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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에서 바라보는 범봉
천화대 등반길에서 흔이 만날수있는 솜다리(에델바이스)
대략 반백번은 설악에 갔지싶다
갈때마다 대부분 만나는 범봉.
설악에서 가장 잘빠진 8등신 미녀 라해도 좋고
가장 균형잡힌 몸매의 옹골찬 머시마라고해도 좋다.
이넘을 마음에 품은지 수삼년...
아예 이놈을 목표로 설악을 찾은것과
천화대를, 석주를 하고 시간이 되면 범봉울 갈려구 마음먹은것까지 하면
열손가락은 꼽아야 되지싶다
여름휴가때 이넘보고 왔다가 몇날을 술만먹고 갔던 기억에
추석 연휴를 쪼개서 또 들이대본다 ㅎ
쥔없는 청화 산장에서 첫날밤을 유하고...야초님
10명이 천화대를 할려면 10시간은 등반해야하지만(내일 갈길이 멀지만...)
그래도 주먹만한 설악의 별들이 반짝이는데 그냥잘수 없어서 한잔 ㅎ
새벽 4:30에 일어나 아침해먹고 점심으로 주먹밥 한덩이씩 배낭에 쑤셔넣고
7시경부터 등반은 시작된다. 2번으로 올라오며 줄곧 내생명선을 잡아준 빨간 바가지가 귀여운 지그재그님ㅎ
우측의 큰바위가 장군봉이고 좌측옆의 조금더 높은 봉이 유선대이다
한폼잡은이는 산적님. 오늘 임무는 야초님의 후등자 확보에서 나오는 쟈일을 선두로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임무.힘이좋아 나름 고심해서 역활분담했는데, 역시나 120% 임무완수 ㅎ
오랜만에 같이등반하는 "사랑받고싶다"의 정천호님.
예전에 팔공산에서 같이 많은 등반을 했었다. 그때는 카페라는게 없어 닉네임이 없고
그져 별명이 "정포"였었다 ㅎ
한봉우리 정도 앞서가며 뒤에오는 일행들을 한컷
하강하는이는 야초님, 위에는 정천호님과 산적님?
뒤에 손을 흔드는 이는 하늘님 그뒤는 바람사이로님?
하강하는 지그재그님 뒤로 보이는 능선이 화채능
선두에게 넘길 쟈일을 가지고 뒤따라오는 산적님
금오공대 암장에서 매봉님한테 개인교습을 받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
초보 등반가로 보이지않고, 단번에 중급자 등반가 실력을 뽐냅니다
설악을 사랑하던이를 보내는 남아있는자들의 메아리...
누꼬? 우리팀은 맞는데 멀어서 누가 눈지? ㅎ
살살 기는 산적님!
매봉이 있었으면 상체를 바위에서 띄우지 않는다고 아마도 혼날걸...ㅎ
예날 선등하든 실력인지라
오랜만에 와서 등반을 해도 걱정이 하나도 안되네요. 사랑받고 싶다님.
발목과 손목이 좋지않은걸로 아는데
뒤따라 오느라고 고생이 많심다 ㅎㅎ 지그재그님
ㅎㅎ 요기는 쪼매 그시기 하지요 ㅎ
요코스에서 앞서가던 6명의 통영팀을 만났는데, 아글쎄~ 마운티아 카페회원이라지 뭡니까ㅎㅎ
후미로 따라온 사람들은 목꽤나 아플겁니다 아마~ ㅎㅎ
빨간 바가지와 헷을쓴팀은 통영팀.손을 흔드는이는 야초님.
왕관봉을 오르려는 산적님
좀늦은 팀들은 희야봉 석주동판까지 못가고 왕관봉에서 하산을 하는 팀도 많다.
