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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필문학관 아카데미 18기-6차시 (3월 21일 월)
습작품 합평(3)
1. 독거노인 미꼴할배 /이성규
1) 우리엄마 택호는 미꼴댁이다. 그 해 따신 봄날 여든셋을 살아오신 엄마는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갑자기 별세 하셨다. 그 때 엄마는 감기기운이 있었고, 병원에 가려던 날이었다.
2) 아버지와 같이 버스로 병원 가려고 엄마는 머리감고 옷 갈아입고 채비를 마쳤다. 아버지께 "큰 아 올 수 있는지 전화 함 해 보소"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병원에 버스로 가면 되는데 근무하는 큰 아들을 왔으면 하니 엄마를 나무랬다. 몇 번이나 그러길래 아버지는 맏형한테 전화를 했다. 형님은 다행히 올 수 있는 여건이 돼 구미서 시골집 성주로 왔다.
3) 기다리던 큰아들이 오자 얼굴이 환해 진 엄마는 큰방 장농 위에 둔 신발을 가져 오라고 하고는 잠시 누웠다. 형이 신발을 들고 오자 엄마는 그 길로 아무 말 한마디 없이, 가져 와 신으려던 그 신발을 신지도 못한 채 먼 길을 떠나셨다.
4) 아들만 넷을 낳으신 엄마는 연세드신 후 평소에도 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이 " 너거 애 안 먹이고 자는 잠에 편히 잘 죽어야 할 터인데 그게 걱정이다 " 딸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노년이 덜 외롭겠다는 걸 아시는 듯 했다.
5) 엄마보다 한 살 더 많으신 아버지는 여든넷, 그 날부터 독거노인이 되셨다. 밥은 그렇다치고 양말하나 빨아 본 적 없는 아버지는 앞이 캄캄하다 못해 하늘과 땅이 딱 들어붙는 절망감에 아마도 잠을 못 주무셨을 것 같다.
6) 아들넷은 모두 직장 다니고 있었다. 그렇다고 누가 시골집에 들어 가 살거나, 대구로 모시고 올 형편은 못되었다. 일주일에 한번씩 주말에 순번대로 들어가 청소며 세탁, 일주일동안 드실 반찬을 갖다 드리자고 약속했다. 그나마 형제가 모두 대구에 사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7) 동네 근처 양지바른 곳에 조부모님 산소가 있다. 평소에도 아버지는 그 산소 밑 작은 남새밭에 갖은 채소를 길렀다. 엄마산소를 조부모님 산소 곁에 마련 되고부터 더 열심히 그 밭을 오르내리셨다.
8) 아버지는 평생을 문중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시고, 시골 동네 동장도 오랫동안 하셨다. 동네 좋은 일, 궂은 일 다 돌봐 주시며, 자기관리에 엄격했던 아버지는 막상 엄마를 멀리 보내시고는 정신 바짝 차리며 사셨다.
9) 혹여 어떤일이 생길까 걱정이 돼 텔레캄에 의뢰해 시골집 마당에다 시시티비 카메라를 달았다. 아들네들은 각 자 휴대폰에 엡을 깔고 가끔씩 보곤 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 나가시는 모습, 사람 거처도 않는 방에 장작불 때는 모습을 본다.
10) 아침을 드시고는 오토바이타고 십릿길 소재지 게이트볼장에 가신다. 친구들과 놀다 점심 드시고 오후 해그름에 올라오시면 장작불로 물을 뎁혀 그 물로 머리도 감고 양말도 빨고, 방청소도 하신다. 아마 주말마다 교대로 오는 며느리 눈에 헝클어진 당신 모습 보이기 싫은 것 같다.
11) 그렇게 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연세가 아흔하나 되신 독거노인은 이제 기력도 많이 떨어지셨다. 걸음걸이도 느리고, 말투도 흐리다. 한 달에 한 번 시골 당번 때 갔다 나오면 마음이 짠하다. 시골 갈 때 마다 조부모님 산소와 엄마 산소에 가서 절 두번 하고 눈물 좀 흘린다.
12) 얼마나 더 우리 곁에 든든한 대들보로 또, 큰 어른으로 계셔주려나 하는 마음 가득하다. 그 전 엄마가 하시던 말씀데로 아버지도 " 내가 너무 오래 너희 애 먹인다 " 하신다. 아버지는 내게 정신적 지주요 하늘이었다. 늘 정월초하루 같던 그 빛나던 정신도 조금씩 흐려지는 것이 보인다. 드시는 밥보다 약이 더 많은 요즈음이다. 아버지는 시골서 병들고 자식은 도회서 걱정만 한다.
