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칠 줄 모르는 覇氣로 새로운 세계에 도전
-김동극 저 「저리레 꾼」을 읽고- <김영태>
먼저 60여년의 평생 친구의 세 번째 수필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책머리에서 저자가 밝힌 바와 같이 퇴직 후 100세 시대의 많은 시간을 글을 씀으로써, 자기 정체성을 찾고 후손들에게 올바른 교훈을 주고자 하였다 그 패기와 용기가 참으로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다. 교보문고와 같이 공신력 있는 대형 서점의 서평에서 “일상의 체험을 진솔하고 소박하게 잘 그려내어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하게 공감하고, 또 소박한 깨달음을 준다.”고 극찬하였다. 자랑스러운 서평이었다.
「저지레 꾼」의 글감은 1960년대의 농경사회에서 부터 2020년대 정보화 시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문화의 내면을 엿볼 수 있는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구성되어 있다. 평범한 일상을 소재로 썼지만 결코 신변잡기의 영역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작품마다 그 바탕에는 작가의 善한 品性이 濃密하게 녹아, 도덕성이나 유익한 교훈 등 보편적 가치를 함축하고 있었다.
“노는 햇볕이 아깝다.”는 말에 문득 ’우케(멍석에 말리는 벼)‘가 떠올라 “그래, 이거다”하고 무릎을 탁 치면서 나는 이미 농경사회의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밭에서 일하다가도 빗방울이 떨어지면 황급히 집 마당으로 달려가 우케를 거둬들인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잊혀져가고 있는 성장기의 추억을 소환해 준 것이다. <정초에 한 권의 책>
6.25 전란 후 절대빈곤 속에 허덕이던 시기, 기성회비가 없어 국민학교 3학년에 중퇴한 세호형, 자신도 반쪽자리 동기라는 이름으로 세호를 어루만져 주는 따뜻한 휴머니즘과 人間愛가 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그 시절 우리 모두는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지 않았던가. <국민학교 동기회와 세호형>
지금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할 교무실 책상마다 비치된 재떨이, 흡연도 일종의 간식으로 취급했던 학교 풍경, 공장의 커다란 굴뚝에서 솟아오르는 연기를 경제발전의 상징으로 여겼던 산업화 시대의 풍경들이 눈에 선하게 떠올려 주었다. <통죽>
이웃집 사모님이 “제발 손가락으로 오르내리는 곳으로 이사 좀 가요.”라는 말처럼 주거환경의 변화와 함께 우리는 일정한 시기가 지나면 조금 더 크고 편리한 새 아파트로 옮겨 가면서 살아왔다. 엘리베이터나 출입문 등이 모두 디지털화 되어, 손가락의 접촉으로 움직이는 생활구조로 바뀌었다.
digit(손가락∙숫자)란 어원에서 출발한 디지털 문화 속의 삶은, 항상 정확하고 정밀한 탓치가 아니면 번번이 실패한다. 나 또한 동기회 카톡방에서 ‘삭제’ 한다는 것이 ‘수신거부’로 잘못 눌러 지금도 우리 동기들 방에 들어 갈 수 없가 없다. 노인세대들의 둔한 손 움직임 때문에 우리는 좀 거북스럽다. 차라리 허리에 대문열쇠, 방문, 서랍, 자동차 열쇠 등 온갖 열쇠를 허리띠에 매달고 다니던 때가 더 익숙하게 느껴진다. <손가락의 進言>은 오늘날 IT와 정보화 시대에 손가락의 역할이 참으로 중대하다는 주제를 풍자적으로 기술하였다. 輕隨筆다운 문체와, 시대를 앞서가는 작가의 안목이 돋보였다. 놀랍고도 기발한 착상이 아닐 수 없다. <손가락의 進言>.
내가 놀라 자빠진 것은 불과 몇 개월 만에 약 60편에 가까운 수필을 완성하여 출판하였다는 사실이다. 작품 하나하나가 다 나름으로 지향하는 가치와 깨달음을 담고 있어 더욱 경이로웠다. 나는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로서 단지 기억에 남는 몇 작품만 골라 언급하는 것이 작가에겐 미안할 뿐이다. 나 같은 소비자의 입맛은 워낙 개별적이라서 내 말이 전혀 참고가 되지 않을 것임을 전제한다.