왕관은 머리에 쓰야되는데
야초님은 왕관속에 들어갔네요 ㅎ
왕관봉에서 굴비엮듯 엮었습니다ㅎ
좌측부터 산적님,설산님, 우리사랑님, 서울에서 오신 바람사이로님, 사랑받고싵다님, 야초님
고행을 즐기는 사람들입니다 ㅎ
왕관봉에서 하강을 기다리는 우리 일행들
40~50m 하강을 해야합니다.
여기에도 추모 동판이...
바위꽃이피어있고 벌들이 붙어있네요 ㅎ
왕관봉에는 마운티아벌, 뒤쪽은 광주벌?
석주길과 만나는 희야봉으로 가는길의 나이프 릿지
좌측은 100m는 족히되는 절벽이고 우측은 20~30m 절벽의 말잔등 구간
깨스가 밀려오는 설악골. 으시시합니다
황장산 수리봉옆에 작은 꿈길이라는 암릉을 개척하신 김천의 설산님
희야봉에서 범봉을 배경으로선 사랑받고싶다님
깨스에 가려 범봉은 숨어버렸네요
희야봉 석주동판 하강을 남겨놓고,,,
석주 동판 앞에서...
설악산은 너무나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간직하고 있다.
솜다리꽃, 박새풀, 둥글레, 함박꽃, 전나무, 주목을 포함
흰 껍질에 연서를 쓰면 그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자작나무.
야생동물의 천국인 저항령 골짜기
하늘을 찌를듯한 기기묘묘한 암봉들.
설악골, 독박골, 용소골, 토막골, 곰골. 잦은 바위골,
용아장성, 공룡능선, 화채능선, 서북능선. 천화대 등.
칠형제봉 봉화대 장군봉 적벽 삼형제봉 비선대 울산바위.
엄홍석과 신현주가 숨진 천당 빙폭.
뒤따라 송준호가 숨졌던 토왕성 빙폭
소청과 중청봉을 휘감는 바람과 구름,
대청봉에서 맞이하는 장엄한 동해 일출.
그곳 설악의 노래들은 참으로 슬픈 노래.
아니, 서럽도록 아름다운 노래..설악가.
설악가는 '석주길'이 있어 더욱 더 슬픈 노래이다.
천화대(天花臺)는 천 가지 꽃이 핀 듯 아름다운 절벽.
설악산 릿지등반 애호 산악인에게 인기가 높은 천화대.
천화대 여러 코스 중 유독 눈길 끄는 '석주 길'
석주길 들머리 임을 알리는 바위벽 허리의 동판.
무심히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기도 쉬운.. 동판.
................천화대 석주길이 있는 곳...................................
공룡능선은 내설악과 외설악을 가로지르는 설악의 주릉.
공룡능선에서 흘러내린 설악골과 잦은 바위골 사이 암릉.
여러 갈래의 작은 가지능선 암릉을 거느리고 있는 천화대,
그 중 설악골에서 왕관봉과 범봉 사이 성곽처럼 생긴 곳.
송준호가 개척하기 전까지는 인적 조차 없었던 험한 암릉.
....................................................................................
송준호는 우리나라 등반문화를 개척했던 전설적인 산악인.
석주길에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그는 왜 이 외딴 곳에 '석주길'을 개척했을까?
................석주길에 얽힌 사연..............................
60년대 말 요델 산악회의 송 준호 엄 홍석 과 신 현주
세 사람은 서로 자일 파트너이고 친구이자 연인사이였고
어느 한 가지도 포기할 수 없을 만큼 가까워 늘 함께 다녔다.
세 사람의 자일파트너가 함께 어울려 다녔던 곳이 설악골이다.
'죽음의 계곡'이라 불릴 만큼 눈사태 빈번한 해외등반 훈련장소.
우리나라의 등반 역사 상 알피니스트들의 산실이기도 한 곳이다.
결국 송 준호는 세 사람의 소중한 관계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물러서기로 결심하고 두 사람 곁을 홀연히 떠났고
그로부터 얼마 후 연인이 된 두 사람에게는 비운이 찾아온다.
설악산 천당 폭 빙벽을 선등하던 신 현주가 실족.
