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숙의 시 세계 인식의 원천 혹은 함축적 서정시학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 통념이 여과(濾過)된 인식 세계 현대시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주제의 근원은 대체로 자아 인식의 지향적인 내면 정서에서 탐색하게 되는데 이는 한 시인이 영위(營爲)해 온 한생의 체험(또는 회억(回憶))에서 분화(分化)한 진실이 승화해 있다는 시적 분위기나 상황(situation)을 이해할 수 있음에 기인(起因)하게 된다. 여기 최현숙 시인이 상재하는 첫 시집『내 마음의 찻집』을 일별하면서 이러한 주제의식을 먼저 읽어보는 연유(緣由)도 그의 작품에 내포(內包)된 상황 인식이나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점을 간과(看過)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현숙 시인은 이미 그가 ‘첫 시집을 내면서’라는 글에서 ‘타향에서 느끼는 외로움에 펜을 잡았고 늘 깊은 밤 마지막 버스를 타는 퇴근길에서 촉촉하게 가슴 저미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글을 쓰다 보니 나의 모든 시들이 추억과 향수에 젖은 듯하다’라고 피력(披瀝)함으로써 그가 추구하거나 탐색하려는 시적 주제의 핵심(核心)은 바로 그의 인생관에서 추출(抽出)한 인식의 융합(融合)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간직한 보편적인 통념(通念)이 여과되어 지향적으로 발현(發現)하는 인식의 세계는 어떻게 변화하고 현실과 화해(和解)하는 지, 이러한 그의 심저(心底)에 침잠(沈潛)한 진실을 구명(究明)하면 그의 작품 읽기에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저 편의 삶들이 못 견디게 나를 흔든다. 오늘도 빈 둥지만 안고 그날의 굴레를 맴도는 달무리 잔잔했던 앙금들이 소용돌이치며 추억을 써레질한다. --「강위를 달리는 마차」중에서 나만의 휴일의 시간 무(無)에서 얻는 편한 느낌 가끔은 모든 고리에서 벗어나 무(無)에서 나를 만나는 것도 행복하다 --「휴일」중에서 세상 옷 벗는 날 내 삶의 무게를 달면 흑과 백의 분리수거 만만지 않을 것이야 --「분리수거」중에서 이처럼 죄현숙 시인의 인식은 ‘저 편의 삶들’이거나 ‘내 삶의 무게’에서 그의 진정한 ‘추억을 써레질’ 하고 나아가서 ‘흑과 백의 분리수거’를 하거나 ‘무(無)에서 얻는 편한 느낌’으로 어조(語調)를 조절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최현숙 시인의 인식 세계는 ‘손에 묻은 모든 집착 털어내고 / 활짝 손들고 푸른 하늘에 / 이 마음 던져 볼거나(「내가 만든 함정」중에서)’라고 새로운 인생관을 정립하거나 ‘무엇을 찾으려 / 여기까지 왔다가 / 무얼 두고 어디로 가는지 / 밝은 길 외면하고 / 돌아가는 이 / 주인 잃은 뗏목처럼 / 비틀거리며 / 그렇게 흘러갔다.(「동짓달 스무 여드레」중에서)’ 혹은 ‘끈적이는 옛 미련에 / 소금기둥 되기보다는 / 큰 세상 만나는 / 기다림으로 살라며 / 침묵의 낙동강 / 한 몸으로 일렁인다.(「낙동강」중에서)’라는 ‘나’를 향한 지속적인 탐구를 통해서 확대시키고 있다. 그리움과 외로움에 밀려 찾아온 도량에서 고요히 마음을 모아 나를 찾는다. 그윽이 피어오르는 향은 떨리는 내 옷깃에 스며들고 투명하리만큼 밝은 촛불은 말없이 내게 미소를 보낸다. 