며칠 전 점심 먹으러 집 근처 ‘풍국면’이라는 국수집에 들렀다. 안내자나 주문 받는 사람이 없어 주방 쪽으로 가서 젊은 남자에게 ‘주문을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손가락으로 식탁위의 아이패드(키오스크)를 가르켰다. 순간 “아차, 더러 들어본 키오스크다.”하고 구석진 식탁에 앉아 긴장된 손으로 상업광고 중인 아이패드 화면을 옆으로 미니 차림표가 나타났다. 전전긍긍 짬뽕면을 선택하니 또 ‘매운 맛’, ‘보통 맛’, ‘순한 맛’ 등을 열거해 놓고 선택하라고 했다. 왠지 거북했다. 2인분을 카드로 주문 후 확인 버튼을 눌리니, 그 제사 10분 이내로 보낸다고 했다. 얼마 후 조리사가 직접 끌개로 음식을 운반해 와서 식사를 즐기라고 했다. 사람이 아닌 기계에만 의존하여 주고받으니 따뜻한 인정을 느낄 수가 없었다.
지하철을 타거나 공원 같은 공공장소에서도 젊은이나 늙은이 할 것 없이 온통 휴대폰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다. 단지 손가락의 움직임만으로 세상을 보고 자기의 삶을 누리고 있었다. 심지어 우주를 여행하는 인공위성도, 지구상의 인류를 한 순간에 멸망시킬 수 있는 핵폭탄도 손가락 누름에 달려 있지 않는가.
나는 갑자기 친구의 수필집 속에 <손가락의 進言>이 떠올라 다시 읽어 보아도 감동적이었다. 내 눈에는 60편에 가까운 작품 중에서도 이 작품이 유독 신변잡기의 범주를 벗어나, 수필의 진면목을 보는 것 같이 반가워 다시 한 번 꼼꼼히 읽었다.
그런데, 첫 문장 “신체의 각 부위는 주군을 모신 下手人의 徒黨이다.” 이라는 문장의 의미가 왠지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창작문인지, 모방문인지, 아니면 인용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왠지 나에겐 생경하게 다가왔다.
이 글은 주제문을 문두에 놓아 두괄식(연역법) 형태로 구성하였다. 주제문을 앞 세워 두고, 뒷받침하는 작은 문단들이 앞의 주제문을 받쳐주면서 흐름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下手人”과 “徒黨”과 같은 어휘들은 왠지 거칠고 투박하여 소화하기 어려웠다. ‘하수인’은 ‘졸개’ 또는 “사주를 받아 주로 나쁜 역할을 하는 사람‘의 의미로, 또 ’도당’은 ‘반역 도당‘, ’괴뢰 도당‘ 등과 같이 불순한 사람들의 무리와 잘 호응하는 어휘로, 긍정적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흔히 의미 분석의 틀인 부정(-) - 중립(0) - 긍정(+) 속에 넣어본다면 이 어휘들은 확실히 부정적의미(-) 쪽이다. 그런데 주제문을 뒷받침하는 문장들은 모두 주군을 위해 충직하고 유익하며 긍정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글 전체의 首尾가 상응하지 못하고 일관성이 떨어진다. 전체적인 흐름을 보아서는 ‘下手人의 徒黨’ 보다는 ‘忠直한 護衛(近衛)兵’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주제문의 時制도 과거형 “모신” 보다는 현재형 “모시는”이나 현재 진행형 “모시고 있는”이 상황에 더 적합할 것 같았다. ‘주군을 모시는 행위’가 과거에 국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굳이 옥에 티를 하나 더 잡자면 ‘제목의 탄생’ 같은 표현도 시쳇말로 조금은 ‘오버’한 느낌이 들었다. ‘탄생’이란 주로 ‘위인’이나 ‘위대한 업적’과 같은 말에 잘 어울리는 어휘이다. 자신의 글 제목을 스스로 ‘탄생’으로 표현한 것은 어딘가 경계를 넘어선 것 같아 어색해 보였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글의 제목’은 글의 얼굴과도 같아서, 대개는 글과 관련된 外延的 의미(辭典的 의미)나 含蓄的 의미(內包的 의미)를 가지며, 때로는 이 兩者를 다 포함하는 제목도 볼 수 있다. (예컨대 제목의 상징성, 제목의 선정과 의미, 제목의 단상, 제목의 외연과 함축 등등)도 생각해 보았다.
