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자주이념 연구
- 민족자주 이념의 본질과 기초 -
강민화 (대동연구소 소장)
- 글을 시작하면서
1. 민족자주 이념의 본질
2. 민족자주 이념의 기초
3. 민족자주 이념의 실천
- 글을 시작하면서
민족자주, 이는 우리 민족 공동의 지향이자 목표이다. 그런데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민족 속에 이 민족자주라는 개념이 오늘처럼 뿌리내리게 된 것은 불과 수십 년 전부터였다.
민족·민족문제에 대한 연구나 고찰은 그 자체가 철저한 주체적 시각을 요하는 것인 만큼, 다른 나라나 민족의 문제는 접어둔다고 해도, 조선(한)반도에서의 민족투쟁사가 민족의 자주성을 위한 투쟁노정이라고 규정되고 그것이 공인되기 이전과 이후는 질적으로 구분된다.
우리 민족 지상의 과제인 조국통일문제도 이전에는 “누가 누구를”하는 문제에 귀착되는 사상·체제문제로 다뤄져 왔으나, 지금은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적 자주권을 실현하는 문제로 그 본질 규정부터가 새롭게 이뤄졌으며 그에 의해서 조국통일이 사상과 체제, 거주지역이 달라도 우리 민족 모두가 함께 손잡고 지향할 수 있는 말 그대로 거족적 위업으로 되었다. 그리하여 21세기의 문턱에 이르러서는 ‘6.15공동선언’이라고 하는 조국통일의 이정표가 마련되게 되었다.
그러면 이처럼 우리의 민족투쟁사를 질적으로 구분하게 된 민족자주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서 이념으로서 창출되었는가? 또한 민족자주 이념은 그 실천 문제를 어떻게 제시하고 있는가?
현재도 민족, 민족문제에 대해서 주체적 시각에서 연구 중인 필자는 위의 문제에 대해서 연구 고찰하는 하나의 공정으로서 민족자주 이념에 대해서 종합 체계화해 볼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이 민족자주 문제에 대해서는 명망 높은 여러 동포 학자, 연구자들에 의해서 수 많이 다뤄져 왔으며 그 성과물로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논문들이 발표되었다.
필자의 미숙한 이 글이 그 같은 연구대열에 낄 수 있다면, 또한 우리 민족이 오늘도 과감히 벌이고 있는 민족자주를 위한 실천 활동에 다소나마 기여할 수 있다면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1. 민족자주 이념의 본질
1) 민족자주란
이전까지 민족·민족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세계적으로 공인되어온 것은 민족자결 또는 민족자치, 이념으로서의 민족주의가 위주였다. 또한 이 개념이나 이념을 직접 다루거나 실천하려 했던 세계적으로 이름난 사상가, 이론가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것들이 지구상에 3천여 개나 존재한다고 하는 민족과 거기에서 제기되는 민족문제들을 제대로 해결할 수 있었는가 어떤가는 지금도 민족문제가 지구상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복잡하게 제기되고 있는 현실을 보면 명백할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민족자주라는 개념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 ‘자주’라는 개념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또한 조선(한)반도에서만 봐도, 자주란 무엇인가 하는 데 대해서 “온갖 예속을 반대하며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모든 문제를 자체의 실정에 맞게 독자적으로 규정하고 자체의 힘으로 처리하는 것 또는 그러한 원칙”(북), “남의 보호 또는 간섭을 받지 않고 제 일을 제힘으로 함”(남)이라고 남북의 해석에는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이 자주를 민족·민족문제와 결부시킨 민족자주라는 개념만큼은 조선(한)반도 이남은 물론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것은 이 민족자주라는 개념이 이북의 지도사상인 주체사상에 의해서 처음으로 제시되었으며, 민족자주가 민족의 존재와 발전을 가능케 한다는 이념으로서 정립되었기 때문이다.
그럼 민족자주란 무엇인가? 이북에서는 민족자주에 대해서 “민족 자체의 힘에 의거하여 민족의 운명문제를 풀어 나가려는 자각과 의지”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자기 나라와 민족의 운명 개척에서 나서는 문제들을 자신이 결심하고 처리하는 것은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자주적 권리”라고 강조한다.