후등하며 확보 보던 엄 홍석은 그녀의 위기를 직감.
자신의 몸을 빙벽 아래로 날려 추락거리 줄이려 시도.
그 추락하중을 못 견뎌 빙벽에 설치한 확보물 터져나감.
두 연인은 한 자일에 묶인 채 추락해 죽음의 세계로 여행.
그 당시 확보물은 발달되지 않았기에 거의 유사한 사고.
워낙 외딴 곳이라 그 사고 순간을 목격한 사람은 없었다.
다만, 자일에 남겨진 충격 흔적으로 사고상황을 추정할 뿐.
설악산에서 숨진 산악인은 대부분 그러하듯
두 사람 시신도 설악산 자락의 노루목에 묻힌다.
옛부터 산을 숭배한 우리민족 유일의 '산악인 묘지'
외설악 설악동 초입 노루목 근처 산자락에 가면
숙박시설에 가려 잘 보이지않는 사자(死者)의 마을.
설악을 사랑하다가 그 품에 영원히 안겼던 '사람들 묘지'.
1969년 죽음의 계곡에서 눈사태로 목숨을 잃은 '십동지 묘.'
그 한국산악회 소속 대원 10명 무덤을 포함한 '설악인들의 묘.'
산악인들의 무덤엔 대부분 상석은 고사하고 비석도 제대로 없다.
벚꽃처럼 활짝 필 젊은 나이에 산에서 운명을 달리한 '사자의 마을'.
자일파트너 두 사람을 그곳에 묻고 홀로 남아 그리움 달래던, <송준호>
송준호가 친동생 만큼이나 아낀 의형제이자 연적, 엄홍석.
엄홍석 만큼이나 사랑했던, 송준호 마음속의 연인, 신현주.
두 사람 행복을 위해 자신이 잠적한 사이에.. 일어난 추락사.
자신이 곁에 있었다면, 엄홍석과 신현주를 지켜주었을텐데..
송준호는 그런 속마음을 드러낸 적이 없지만 스스로 달랜 듯.
그 후 송 준호는 1969년에 천화대에 바윗길을 개척하고
개척자가 새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고유권한의 관례에 따라
고인이 된 두 사람을 못 잊어 '석주 길'이라고 이름을 붙인다.
'엄 홍석'의 석 字와
'신 현주'의 주 字를
본 따 명명한 석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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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호와 '석주길'
신화가 설악산에 태어났다 .
석주길은 1275봉에서 뻗어내려와
천당폭과 설악골을 마주보는 암릉.
천당폭포는 석주가 죽은 곳이고
설악골은 세사람의 추억이 담긴 곳.
송준호는 석주길을 개척하며
그곳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후 송 준호는 1973년 초에 '토왕 폭' 초등을 시도하다가
실족사고로 인하여 먼저 간 두 친구의 영혼을 뒤따르게 되었고
훗날 송 준호 유품을 정리하다가 그가 남긴 편지 한 통이 발견된다.
그당시 토왕폭을 오른 사람은 없었기에 초등 경쟁이 치열했던 시기.
송준호가 토왕폭을 오르기 전날 밤이라, 그의 심경이 가득 담긴, <편지>.
송준호가 이미 고인이 된, <엄홍석과 신현주> 영혼에게 보낸...., 묘한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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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는 이 : 석주
주 소 : 목(노루목)으로
보내는 이 : 준
주 소 : 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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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있었나.
그동안 나는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네.
내일 벽과의 감격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네.
아니면 자네 품으로….
(이하 중략)
송준호는 총 300 m 높이의 토왕폭 상단에서 추락했다.
토왕폭 허리에서 확보를 보던 후등자의 본의 아닌 실수.
선등으로 오르는 송준호를 뒤따라가기에도 벅찼던 후등자.
확보 중 몸의 중심을 잃고 자일을 당기는 순간 송준호의 추락.