13) 천세를 누리고 만세를 누리시길 바라는 것은 하늘을 머리 이고 사는 자식된 마음이다. 어버이께 효도란 늘 부족하고 죄스럽다. 오늘따라 부끄럽게도 하늘은 높고 푸르다. 먼저가신 엄마가 보고싶다. 오늘도 불효아들은 속으로 가만히 뇌인다.
" 아부지 건강히 오래오래 사이소예.. 사랑함미데이 미꼴할배 "
2.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 남택수
1)음악대학이 유명한 대학교의 성탄 축하 음악회에 초대받았다.
2)울림 파이프가 강단 전면을 가득 메운 장엄한 채플에 은은한 조명이 스테인드글라스를 비취고 있다. 관악 오중주의 트럼펫이 헨델의 ‘서곡’으로 시작을 알린다. 이어서 실내악단의 현악기와 플룻이 캐럴을 연주하면서 분위기가 달아오른다. 오르간 주자가 18세기 라틴 성가를 반주하니 회중이 찬송가를 함께 부른다.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있어도 높은 곡조는 돔 천장까지 화음이 울려 퍼진다. 뒤쪽 발코니에서 성가대가 ‘오 거룩한 밤’을 깊은 목소리로 부르는데, 곡 중 무대에서 소프라노 솔로가 함께 도운다.
3)성스러운 채플에서 빈틈없이 진행된 음악회는 입과 코를 꽁꽁 싸맨 관중이 띄엄띄엄 앉아 박수도 없이 이어졌다. 분위기는 근엄하여 무거웠지만, 수준 높은 연주가 가슴 깊이 스며들었다.
4)주말 토요일 저녁, 콘서트하우스에서 남성합창단 정기연주회가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 가운데서도 40여 명의 단원이 꾸준히 준비하고 연습하여 발표하는 무대이다. 첫 번째 차례는 쳄버 오케스트라와 함께 다소 묵직하게, 두 번째 무대는 헨델의 ‘메시아’ 가운데, 탄생 부분을 모아서 연주한다. 클래식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할렐루야’는 언제 들어도 감동이다. 마지막은 화려하고도 우렁찬 합창으로 향연을 마무리하니 청중은 뜨거운 박수로 앙콜을 청한다. 연주회의 백미는 앙코르이다. 팽팽하게 긴장된 객석의 분위기가 자유로워지고 연주자들도 그만큼 부담 없이 즐기면서 노래하는 시간이다.
5)합창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각자의 목소리를 조절하여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여리고 거센 목소리를 모으고 섞은 화음을 청중에게 전달하는 예술이다. 갖가지 나물에 고추장과 참기름을 살짝 넣어 고루고루 비벼 먹는 비빔밥과 같다. 인생은 합창이고 합창은 비빔밥이다.
6)크고 작은 수천 개의 파이프로 장식된 장엄한 채플과, 전문 콘서트홀은 몇 년 전에 우리 단원과 함께 합창을 연주한 장소이기도 하다. 넓고 호화로운 연주 홀에서 전문가들이 연주하는 음악회를 연달아 감상하면서, 오래전 일곱 살배기 촌아이가 남포 불로 밝힌 조그마한 무대에서 독창하던 감격이 떠오른다.
7)가을걷이가 끝난 휑한 들판에 골바람이 불었다. 얼어붙은 냇가에서 앉은뱅이 스케이트를 지치다가 손발이 시리면 모닥불로 달려갔다. 젖은 신을 벗고 언 발을 쬐다 보면 나일론 양말의 바닥은 간데없고 발가락이 훤히 드러났다. 태워 먹은 양말이 들킬세라 얌전한 자세로 저녁을 먹자마자 예배당으로 달려갔다. 크리스마스는 한 달이나 남았지만, 저녁마다 성탄 노래를 배우고 여학생들은 춤을 연습하면서 축하회를 준비했다.
8)12월 24일, 성탄전야는 동네잔치였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교회에 다니지 않던 엄마 할매들까지 모여와 기와지붕 예배당은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앞쪽 강단 앞에 철삿줄을 치고, 광목 휘장을 매달아 무대를 가렸다. 키 큰 선생 둘이 광목 깃을 잡고 가운데로 모이면 무대가 닫히고, 벽 쪽으로 걸어가면 닫혔던 무대가 다시 보였다. 인사말에 이어 학년별로 올라가 성탄 노래를 합창하고, 중간중간에 독창과 무용 순서로 이어졌다. 엄마의 하얀 속치마를 입은 누나들이 흰 종이로 만든 수술을 손에 들고 천사가 되어 춤을 추었다. 드디어 독창 순서였다. 또랑또랑한 머슴아가 무대 가운데로 나와 처녀 선생님의 풍금 전주에 맞춰 여덟 마디 짧은 노래를 힘차게 부르고 꾸뻑 인사하였다. 광목 휘장이 닫히면서 우레 같은 박수에 베니다 천정이 들썩거렸다.