이렇게 보면 민족자주란 객관적 조건이나 외부의 힘이 아니라 자기 민족을 중심에 놓고, 민족의 운명개척을 위한 진로를 모색하는 정신, 또한 민족 구성원들의 주인다운 자각과 그에 기초한 민족의 주체성과 자립성에 철저히 입각하는 민족의 해방과 번영의 정신적 기둥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요컨대, 민족자주 이념에는 일반적으로 거론되는 민족의 권리라는 차원이 아니라, 민족의 운명 개척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 또한 자기 민족을 사랑하고 귀중히 여긴다는 차원이 아니라, 민족의 운명문제를 해당 민족 스스로가 풀어나간다고 하는 근본적인 자세와 입장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민족자주 이념이 다루는 영역에는 식민지민족 해방문제나 민족들 사이의 불평등 해소문제는 물론, 외부로부터 민족의 독립과 안전을 수호하는 문제, 민족 구성원들 스스로의 노력에 의한 민족의 번영을 이룩하는 문제를 비롯해서 민족문제와 관련해서 제기되는 문제들이 모두 포괄된다고 볼 수 있다.
이같은 의미에서 민족자주 이념은 민족주의, 민족자결론과 유사성·공통성이 있기는 하나 엄연히 구별된다.
2) 민족자주 이념과 민족주의, 민족자결권
그러면 민족자주 이념과 민족주의·민족자결론은 어떻게 구별되는가. 우선 그 개념들부터 재조명해 보기로 한다.
민족주의란 어떤 것이며 그것이 사회역사 발전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가 하는 논의는 오래전부터 벌어져 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 여러 인물들에 의해서 다양하고 각이하게 해석되어 왔다.
‘네이션(Nation)’이라는 개념이 민족이라는 의미 뿐 아니라 국가, 국민이라는 의미로도 이해되어 왔기 때문에 지난날에는 민족주의에 대해서도 국가주의, 국민주의와 같은 의미로 해석되는 때가 많았다.
또한 민족주의는 선진국에 대한 후진국의 대항의식이나 지배민족에 대한 피지배민족의 대항의식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그리고 민족에 대한 견해와 입장, 관점이 유럽과 동양에서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고 해서 ‘동양형 민족주의’와 ‘유럽형 민족주의’로 나누어 설명하는 견해도 있다. 또는 민족이 외세의 침략을 반대해서 싸운다고 해서 ‘저항민족주의’라고도 하고., 중동 나라들이 원유자원을 지킨다고 해서 ‘자원(資源)민족주의’라고도 한다.
조선(한)반도에서는 외세에 의해서 민족의 위기가 조성되자 그에 대한 저항이 즉시적으로 일어났다. 그리하여 19세기 60년대만 해도 조선(한)반도에 대한 외세의 침략이 개시되자 동학운동(東學運動), 위정척사운동(衛正斥邪運動), 개화운동(開化運動) 등의 형태로 저항민족주의가 대두했다.
그러나 이 당시 민족주의는 부르죠아 민족주의에 농락되어, 그 자체가 공산주의와 양립될 수 없는 반동적 사조로 배척받지 않으면 안 되었던 제한성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그 발생 경위에 있어서 민족을 사랑하고 지킨다는 진보성이 있었던 반면에, 나라와 민족의 독립을 일제에게 ‘청탁’하는 방법으로 이뤄보려는 사대주의, 외세의존으로 전락되거나 민족개량주의로 나가기까지 했었다.
다음으로 민족자결론(권)이란 무엇인가? ‘국제인권규약’(공통 제1조 1966)에는 “(민족이)그 정치적 지위를 자유로이 결정하며, 그 경제적·사회적·문화적 발전을 자유로이 추구하는 ‘인민의 권리’”라고 규정되어 있다. 요컨대 민족이 정치적으로 독립하여 그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라고 말할 수 있다.
민족자결권론은 계몽기 자연법 사상인 ‘인민주의론’과 ‘사회계약설’에 기초해서 부르죠아혁명에서 민족국가 형성의 원리가 된 것이 그 발단이라고 하는데, 세계적으로 민족자결권을 주장한 대표적 인물은 미국 대통령이었던 T.W. 윌슨과 러시아 사회주의 10월혁명을 이끌었던 울라지밀 일이취 레닌이었다. 우리나라의 3.1독립운동(1919)도 이같은 민족자결론에 고무되어 일어난 것이었다.
윌슨이 주장한 민족자결이란 하나의 민족이 하나의 독립국가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1918년 1월 8일에 제1차 세계대전 종결을 위해서 제창했던 ‘14개조 평화원칙’안에서 이를 주장했다. 이것은 1919년의 파리 화해회의에서 채택된 ‘베르사이유조약’의 원칙에 반영되었으며, 국제연맹 발족의 기조가 되었다고 평가되어 있다.
그러나 그가 주장한 민족자결권은 파리회의에서 영국, 프랑스의 반발에 부딪쳐 결국은 백인들에게만 적용되게 되었으며, 그것도 법적 권리가 아닌 정치적 원칙으로만 다뤄졌다.
