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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눈물은 남자의 마음을 약하게 만들지요,그럴때는 위로밖에 없습니다,) 1 <126> 하다고 하지만 뭐가 미안한지 알것 만 같았다. 전에 사귀던 남자가 전화를 한 이유를 내 앞에 사실대로 고 백을 하였다. 나는 은근히 화가 났지만 그녀 앞에서 나는 화를 낼수가 없었고 마음이 상해도 꾹 참았다.나 는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오랜동안 쌓아온 사랑인데 나는 여기서 포기 할수가 없었다. 내 여 자로 만들어서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마이산으로 놀러 가서 구경도 시켜 주고 싶었다. "금순아!" 연이쟎아. 그런데 나를 버려두고 네가 떠나면 나는 누구를 의지하며 살라구." 나는 그녀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바빴다. 그녀가 생각한바 또 다른 남자가 있었다면 그 남자가 누구인지 알고 싶고 금순이를 괴롭히는 남자의 이름에 대하여 알고싶었다. 그러나 그녀가 밝히지 않는 이상 남자의 이름이나 전화를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부탁 하였다. 남자로 부터 전화가 오면 바꾸어 달라고 하 였다. 그녀는 너무나 솔직하게 괴로운 심정을 담고 있었던 모양이고 나를 만나기전에 전화로 통화 했었다 면 다방에 나갈때 아니면 호프집에서 술을 마실때 사귀던 남자가 있다는 것을 사실대로 숨기고 있었다. 그러나 내개로 온 이상 그녀를 감싸주고 싶었다. "금순아.지금은 어떼." 아파 하지 말고 잊어 버려. 내가 있쟎냐." 이런 이야기는 너와 나만 알고 있으면 돼 주위에 알리면 안되니까 알았지." 나는 그녀에게 달래느라고 진땀을 빼고 있었다. 그녀는 내 앞에 누워서 잠이 들고있었다, 그녀의 눈물자 욱을 내 손으로 닦아 주면서 상처난 가슴을 어루만져 주었다. 얼마나 술집에 다니었으면 다른 남자들에게 그러한 수모를 당했을까 하는 가련한 생각이 들고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녀에 대한문제를 가지고 들추어 낸다면 그녀의 입장은 난처해지고 우리의 만남도 물거품이 되고 마는것이기에 나는그녀를 위하여 어떠한 문제를 거론 하지 않았다. 상처 받는 사람에게는 위로자가 늘필요하기 때문이다. 진작에 이여자를 만났더라면 술집에 나가지 않았을 텐데 창녀출신이라 마담으로부터 얼마나 눈치를받았을까? 손님들에게 마음도 주고 몸도 준 더러운 창녀생활 그러나 나는 그에 대한 과거를 덮어주고 즐거운 일만 생각하기로하 였다. 그것도 어린 나이에 창녀로 팔아 넘긴 그의 아버지가 미웁다. 자식을 그토록 호프집 으로 다방 으로 팔아 넘기었는지 정말로써는 부모는 짐승보다도 못한 사람일까 그녀의 어머니가 죽고 나서 고아원으로옮 겨지고 고아원에서 자라온 양 아버지는 그녀를 돈으로 메수 하기 위하여 창녀촌으로 팔아넘긴 것이다. 술 집에 팔아 넘긴 그녀는 온갓 수모를 당한 모양이었고 그의 몸은 이 남자 저 남자의 품안에 안겨 더럽혀진 인생을 살아왔다. 갖은 폭언과 폭력앞에서 그녀는 성의 노예가 되고 만 것이었다.그녀의 과거를 들어보니 가슴이 찢어지는 듯이 아파왔다. 그래도 편안한 안식을 찾아서 내게로 찾아왔는데 어찌 그녀를 반기지 않 을 수가 없을까? 술집에서 사귀던 남자도 술을 마시면 그녀를 따라 다니면서 무척 괴롭힌 모양이었다. "너무 힘들었구나." (서로가 눈물 날때는 같이 포옹하면서 위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 네가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오늘은 아무 생각하지 마." 그녀는 이미 반쪽이 되어 있었다. 다행히도 임신까지 안했으니 얼마나 다행 스러운 일인지 모르는 일이 었다. 