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밍이 좀 늦었지만, 오늘은 한용덕 100승에 대해서 떠들어야겠다. '김영덕 전 감독님께 감사드린다'는 소감까지 밝혔는데, 내가 가만히 있으면 안될테니? 히히.
그렇다, 기쁘기보단 안타깝다. 진작에, 당연히 올라섰어야 할 고지인데 너무 늦었다. 그리고 어떤 스포츠 신문은 화딱지나게, 한용덕이 평범한 투수인 것 처럼 묘사해놨던데…… 100승은 '성실성'과 '세월'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성실성과 세월을 뛰어넘는 그 무엇인가가 존재해야만 가능한 것.
한화에서 한용덕처럼 불운한 투수가 또 있을까? 트럭운전수-배팅볼 투수에서 일약 팀의 중심 투수로…… 물론 여기까지는 '신데렐라'였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어지간한 팬이라면 다 아시겠지만), 항상 가지고 있는 능력 만큼의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완투패의 대명사. 정확한 통계를 내보진 않았지만, 모르긴 몰라도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다 완투패 투수 랭킹 세손가락안에는 들어갈 것. 아무튼 타선과 궁합이 맞지 않기로 유명했으니까. 예외가 있다면 조계현과 다승왕 경쟁을 펼쳤던 94년. 이 해에는 난타당한 경기가 꽤 있었으나 타선의 폭발적인 지원덕에 쉽게 승수를 챙긴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13년동안 단 1년뿐. 억울한 꼴을 더 많이 당해야만 했지.
사건사고도 빼놓을 수 없다. 난 아직도 94년 9월, 전철역 가판대에 진열된 스포츠신문 1면을 보고 거품을 문 채 쓰러졌던, 그 순간의 악몽을 잊을 수 없다.
"한용덕 교통사고-다승왕 끝났다"
도데체 왜 9월11일 '새벽 1시'에 대전 시내를 배회하고 있었던 것일까? 조수석에 앉았던 한용덕 자신은 턱 찰과상과 오른쪽 옆구리 타박상을 입었을 뿐이었지만, 운전을 한 부인과 뒤에 탔던 아들은 중상을 입었다. 가장으로서 죄책감내지 책임감이 생기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사고 자체도 갑자기 나타난 물체(?)를 보고 조수석에 앉아 있던 자신이 인도쪽으로 확 핸들을 꺽는 바람에 발생한 것이니. 아무튼 후유증은 이듬해 95년까지 이어졌다. 몸의 이상 때문이 아니라 아픈 부인을 돌보느라. 96년 100승을 돌파하려던 계획은 물거품.
작년 계형철에게 당한 일도 아쉽다. 98년 최고의 믿을맨으로 팀내 투수고과 1위를 차지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욱. 여기서 잠깐 이슈시리즈 1편을 부분 인용.
"99년초 아리조나 전지훈련때 모 신임코치와 고참급 선수들간에 몸싸움 일보직전까지 갈 정도의 대립이 있었다고 한다. 이 일로 인해 팀 상조회장이 강석천으로 교체 되었고, 해당 선수들은 페넌트레이스 내내 사실상 제대로 된 등판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 해당선수들이란 바로 한용덕과 신재웅이란게 100퍼센트 확실하진 않지만 거의 정설…… 그리고 대다수의 선수들은 그 모 신임코치가 특정 선수를 편애한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는데, 그 특정 선수는 시즌 막바지, 만취 상태에서 방망이를 휘둘러 신인투수에게 중상을 입히는 사고를 치고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돼 선수들의 불만이 하늘을 찔렀다고 한다."
"99년 당시 신임코치는 단 세사람. 계형철, 이정훈, 이강돈. 함께 선수 생활을 한 이정훈과 이강돈이 한용덕, 신재웅과 싸웠다고 보긴 어렵다. 더구나 이들은 당시 1군 타격겸 주루코치, 2군 타격코치로, 한용덕과 신재웅의 등판을 불평등하게 조종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그렇다면 남는 사람은 한명, 계형철."
아직도 삼성이 한화우승의 1등 공신인 계형철을 빼내갔대니 뭐래니 하는 말이 나오는데, 제발 그만들 하시길. 불미스러운 잡음 때문에, 계형철은 어차피 떠날 사람이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는 우리 한화 입장에서는 그리 달가운 인물은 아니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한용덕은 부침을 겪었다. 선발이든 셋업맨이든 역할을 고정시켜줬더라면 아마 지금보다는 성적이 나았을 것.