성자여 나는 무엇이 오리까 자비로우신 눈빛 속에서 소리 없는 가르침을 받고 있는 이 영혼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찾아 헤매고 무엇을 찾으려고 여기까지 왔는가. 아픔의 세월 속에 잃어버린 시간들을 내 이제 성자 앞에서 찾고자하오니 사랑도! 미움도! 이 아픈 그리움도 당신의 미소로 모두 지워 버리고 저에게 등대를 주소서 --「내 안에서 나를 찾는다」전문 보라. 최현숙 시인의 인식은 ‘내 안에서 나를 찾’는 순수를 이해하게 된다. 이처럼 그의 시적 원류에는 ‘그리움과 외로움’이 상존(常存)하는 현실적 번뇌가 ‘도량’에서 ‘피어오르는 향’과 더불어 ‘나를 찾는’ 일에 몰입하는 형상은 그의 인식 세계를 ‘영혼’을 위한 기원(祈願) 의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는 바로 그가 탐색하는 시적 순정적 진실이며 일생 동안 성취해야 할 여망이다. 이렇게 자아를 인식하는 것은 살아온 통념적인 체험과 현실적인 번뇌가 상충된 우리들의 사유(思惟)나 정서와 교감함으로써 궁극적(窮極的)인 가치관을 재정립하는 작업을 충실히 진행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시간과 자아(自我)의 상관성 최현숙 시인에게서 다시 발견할 수 있는 그의 사유는 자아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저에게 등대를 주소서’라는 기원이 또 하나의 성찰을 의미하고 있어서 그의 삶의 과정에는 그만이 간직한 체험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것이 그가 삶과 시와 병행(竝行)으로 진실을 구형하려는 의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시간은 아주 오묘(奧妙)하다. ‘멀어져가는 죽은 시간들 / 펄펄 살아서 / 가슴 시리게 짙어지고(「방파제만 멍든다」중에서)’ 있는 이 ‘시간들’은 그에게서 자아를 더욱 확고하게 정리하는 상관성을 갖게 한다. -기다림의 시간은 이미 끝나고 / 오늘의 알갱이는 / 입안에서 달각 거린다.(「눈 내린 달 밤」중에서) - 서로 마주보며 천년을 달려도 / 만날 수 없는 슬픈 인연 / 오작교 건너는 견우직녀 / 바 라보며 한숨 쉰다.(「안개비 내리는 철길」중에서) - 억 겁의 기다림으로 / 선택된 삶 / 짓밟히고 매 맞아 / 아귀 같은 불 수행 받고 / 숨결 불어넣은 / 비단 같은 고운 살결(「지수화풍」중에서) - 난타당한 나의 25시 / 틈새를 비집고 / 고독이 소문 없이 들어왔다. / 목으로 삼킨 와인 은 / 내 속에서 모닥불로 / 다시 살아나 달그림자 안고 / 불꽃놀이 하잔다.(「나의 25 시」중에서) - 잃어버린 하얀 시간들 / 다시 꺼내어 자리 옮겨 / 펼쳐 보지만 이미 내 것이 아닌 / 빈 숫자들 빙글빙글 / 내 머리 속을 헤맨다.(「12월의 숫자놀이」중에서) - 긴 시간 닳고 닳은 배터리 / 얼마나 남아서 그녀를 흔들려나.(「인디안 인형 아다다」중 에서) 최현숙 시인의 ‘시간’은 ‘오늘’을 사유의 중심축으로 해서 과거와 미래를 망라하고 ‘천년’이나 ‘억겁’에 이르기까지 정서의 확산을 시도하고 있다. 그 시간 속에는 ‘선택된 삶’을 자아의 인식으로 탐구하면서 ‘기다림’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대체로 현대시의 구성요소들을 일별해보면 사물이건 관념이건 간에 이미지의 투영(投影)과 주제의 설정은 시간과 공간 개념을 도입하고 있은데 이는 우리 인간세계뿐만 아니라, 자연 만물에서도 공통적으로 순환(循環)하는 섭리(攝理)의 순응(順應)에 의해서 생성하는 시의 위의(威儀)를 적시(摘示)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난타당한 나의 25시’와 ‘잃어버린 하얀 시간들’과 ‘긴 시간 닳고 닳은 배터리’ 등의 시간의 관념적 이미지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자신을 이해하고 자아를 성찰하는 중요한 시점에는 ‘시간’의 원형이 상존하고 있다. 