‘저지레 꾼’은 ‘저지르다’의 어원에서 파생된 말로, 가족 간에 흔히 쓰는 어휘다. 아내가 이따금 남편의 심한 행동을 절제해 준다든가, 과속을 잡아주는 블레이크 역할도 한다. 남편은 이 말에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보면서 절제의 미덕을 배우기도 한다.
재작년 코로나가 한창 창궐하던 5월 무렵이다. 아내가 “제발 돈 안 되는 일에 나서서 저지레 좀 하지 말라.”라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여느 날처럼 그날도 나는 해질 무렵 신매공원에서 각종 운동기구를 이용하던 중, 평행봉에 올라 바로 앞에 걸린 <마스크 쓰go 운동에 적극 참여합시다.>를 보았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아내에게 “저 현수막 문구의 의미가 모호하고 비문이다.”라고 말했다. 아내는 “또 곡기 없는 저지레 할라카나?”하면서 “그냥 놓아두어도 다 알라먹는다. 고만 해라.”는 것이었다. 지난날 그와 비슷한 일로 관공서에 항의한 기억을 떠올리고 아내가 말한 것이다.
나는 날마다 저 괴물 같은 문장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었다. 지켜 본지 3일째 되던 날, 난 수성구청 민원실에 전화를 걸었다. 먼저 나의 주거지와 전화번호를 가르쳐 준 후 “마스크 쓰go 운동에 적극 참여합시다.”라는 현수막을 제작한 담당자를 좀 바꾸어 달라고 하였다. 전화를 받은 여직원은 현수막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말해보라고 했다. 나는 “얘기가 좀 길 수 있다. 담당자와 통화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여직원은 안전총괄과로 전화를 바꿔 주었다. 안전총괄과에서도 여직원이 받았다. 거기서도 “담당자를 바꿔 달라.”고 하니 또 “뭐가 잘못되었느냐”는 질문을 하기에 똑 같은 설명을 해 주니, 그 때서야 담당자를 바꿔 주었다. 나는 얘기가 좀 길더라도 잘 경청해 주기를 부탁하고 얘기를 시작했다.
“마스크 쓰go 운동에 적극 참여합시다.”라는 현수막에 ‘영문 'go' 단어는 뜻을 빌렸습니까, 아니면 소리를 빌렸습니까. 그리고 ‘go’는 문장에서 어떠한 의미와 문법적인 기능을 하고 있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즉답은 피하고 다소 의아한 듯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 달라.”고 했다. 내 질문에 다소 황당한 듯이 말했다.
‘go’의 뜻을 빌렸다면 ‘마스크쓰가 운동에 적극 참여합시다,’가 되어 非文이 되고, 'go'의 음을 빌렸다면 연결어미 ‘-고’로 활용되어 ‘완료’의 의미와 ‘연결’의 의미가 동시에 실현된다. ‘마스크 쓰고 운동에 적극 참여합시다.’라는 문장은 문법상으로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의미를 정밀하게 분석해 보면 “마스크를 쓰고(난후 그리고) 운동에 적극 참여합시다.”라는 문장이 된다. 문맥상 이때 ‘운동’의 의미는 축구나 씨름 등 신체적 운동(physical exercise)이지 범국가적으로 코로나 방역에 함께 참여하자는 ‘사회적 운동이나 정신적 운동(social campaign /movement)’의 의미는 아니다. “우리 모두 고운말 쓰고 운동합시다.”라고 한다면 ‘고운 말을 쓰자.’는 ‘사회적 운동’이라는 뜻이 있겠습니까?.“
“결론적으로 ‘마스크 쓰기운동에 적극 참여합시다.’라고 하면 된다. ‘쓰기운동’은 하나의 의미 덩어리가 되어 정신운동이나 사회적 운동의 의미로 나타난다. 굳이 영문으로는 social campaign /movement의 뜻으로 정확히 전달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나는 또 “국어 맞춤법은 지키지 않아도 되는 법입니까. 더욱이 國祿을 먹고사는 공무원이 우리말을 아무런 검토 없이 맞춤법을 파괴하고, 외국어로 땜질하여 괴상한 문장을 써도 괜찮습니까.” 하고 다소 비판적인 얘기를 하고 말았다.
