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2020-07-17)
< 지지리도 못했던 달음박질·뜀박질 >
문하 정영인 -
나는 어렸을 적부터 달음박질·뜀박질을 지지리도 못했다. 아버지를 비롯해서 육남매 형제들은 운동회 때, 적어도 달리기에 3등 안에 들었다고 한다. 나는 1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도맡아 꼴등을 했다. 선친은 그런 나를 보면서 달리기에선 나를 돌연변이, 별종자라 하여 포기하셨다. 농담으로 정씨 가문에 호적을 파내야 하겠다고까지 하셨으니……. 하여간에 달음박질·뜀박질에선 지지리 궁상을 떨었다. 다른 것도 좀 그렇지만…. 그래서 그런지 나의 국민학교 운동회 때는 꼴을 보기 싫으신지 오시지 않았다. 아예 외탁을 해서 그런가?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선병적(腺病的) 체질이었다. 대학생일 때까지 속앓이(속병)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러니 자라는 것도 비리비리하고 맬맬하였다. 학교도 결석을 많이 했다. 소가리가 일어나면 1주일은 보통 긍긍 매고 진을 빼고서야 가라앉았다. 중학교 때는 권여 한 달여를 병가를 내고 시골집에서 쉬기도 하였으니 말이다. 그러니 운동 소질도 없는데다가 앓증을 많이 하니 운동엔 젬병이었다. 건강에 자신이 없으니 매사 소심하고 담이 없는 아이로 자라났다.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사는 아이로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겨우 한다는 운동이, 운동이라 하기엔 낯 간지러운 걷기운동이었다. 그것도 등산 같은 것이 아니라 평지 걷기가 다반사였다. 지금에야 유산소 운동이니 하며 걷기를 운동이라 하지만 그 당시는 걷기는 운동으로 치지도 않았다. 지금은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는 ‘걸살누죽’이라는 신종 사자성어가 생겼지만. 걸살누죽을 한자 사자성어로 ‘步生臥死(보생와사)’라 한다.
운동회 때면 되면 나는 주눅이 들었다. 운동회가 끝나고 내가 들고 오는 것은 달랑 참가상 공책 한 권이었다. 내가 운동회 때 제일 부러워하는 것은 달리기 1등 공책 3권, 학급 대표 계주 공책 3권, 참가상 1권 도합 7권을 거머진 친구였다. 어떤 친구는 3형제가 나란히 1등을 하였다. 그 집은 확실히 이기적 달리기 유전자가 진화한 집일 것이다. 그러니 나는 외탁했거나 돌연변이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나는 운동회 때만 되면 주눅이 아니 들 수 없었다. 어떤 부모가 4등, 5등도 아니고 도맡아 꼴등만 하는 자식을 보고 싶겠는가. 다만 신기한 것은 그렇게 꼴등을 하면서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끈기 있는 형이 아니다. 선친께서는 나에게 늘 말씀하셨다. “넷째는 머리는 좋은데 근이 없어.”라고 말씀하셨으니 말이다.
그러나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고, 기적은 일어나게 마련인가 보다. 단 한 번의 나의 달음박질 기적이 일어났다. 5학년 때, 가을운동회 때였다. 그날따라 하늘은 푸르고 만국기는 펄럭였다. 글쎄, 그날 내가 달리기에서 1등을 하는 대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 기적은 그렇게 일어나나 보다. 그때는 내가 하도 너무나 꼴찌라서 다음 조의 1등 바로 앞에 들어왔다. 결승선에서 1등을 잡는 6학년 형은 내가 1등인줄 알고 내 팔을 붙잡아 1등줄에 앉혔다. 또, 1등 스탬프 도장을 찍어주는 6학년 누나는 내 왼팔에다 선명한 ‘1’자를 콱 찍어 주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졸지에 진짜 1등은 2등, 2등은 3등, 3등은 4등이 되었다. 진짜 1, 2, 3등은 영 미심쩍은 얼굴을 하였다. 특히 3등에서 4등으로 등외가 된 우리 반 그 친구는 영 수긍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나는 내 인생의 이 역사적인 순간의 유혹을 도저히 뿌리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1등 도장이 찍한 공책 3권을 받았다. 1등해서 공책 3권, 참가상 1권, 도합 4권을 들고 형들의 무동을 타고 개선장군처럼 집에 입장하였다. 그날도 부모님은 운동회에 오시지 않았다.
그날 우리 집은 경사가 났다. 가문의 영광이고 기적인 일어난 것이다. 특히 아버지는 달음박질 대물림이었다는 사실에 흐뭇해 하셨다. 그러면서 6학년 때는 계주까지 하라고 신신당부 하셨다.
지금까지도 나 때문에 특히 3등에서 4등으로 밀려난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 비사(祕史)는 나만 알고 여지껏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한다. 4지(四知)라 했다. 하늘이 알, 땅이 알고, 내가 알고, 네가 안다든가? 사실, 그때 결승선에서 나를 1등으로 잡은 형은 우리 동네 형이었으니…….
물론 지금도 달음박질·뜀박질은 젬병이다. 시골학교 초등교사 시절도 그랬다. 가을운동회 프로그램에 6학년의 달리기 중 하나는 쪽지에 적힌 손님을 찾아서 손잡고 달리는 ‘손님 찾기’라는 경기가 있었다. 담당자 선생보고 나는 제발 넣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건만, 약방의 감초 격으로 한두 번은 꼭 넣었다. 나는 나를 부른 그 아이의 손을 꽉 잡고 가랑이가 찢어지라 달렸지만 역시나 그 타령이라 늘 꽁찌를 면치 못했다. 그런데 우리 자식 남매와 손자, 외손녀는 운동회 때, 적어도 3등 안에 들었으니 대물림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그 유전자는 집사람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나 보다. 쌍둥이인 집사람과 처제는 초등학교 육년 동안 달리기 내내 1등만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인 장모님이 이 세상에 안 계시니 확인할 법이 없다.
뭐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무재주 상팔자라. 거기다가 삼치(三痴)니, 몇 번 가본 곳도 헤매는 길치에, 콘센트 고장 난 것도 제대로 못 고치는 기계치, 더 보태서 달음박질 늘 꼴찌만 하는 운동치! 늘 어리버리하고 한 세상 말미(末尾)를 장식하고 있으니 말이다. 운동 젬병에 얻는 것은 그저 독서뿐인가 보다. 가끔 글을 쓰는 것 하고…….
누구에게나 잘하는 것이 있고 못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신(神) 다 잘하게, 다 못하게 재능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키우지 못해서 그럴 것이다. 신(神)은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을 열어 놓는다고 했다.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돌은 다 쓸모가 있다. 둥근 돌은 둥근 대로, 모난 돌은 모난 대로 다 쓸모가 있다. 나에게 잘하는 것이 있으면 남에게도 잘하는 것이 있고, 남이 잘못하는 것이 있으면 나에게도 잘못하는 것이 있다.” 초등교사 1급 자격증 취득 특강에서 들은 말이지만, 지금껏 마음속에 깊이 새기고 있다.
아무리 달음박질·뜀박질 꼴찌만 했던 국민학교 가을운동회는 항상 아름답고 그리운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어느 땐가 이 세상 노을빛 끝내면 가서 그 친구에게 가서 미안하다고 말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