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도 아니고
서울 한복판이기에 고향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
너무 가까이 살고 있어서 그리워해 본 적도 없이
어쩌다 지나갈 때도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던 곳이다.
내가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던
언덕 위 동산 말의 그 집은 어찌 됐을까?
그 동네가 지금까지 그대로 존재하기는 하나?
수년 전이지만, 어느날 갑자기 궁금해져서 급히 집을 나섰다.
홍은동에서 마포 가는 버스를 타고 나서야 어디서부터 찾아야 하나?
공덕동 로터리에서 내려 가장 마지막 살았던 아래 동네로 해서
제일 처음 살았던 동산 말까지 거슬러 올라갈까? 하다가
처음 살았던 동산 말부터 찾아보고 마지막 살았던 곳으로
순차적으로 내려오기로 마음을 정하고 내가 6년을 다니던
만리재 고개 위 소의 초등학교 앞에서 차를 내려
학교 문 앞을 잠시 일별하고 만리동 시장길로 들어섰다.
어릴 적 단 하루도 지나가지 않은 날이 없었던
만리동 시장 주변은 생각만큼 크게 변하지 않은 채였다.
시장통으로 들어서기 전에 오른쪽으로 있던
허름한 푸줏간이 있나 하고 보았더니 없었다.
소고기 한 근에 600원 할 때 단돈 100원어치를
사 오라고 심부름 보냈던 엄마,
그때 엄마는 창피하다며 꼭 나를 보냈지...
100원어치를 사는 사람은 나뿐이라서
실은 어린 나도 창피함을 모르지 않았기에
푸줏간 문 앞에서 빙빙 돌며 눈치를 보다
손님이 없는 틈을 기다려 재빨리 달려가 돈을 내밀면
뚱뚱한 푸줏간 아저씨는 어린 단골손님이라 봐주는지
그리 싫은 내색 없이 고기 한 칼을 베어 주셨다.
비가 오면 진흙탕이던 시장 입구 진고개 길이
말끔히 아스팔트로 포장되었고
온통 난전이 벌어졌던 장터가 도로로 변했지만,
좁다란 언덕길 양쪽으로 나지막한 가게들이 늘어서 있는 것이
옛날과 크게 다르지 않아 그리 낯설진 않았다.
가끔 동네 꼬마 친구들과 당시 예쁘기로 소문난
김지미나 문정숙, 박노식 같은 일류 영화배우들을 보려고
몰려가곤 했던 낡은 영화사가 있던 자리엔
아파트형 공장 같은 건물이 들어서 있고
언덕길 옆 배문 중학교는 그때도 그 자리에 있었다.
배문중학교 위 쯤에 있던 시커먼 연탄공장은?
가늠해 보려니 어디쯤인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엉성한 한옥, 또는 블록이나 판잣집이 대부분이었던 동네가
모두 빌라나 연립주택들로 변해 있었다.
경사가 심하고 골목이 많았던 공덕동은
원래 거미줄처럼 얽힌 미로 같은 동네였다.
그 미로 같던 골목마다 통통거리고 뛰어다니든
내 발자욱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을까?
기억을 더듬어 가면서 내가 살던 동산 말 입구를 찾아갔다.
계속......
첫댓글 은숙아우님
서울토박이군요
옛추억을 드듬어 쓰내러간 글 잘봤네요 나도 내 고향 가고프다 ㅎㅎ
어릴적부터 일기를 써 두어서 심심하면그걸 읽어서
그걸 토대로 써 보는거지요. ㅎㅎ
저도 원적은 마포구 아현동이라
은숙님이랑 같은 거리에 살았던거
가토요~그뒤 중구 신당동 으로
이사 하는 바람에 초,중,고,를
신당동에서 나왔음!
아 그렇군요. 그럼 혹시 코 흘리게 시절 마주쳤을지도... ㅎㅎ
@은숙
들켰당 그당시
코 흘리게 할때 제가 쪼까
챙겨 드렸던 기억이 ㅋ
서울의 어린 추억의 그림자의 모습이 ..
저는 충청도 시골에서 자랏고
65년도 처음으로 서울 소풍 갔었지요.
던깃불에 굉장함을 느꼈습니다.
다음이야기 기대합니다.
서울을 떠나기 전 가보았었지요.
50여년의 세월에도 크게 변하지는 않았더라구요.
그럼 6,25 당시 1살
정도면 기억이 아물아물
하셨을것 가토요 ㅋ
@좋은날/미사 초등을 졸업 할 때, 열네살부터 일기를 써 왔지요.
그 일기가 결혼 직전까지 대학 노트로 10권...
쓴걸 심심하면 읽어 보고해서 아주 달달 외우다시피했어요. ㅎㅎ
그 뒤로 2000년부터 인터넷을 접하면서 부터는
블로그에 둥지를 틀고 일기를 썻지요.
그 일기들이 현제 글쓰기에 도움이 되고 있지요. 자서전도 그걸 토대로...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