그 충격으로 빙폭의 확보물이 터져나가며 한마리의 새처럼 추락.
토왕폭 초등 기록을 엄홍석과 신현주 영전에 받치려던 꿈도 물거품.
토왕폭 아래까지 굴러 떨어진 송준호는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지금 셋은 나란히 노루목에 묻혀 있다.
언제나 늘 함께 있고싶어 했던 세 사람.
생전에 못 이룬 꿈이 사후에 이루어진다.
'아래는 묘지 충혼비에 새겨져 있는 글.'
- 아 래 -
시간과 존재의 불협화음으로
공간을 활보하고 있는 악우들이여!
철학적 경이로써 모둠된 그대들의 자취는
훗날 이 인자한 산정을 찾는 이들의 교훈이 될 것이다.
추억을 침묵으로 승화시킨
사람들의 그 대담한 의지로
그대들은 설악에서 회생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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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년 가을,
요델산악회는 송준호 추모등반 1주기 행사를 갖고
용아장성의 14번째 암봉에 그의 추모동판을 새겼다.
히말라야 8000m up 14봉을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 뒷면에 '송준호의 연인' 까만돌이 연서를 써넣었다.
그것은 고인에게 보내는 영원한 연서이자, 마지막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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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뜻대로 스카렛 오하라처럼 살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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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영화의 여주인공, 스카렛 오하라.
송준호는 토왕폭 등반 후 까만돌과 그 영화를 보기로 약속.
그날 중앙극장 앞 약속장소에 송준호는 참석할 수가 없었다.
'이미 송준호는 그곳에 올 수 없는 고인이 되었기 때문.'
까만돌은 송준호를 기다리다가 그후에 혼자 그 영화를 보았다.
그날 밤 불길한 꿈에서 깨어난 그녀는 송준호의 죽음을 직감한다.
꿈속에서 만난 송준호가 그녀에게 남겼던 마지막 메세지이자 당부.
'내가 없더라도 용기를 잃지 말고 살아가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스카렛 오하라처럼 '
까만돌이 송준호 추도식에서 동판 뒷면에 연서를 써넣은 배경.
그녀는 송준호와 결혼하면 스위스에서 보금자리를 펼 예정이었다.
그곳 등산학교 졸업 후 히말라야 전문 가이드가 되려던 송준호의 꿈.
용아장성 14번째 암봉에 묻힌 송준호의 꿈.
사후라도 히말라야 14봉을 완등하라는 염원.
평소 그를 아끼던 산악인들의 바램이기도 했다.
늘 가까이 있고 싶었던.. 석주.
피붙이 같은 자일파트너, 엄홍석
마음속 깊이 사랑을 담았던, 신현주.
너무나 사랑했기에 그들 곁을 떠났던 송준호.
죽어서야 사랑하는 그들 곁으로 돌아온 송준호
고인이 된 송준호를 사랑하는 산꾼 지인들 배려.
'친구여! 편히 눈을 감게나..
까만돌은 내가 보살펴 주겠네.'
상록수는 노루목 송준호 무덤 앞에 까만돌과 나란히 서서 맹세.
평소 송준호와 절친했던 산악인 상록수는 까만돌과 결혼을 했다.
두 사람은 전북 장수에서 5만평 농장을 일구고 행복하게 잘 산다.
토왕폭포 상단에서는 '사자의 마을' 노루목 석주의 무덤이 보인다.
훗날 세인들은 송준호 죽음이 자살일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품는다.
송준호 유물에서 발견된 편지가 유서였을 것이라는 추측 때문이다.
그러나, 죽은 자는 말이 없고, 그 비화도 사라져가는 듯 해 안타깝다.
석주길 초입 암봉에 걸린 사각 동판 하나가 전설의 명맥을 이어갈 뿐.
송준호와 까만돌이 신혼여행지 첫날밤을 보내기로 약속했던, 석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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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죽음을 초월했던, 자일 파트너 쉽 산악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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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이 된, 송준호 엄홍석 신현주.