이토록 긴 이야기를 다 듣고는 그 공무원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이 현수막은 우리 구청에서 기안한 것이 아니고 대구시의 지시로 만든 것입니다. 말씀해 주신 내용을 시청 담당부서에 잘 전달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난 그만 맥이 빠졌다. 네 그렇게 하세요. 반드시 “시정조치 후 이 번호로 결과를 연락해 주세요.”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후 2주쯤 지나니 신매공원에 걸린 현수막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한 2개월이 지나니 대구시 전역의 교통요지마다 걸린 ‘마스크 쓰go 운동에 적극 참여합시다.’ 라는 방역현수막은 자취를 감추었다. 나의 저지레 얘기가 너무 길었다.
이따금 우리는 보이는 사물을 사생화를 그리듯이 그대로 글로 옮기려고 해 본다. 머릿속에 중얼거리던 어휘들이 뱅뱅 돌다가도 막상 옮겨 적으려면 날아 가버린다. 늙어 갈수록 더욱 그러하다. 적확한 어휘가 아닌 것으로 문장을 써 놓고 보면 처음의 의도가 왜곡되고, 문장도 뒤틀린다. 어정쩡한 타협으로 문장을 완성하고 나면 글은 볼품이 없다.
그런데 내뱉은 말은 고칠 수 없지만 글은 고칠 기회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퇴고는 거듭할수록 좋아지지만 요령껏 하지 않으면 이따금 수미상관을 벗어난다. 소재가 좋거나 오래도록 고민한 것은 일사천리로 써도 맑고 깔끔하다.
널리 알려진 상식이자만 문학은 크게 두 갈래로 서정과 서사로 나눈다. 서정은 주로 시를 통하여 인간의 心象 즉 이미지를 제시하여 아름다움과 깨달음을 추구하고, 서사의 세계는 주로 소설을 통하여 ‘있었거나 있을 법한 story’를 가공해서 작가가 하고 싶은 주제를 제시한다.
그런데 수필은 어느 갈래일까? 아마도 이 두 갈래의 중간쯤이 아닐까 싶다. 수필은 삶의 분위기 즉 mood를 제시하는 문학이다. 1인칭 화자의 시점으로 자신의 삶을 솔직 담백하게 토로하는 장르다. 또 수필은 성인 문학이라고도 한다. 동극이 친구처럼 풍부한 삶의 체험이 바탕이 되어, 반드시 본인이 겪은 세계를 觀照하면서 쓰기 때문에, 거짓이나 fiction이 용납되지 않는다. 따라서 20대나 30대의 수필가는 드물다.
지난 10월 20일 금요일, 103세의 철학자 김형석 교수의 칼럼 “국민은 역사심판의 책임이 있다.”라는 칼럼을 감명 깊게 보았다. 100세 시대의 삶을 생각하니 문득 친구 동극이가 떠올랐다. 일찍이 70이 되면 孔子님은 “從心所慾不踰矩라 하였다. 나이가 70이 되면 자신의 言行을 마음 가는대로 해도 도리에 어긋남이 없다.”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70대의 연령을 상징하는 말로 “從心”이라고도 한다. 현실적으로 공자님의 말씀처럼 그 경지에 도달하여 從心대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동극이 친구는 내일 모래 80인데, 지금도 땅 속 깊이 고인 鑛泉水처럼 솟아오르는 표현의 욕구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왕성한 것 같다. 참으로 부러운 일이다. 그리고 그 많은 글을 從心대로 써도 크게 도리에 어긋나지 않으면서, 이처럼 재미있고 유익한 작품으로 완성시켜, 1년에 수필집을 두 권이나 우리 앞에 내 엮어내지 않았는가. 아마도 동극이 친구는 孔子님이 제시한 從心의 경지에 확실히 도달한 인물이 아닌가 싶다.
‘지칠 줄 모르는 覇氣로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 친구가 부럽고 자랑스럽다.
앞으로 수필계에서 우뚝 선 거목이 되기를 기대한다.
-癸卯年 晩秋에, 友 榮泰 씀
첫댓글 영태씨는 동극 씨를 너무 사랑하고 위대하게 생각하시고 있음이 들어 나네요.
국보란에 올렸으니 동극씨는 바로 국보이시네요. 두 분 감사해요.
김교수 다녀가셨군.
다시 읽은 글이네만 어느게 작품이고 어느게 독후감(書評?)인지 구분이 안되는군.
놀랍다.
카페가 너무 조용하지?
오랜 내용이라 다시 보니 그 또한 재밌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