속출하였으며 약 100만 명의 사람들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생물은 고대 인류의 질병 원인으로 인류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으나,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들 미생물을 이용해 왔다. 기원전 6000년경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맥주를 양조하여 음용하였음을 점토 기록물로 확인할 수 있다.
1857년 프랑스 과학자 루이 파스퇴르는 포도주의 산패 원인을 조사하면서 포도주에 미생물이 존재하며, 이 미생물이 포도주의 산패의 원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 연구 결과가 토대가 되어 인류는 미생물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다. 인류의 생활 중 미생물의 이용은 파스퇴르의 포도주 산패 연구가 기반이 되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루이 파스퇴르 자신은 1879년 닭 콜레라를 유발하는 미생물을 배양하고 약독화하여 백신을 제조하였다. 이것이 백신의 시초가 되었다.
미생물 기능의 활용은 인류의 삶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미생물은 식품 , 의약품, 환경 정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용되며, 인류의 건강과 지구 환경 보호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응용 기술이 개발되고 있어 앞으로도 미생물을 이용한 기술은 더욱 발전하여 우리 삶에 다양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미생물의 이용의 긍정적인 면과 함께 미생물 오염, 질병, 생태계 파괴 등 미생물 이용의 부정적인 측면도 존재하고 있어 미생물 이용에 대한 철저한 관리와 규제가 동반되어야 한다. 다음은 미생물 기능이 생각하지도 못한 분야에 이용되고 있는 실례이다.
▷귀부(貴腐) 포도주(noble rot wine)
노블 롯(noble rot)은 포도에 기생하는 곰팡이인 Botrytis cinerea에 의해 발생하는 부패 현상으로 "귀할 귀(貴), 썩을 부(腐)"로 번역되었다. 일반적으로 곰팡이류는 포도에 부패를 유발하여 포도의 품질 저하를 야기하지만, 이 곰팡이에 의해 부패된 포도로부터 제조된 와인은 풍미가 매우 뛰어나고 세계적으로 많은 애호가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이 곰팡이에 의한 부패는 "고귀한 부패"라는 의미로 불리게 되었다. 귀부 와인은 그 이름처럼, 포도의 부패 질병을 통해 만들어지는 독특하고 훌륭한 품질의 포도주로 인정받고 있다.
대표적인 귀부 포도주로는 프랑스의 소테른(Sauternes), 독일의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Trockenbeerenauslese), 헝가리의 토카이(Tokaji) 등이 있다. 이 귀부 포도주의 발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곰팡이 Botrytis cinerea 가 적절하게 증식한 포도를 확보하는 것이다.
귀부 포도주는 전 세계적으로 생산되고 있지만, 특히 프랑스, 독일, 헝가리 등의 특정지역에서 많이 생산되고 있다. 이 지역들은 공통적으로 온화한 기후와 습도가 높은 환경 조건을 유지하여 Botrytis cinerea에 의한 noble rot 즉 귀부병이 잘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반적으로 포도 수확 시기에 주로 발생한다.
귀부 포도주 발효에 이용되는 포도는 일반 포도주에 사용되는 포도에 비해 당도가 매우 높다. 귀부병 유발 곰팡이가 포도 껍질에 감염되면 껍질에 침투하며 곰팡이의 세포벽 분해효소에 의해 포도의 세포벽을 구성하는 pectin과 cellulose, hemicellulose 가 분해되어 포도의 세포벽이 파괴된다. 결과적으로 세포벽 파괴에 의한 구멍이 형성되며 곰팡이의 침투는 더욱 용이하게 되며 포도의 수분 이동이 더욱 활발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포도즙의 수분 증발로 인해 포도의 당분은 농축되며 당도가 높아지고 된다. 일반적으로 귀부 포도주의 당도는 120g/L 이상 이며 이는 일반 포도주의 당도인 10~20g/L에 비해 매우 높은 수치이다. 특히, 토카이 아수와 같은 귀부 포도주의 경우, 당도가 200g/L 이상인 경우도 있다.
