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츠코의 눈이 번들거렸다.
“잘 못 춰요. 나츠코상은요?”
“조금 배우기는 했는데….”
나츠코가 얼굴을 붉혔다. 카바레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면서 어디서 춤을 배웠는지 알 수 없었다. 이재영은 다시 술을 마셨다. 흐느적거리는 음악소리 때문에 이재영도 흥분이 되는 것 같았다.
“춤추러 나가요.”
나츠코가 이재영의 손을 잡았다. 이재영은 나츠코를 따라 플로어로 나갔다. 플로어에서는 불과 세 쌍이 춤을 추고 있었다. 한 쌍은 남자가 양복을 입고 여자는 기모노를 입고 있었다. 두 쌍은 남자는 양복이었고 여자는 양장 차림이었다.
이재영도 나츠코의 허리를 안고 춤을 추었다. 블루스는 서로를 안고 음악에 맞춰 발을 떼어놓으면 되었다. 춤을 전문적으로 추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나츠코는 간간이 이재영을 쳐다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몸도 바짝 밀착시켰다. 조명은 초록색과 붉은 색으로 어우러져 있었으나 어둠침침했다. 조명 때문에 더욱 야릇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춤을 출 수 있어서 행복해요.”
나츠코가 얼굴을 이재영의 가슴에 기댔다. 그녀의 머리에서 향긋한 비누냄새와 비 냄새가 풍겼다.
살과 살이 닿자 하체가 묵직해져 왔다. 부드러운 촉감도 느낄 수 있었다.
“이상은 어때요?”
나츠코가 밝은 표정으로 물었다. 여자가 얼굴이 이렇게 밝을 수 있을까. 외간남자를 만날 때 여자는 행복한 것인가.
“나도 좋아요.”
이재영은 나츠코의 허리를 바짝 끌어당겼다. 나츠코는 들떠 있었다. 술과 음악 때문에 흥분한 것 같았다. 이재영은 주위를 살폈다. 낯선 손님들이라 이재영과 나츠코를 곁눈질하는 사내들도 있었다. 카바레는 건달이나 한량인 단골손님들이 많다. 그들이 이재명을 아니꼬운 눈으로 살피고 있었다. 그들과 시비를 붙으면 무슨 꼴을 당할지 알 수 없다.
‘오래 있으면 안 되겠구나.’
이재영은 한 시간쯤 지나자 카바레에서 나츠코를 데리고 나왔다. 빗줄기는 더욱 굵어져 있었다.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데 나츠코가 그를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이재영도 그녀를 격렬하게 포옹했다.
밤은 이미 깊어 있었다. 거리에 인적이 끊어지고 차도 다니지 않았다. 종로 거리가 차가운 가을비에 젖고 있었다.
“비가 쉽게 그칠 것 같지 않아요. 그냥 갑시다.”
이재영이 나츠코의 손을 잡았다.
“알았어요.”
나츠코가 미소를 지었다. 이재영은 나츠코의 손을 잡고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종로의 뒷골목에 여관이 있었다.
이재영은 여관을 잡았다.
방은 3층이었다. 여관비를 지급하고 3층으로 올라갔다.
“비를 흠뻑 맞았어요.”
나츠코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우산을 썼으나 비가 들이친 것이다. 비에 젖은 그녀의 몸이 육감적으로 보였다. 거리는 가로등이 들어와 있지만 화려하지는 않았다. 여관의 창으로 비가 내리는 거리와 남산이 보였다.
나츠코가 비에 젖은 옷을 벗기 위해 방의 불을 껐다.
이재영은 비에 젖은 옷을 벗었다. 방에 훈훈한 온기가 돌았다. 가을이라 방에 난방이 되어 있었다. 나츠코도 미적거리면서 옷을 벗었다.
이재영은 나츠코를 포옹하여 격렬하게 입을 맞췄다. 나츠코는 일본 군인의 부인이다. 불안하면서도 알 수 없는 쾌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아, 좋아요.”
나츠코가 이재영에게 안겨서 몸을 떨었다.
“너무 좋아요.”
나츠코가 단내를 풍겼다.
비를 맞았기 때문에 한기가 느껴졌다. 이재영은 나츠코와 함께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욕망을 배설하는 것은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나츠코는 한 번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이재영은 나츠코와 이틀을 지내고 대구로 돌아왔다.
가게에 나가자 미곡창고에 쌀이 들어오고 있다고 했다. 가게에서 100m쯤 떨어져 있는 창고로 갔다.
“어서 오세요, 사장님.”
미곡가게를 맡고 있는 변우영이 말했다.
“오늘은 몇 석이 들어오나?”
“백 석이 들어옵니다.”
“금년에는 천 석만 매입하지. 전쟁도 있고….”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변우영이 대답했다. 류순영은 전쟁이 시작되자 금을 사들였다. 금을 많이 사들였기 때문에 쌀을 매입하는 자금이 줄었다. 시멘트 사업에도 자금이 필요했다. 비상시에 자금을 풀어 쌀을 매입하는 것이 아니라 비축해 두어야 했다.
‘마누라가 돈길을 잘 찾네.’
전쟁이 일어나자마자 사들인 금이 전쟁이 계속되면서 값이 배로 올랐다. 사람들은 금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류순영은 12월이 되면 모두 팔겠다고 했다.
“금값이 계속 오르는데 왜 팔아?”
이재영은 어리둥절했다.
“너무 많이 먹으면 체해요.”
“무슨 소리야?”
“사람의 위장이 한계가 있는데 계속 먹어 봐요. 체하죠.”
류순영의 말은 옳았다. 언젠가 밥을 두 그릇 먹고 체하여 크게 앓은 일이 있었다. 이재영은 그 후에 절대로 과식을 하지 않았다.
12월이 되자 류순영은 금을 대부분 팔았다.
글:이수광그림:김문식 |
첫댓글 즐감 하고 갑니다
잘보았읍니다
감사합니다
즐감요~~~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