숨차게 살아온 그 많은 오늘 어제로만 보낸 기억뿐 님에게 내세울 오늘은 하루도 없어라 이쪽도 저쪽도 되돌아갈 수 없는 내 삶의 한 가운데 서서 후회와 안타까움으로만 엮어진 지나간 나의 오늘들 속에 뜨겁게 따사로운 님의 만남은 나머지 나의 오늘에 빛이 되리 --「생의 한가운데서」중에서 소나기 지나간 안개 낀 유리벽 헝클어진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 말갛게 흘러내린다. 꿈결 같은 지난날 아름다움은 가고 귀밑에 뿌려진 은발 바람에 날리며 그날의 고운 음성 마음 적신다. 사랑도 파랑새도 수놓던 시절 모두 헛된 꿈 되어 자취 없이 사라지고. 구멍 뚫린 시린 가슴으로 찬바람 넘나든다. --「안개 낀 유리벽」전문 최현숙 시인이 ‘숨차게 살아온 / 그 많은 날들’과 ‘꿈결 같은 지난날’이 ‘내 삶 한 가운데 서서’ 사유하는 정감의 언어들이 그의 시적 구도(構圖)를 직조하고 있어서 그가 구현하거는 탐색하려는 자아가 시간성과 동질의 진실로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우리들에게 현현해서 공감의 영역을 확대하려는 내면에는 이처럼 시간과 삶의 화해 중심에는 언제나 ‘후회와 안타까움’이 따르고 ‘헝클어진 마음’과 ‘구멍 뚫린 시린 가슴’이 그의 시적 진실로 감응하고 있어서 더욱 진지한 시학을 이해하게 된다. 일찍이 프랑스의 소설가이며 절학자인 까뮈(Aiberrt Camus)는 그의 글 「티파사의 결혼」에서 ‘사는 시간이 따로 있고 삶을 증언하는 시간이 있는 법이며 그리고 창조하는 시간도 따로 있다’고 말했다. 이는 그 무엇의 창조를 위해서 우리들은 이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그의 깊은 사유는 ‘후여~ 후여~ / 오늘도 오지 않을 그날을 기다리며 / 눈물짓는 바보 허수아비!(「외발로 선 파수꾼」중에서)’이며 ‘잠시 들린 짧은 / 이승의 발자취 참으로 / 짙게 남기겠습니다.(「얼음골 돌탑」중에서)’는 어조와 같이 존재의 상당한 이유는 체념과 성찰의 인생론으로 화해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3. 자연의 향기, 정감적 서정(抒情) 다시 최현숙 시인에게서 중요한 것은 자연의 향기이다. 만유(萬有)의 자연에서 한순간이라도 괴리(乖離)도어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우리 인간들이다. 그가 자연스럽게 자연과 친화할 수 있는 것은 대체로 현대시의 주제로 창출되는 것이 인본주의(humanism)와 자연주의 공존이며 동시에 생명성의 교감이 현재도 진행중에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자연 속에서 삶을 탐구하지 않으면 바로 죽음과 직면하게 된다. 평론가 김준오의 논지를 잠간 살펴보면 자연의 인격화를 중시하고 있다. 그것은 감상적 오류(誤謬)라고 말하는 동화(同化-assinlation)와 투사(投射-projectr)라는 두 원리를 작용시키는데 동화는 시인 자신이 모든 자연을 자신 속으로 끌어와서 그것을 내적 인격화하는 원리이며 투사는 시인이란 정체거 없기 때문에 그가 계속해서 어떤 다른 존재를 채우는 것, 곧 자연 속에 자신을 상상적으로 투여하는 원리를 말한다. 