침투 과정에서 작용하는 Botrytis cinerea 세포벽 분해효소에 의해 포도 껍질의 격막이 분해되어 포도의 당분을 보다 쉽게 추출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포도에 달콤하고 과일 향이 나는 노화 과정을 촉진된다. 이 과정을 "botrytis"라고도 한다. 이러한 귀부 포도주의 당도는 포도 품종, 수확 시점, 양조 방법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포도에는 유기산인 말산(malic acid)이 풍부하게 함유돠어 있으며, 산도가 높고 신맛이 강하다. Botrytis cinerea가 포도에 감염될 때 말산 발효라고 하는 대사 과정을 통해 말산으로부터 에너지를 생성할 수 있다. 포도의 당분이 농축될 때 말산의 농도도 높아지게 되어 에너지 대사 과정에서 당 대사 보다 우선적으로 말산이 분해되어 젖산(lactic acid)과 이산화탄소가 생성된다. 그러므로 포도중의 당을 에너지 대사에 소비하지 않기 때문에 당도의 감소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당과 함께 농축된 말산은 이 말산 발효(malolactic fermentation)를 통해 말산은 포도주의 산도를 부드럽게 할 수 있는 약한 산인 젖산으로 전환되어 포도주의 부드러움과 입안의 느낌을 향상시킬 수 있다. 한편 산도 조절은 포도 재배 과정에서 조절 될 수 있다.
곰팡이 Botrytis cinerea는 프랑스 샤토 디켐에 복잡한 여러 아로마를 생성하여 금빛과 함께 독특한 향미와 글리세린(glycerine)의 생성으로 입안을 채우는 끈기를 부여한다.
프랑스 소테른 포도주에는 또 다른 미생물인 효모가 포도주 발효에 영향을 준다. 이 포도주 발효에 사용되는 포도에 존재하는 효모는 포도 중의 당을 분해하여 알코올로 발효한다. 포도중에 존재하는 단당류는 포도당과 이성체 단당류인 과당이 혼재한다. 이 발효과정에서 효모는 과당보다 포도당 우선적으로 발효에 이용하기 때문에 포도 중에 포도당보다 높은 강도의 단맛을 내는 과당이 남게 되어 보다 단맛을 내게 된다.
그래서 소테른 와인의 독특한 향미와 묵직한 맛을 지닌 금빛이 나는 디저트 와인이 발효되기 까지 이 곰팡이와 효모가 가장 핵심적으로 작용한다(2). 여기에 작용하는 미생물은 다 자연적인 활동에 의한 것이다. 이 미생물들의 하모니를 통한 귀부 포도주로부터 미생물 기능의 경이로움을 맛 볼 수 있다.
▷미생물 간의 경쟁을 이용한 미생물 제어
자연 환경 중에는 여러 종류의 미생물들이 혼재되어 서식하고 있다, 이들 미생물들 간에는 생존을 위한 공생도 이루어지지만 경쟁도 발생된다. 이들 중에서 곰팡이류는 자연 중의 고분자 물질에 대한 분해작용이 탁월하여 생태계의 청소부로도 불린다. 곰팡이류는 자신의 증식을 위한 영양원을 획득하기 위해 외부로 고분자를 분해할 수 있는 효소와 산 등을 세포 외부로 분비하게 된다. 곰팡이 주변의 고분자 물질들은 분비된 효소와 산에 의해 저분자로 분해되어 소위 부식대를 형성한다. 이 부식대의 저분자 물질들은 곰팡이의 세포 내로 흡수되어 영양원으로 이용된다. 그런데 이 부식대에는 다른 미생물 세균들도 서식하면서 곰팡이와 세균들 간에는 영양원에 대한 경쟁이 발생 될 것이다. 곰팡이류는 특정한 물질을 분비하여 타 미생물 세균류의 증식을 억제하거나 치사시켜 이 영양원 경쟁에서 곰팡이류는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이러한 경쟁 관계는 1928년 알렉산더 플레밍이 스코틀랜드의 세인트 메리 병원에서 세균 배양 실험 과정에서 푸른곰팡이가 세균을 치사시키는 것을 발견함으로 확인되었다. 플레밍은 이 푸른곰팡이가 세균을 죽이는 물질을 분비한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이 물질을 페니실린이라고 명명하였다. 이 페니실린은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페니실린은 정제되고 대량생산되어 1942년부터 상용화되기 시작했다. 페니실린은 세균 감염을 치료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항생제로, 폐렴, 화농, 수막염 등 다양한 질병의 치료에 사용되고 있다. 페니실린의 발견으로 인해 수백만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러한 페니실린의 개발로 인해 인류는 세균 질병을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 페니실린의 발견은 현대 의학에 있어 획기적인 발견으로 평가되며, 인류의 생명을 지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3).
페니실린이 항생제로 개발된 이래로 1970년 이전까지 약 100여 종의 항생제가 개발되었으며 WHO의 집계에 따르면, 2023년 현재 전 세계에서 승인된 항생제는 총 220종이다.