한화 마운드를 쭉 돌이켜보면 커플-라이벌쇼가 자주 펼쳐졌다. 이상군-한희민, 송진우-한용덕, 구대성-정민철. 성향도 뚜렷히 구분되었는데…… 정통-철저한 자기관리 vs 변칙-자유분방(이상군-한희민), 아마시절부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엘리트 vs 무명에서 일약 신데렐라-잡초(송진우/구대성-한용덕/정민철). 이후 현재까지는 계보가 끊긴 상태인데, 이상열-김해님, 조규수-김장백등이 빨리 정신차려야 쓰겄구먼.
구대성-정민철 커플은 그래도 비교적 균형이 잡힌 편인데, 이상군-한희민, 송진우-한용덕 커플은 그러지 못했다. 한희민과 한용덕은 이상군과 송진우가 쌓은 업적, 융숭한 대접에 비해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껴야 했으니까. 물론 이것은 그만큼 이상군과 송진우가 뛰어났기 때문이지만, 사실 좀 억울한 면도 있었다.
99년까지의 통산방어율을 보면, 한용덕(3.27)이 송진우(3.42)보다 좋다. 경기수, 이닝수는 엇비슷한 편이고. 그나마 99년 한용덕이 망하는 바람에 격차가 좀 좁혀진 것. 하지만 통산 승수에선 거꾸로, 차이가 많이 난다. 송진우가 구원승이 많다는 점, 한용덕이 타선의 지원을 잘 받지 못했다는 점이 작용한 결과.
이 두사람은 묘하게도 엇박자로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90, 91, 92년은 이 둘이 함께 맹활약한 시기. 마운드에 선 '새로운 항공기' 한용덕, 불펜에서 몸을 푸는 '송골매' 송진우.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후…… 93, 94년은 한용덕의 압승. 95, 96년은 송진우의 판정승. 97년은 동반 몰락. 98년은 한용덕의 압승. 99, 2000년은 송진우의 압승. 과연 2001년부터는 어떤 결과가 펼쳐질까? 흐름상으로 한용덕? 물론 손에 손잡고~ 팀의 우승을 위해 함께 잘되야 한다는게 정답이겠지.
결국 나 김영덕이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한용덕의 '불운'쪽만 강조해서 떠들긴 했지만, 한용덕 개인의 잘못내지 실수가 전혀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팬들과 언론의 일방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송진우에 비해, 한용덕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찬밥 취급을 받고 있으니…… 좀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퇴물이니 짤라버려야 한다는 소리도 나오는 마당이니.) 겉으로 드러난 성적을 떠나서, 지금까지의 팀공헌도를 따져본다면 둘은 거의 비슷하다. 똑같은 영웅인 것이다.
"한용덕은 과연 한물간 투수일까?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본다. 다승왕 경쟁을 펼쳤던 94년, 혹은 팀내 투수고과 1위, 최고의 믿을맨으로 활약했던 98년과 현재 한용덕의 구위는 별반 다를게 없다. (94년 최고 구속: 140km내외, 평균구속: 136km로 지금과 비슷) 미국의 그 매덕스를 본딴 '한덕스'란 별명이 말해주듯(히히, 트럭운전수와 뺑덕이도 있지만), 한용덕은 절묘한 제구력으로 승부하는 투수지 불같은 강속구를 앞세웠던 투수는 아니니까. 또 쓰리쿼터형, 공을 상당히 쉽게 던지는 (아무렇게나 던지는 것처럼 보이는) 스타일인데다 체력관리를 잘하는 선수이기 때문에 롱런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한용덕의 최대 강점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몸쪽 승부를 제대로 할 수 있는 몇안되는 투수중 하나라는 점이다. 몸쪽 직구, 역회전성 변화구(포크볼)가 제대로 들어가기 시작하면 타자(특히 우타자)들이 꼼짝도 못하게 되어 있다."
<'독수리 5형제의 실체'중에서 인용>
만약 선발로 고정된다면, 난 내년에 한용덕이 10승은 충분히 올릴 수 있다고 확신한다. 물론 여러가지 사정상 중간계투로 나서야겠지만. 전천후로 굴릴 생각만은 제발 하지말것. 중간계투로 나서게 될 경우 물론 롱 릴리프가 아닌 셋업맨으로 고정되야겠지.
'100승'이란건 모든 투수들의 목표이기도 하지만, 이제 반환점을 돌아 쇠퇴기로 접어듬을 의미하기도 한다. 100승 달성후 갑자기 흐지부지되버린 이상군의 전철을 밟지 않아야 될텐데. 설마 그러겠어? 한용덕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마흔을 훌쩍 넘긴 후에, 많은 이들의 축복속에 화려한 은퇴식을 가지기를 기원하며, 이만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