그녀는 내가있으므로 편한 모양이었다. 이렇게 햇살처럼 사랑을 만났으니 그녀의 마음은 얼마나좋 을까? 나는 그녀의 안식처가 되고 싶었다. 사랑으로 모든 죄를 덮는다는 성경의 구절이 언뜻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께 기도 하였다. 그녀의 앞날을 위해서 건강을 위해서 기도 하고 기도하였다. 그러 나 하나님은 내기도에 응답하시었고 나 또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생기었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수고도 마다 하지 않겠노라고.....예수 앞에 끌려나온 간음한 여인을 용서한 것 처럼 나도 그녀의 죄를 용 서하고 싶었다. 여자로 태어난것이 죄라면 사랑밖에 없노라고 나는 신 앞에 눈물을 흘리며 호소 하였다. 나는 그녀를 위해 기도하면서 눈물도 많이 흘리고 말았다. 그녀와 함께 울고싶었지만 그래도 터져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교회당안에서 시간만 보내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전능자 신을 믿어왔었다. 늘사랑으 로 격려하던 하나님. 나는 그분을 존중해왔다. 자비의 신 구원의 신 사랑의 신 앞에 나는 그녀를 만난 것 이었다. '너희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쳐라.' 과연 죄없는 자가 있을까 그녀를 정죄 한다면 나는 사랑의 하나님 앞에서도 정죄를 받으리라는 명언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내 앞에 찾아온 여자인데 아무리 몹쓸 죄를 지었다고 해서 정죄하기는 싫어 졌다. 그녀의 괴로움이 나의 괴로움이었고 그녀가 슬퍼하면 나도 눈물이 나와 참을 수가 없었다. 참으로 가련한 여자가 아닌가 내가 아니면 누가 이러한 가련한 여자를 돌볼 수가 있을까 상처 받고 걸레처럼 살 아온 저 여자의 마음을 누가 알아 줄까? 스산한 낙엽처럼 떨어져 버리는 인생을 누가 받아 줄까? 세상으 로부터 버림을 받고 살아온 가냘픈 여자인데......길거리에 버려진 창녀처럼 뼈 아픈 상처들 그 상처들을 감싸주고 돌봐주는 마음...나 밖에 없었다. "여보세요." 계신 앞에서 이게 무슨 망발이요." 분명 그녀의 남자로부터 전화를 받고 언성을 높이었다, 화도나고 기분도 상했다. 금순이를 이렇게 만들 어 놓고 전화질이라니 부모님이 주무시는 안방에서 실레를 한다니 이건 예의에 기본도 없는 남자라며 톡 쏘아 붙이고 전화를 끊어 버리었고 한동안 전화벨이 울리더니 끊어지고 말았다. 분명 금순이가 우리집에 있다면 금순이를 사귄 남자가 찾아 올것인가. 늘 그것이 염려가 되고 걱정이 되었다.내가 전화를 받는 도 중에 부모님은 잠들다가 나의 고함 소리에 눈을 뜨신 모양이었다. "병수야. 무슨 일이 있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간음한 여인이 예수 앞에 군중들앞에 끌려나오는 모습) "어떤 미친놈이 우리집에 전화를 ...." 나는 부모님의 잠을 깨웠으니 그저 미안하고 송구스러워서 안방에서 나와 마룻턱에 걸터 앉았다. 시간 은 자정으로 흐르고 있었다. 아랫방은 아직도 컴컴한 밤으로 가득차 있었다. 나는 아랫망으로 건너 가기 위해 뜨락을 내려왔고 마당을 지나 아랫방 마룻바닥에 기어 올랐다. 침묵이 흘렀다. 나는 금순이가 잘자 나 싶어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가 보았다.내가 안방에서 전화 하는 동안 금순이는 이미 꿈나라로 가고 있었다, 나는 불을 켜 보았다, 금순이는 그대로 누워 있었다. 내가 오기를 기다린 모양이었다. "오빠." 나는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이라며 다른 핑계를 대고 있었다. 혹시 내전화 목소리를 듣고 잠결에서 깨어 난지 모른다. 