9)해마다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이지만, 올해는 밝고 따뜻한 빛이 저리도록 그립다. 하루에도 수천 명의 환자가 새로 생겨나, 병상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이웃이 넘쳐난다. 어디든 들어가려면 체온을 재고 백신주사를 맞았는지 조사받는다. 제약과 간섭에 얽매인 세월이 지루하고 힘들다. 어둔 세상에 빛으로 오신 주님의 뜨거운 사랑과 참된 평화가 간절하게 기다려진다.
10)세상의 어두운 바람을 물리치고
흰 눈처럼 오시는 아기 예수여
이 땅에 그득 찬 질병과 갈등을
흔적도 없이 깨끗이 지워 주소서
우리의 허전한 가슴을 활짝 열고
오소서오소서 어서 들어오소서.⁜
⁜ 리강룡의 「성탄절에 드리는 기도」 중에서 일부를 가려서 고쳐 쓰다.
3. 학창 시절 / 서인수
1 중학교 입학하고 얼마 안 되어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그 무렵 단어 의미를 전혀 모를 당시 꿈속에 pioneer 글자가 나타났다. 잠자는 꿈속에 문자가 선명하게 나타나 불가사의하기도 했다. 사전에 개척자로 의미를 알고 나니 뇌리에 뚜렷하게 못이 박혀 있었다. 덕분에 강의 못 알아들어도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고 노력하는 데 따라 운명을 용기 있게 개척하는 계기로 정신(精神) energy가 작용하고 있었다.
2 음악 시간에 선생님이 풍금 치면 곡조 말해보라 했는데 하나도 도/레/미/파/솔/ 라/시/도를 맞추지 못해 음악 점수는 양 아니면 가였다. 역사 시간은 설명을 많이 하는데 못 알아들으니까 제일 재미없는 과목이었다. 과학 시간은 모터를 만들어 기계에 발동시키는 시간이 재미가 있었다. 체육은 철봉 운동하다가 떨어져 다치는 경우도 있었다. 버스는 탈 차비도 없어 4KM 넘는 거리를 날마다 걸어 다녀야 했다.
3 누나와 삼 남매가 다정하게 살아가는데 중학교 2학년 때 고등학교 1학년인 형을 교통사고로 별안간 잃어버려 슬픔 속에 빠져들고 말았다. 하지만 용기를 잃지 말고 살아가야 했다. 양쪽 고도난청이라 의사인 당숙에게 보청기 선물 받아 사용했지만, 어머니가 보청기 값을 따로 주었다고 했다. 초창기 제품이라 무겁고 삑삑 잡소리가 자주 났다. 말소리 제대로 들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소리가 증폭되니 사용하였다.
4 공부라도 열심히 해야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 정신 바짝 차리고 집중을 하였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세상이 보이기 시작하여 험난할 것 같아 눈물이 나왔다. 국어 시간에 선생님이 내 보청기를 말없이 뽑아 탁자 위에 올려두고 수업 끝나면 교무실로 오라 하였다. 교무실에 가니 수업 중에 왜 리시버를 듣느냐면서 문책을 했다. 청각장애인 보청기라고 말씀을 드리니 미안하다면서 가족관계를 물어보았다.
5 청년이 되니 장래에 대한 근심 걱정을 많이 하게 되었다. 공부라도 열심히 해야 살아갈 수 있겠다는 마음에 날마다 공부만이 생활의 전부가 되고 말았다. 동급생과 영화 볼 시간도 당구 치며 놀아볼 시간도 없을 정도로 공부가 비중을 차지하였다. 수학과 기하 공부가 마음에 들어 열심히 하기 위해서 두꺼운 수학 1.2 책을 날마다 책벌레처럼 읽고 파고들었다. 의문점은 학원장에 물어보고 해결했던 시절이었다.
6 고등학교는 참고서나 자습서가 있음으로 학교 공부는 따라갈 수 있었다. 수학을 자신 있게 할 수 있었는데 영어는 말로만 강의하니 해석하는 방법을 몰라 애를 많이 먹었다. 영어에 문장 구조가 있는 것을 학창 시절에는 전혀 몰랐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구문론을 공부하고 따라가고 싶기도 하지만 시간을 투자할 수가 없었다. 말소리를 알아듣지 못하고 학교 생활하니 친하게 사귀는 친구는 소수일 뿐이었다.
