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현장선생님의 도서가 인터넷에 소개되거나, 알고리즘에 걸려오면 꼭 사서 보려고 한다.
숲속 집과 숲속 학교를 오가며 지내는 내게 책이 유일한 문제의 솔루션이자, 호기심의 창구가 되곤 한다.
그중에서도 현장 선생님들의 이야기는 귀하고 애틋한테, 감질나는 것이다.
학교-사람으로 살다 퇴근해, 집-사람으로 전환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금요일 퇴근은 토요일 하루종일을 학교 여진으로 뒤채이다, 속사람 지향지에 이르기엔 일요일 오후쯤에 이르러야 한다.
바로 월요일 출근, 또 일상의 리듬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떠밀려가곤 하는데 최문정 선생님의 정성이 시의적절하다.
1년 6개월 병휴직을 한 최문정선생님 책은 불편과 고통을 재생하고 동시에 연대의 감정으로 생기를 붇돋아준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 !'
어제 새벽 올린 글은 학교(성)폭력 여성가족부 공문 처리과정에서 교감님과 설전하다 나온, 나의 학교 감정이었다.
올해 교감 校監님은 사상이나 감정 따위를 함께 나눌 수 있는 교감交感이 좀 되는 측면이 있어 속마음을 내비친다.
무엇보다 정년 마당이니 홀가분한 것이 있다.
이 생각을 하면 남겨질 후배선생님들을 위해 어떻게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슬픔과 미안한 감정이 교차하곤한다.
올해 교감님 전입은 이동-승진 축하 화분이 따라붙지 않았다. 처음이다.
대신에 아기자기한 손편지를 동봉한 여선생님들 떡들이 도착했다.
생활한복을 즐겨 입으신다.
주변 남자중에서 소통능력이 빼어난 분들이 있다.
소통역량에 젠더 편견이 있구나! 스스로는 반성하게 하는 분들중 한 분이 이번 우리 교감이시다.
정신과 약물 꼬박꼬박 3년 복용후 간헐적 기억상실증이 잦아졌는데, 주변에서 말해줘서 알게 되었다.
만 3년 꼬박 보약처럼 챙겨먹던 ,아무 부작용 없다는 젊은 주치의 선생님 처방을 너무 맹신했었던 것이다.
약물을 줄여나가고, 밤에 잠을 자고, 새벽부터 나쁜 시나리오를 펼치는 망상적 피해의식 습관을 최선적으로 줄여나가고 있다.
김주환 교수의 유트브 영상과 내면소통 도서 도움을 크게 받고 있기도 하다.
하루종일 조직적 나쁜 관계망에서 분명 교감交感 역활이 이렇게 중요한가? 깜짝 놀라서 주목하고 있다
<그 교장선생님 퇴임식 날, 정말 많은 교사가 눈물을 흘렸다>
읽던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을 떨구었다.
지금 또 울게 된다.
아래 그 일화를 첨부한다.
우리 모두는 각자가 아니다.
혼자가 아니다.
아이들이 물어보면 해 주는 말,
"우리 다 죽어, 죽을 테니까, 사는 거야 모두, 쉽지? "
" 즐거운 종결 " 을 떠올리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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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정선생님(2023), 선생님 죽지 마세요, 창해, p62-64
모든 교사가 존경하고 좋아했던 교장선생님 밑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아주 유명한 학생이 우리 학교로 전학을 왔다. 학생과 학부모가 모두 문제가 있어 이전 학교에서 전학을 권유받았는데, 다른 몇몇 학교에서 전학을 거절당해 1년을 휴학한 학생이었다. 하필이면 그 학생이 우리 반이 되었다. 그 아이, 경훈이는 ADHD 와 우울증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 질병을 이유로 뭐든 용납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경훈이의 성격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경훈이의 인격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경훈이의 부모였다. 아이의 부모는 나에게 무리한 요구를 당당하게도 했다. 가장 황당한 요구가 "절대로 경훈이의 잘못을 야단치지 말라"는 것이었다. 경훈이의 우울감을 부추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전 학교에서 부모는 물론이고 외삼촌,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까지 번갈아 찾아와 담임을 괴롭혔다는 소문을 들었기에 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들이 경훈이의 잘못을 나에게 일렀지만, 모르는 체하고 다른 아이들을 다독였다.
그러다가 미술 수행평가 제출이 있던 날, 사건이 일어났다. 경훈이는 짝꿍의 그림 위에 일부러 물병을 쏟아부어 망쳐버리고도 사과하지 않았다. 당연히 짝꿍과 말다툼이 벌어졌고, 나에게까지 상황이 전해졌다. 일단 경훈이를 불러서 왜 그랬는지 물었다.
" 내 그림을 그려달라고 했는데 안 그려줘서요."
그 대답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수행평가는 반드시 혼자 해야한다고 말했지만 경훈이는 불만이 가득한 채 입술만 비죽거렸다. 나는 그림을 망친 짝꿍을 따로 불러 달래고는 경훈이를 이해해주라고 부탁했다.
다음 날 경훈이의 어머니와 외삼촌이 찾아왔다. 내가 경훈이가 아니라 짝꿍 편을 일방적으로 들었으며, 그 상황이 아이의 절망감을 부추겨 우울증이 악화되는 바람에 등교를 거부한다고 했다. 교사 자격이 부족하다는 말에 나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변명이 아닌 사실을 전달하는데도 학부모는 오히려 더 화를 냈다.
"정말 말이 안 통하네. 교장선생님과 이야기해야겠어"
외삼촌이 협박조로 말했고, 나는 그러라고 해버렸다.
두 시간쯤 지나서 교장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교장선생님이 나를 호출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당시에는 경력이 짧은 교사였던 나로서는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소파 맞은편에 앉자마자 교장선생님이 말했다.
"휴대폰 발신 전화번호 알림서비스 받으세요?"
"네?"
" 그 학부모 전화는 수신 거부를 해버리세요. 기본 상식이 없는 사람들이더구먼.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더라고. 매일 손편지를 써줘야 하고, 수업 시간에 잠을 자도 내버려둬야 하고, 짝과 자리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하고, 잘못해도 야단을 치지 말라니 거참 기가 막혀서 원. 들어주고 있는데 어찌나 화가 나던지 .... , 혹시 학교로 전화해서 또 어이없는 소리 하거든 상대하지 말고 나한테 전화하라고 해요."
순간, 긴장이 풀리며 눈물이 쏟아졌다. 몇 개월 동안 참고 또 참으면서도 혼자 견딜수밖에 없었던 서러움이 한꺼번에 터졌다.
"벌써 5월인데 그동안 혼자 참기만 했어요? 진작 나한테 와서 말하지 그랬어요? 이런 일 해결하라고 교장이 있는 겁니다. 수업 준비하고 아이들 보살피는 것만으로도 힘들 텐데, 이런 일 겪게 만들어서 내가 미안해요. 내가 일찍 알았더라면 선생님이 상처 입지 않았을 터인데, 정말 미안합니다."
그 교장선생님 퇴임식 날, 정말 많은 교사가 눈물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