비좁은 가지 끝에 몽글몽글 탐스럽게 핀 벚꽃들 질투하며 지나가는 바람결에 꽃잎은 꽃비 되어 가슴을 파고들고 눈감고 코 끝 세워 꽃비 맞으려니 얼굴 간질이며 흐르던 꽃비 어느새 저만치 흩어져 가고 살포시 감은 눈망울 속엔 고운님 웃고 있다. --「바람을 실은 꽃비」전문 상큼한 새벽 공기 속에 울려 퍼지는 맑은 풍경소리 고개 끄덕이는 네 모습 정초하구나 --「아카시아」중에서 이렇게 본다면 최현숙 시인의 자연관은 어디에서 그 원류를 찾아야 할까. 우리는 ‘꽃비’라는 사물 이미지와 ‘질투하며 지나가는 바람결’이라는 무형의 이미지가 대칭을 이루면서 ‘고운님’으로 형상화하는 서정시법을 아주 잔잔하게 현현하고 있다. 또한 ‘아카시아’의 시각적 이미지가 ‘맑은 풍경소리’의 청각적 이미지가 교감하면서 ‘상큼한 새벽 공기’로 전환하는 그의 서정성은 너무나 정감적이다. 다시 그는 ‘감히 도량 앞에 서지 못하고 / 고요히 눈감고 새벽예불 / 경청하는 도량뒤뜰 / 아카시아 나무.’라고 이미지를 청정한 경지로 유로(流露)하여 서정시학의 본령(本領)을 정립하고 있다. 최현숙 시인은 ‘어깨동무하고 떠나는 / 갈바람 따라서 / 낙엽 되어 따라간다. / 나도 따라간다.(「갈바람 따라」중에서)’거나 ‘가만히 들려다보다가 / 얼른 뿌리 하나 잘랐습니다. / 천천히 오래오래 / 내 곁에 있어달라고(「이별 예감」중에서)’, ‘겨우내 / 영양실조 같았던 / 벚꽃나무 마른가지들이 / 숨구멍마다 / 톡톡거리며 / 살아있었다고 / 아우성이다(「탱고 추는 벚꽃나무」중에서)’는 어조가 모두 ‘나’라는 화자와 직접 상관함으로써 자연 서정이 인간의 숙명적인 심상의 안온함을 적시하고 있다. 이러한 시편들은 「새벽달이 전하는 말」「가을이 오려나」「목련」「축제」등에서 정겨운 시심과 시적 환경이 자연의 오묘한 정경과 은둔(隱遁)해 있는 인간과의 진실을 발현하고 있어서 그의 서정성은 생명성과 동질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가 ‘보내기엔 너무 늦은걸 / 살던 곳 그립다고 / 고개 떨어뜨리더니 / 바스락 거리며 길게 누웠다 / 너를 거기에 둘걸. / 마음이 아프다 (너도 나를 사랑했니?」중에서)’는 절규는 바로 우리 인간의 상흔(傷痕)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최현숙 시인은 이러한 자연을 통해서 자아의 인식에서 파생하는 현실적 고뇌의 일단을 중화시키고 있다. 4. ‘그리움’의 원류(源流)와 가족애 최현숙 시인의 가족애는 대단히 시적 소재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담당하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가족의 소재는 다양하다. 작품 순서별로 살펴보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외삼촌’, ‘어머니’, ‘아버지’, ‘당신’ 등 화자가 모두 ‘그리움’에 그 원류를 두고 있다. -(외할아버지) 아이고 시원하다 / 손으로 스윽 닦아 / 뽀얀 두루막 자락에 닦으시던 / 우리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외할머니 안방 화롯불에 / 군밤 익던 냄새 / 가슴가득 향기롭습니다. -(아버지) 눈치 빠르게 동생들 몰래 / 살며시 일어나 고무신 신고 / 아버지 따라 큰집에 간다. / 오늘은 얼굴도 모르는 / 큰아버지나 할아버지 제삿날. -(어머니) 이제는 / 혼자 서 보라며 / 잡아주던 손 놓으시던 어머니 / 하늘로 가시고 그러나 이러한 가족 구성원 중에서도 유독(惟獨)히 천착(穿鑿)하는 소재와 주제는 ‘어머니’에 대한 깊은 시적 유로를 살피게 되는데 이는 최현숙 시인이 인생적 체험 속에는 아직도 ‘어머니’를 상상의 세계에 머물게 하면서 시적 형상화를 통해서 자아를 성찰하는 근원으로 삼고 있음에 다름아니다. 