그녀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하여 더 이상 묻고 싶지 않는 모양이었다. "오빠.나 때문에 힘든게 아니야.' 여행하는 것을 반대 하시지 않으시었다. 나는 가는 행선지이며 그리고 도착지까지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 었더니 허락을 해 주시었다. 교통비 이며 여행 경비까지 챙겨 주시며 미안한 마음을 달래며 그녀와 함께 진안 가는 버스를 탔었다. 그녀는 언제나 항시 웃어주었고 내 옆에서 손을 잡아주고 있었다. 운전사와 승 객들은 나를 부러운듯이 말끔히 쳐다보고 있었다. "애인이요." 운전수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운전수에게 그렇다고 인사를 나누었다. 운전수는 나를보고 싱긋이 웃더니 "참으로 좋을 때요." 라고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나는 얼굴이 홍시처럼 빨게 졌지만 나는 부끄러운 줄을모르고 있었다. 모처 럼 가을 바람을 쐬니 우리 두 사람은 기분이 좋았다. 나는 버스앞좌석이 앉아 있었고 그녀도 내옆에 앉아 있었다. 가을 원피스 차림이기는 하나 나도 가을 옷으로 갈아 입고 있었다. 그녀는 내어깨위에 기대어 있 었고 차창밖에 펼쳐지는 풍경을 감상하고 잇었다. 노을처럼 번지는 곱고 고운 단풍들 나뭇가지 사이에서 떨어지는 낙엽들이 바람에 불어 우수수 길가에 떨어지고 있었다. "춥지 않아." (전주에서 진안으로 넘어가는 곰티제 고개) "부모님께 허락 받았으니 오늘은 우리의 날이네," 점심은 진안 읍내에 있는 터미멀 부근 식당에서 먹기로 하였다. 정천을 지나 고개를 넘으니 상전면이 나 왔다. 상전 부대는 내가 4주간 훈련 받은 장소라 이 지역을 지나면 기억이 난다. 훈련 받던 일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상전면 부대 앞에는 맑은 개울물이 흐르고 있었다. 상전 부대에서 나오면 진안읍내로 가는길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동향 안천으로 가는 샛길이 보였다. 이곳에 교통이 개통된지 얼마 안 되었지만 무주로 통하는 길이라 교통도 편리 해졌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산길 따라 달려온 버스는 진안 읍내에 도착하였다. 진안 읍내는 비록작지만 인심이 좋은 고장이었다. 버스터미널에서 보면 말의 귀처럼 생긴 산이 있는데 진 안의 명승지인 마이산이었다. 나는 버스에서 내려 진안 마이산 가는 버스를 타기위해 그녀와 함께 버스를 터미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마이산으로 가는 버스는 1시간에 한대씩 주차되어 있었다. 전주에서 들어오 는 직행버스는 30분만에 한 대씩 있었다. 전주에서 진안으로 들어오는 버스와 상전과 정천에서 들어오는 시외버스가 자주 눈에 띄었다. 가을 햇살 사이로 정류장 앞산에는 곱게단풍들이 물들어가고 있었다. 아침 이라 약간은 날씨가 싸늘했다. "배고프지?" 식당에 들리지." 나는 그녀와 함께 시골 버스 터미널에서 설치된 의자에 앉아 있었다. 개찰구에는 전주로 가는 손님들로 붐비었다. 오랫만에 서울에서 시골로 내려왔으니 시골에서 여행을 즐기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되었다. "아저씨! 마이산 안 가요." 버스는 터미널을 벗어나더니 진안 읍내를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쌍다리 옆을 지나서 시장을지나 마이산 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접어 들었다. 가을 냄새가 풍기는 황금들판 노을처럼 물드는 단풍 가로수 아침햇살 에 비쳐왔다. 들판에 논과 인삼 밭이 그림 처럼 펼쳐져 있었다. 