7 고도난청이라는 짐을 짊어지고 학교생활을 하니 설움이 많았다. 그렇지만 역경이 있어도 개척정신으로 극복해가자는 마음을 먹었다. 일주일만 귀가 밝으면 무엇인가 발명하거나 발견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듣고 배우는 정보가 없다 보니 자세한 내용은 알 수가 없었다. 인생은 사랑을 중심으로 돌아가니 건강과 행복으로 평화를 찾고 삶에 헌신 봉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사랑하는 형을 잃어 슬펐지만 누나가 일찍 결혼해 자형이 생기니 의지가 되었다.
8 컴퓨터나 컬러 TV가 없던 시절이라 답답한 마음에 강물 있는 모래밭이나 가까운 뒷동산에 올라가 스트레스를 뽑아내었다. 평소에 이야기가 별로 없으니 목소리가 잠기는 것 같아 말 못 하는 벙어리가 되지 않도록 뒷동산에 밤마다 올라가 혼자 말하는 연습을 계속했다. 컴컴한 밤 세 시쯤 별빛을 바라보면서 발성 연습을 하는 것인데 목청이 막히지 않도록 야~~ 호~~ 하는 소리로 훈련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9 고도난청은 대화가 자유롭지 않아 불편한 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지만 인내하면서 극복해야 했다. 대학교 때는 교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한마디도 듣지 못해 답답해도 출석하여 공부하는 분위기라도 받아보자 하는 마음으로 등교했다. 급우에게 강의 내용 적은 노트를 빌려서 복사하고 집에서 또다시 공부해야 했다. 이해 안 되는 점이 많았지만, 도서관에 책을 대출받아서 읽어보는 경우가 많았다.
10 대학교 교육은 필기하는 내용 없이 말로만 강의하니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어 갑갑하기만 하였다. 수업하는 분위기만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체육 시간에는 운동화 신고 오라고 강사님이 말한 모양인데 알아듣지 못해 구두 신고 왔다고 체육 학점 1학점을 주지 않아 애를 먹기도 했다. 4년 졸업식 때는 0.5학점이 모자란다고 한 학기 수업료 내고 학점도 추가로 따야 졸업할 수 있다 해 어쩔 수 없이 하였다.
11 억울한 마음이라도 고도난청은 핸디캡이 있으니 참아갈 수밖에 없었다. 인생은 파란만장하니 철학책을 주로 읽고 태권도로 마음을 수련/수양하게 되었다. 사람의 운명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서 연동되고 연장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공학과 수학, 책을 주로 읽어 보게 되었고 인생관(사회관/우주관)은 나름대로 계통 체계가 확립되어 우주 만물을 통찰해보는 경지에 다다르게 되었다.
4. 숲의 천이 遷移 / 오수미
1)독서회 회원들과 한 달에 한번 산행을 한다. 규칙적으로 정해진 때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매 달 두 번 있는 토론에 미처 참석하지 못한 회원들을 위한 배려다. 꼭 책이 아니더라도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한 친목이다. 테이블위에서 정해진 순서, 주어진 시간을 채우는 각진 시간과는 다르다. 어우렁더우렁 같은 곳을 바라보며 그저 보폭을 맞춘다. 기다림이 있다. 꽃보다 더 예쁜 이야기꽃을 피우며 함께 걷는다. 아울러 웃음꽃이 핀다. 소통의 꽃이다. 이 날은 10살인 딸아이도 함께 한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자연에서는 엄마와 딸이라는 세대를 넘어 공감하기 딱 좋다.
2)우리의 산행 아지트는 팔공산 줄기에 있는 해발 400m의 ‘명봉산’이다. 인근에 있는 ‘함지산’에 비하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경사가 완만하고 조용하다. 먼 옛날, 산봉우리에 봉화대가 있었다. 밤에는 횃불을 밝혀, 낮에는 연기를 올려 나라의 위급한 소식을 온 동네에 전했다. 그 당시 아주 중요한 통신 수단이 있던 곳이다. 참으로 훌륭한 소통방법이다. 지혜로운 조상들 덕분에 지금의 이 나라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3)산 입구에 소나무가 길을 터준다. 소나무가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이 이 산의 매력이다. 피톤치드 향을 맡으면서 상쾌하게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 좋다. 마음이 너글너글하다. 어릴 적, 시골 외갓집 마루에 앉아 앞산을 보면 소나무가 가득했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잎이 물들거나 떨어지지 않았다. 그것이 좋았다. 산에는 소나무만 있는 줄 알고 자랐다. 당연히 그래야한다고 믿었다. 아마도 우리 주변에 오랫동안 함께 해온 나무이기 때문인 것 같다.