이와 같은 가족사의 단면에는 우리 인간들의 원초적인 ‘그리움’이 내재되어 있다. ‘외할아버지’는 ‘막걸리 마시던 산타’로, ‘외할머니’는 ‘군밤 익던 냄새’로, ‘아버지’는 ‘옥양목 두루마기’로 그리고 ‘어머니’는 ‘모나리자의 미소’로 이미지가 분화하면서 지금까지 진한 체취(體臭)와 함께 불망(不忘)의 존재로 각인(刻印)되어 있다. 촉촉이 내린 지난밤 가을비로 깨끗이 몸단장한 은행잎은 맑은 햇살을 받아 유난히 반짝이며 나부낀다. 저토록 고운 은행잎 주워 차곡차곡 책갈피에 꽂았다가 고운님들께 이 마음 전해줘야겠다. 그 옛날 어머니하고 제비원 마당에서 주웠던 단풍잎과 오늘 주운 이 단풍잎은 변한 게 없는데 수만 시간이 흘렀다고 하네. 이별이 싫어 절절히 아픈 가슴도 이젠 지욱만 남아 쓸쓸한데 은행잎 단풍잎은 곱게 단장하고 해마다 나를 찾아오는데. 한번 가신 우리어머니는 다시 오지 않으시는지 은행잎 엽서에 그리움 담아 천상의 어머니께 띄워보리라 --「가을 편지」전문 그러나 이제 어쩌랴. 그 ‘어머니’는 ‘천상’에 오르고 이젠 ‘빈자리’로만 남아 있다. 이 ‘가을 편지’에서 이해할 수 있듯이 우리 인간들이 어쩔 수 없이 순응해야하는 자연의 섭리-그것은 인간의 생멸(生滅)에 관한 주요한 체험으로 시적 승화에 기여하고 있다.-를 하나의 ‘편지’로 애절함의 메시지를 전해 주고 있어서 우리는 더욱 공감할 수 있다. 이렇게 ‘어머니’의 존재는 위대하고 우아하다. 그는 ‘보낼 수 없는 내 어머니 / 제발 일어나시라던 / 한 맺힌 목소리 / 내 귀청에 꽂혀 따라온다.(「너무 아픈 이별」중에서)’는 아픔에서 생성된 그리움만이 메아리치고 있다. 딸보다 곱다면 화를 내시고 못난 딸 곱다면 좋아하시던 그 모습 달밤에 반짝이는 박꽃 닮은 울 엄마 거친 손바닥으로 등 글어 재워주실 때 기술이 좋은 줄 알았던 엄마 손바닥 가난한 반지고리에서 맡아보던 엄마 냄새 치마폭에 쌓였던 엄마사랑 어찌 잊을까 --「가난한 반짓고리」중에서 최현숙 시인은 이처럼 ‘가난한 반짓고리’에서 더욱 모성애를 확대하는 시적상황을 설정하고 ‘어찌 잊을까’라는 ‘엄마 사랑’을 재확인하고 있다. 우리 인간에게 배당된 ‘그리움’의 영역는 무한하다. 그러나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은 단순한 정감의 차원을 넘어서서 존재와 인식의 근저(根底)를 구명(究明)하는 가치론적 저변으로 이해 되고 있다. 그의 ‘그리움’은 ‘모나리자를 닮은 당신의 미소’(「모나리자의 미소」중에서)’로서 ‘어머니! 어머니! / 보고픔과 그리움 하늘에 가득한데 / 당신은 어디에 계시는지.....(「당신의 눈 속에서」중에서)’ 라는 어조로 절규(絶叫)하는 진실로 승화하고 있다. 이제 최현숙 시집『내 마음의 찻집』읽기를 마무리해야겠다. 그는 존재의 인식과 자아의 성찰을 통해서 현실적으로 상충하는 번민들을 대칭적으로 비유하거나 상징하여 시적 위의와 본령을 탐색하는 시법에 열정을 모았다. 그리고 자연 경관과 함께 자연이 인간과 어떤 상관성으로 다가와서 메시지를 전하는지 하는 실질적인 해법 제시와 ‘어머니’를 통해서 생명성의 절실성을 적나라(赤裸裸)하게 현현하여 그가 재현하려는 시적 진실을 최선의 해법으로 들려주고 있다. 그러나 일찍이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C. P. Baudelaire)의 말대로 시의 목적은 어떤 진리나 도덕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고 시는 다만 시를 위한 표현이라는 명언과 기쁨이든 슬픔이든 시는 항상 그 자체 속에 이상을 좇는 신과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기억하면서 앞으로 진지하고 지적인 주제의 투영을 위해서 언어의 또 다른 조탁(彫琢)을 모색해 나가야 할 것이다. 첫 시집 발간을 축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