마치 도회지를 벗어난 듯한 기분이 들었고 그녀는 내 옆에 앉아서 내손을 꼬옥 쥔체로 놓아 주지 않았다. 그녀의 머리결이 더욱 빛나고 윤기 있어 보 였다. 버스안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의 노랫소리 그리고 앵커가 진행하는과정을 그리고 있었다. 논가에는 허수아비가 그리고 도로에 심기워진 은행나무와 코스모스들이 마주 보고 미소를 짓고있었다. 관광버스가 줄을 이어 마이산 경내쪽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이산 묘와 그리고 또한 애국지사 묘역을 스치고 있었다. 노인 요양원과 병원이 언덕위에서 내려다 보고 있었고 마이산의 경치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웅장한 마이산이 우리들을 환영하는 것 같았다. "다 왔습니다." 마이산 입구에 내린 나는 그녀와 손을 잡고 경내로 들어갔다. 경내로 들어가는 입구마다 사람들의 물결 이 가득 넘치었다. 사람의 옷 차림에도 울긋 불긋 단풍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금당사로 가는 길목에 심 기워진 단풍나무들이 환영하고 있었다. "정말 멋있네." (마이산 입구에서 탑사안으로 들어가는 첫 길목입니다. 탑사 주변에는 금당사라는 사찰이 있지요.) "여기서 조금만 더 내려가면 탑사가 나와." 지나가는 사진사를 불러놓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자 사진사는 싱글 벙글 웃으면서 우리들의 모습을 사 진으로 담아 내었다. 아마 즉석사진인 모양이었다, 그녀의 어깨를 두 손위에 얹어 놓고 그녀는 나의 손을 허리를 잡고 사진 포즈를 취해 보였다. 즉석 사진이라 잘 나오고 있었다, "얼마요." 두분이 신혼이라 싸게 해드리는 겁니다." 즉석 사진이라 사진찍는게 비싸단다. 나는 사진을 주고 받고 사진사에게 계산을 치루어 주었다. 경내 입 구에서 계단을 타고 내려오다보니 바로 돌탑이 보였다. 하늘을 찌르는듯한 돌탑이 그저 웅장하기만 하였 다. 나는 그녀를 안내하면서 돌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가을 햇살을 받으며 구경 을 하고 있었고 돌탑을 보고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이대니 마치 신문기자들이 몰려드는 것처럼 보 였다. 이갑룡이가 축지법을 써서 전국에 있는 돌들을 모아다가 쌓았다던 돌탑의 전설......그 모양이 왜그 리도 웅장하게 보이는지 참 신기하기도 보였다, 바람에 흔들리는 것같아도 무너지지 않는 신비한 돌탑근 처 아래에 전국에서 몰려온 사람들은 돌탑위에 동전을 던지고 소원을 빌어 아들을 낳게 해달라며 애원하 는 여자들도 있었다. 참 보기 좋은 풍경들 이었다. 산사에 들어서니 수도승의 모습도 보이고 동자승이 돌 아 다니면서 시주하는 모습도 보였다. 목탁을 두드리며 법구경을 외우고 불경을 외우는 산사의 스님들이 해맑아 보였다. 하늘은 청록색이요 마이산의 웅장함은 너무나도 신비 하기에 짝이 없었고 암 마이산이나 숫 마이산이나 할 것없이 회색빛 화강암으로 솟구치었다. 숫마이산은 등산 코스가 없다 하여 나와 그녀는 손을 잡고 경내를 돌아 본뒤에 오후가 되서야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정상에 오르기 시작 하였다. 아 슬아슬한 낭떨어지가 입을 벌리고 있었고 등산화라 미끄러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나는 배낭을 매고 그 녀는 내 손을 잡고 산에 오르기 시작하였는데 산길이 가파라서 위험하기에 그지 없었다. 경내를 돌아보고 난 뒤에 나와 그녀는 산에 오르기 시작한지 1시간 중간에 멈추어서 땀을식히고 있었다 .많은 등산객들이 암마이산 코스를 밟고 있었다. 숫 마이산이 마주 보는 가운데 바람은 차갑게 불어 왔다. 점심을 먹은탓이라 산에 오르는동안 배고픈지도 몰랐다. 