이를 한 걸음 더 심화시키고 전진시킨 것은 레닌이었다. 그는 모든 민족은 자주적이며 어느 한 민족에게도 특권을 주어서는 절대로 안 되며, 소수민족의 권리를 침해하는 온갖 조치를 불법으로 선언해야 한다고 지적하였으며,모든 민족은 국가적 분리의 자유와 정치적 자결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레닌은 독점자본주의시기에 와서 세계가 극소수의 제국주의 열강들과 대다수 피압박 민족들이 사는 식민지 예속국가로 갈라지게 되었던 환경에서 민족문제를 식민지문제와 결부시켰으며, 그것을 유럽의 ‘문명국가’ 민족들에 국한된 부분적 문제로부터 제국주의 기반에서의 피압박민족들의 해방에 관한 전반적 문제로 확대했다.
레닌은 또한 식민지―민족문제를 프로레타리아 혁명과 프로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전반적 문제의 한 부분으로 봤으며, 식민지 예속국가 인민들을 제국주의의 예비군으로부터 프로레타리아 혁명의 동맹군으로 전환시켜야 하며, 노동계급은 사회적 배타주의를 철저히 배격하고 이제까지 역사의 밖에 서서 오직 역사의 대상으로만 취급되었던 수억만의 피압박 민족들과 굳게 단결하여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레닌의 민족자결론 역시 제한적이었다. 한마디로 그가 주장했던 민족자결권은 민족문제를 해결한다기보다도, 민족적 해방을 염원하고 지향하려는 피압박 소수민족의 에너지를 노동계급의 동맹군 화하기 위한 전술적 슬로건이었다. 때문에 그는 민족자결의 요구가 민족의 조직적 강화에로 이어지고, 나아가서 노동계급과 당의 민족적 분리를 가져오는 것을 우려했었다.
결국 레닌이 주장했던 것은 계급적 관점을 전제로 민족의 정치적 분리권과 국가적 독립권을 인정한다는 의미에서의 민족자결권이었다.
이처럼 민족주의도 민족자결론도 그 제한성으로 해서 민족의 운명문제 해결을 위한 방향과 진로를 밝히는 사상, 이념으로는 될 수 없었다.
3) 민족주의와 민족자결권을 자체 내에 포섭한 민족자주 이념
위에서 본 것처럼 민족주의와 민족자결론은 제각기 제한성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민족자주 이념과 이들의 관계를 대립관계로 봐야 하겠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민족자주 이념은 민족주의도 민족자결론도 비록 제한성이 있으나, 결코 그것들을 배제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 진보적 측면들을 시인하고 있다.
이북에서는 우선 민족주의에 대해서 “자기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사상”이며, 그것은 민족이 형성되고 발전하는 데 따라 발생했다고 그 본질과 발생근원에 대해서 새롭게 규정하고 있다.
또한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진정한 민족주의와 부르죠아계급의 이익을 옹호하는 부르죠아 민족주의를 명백히 구분하면서,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사상, 애국애족의 사상”이라는데 민족주의의 진보성이 있다고 민족주의의 진보성을 주장하고 “진정한 민족주의는 곧 애국주의”라는 독특한 견해를 내놓고 있다.
그리하여 공산주의와 민족주의가 서로 양립될 수 없는 사상이라고 했던 종래의 주장을 부정하고, “애국애족”은 양자의 공통된 사상감정이며 여기에 양자가 연합할 수 있는 사상적 기초가 있다고 하는 독창적인 견해를 내놓았다.
지난 항일혁명 시기인 1936년에 사상과 이념, 종교신앙과 재산의 유무를 다 초월한 반일민족통일전선에 기초해서 ‘조국광복회’가 창건된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오늘도 조국통일이라는 전 민족적 위업의 실현을 위하여 이북에서 가장 중요시하며 추구하고 있는 민족대단결이 결코 일시적 또는 전술적인 연합이 아니라, 확고한 사상이론적 기초를 갖는 전략적 문제라는 것은 이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이북에서는 민족주의뿐 아니라 민족자결론에 대해서도 “모든 민족은 평등하며 자기 운명을 자신이 결정할 민족자결의 신성한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9)”라고, 그 정당성을 시인하고 있다.
따라서 민족자주이념과 민족주의· 민족자결론은 결코 대립되는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민족주의·민족자결론은 그 진보성에 있어서 민족자주론과 공통성이 있으며, 나아가서 민족자주이념은 민족주의·민족자결론의 진보적 측면을 자체 내에 포섭하고 있다고 봐야 정확할 것이다.
[펌] 대동연구소 http://www.daedong615.com/nonmun/nonmun060218.htm
출처: 물흙길연맹 원문보기 글쓴이: 영변약산진달래
https://cafe.daum.net/gycenter/EPrM/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