4)소나무 주변에는 민달팽이들이 부지런히 이동하고 있다. 이곳의 민달팽이는 소나무껍질을 닮았다. 그 모습이 비슷하여 자칫하면 밟을 수 있다. 예전에 누군가로부터 옛 스님들이 길을 걸을 때 지팡이를 짚고 걸었던 까닭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지팡이가 먼저 ‘쿵’ 하고 땅을 울리면 그 소리에 작은 생물들이 피한다고 했다. 너무 작아서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생물들과의 소통이다. 아이와 등산지팡이를 하나씩 나누어가진다.
5)산을 오를수록 참나무가 울창하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더불어 살고 있다. 신갈나무 잎사귀가 도토리를 문 채로 바람을 탄다. 아이가 도토리를 외치며 쫓는다. 어디에 있었는지 다람쥐 한마리가 놀란 듯 나무를 오른다. 눈으로 다람쥐를 따른다. 다람쥐가 보이지 않자 재빨리 도토리를 줍는다. 귀엽다며 조물락거리더니 주머니에 쓰윽 넣는다. 가져가려거든 다람쥐한테 허락받고 가져가라고 했더니 빤히 쳐다본다. 잠자코 마주하니 다시 꺼내놓는다. 말뜻을 이해했나보다. 통했다.
6)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가을답다. 눈이 시리도록 푸르다. 뒤로 넘어갈 듯 고개를 쳐들고 보는데 낯익은 새 한 마리 감실감실하다. 인디언추장을 닮은 독특한 모습의 후투티다. 후투티는 우리나라에서 봄과 여름을 보내고 떠나는 철새다. 지금쯤 이미 떠났어야 하는 새다. 하지만 이렇게 머무르고 있다. 모두들 얼음이 되어 녀석의 모습에 감탄한다. 겁도 없이 일행과 가까운 거리에 내려앉아 땅을 쪼아대기까지 한다.
7)지난겨울 어느 날, 집 앞에 위치한 *팔거평야를 산책하다 한 녀석을 만났다. 여름철새인 녀석이 한 겨울에도 떠나지 않고 머무는 것이 이상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지구온난화 때문에 철새에서 텃새가 된 새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후투티도 그런 종류의 새들 중 하나다. 터줏대감인 비둘기나 까치에게도 견제당하지 않고 잘 살아가는 녀석이 대견하고 고맙다. 부디 찬바람도 잘 견뎌내어 무사히 겨울을 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진정으로 우리나라를 고향 삼아 잘 적응하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8)지팡이로 땅을 울리며 걷는다. 참나무 아래 우거진 잡초 사이에 각양각색의 버섯들이 눈길을 끈다. 잘려나간 소나무 밑둥에 버섯하나 있다. 감히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예쁘고 신기한, 접시크기만한 새하얀 생명이다. 누군가가 독버섯이라고 외친다. 민달팽이 한 마리가 버섯위로 기어오르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독버섯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해보이려는 것일까, 알 수는 없다. 이 또한 우리의 선입견이다.
9)정상으로 들어서는 길목, 크고 작은 바위에 얼룩얼룩 이끼가 그림처럼 앉았다. 추상화를 보는 듯 멋지다. 수천 년을 바위와 소통하며 만들어냈을 흔적이다. 봉화대가 있던 자리는 헬기 승강장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그 옛날 봉화대나 오늘날 헬기장이나 위급한 때에 역할을 한다는 것은 똑같다. 그러고 보면 세상은 통한다. 과거를 거슬러 현재에 통하게 하고 미래를 위해 길을 낸다.
10)온 산을 지키며 하늘높이 뻗어만 가던 소나무가 참나무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변화하는 기후 속에 홀로 완벽해질 수 없음을 깨달았다. 연약한 꽃들과 잡초들이 나무아래 터를 잡는다. 참나무를 따라 온 많은 생명이 더불어 살아간다. 꽃도 암술과 수술을 가진 것만으로는 부족하기에 벌도 나비도 따라오는 것이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 햇빛을 조각내고 바람을 통하게 한다. 그늘진 곳, 버섯은 썩은 나무에 집을 지어 삶과 죽음을 연결한다. 잎이 지니 숨어있던 것들이 보인다. 이방인인 후투티도 이웃사촌이 되어 살아간다. 그 어떤 것도 독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숲은 천이 를 겪으면서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11)인간세상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고향 아닌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만 보아도 그렇다. 연고도 없는 곳에 와서 직업을 가지고 아이까지 낳고 살아간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이 내 자리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의사소통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마음을 치유한다. 오늘의 산행도 구체적인 그 어떤 목적이 아닌, 그저 더불어 살기 위함이다. 발맘발맘 숲처럼 살아가기 위함이다.