나는 배낭안에서 참외를 꺼내어 그녀에게 한개주 고 나도 한개를 꺼내어 질겅 질겅 입안에 가져다가 씹어 대었다. 마른 침이 꼴깍거린다. 산에 오르는 동안 내 등에는 땀에젖어 있었다. 나의 잠바는 그녀가 가지고 다니었다. 무척 더웁다. 산에 오르는동안 무척 더 웠다. 그녀도 땀에 젖어 있었다, 그녀가 건네주는 수건으로 나는 이마에 땀을 닦고 잇었고 그녀도 숨이 차 오른지라 땀을 닦고 있었다. 나뭇가지에 의지한체로 우리는 정상에 도착하였다. 모든 시야가 바다처럼 한 눈에 들어온다. "야!~~~~~~~호!~~~~~"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자 나도 그녀도 목청껏 북쪽을 향하여 함성을 질러 대었다. 넓은 들판을 가로지르는
(진안 마이산에서 내려다본 진안 읍내의 전경) 국도가 실날 같이 펼쳐져 있었고 그 국도는 서쪽으로 이어지어 완주군과 진안의 경계 사이에 자리 잡은 곰 티제 고개 그리도 고개 중간안에는 소태정이라는 마을이 자리를잡고 있었다. 바람도 구름도쉬어가는 노령 산맥의 최고 봉인 진안 마이산. 또 다른 경험의 체험 이었다, 광활한 대지가 저 끝없는 지평선이 손짓 하고 있었다. 서쪽으로 뻗어내린 운장산과 구봉산 남쪽으로는 전주가 자리를잡고 서쪽으로는 군산과 익산이자 리 잡고 동쪽으로는 남원으로 가는 고속도로와 철길이 북쪽으로는 대전과 금산으로 이어지는 무주가 자리 를 잡고 있었다. 금강과 섬진강의 발원지인 진안의 고장, 인삼 그리고 표고 버섯과 흑 돼지가 유명한곳 육 감이 좋고 부드러운 맛을 내는 진안 흑 돼지. 자연에서 먹고 자란 토종 돼지의 맛 성수면에 자리 잡은 김치 공장 김치를 가공하여 이웃나라 일본과 수출을 맺어 경제 부흥을 일으키는 진안의 미래가 밝다. 옥토의 벌 판이 산자락 밑으로 자리 잡고 산 능선마다 단풍이지는 모습을 보니 자연의 이치 또한 깨달음이라. 금강은 흘러서 군산 서해로 빠져나가고 맑은 물줄기 따라 이어지는 산골 마을 이곳이 내 고향 진안이로다. 선비의 고장 충정심이 강한 진안 사람들,....용담 정천 성수 안천 주천 상전 그외 14개의 면이 자리를 잡고 수몰전 까지만이라도 얼마나 살기 좋았던 마을이었 던가. 그곳이 어머니의 정이 깊은 고향 모정리. 그리고 아버지 와 할아버지가 대대로 이어져 살아온 삶의 터전 산골마을 모정리 여의곡 마을 두고 두고 잊혀지지 않는 산 천 마을이 아니었던가. 옛날 소로길이 나 있었고 장날이면 십리길도 마다 하지 않고 걸어 다니었던 장날의 하루 학교 시절 책가방을 매고 등교하던 그 엤 추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였다. "다 왔네," 나는 그녀가 또 다시 건네주는 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닦았다. 올라올 때는 너무 힘들어도 내려갈 때는 언 제나 다리가 풀리는 법이다. 나와 그녀는 30분후에 산에서 하산하여 내려오는데도 언제나 늘조심스러웠다. 늘 다리가 풀려서 힘이 없어 보였다. 나는 나무 지팡이를 의지하면서 그녀의 손을잡고 하산길에 접어 들었 다. 시원한 바람이 살갗을 파고 든다.나는 그녀에게 마이산에 대한 전설을 들려 주었다. "금순아." 라도 바다였는데 이곳에서 화산이 터졌다는거야. 화산이 터지면서 뜨거운 용암이 솟아 올라 와서 굳었는 데 바로 암마이산과 숫마이산이라는 거야. 지금도 석회암을 파보면 조개의 화석이 발견되었다고 했어.그 래서 이 화석이 궂어지면서 오랜 세월에 걸쳐 오늘날 마이산이 된거지. 그러고 보면 자연이 얼마나 신기 한지 몰라." 천천히 내려가자."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천천히 하산 길로 통하여 천천히 산에서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무척 가파르 지만 나는 항상 그녀의 손을 놓치고 싶지않아 안전하게 하산을 하였다. 미끄럽기는 하지만 지팡이를 의지한 탓 이라 등산화라 쉽게 미끄러지지 않았다. 산새들이 지저귀기 시작한다.