삶과 죽음을 초월한 '자일 파트너.'
셋은 생전에 설악가를 즐겨 불렀다.
수많은 산악인들의 애환이 담긴 노래.
설악산이 있는 한, 멈추지 않을 <설악가>.
1절
굽이져 흰 띠두른 능선길 따라
달빛에 걸어가던 계곡의 여운
내 어이 잊으리오 꿈 같던 산행을
잘있거라 설악아 내 다시 오리니
2절
저 멀리 능선 위에 철쭉꽃 필 적에
너 와 나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걷던 길
내 어이 잊으리오 꿈 같던 산행을
잘있거라 설악아 내 다시 오리니
3절
저 높은 봉우리에 백설이 필적에
나는 야 생각한다 친구의 모습
내 어이 잊으리오 꿈 같던 산행을
잘있거라 설악아 내 다시 오리니
해설.
송준호가 석주길 개척을 결심한 시기는
<석주>가 죽은 다음해인 68년 7월경인듯.
송준호 석주길 개척한 시기는 1969년
석주는 1967년 천당폭에서 동반추락사
천당폭은 워낙 인적이 없는 곳이라
목격자는 없었고 사인에 두 가지 설.
하나는 빙벽에서 빠져나간 확보장비.
당시 빙벽장비로는 대부분 비슷한 사고
빙벽장비가 발달되지 않아 확보장비 취약.
'엄홍석이 죽을 수 밖에 없었던 두번째 설.'
엄홍석이 그녀를 살리려 애썼던 흔적들이 가슴 아프다.
그녀 추락거리를 줄이려고 빙벽 아래로 뛰어내린 엄홍석.
그것은 선등자를 살리려 확보자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
'엄홍석이 신현주를 자기 목숨보다 소중히 여긴 증거.'
추락시 확보물이 빙벽에서 터져나가며 자일에 남은 충격.
확보 위치에서 벗어난 자일 길이가 곧 엄홍석의 추락거리.
자신의 목숨을 던지며까지 연인 신현주를 살리려 애쓴 흔적.
숨겨진 송준호의 비화 한토막에 대하여~~
송준호는 마음속 갈등 끝에 석주를 위해 포항(?)으로 잠적.
그 사이에 남은 두 사람이 천당폭 사고로 목숨을 잃었던 듯.
송준호는 밝힌 적이 없지만, 세 사람은 숨겨진 삼각관계 연인.
송준호는 석주를 위해 떠난 후에도
그 사실을 단 한번 내색한 적 없었다.
엄홍석이 신현주를 이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
송준호가 자일 파트너 석주에게 보여준 헌신적인 사랑.
눈물겹도록 가슴 아픈 숭고한 사랑에 고개가 숙여진다.
이미 죽은 그들은 말이 없는.. 한편의 드라마 같은 비화.
천화대 능선은 잦은 바위골과 설악골 사이.
석주길은 그곳 중에서도 왕관봉과 범봉 사이
아무도 찾지 않던 그곳에 홀로 찾아간 송준호
그는 석주길을 개척하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가 석주길이라 이름 붙인 그 아픈 속마음!
두 사람이 행복하길 바라며 홀연히 떠난 사이에
안타깝게도 그곳 아래 천당폭에서 죽어 간 두 사람
이미 고인이 된 두사람을 그리워했을 송준호~~~*
석주길 오른쪽에는 세 사람의 추억이 담긴 설악골.
석주길 왼쪽엔 엄홍석과 신현주가 고인이 된 천당폭.
'석주가 죽은 후 송준호는 까만돌을 만난 듯..'
까만돌은 누구보다도 송준호의 아픈 마음을 이해한 듯.
석주길 신혼여행을 하기로 했고 스위스로 떠나기로 한 점.
결국, 송준호는 자일파트너 석주 곁에 나란히 묻히게 되었다.