*팔거평야 : 대구 칠곡3지국 학정역 근처에 위치한 평야, 경북농촌진흥공사 관리
5. 화살나무 /변화숙
산길은 산 길이다. 지난해 세상이 깊은 침울에 빠졌을 때 경북도청 신청사를 바라보는 천년숲을 찾았다. 모래흙 길을 밟는다. 뭇 세상과 거리를 둔 낙락장송이 모세의 기적처럼 양쪽으로 길게 서 있다. 해와 비가 만물을 살리듯 숲은 나를 살린다. 어느 때보다 평화롭고 소박한 행복을 오롯이 누리는 나만의 시간이다.
자연 세계는 끝 간 데 없이 청량하다. 걷다 보니 소나무 곁 키 작은 나무에 눈길이 간다. 생김새도 낯설어 가던 발길마저 멈춘다. 메마른 가지가 요즘 세상을 보는 듯 칙칙하고 우울해 보인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볼품 없는 모습이다. 발가벗은 채 온몸으로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다. 나뭇가지가 서로를 단단히 붙잡고 있지 않으면 바람을 견딜 수가 없다. 한겨울을 지내느라 거칠고 야윈 가지가 찬바람에 사뭇 떨리기도 하지만 곧 중심을 잡는다. 생명을 품은 화살나무의 자신감과 느긋함이다.
화살나무는 내게 그림자 같은 나무다. 소나무는 화살나무의 친구다. 눈길을 주지 않았을 때도 소나무가 울타리 되어 주어 외롭지는 않았겠지. 귀신의 화살 깃이란 뜻으로 귀전우鬼箭羽라 불린다. 시위를 당기면 멀리 날아갈 듯하다. 하늘을 회색빛 여백 삼아 의연한 모습을 뽐낸다. 어릴 적 할머니가 은빛 머리를 곱게 빗던 참빗 같다. 어떻게 이런 독특한 모습을 만들어냈을까.
이른 봄, 거친 표피를 뚫고 일제히 솟아오른 새순이 입을 삐죽이 내민다. 생명의 소리를 낸다. 나무는 애벌레가 잎을 씹는 진동에 반응하는 걸까. 미세한 흔들림이다. 메마른 가지에 생명체가 찾아와 반갑기 그지없다. 5월 즈음엔 연둣빛 꽃이 잎겨드랑이마다 매달린 꽃차례가 피어난다. 초식동물의 먹이가 되어 사라질 위험이 커진 셈이다. 줄기는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굵은 코르크 날개를 달고 위장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화살나무 잎사귀에 가을이 왔다. 찬란한 붉은 옷으로 갈아입고 존재감을 드러낸다. 단풍이 비단같이 고와서 금목錦木이라는 이름도 있다. 그 아름다움에 환희의 찬가라도 부르고 싶다. 꽃자리에 달렸던 열매는 빛나는 루비같이 영롱하다. 식물의 생태는 참 오묘하고 신기롭다.
겨울이 오고도 열매는 오래도록 달려 있다. 화살나무는 모든 잎새의 무게를 내려놓는다. 모든 것을 보여 주고 홀연히 떠난다. 겨울에는 찾는 이가 없어 외로워도 꿋꿋하게 살아서 봄을 기다린다. 언젠가 가지가 꺾일지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또한 삶의 연장으로 받아들이는 여유마저 갖고 있다. 아무것도 셈하지 않고 무엇도 바라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를 기쁘게 받아들인다.
내 인생의 절정은 언제였을까. 화살나무의 줄기를 두르고 있는 날개는 셔틀콕의 날개와 어쩌면 그리도 닮았는지. 쏜 화살이나 날아오른 셔틀콕의 빠른 변주는 내 인생의 시간을 돌아보게 한다. 새순이 나서 꽃이 피고, 햇살에 반짝이던 잎들마저 떨어진 앙상한 가지에서 나무의 세월을 본다. 젊은 날의 열정은 소진되고 노년의 접근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환대할 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느낀다. 이제는 내어 주는 데 관대해야 한다. 나이 듦이 주는 감동도 있으리라.