바람이 부니 그녀의 머리 카락이 휘 날린다. "내가 업어 줄까" (사랑하는 애인과 함께 놀러갔었던 진안 마이산 돌탑 입구입니다.) "싫어." 그녀의 머리결 사이로 머리핀이 더욱 나비가 되어 내려 앉은 것 같았다. 앞머리를 가르마 타니 더욱 예뻐 보였는데 소녀의 티가 벗어나지 못하였다. 고운 피부에 가을 햇살 자락에 맞닿는 그녀의 부라우스의 흰색 이 더욱 빛났다. 치마자락 사이에 바람이 솔솔부니 깃발처럼 나부끼었다. 그녀를 업어주고 싶은데 창피하 다고 업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보니까 창피하다는 것이었다. 불룩 튀어나오는 가슴이 그리 커보이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마음은 어린 아이 마음이었다. 집에서 따라 나오는 것을 보면 어른스러운데....그래도 나 는 그녀를 많이 이해 해주었다. 그녀의 다리는 길지는 않고 키도 그리 커 보이지 않았다. 나보다 키가작지 만 그래도 나를 이해하고 알아준다는 것만 해도 늘 고마운 일이었다. 산 밑을 내려 왔을 때는 이미 오후 4 시경이나 되었다. 마이산 구경을 마치고 진안 읍내로 돌아오니 시장끼가 들었다. 그래서 저녁겸해서 오후 5시쯤 버스 터미널 주변에 있는 식당으로 가서 자장면 두 그릇을 시켜 먹었다 "짜장면 좋아해." 종업원이 가져온 배달된 짜장면과 단무지와 김치 정도였다. 젓가락이 놓여지고 짜장면 두그릇이 놓여 지 었다. 나는 점심값을 내고 그녀와 단둘이서 짜장면을 먹기 시작하였다. 면과 양념을 섞어주고 휴지는휴지 대로 정갈하게 먹으면서 오손 도손 이야기를 보네며 모정리로 가는 마지막 막차를 기다 리고 있었다. 배가 무척 고프기는 고픈 모양이었다. 산에 오르다 보면 배가 고픈것은 사실이다. 나는 그녀가 짜장면을 다비울 때까지 쳐다보고 있었다. 물도 따라주고 컵도 갖다 주면서 그녀의 먹는 모습만 보아도 배가 부를 지경이었 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는 그녀와함께 터미널로 나와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막차를 기다리려면 30 분이나 남아 있었다. 그녀는 항상 시간표를 쳐다보고 있었고 의자에 앉아서 내자리를 지켜 주었다, 집에다 가 공중 전화로 연락을 드리고 있었다. 그녀는 손목에 차여진 손목시계를 쳐다보고 있었다. 공중전화로 집 에다가 전화를 널어 준뒤에 그녀가 앉아 있는 자리에 다가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지." 나는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녀도 나를 따라 웃었다. 웃는 모습도 어찌 그리도 이쁠까 ?막차를 기다리는 손님은 그리 많지 않았다. 용담으로 가는 손님들 치고는 모정리로 가는 길은 우리 두 사람 뿐이었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이자 땅거미가 밀려오고 날씨가 춥기 시작 하였다. 가을 날씨치고는 추운 날씨였다. 그래도 대합실에서 기다리니 춥지는 않았다. 승격들을 위해서라도 따스한 난로가 지켜주기 때문에 따스한온기만 남아 있었다, 막차가 십분전에 도착하기전에 개찰구를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주위에 땅거미가 몰려 오고 어둑어둑해지면서 전깃불이 켜지면서 대낮같이 비추어 주고 있었다, "추워."
(현재 진안 직행버스 완행버스가 쉬어가는 진안 공용 터미널의 모습입니다,) "아니." 나는 그녀가 건네주는 스카프를 받아 네 목에 걸치니 우수운 모양이었다. 나는 그녀의 목에다가 따스한 목도리를 걸쳐주니 서로가 좋은 모양이었다. 그녀가 건네주는 가을 잠바를 걸쳐입고 있으니 추위는 거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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