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제383호인 논산 연산 돈암서원 국가사적 제383호인 논산 돈암서원은 조선 인조 12년(1634) 이곳에서 1.5km 떨어진 숲말에 세워졌었다. 현종원년(1660)에 사액서원이 되었으나 지대가 낮아 홍수 때에는 물이 뜰까지 넘쳐 들어오므로, 고종 17년(1880) 현재의 자리인 연산면 임리 74번지(서원말)로 옮겨지었다. 고종 3년(1865) 서원철폐령에서도 제외된 서원이었다.
서원 앞은 널따란 주차장을 확보해 놓고, 서원 입덕문 앞에는 이층으로 된 정자를 지었다. 이층 누각으로 올라가 사원의 전경을 찍으려고 보니 올라가는 계단을 문을 만들어 자물통으로 채워놓았다. 문화재나 시설물을 보존한다는 차원에서 잠가 놓는 것도 좋지만 굳이 잠가놓을 것을 무엇을 하려고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하기야 문화재 훼손이 심각할 정도니 이해는 가지만 말이다. 입덕문을 들어서니 너른 서원 안에는 많은 전각들이 나열이 되어있다. 어느 곳을 가던지 별로 다르지 않은 서원의 구조만 보다가 돈암서원을 보니 그 구조 자체가 남다르다. 이곳이 서원 철폐 때에도 제외된 이유는 사액서원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구조 등을 볼 때 그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 아닌가 싶다. 돈암서원을 찬찬히 훑어본다.
새로 돈암서원 앞에 축조된 루각 사액현판이 걸린 돈암서원의 입덕문 충남유형문화재 제156호인 응도당. 유생들이 공부를 하던 곳이다. 정면 5칸, 측면 3칸, 주심포 1 출목 2익공 겹처마 맞배지붕이며 백골집으로 29평이다.
장판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에 홑처마 팔작지붕 백골집으로 11평이다. 김장생·김집·김계휘(金繼輝)의 문집과 왕실의 하사품인 벼루·전적 등이 보관되어 있다. 경회당 양성당은 정면 5칸에 측면 2칸으로, 홑처마 팔작지붕 백골집이다. 건평은 20평이다. 정회당 숭례사. 사계 김장생을 주향으로 하고 그의 아들 신독재 김집(金集), 노론의 거두 동춘당 송준길(宋浚吉)과 우암 송시열(宋時烈) 등을 배향하였다. 전사청. 정면 7칸에 측면 2칸이다. 가자형 홑처마 팔작지붕 백골집으로 건평은 38평이다. 젖은 옷들을 말리는 듯 전사청 안은 너저분하게 옷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전사청의 입구 충남 문화재자료 제366호 돈암서원 원정비. 김장생의 문하생들이 돈암서원을 세운 내력과 김장생과 김집 부자의 업적을 기록한 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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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누리의 취재노트 원문보기 글쓴이: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