가끔 예천 오일장으로 향한다. 재래시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사람 냄새가 좋아서다. 몇 차례 푸성귀를 사다 보니 친해진 할머니는 늘 난전 끝자리에 앉아 있다. 소일거리로 키운 할머니의 채소가 싱싱하기도 하지만 빗물에 씻긴 풀잎처럼 환한 미소로 살갑게 반겨 주기에 꼭 들른다.
"아이고, 대구댁 왔네. 이 나물 첨 보제?“
이맘때밖에 먹을 수 없다며 화살나무 홑잎 나물을 맛보라 하신다. 며칠만 지나도 금방 억세져서 부지런한 며느리도 봄날에 세 번 뜯기가 힘든 나물이란다. '말이 고우면 비지 사러 갔다가 두부 사온다.'는 격이 된 셈이다.
올봄 처음 먹어 본 맛이 쌉싸름하지만 향긋한 풋내가 여느 봄나물 못지않다. 홑잎 나물은 삶의 고단함을 힘겨워하는 나를 새롭게 한다. 평온하기만 했다면 그냥 지나쳤을 화살나무의 발견은 뜻밖의 행운이었다. 이제 가끔 그가 건네는 말들을 들을 참이다. 진즉에 이런 진리를 터득했더라면 인생이 좀 수월했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겠지. 깨달음도 때가 있고 그때가 맞아야 한다.
화살을 가슴에 품고 있는 과녁을 본다. 세상에서 날아온 화살이 과녁의 복판에 박혀 한동안 빠지지 않던 날들. 삭풍처럼 꽂히는 아픔의 화살이 영혼을 찔렀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화살 하나쯤은 품고 살겠지. 그 화살은 밖으로 향해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향해 있다.
산길은 치유의 길이다. 천년숲은 나무와 꽃과 새들의 보금자리다. 화살나무의 초록빛 잎이 유달리 빛난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우울과 좌절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생각지도 못했던 세상’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있는 모습 그대로 살아가라는 자연의 위로로 내 안에 평화가 깃든다.
6. 꿈을 꾸다/이연희
1) 국민학교 5학년 때였다. 동네 선교사 부부가 우리 집에 찾아왔다. 길에서 노는 나를 예뻐하며 몇 번이나 과자를 주었던 사람들이다. 나를 양녀로 키우고 싶다고 두 번이나 왔었다. 캐나다인이라 했다. 어릴 때 나는 얼굴이 유난히 희고 눈동자도 갈색이었다. 약간 서양인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자꾸 조르니 결국은 아버지가 화를 내고 그 부부를 쫓아내다시피 했다.
2) 중학교 입학시험 합격자 발표 후 아래채 살던 효대 생 언니가 읽어보라고 10권짜리 전집을 빌려줬었다. '빨강머리 앤'이었다. 얼마나 재미있던지 오랫동안 책에 푹 빠져서 헤어나질 못했다. 눈만 감으면 길버트가 나온다. 캐나다의 들판을 뛰어다니는 앤이 보였다. 그곳에 너무 가고 싶었다.
3) 교사 1년 차일 때 캐나다인 평화봉사단원 박 선생님이 부임해왔다. 나를 차밍하고 큐트 하다고 평을 했다는 소문이 났다. 캐나다로 시집가는 거 아니냐고 선생님들이 놀렸다. 이래저래 내 머릿속엔 캐나다가 깊이 자리를 차지했다. 그 나라에 가서 살아봤으면 하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4) 막상 결혼하니 그곳에 가서 살아 볼 희망이 하나도 없었다. 내 꿈은 저절로 강제 종료가 됐다. 그래도 캐나다는 늘 그리운 나라 가고픈 나라였다. 하지만 현실은 가까이하기에 너무나 먼 당신이었다.
5) 예상치도 안했는데 독신을 주장하던 딸이 결혼을 할 사람이 생겼단다. 게다가 결혼 후에는 같이 캐나다로 공부를 하러 간다고 했다. 펀딩, 생활비등의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서 그 나라를 선택했단다. 꺼진 줄만 알았던 내 가슴속 불씨가 되살아난다. 슬슬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한다.
6) 딸의 출산을 1개월 정도 남기고 난 과감하게 일을 저질렀다. 인생 2막으로 짭짤하게 수입을 올리던 방과 후 오카리나 강사를 그만뒀다. 남편과 20일간 미국 동, 서부와 캐나다 동부 여행을 패키지로 질러버렸다. 시애틀 공항에서 일행이 한국행 비행기를 탈 때 우리는 캘거리로 향했다. 도착 다음날 만삭의 딸, 사위와 함께 길을 나섰다. '유끼 구라모토'의 피아노곡으로 알려진 '레이크 루이스' 앞에 서니 이게 꿈인가 싶을 정도로 감동이 컸었다. 보름 후 남편은 귀국하고, 나는 딸의 산후조리를 도우며 두 달을 더 머물렀다. 그때는 산후 돌보미 하느라 내 생활은 거의 즐길 수 없었다.