그러나 인류는 이러한 엄청난 물질을 개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난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동안 인류는 세균에 의한 질병의 치료를 위해 항생제를 오남용함에 따라 기존 항생제에 대한 내성균들이 출현하게 되었고 1990년 이후는 단 하나의 새로운 항생물질이 발견되지 않았다. 기존 항생제들마저 대부분 내성이 생겨 세균 질병을 효과적으로 제어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리고 미국 질병통제예방본부는 미국에서만 매년 항생제 내성균에 200만 명이 감염되고 2만3000 명 이상이 사망한다고 보고하였다, 한편 영국 정부 항생제 내성 대책위원회는 현 상태가 지속되어 2050년에 이르면 세계에서 1000만 여명이 항생제 내성균으로 사망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이제 인간에게 아주 위협적으로 다가온 최대의 난제 ‘항생제 내성’을 해결하기 위해 인류는 새로운 항미생물제 물질 개발에 대한 과제를 안게 되었다(4).
새로운 항미생물제 개발에 대해 과학자들은 다양하게 접근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박테리오신(bacteriocin)이다. Bacteriocin은 세균이 생산하는 항균성 단백질(50~1000개의 아미노산) 또는 펩타이드(peptides, 10~50개의 아미노산)이다. 동일한 생태계에서 생육하는 세균은 서로 경쟁 관계에 있다. 이때 동종 또는 유사한 세균은 영양원 등 생육에 요구되는 요소가 동일하기 때문에 타 미생물보다 경쟁이 더욱 심하게 된다. 이때 특정 세균은 bacteriocin을 생성하여 경쟁 세균의 성장을 억제하거나 치사시킴으로써, 자신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다. bacteriocin은 대부분 동종 또는 유사종의 세균에만 독성을 나타내나 최근에는 비교적 넓은 범위의 항균력을 가진 것도 보고되고 있다. 대부분 항균 범위가 비교적 좁아 병원성 미생물만을 선택적으로 억제할 수 있다. 대표적인 bacteriocin으로는 nisin, subtilin, lysozyme 등이 있다. 이러한 bacteriocin은 기존의 항생제에 대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bacteriocin은 항생제 내성균에 대한 효과가 뛰어나고 인체에 무독하고 안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bacteriocin은 식품의 천연 보존제로도 활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bacteriocin의 수산 분야 이용에 대한 연구도 증가하고 있으며 양식장에서 발생하는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Enterococcus faecalis가 생산하는 bacteriocin인 nisin이다. Nisin은 넙치, 참치, 연어 등의 양식장에서 발생하는 세균성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 효과적 이다. 한편 조 등은 양식 어류에 질병을 야기하는 어병균(fish pathogens)에 대한 항균력을 나타내는 미생물을 분리하여 동정하였다. 이 분리된 균주는 그람 양성균으로 Aerococcus urinaeequi HS36으로 명명되었으며 그람음성 어병균인 Listonella anguillarum과 Edwardsiella tarda 와 같은 그람 음성세균에 강한 항균력을 보였다. 그리고 그람 양성균으로 식중독 원인균인 Bacillus cereus에 대해서도 강한 활성을 보였다. 기존 bacteriocin은 좁은 활성 범위와 주로 그람양성 세균에 활성을 나타내나 이 Aerococcus urinaeequi HS36는 보다 넓은 범위의 항균력을 보이고 있다. 이 균주가 생산하는 항균력을 가진 믈질은 1K dalton 정도의 작은 분자량의 펩타이드로 pH 2에서 pH 11사이에서 활성을 나타내며 100 ℃에서 열처리 하여도 그 활성이 감소되지 않을 정도의 열 안전성을 지니고 있어 산업적으로 매우 유용하게 이용될 것으로 기대된다(5).
이러한 bacteriocin은 아직까지 상용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다양한 분야에서의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 bacteriocin이 항생제 대체제로의 성공적인 개발이 기대되며, 항생제 내성균의 확산을 방지하고, 안전하고 효과적인 항균 치료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참고 문헌
1)WHO: Smallpox eradication URL: https://www.who.int/csr/disease/smallpox/en/
2)미생물에 관한 거의 모든 것 John L. Ingraham, 김지은 옮김, 이케이북,(2010) 86-89
3)https://scienceon.kisti.re.kr/srch/selectPORSrchArticle.do?cn=JAKO201045340586926
건강소식, 최용균,34(8) (2010) 33-39
4)The state of antibiotic resistance in 2022,T. R. Walsh etel, Nature Reviews Microbiology 20(6) (2022),325-336
5)Purification and Characterization of an Antibacterial Substance from Aerococcus urinaeequi Strain HS36 Ho Sun Sung and Youl Lae Jo* J. Microbiol. Biotechnol. 2020; 30(1): 93-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