송준호가 자신의 속마음을 한번도 털어놓지 않았어도
지인들은 송준호의 속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석주길 들머리 바위벽에 걸려있는 동판..'석주길
* 위의 글은 옮겨온 글입니다.
석주에 엃힌 이야기는 카페마다, 또책이나 잡지마다 조금씩 다르게 표현이 되어있는 부분이 많더라구요
큰맥락의 이야기비슷 비슷합니다
천화대 등반을 끝내고 내일이면 범봉등반에 들떠있는 저녁 비박분위기...
꼬불처 두었던 술도 한잔하고...ㅎ
아침 준비를 하는데 비는 쏟아지고 ...
등반포기를 결정하고 비닐 천막을 치고 여유로운 조식과 커피타임,...
울분을 못삮이고 식~식~~ㅜㅜ
비가 조금 그치는듯하여 물바위를 각오하고 등반 결정을 내린다
젖은 범봉 1피치를 등반하는 산적님
2박을 했기에 배낭이 가벼워지리 했건만 여전히 무거운 배낭은 뒤에서 당기고...
경사도 가파르고 어려운 코스를 잘도 올라오는 정천호님
누구보다 범봉 둥반결정이 나자 좋아하시는듯한 설산님 ㅎ
등반 시작 한시간쯤 지나자 날씨는 좋아지고...
작은 범봉 가는길,,,
길을 못찾아 좀헤맸습니다
좌측은 천길 낭떨어지... 야초님
노랑 바가진깨로 하늘님이시구만...ㅎ
바람사이로님의 등반모습
너무나 많은 행동식을 가지고 오셔서 등반 끝나고도 10명이 나눠먹었슴 ㅎ
야초님
설산님
설산님 발아래 뒤쪽으로 속초앞 바다가 보입니다
정천호님.
그림이 너무좋이 건너편 바위에서 독사진을 많이 찍었눈데 카메라가 그느낌을 100% 못전달하는게 답답 ㅎ
범봉 정상의 요델 동판
범봉 직하의 설산님
범봉 등정 인증샷
범봉 정상으로 통하는 침니구간
침니구간에서 주마링으로 오르는 우리사랑님
발아래 계곡을 보니 고도감이 장난이 아닙니다.
침니 등반으로 마지막 구간을 오르시는 하늘님
종착역에 오니까 후미등반조를 만나네요 ㅎ
마지막 힘을 내는 바람사이로님
수고 많았습니다
범봉 하강중에 절벽 중간에서...
순조롭게 범봉 하강은 이루어지고...
라스트 야초님의 하강으로 이번 등반을 끝맺습니다.
둘째날 워킹 한시간을 포함 11시간 산행, 세째날 워킹 3시간 포함 9시간 산행,
총20시간의 천화대 범봉 연속등반의 막을 내립니다
솔선 수범과 희생정신의 열(10명) 클라이머의 2박3일은
즐거웠고 행복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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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진을 보고 있자니 등반했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갑니다.
꿈은 이루어진다!........2박3일의 무궁무진한 일을 치루고 돌아오신분들 대단하십니다.......늘 존경스럽습니다.....멋진 그림과 스릴넘치는 장면들을 잘 담아주신 회장님 고생많이 했습니다....덕분에 잘 보고갑니다........
멋진 꿈의 길을 다녀왔읍니다분되고 감회가 새롭습니다
누구나가 아닌 우리가 다녀왔기에 더
선등과 리더로써의 모든면 만족스러웟고 너무 수고많으셨읍니다
다시한번더 떠올려도 행복한 순간이였읍니다
리딩 하신 회장님덕분으로 저를 편안하게 범봉까지 가게 해주신 분이시고 저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꿈만 같은 시간들이 무수히 스쳐 지나가니 말입니다....
늘 안산하시고 대박산행만 이여가십시요...
환장하것네요.
같이하지 못함이 못내 아쉬움으로....ㅉ
함께 등반한 모든 분들 정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다음에는 어디가죠...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