7) 겉핥기만 한 그곳 생활이 끝인 줄 알았는데 딸이 도움을 청했다. 내심 캐나다를 사랑하는 간절한 엄마의 마음을 읽었나 보다. 2020년 8월에 방과 후 강사를 영 그만두었다. 그런데 코로나 상황이 안 좋아 갈 수가 없었다. 캐나다 정부에서 외국인 입국을 전면 금지시켰었다. 하염없이 기다리는 시간이 일 년이 흘렀다. 외국인의 입국규제가 완화되자마자 출국 준비를 했다. eTA 신청부터 제출해야 할 서류도 복잡하다. pcr검사받고 접종 완료 증명서도 영문으로 서류도 떼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8) 대구서 인천공항까지 가는 그 많던 리무진이 없단다. 공항행 ktx도 없단다. 콜밴을 탈려니 혼자서 운전기사와 장시간 가는 건 스트레스받는 일이라서 안 되겠다. 자연적으로 내 행동에 제약을 받아야 하니 싫다. 경로우대 요금으로 SRT를 타고 서울역에서 인천공항 가는 전철을 탔다. 힘은 많이 들었지만 돈이 절약되어 좋다. 공항행 전철에 사람이 너무 없어서 맞게 탔는지 불안하기까지 했다. 노파심에서 몇 번이나 확인을 해봤다.
9) 여러 번 가 본 공항인데도 사람이 없으니 낯설었다. 검색대에 사람이 한 명도 없어 여기가 아닌가 싶어 지나치기까지 했다. 언제나 긴장되고 지은 죄가 없어도 떨리는 검색대를 통과했다. 면세구역으로 진입하니 "뭘 도와드릴까요?" 라며 로봇이 다닌다. 세상 참 좋아졌구나. 영화를 좋아하는 나는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영화를 한 편 봤다. 멜라토닌 한 알로 잠을 청했다.
10) 캘거리는 직항이 없어서 밴쿠버에서 환승을 해야 한다. 집에서 스마트체크인을 했지만 캐리어는 직원을 통해서 부쳤다. 환승할 때 짐은 어쩌냐고 물으니 찾을 필요가 없단다. 재차 확인을 해도 그렇다고 대답을 한다. 비행기에서 안내문을 읽어보니 환승 시에 짐을 찾아서 다시 부쳐야 한단다. 거듭 묻는다고 약간 무시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해주더니 엉터리란 말인가. 관계자한테 확인을 하니 짐을 찾아서 다시 부쳐야 된단다. 큰 일 날 뻔했다. 차라리 잘 모른다 하지.
11) 입국 심사관 앞에 서니 가슴이 쿵쾅거리고 얼굴도 화끈화끈한다. 입국 심사가 까다롭기로 소문이 난 나라다. 여권, pcr검사서, 예방접종증명서, 딸이 보내준 편지를 내밀었더니 "pass" 란다. 아 뭐야 난 영어 한마디도 안 했는데 가라고. 물론 그전에 키오스크로 여러 가지 기본 자료는 입력을 했었다. 간사한 게 사람의 마음인지라 쉽게 "pass"라고 하니 뭔가 허전하니 발이 안 떨어진다. 그래도 영어 한마디라도 하고 입국을 해야 될 거 아닌가. "Thank you for your kindness. Have a nice day."라고 했다. 심사관이 웃으며 "Thank you." 란다. 드디어 캐나다에 무사히 입성을 했다. 남편, 딸, 아들한테 자랑스레 '무사 입국'이라고 문자를 보냈다. 두어 시간 기다려 캘거리행 비행기를 탔다. 내려다 보이는 밴쿠버 시내가 커다란 어항 속 같이 맑다. 눈 아래에 거대한 로키산맥이 놓여있다. 그 웅장함에 가슴이 마구 뛴다.
12) 캘거리 공항에서 짐 찾기 위해 기다리는데 딸 가족이 나타났다. 3년 반 만에 만나는 손녀가 수줍게 뛰어와 안긴다. 늘 페이스톡을 하니 낯 설지는 않은가 보다. 안고 쪽쪽거리니 흠 흠 달콤한 어린애 냄새가 난다.(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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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열정과 기쁨, 그리고 웃음이 함께한 시간이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