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관계에 새로운 장 열었다... 정상회담 정례화”
전 일본 특파원 "윤석열 대통령 정말 멋집니다"
"캠프 데이비드 회담 때 바이든 윤석열 기시다 이렇게 세 정상이 찍은 사진을 보니 윤석열 대통령이 가장 빛이 났습니다.
한국인들은 물론이겠지만 저도 자랑스러웠습니다. 윤 대통령의 말에선 뱃속에서 나오는 무게를 느낍니다. 특히 지난 8.15 연설이 정말 좋았습니다."
趙甲濟
어제 1980~90년대 서울특파원을 지낸 일본 기자를 만났다. 한국어가 유창한 70대 은퇴 언론인인데 특파원 시절부터 따뜻하고 균형된 시각으로 한국문제를 바라보면서 기사를 써 친밀하게 지내고 있다. 그는 나를 만나자마자 윤석열 대통령 이야기를 꺼냈다. "캠프 데이비드 회담 때 바이든 윤석열 기시다 이렇게 세 정상이 찍은 사진을 보니 윤석열 대통령이 가장 빛이 났습니다. 한국인들은 물론이겠지만 저도 자랑스러웠습니다. 윤 대통령의 말에선 뱃속에서 나오는 무게를 느낍니다. 특히 지난 8·15 연설이 정말 좋았습니다." 한미일 동맹 강화 외교의 주인공이 윤석열 대통령이란 것이었다.
그는 "기시다 수상도 윤석열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에 자극과 영향을 받는 것 같습니다"면서 "한일관계를 정상화하고 더 나아가 한미일 강화로 나아간 윤석열 대통령의 이니셔티브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달라진 세계 정세를 이용하는 것이기에 성공할 것이다"고 했다.
중국 러시아 북한이 뭉치고 있는 데 대한 선제적 외교였다는 이야기였다. 그와 이야기하다가 놀라운 일치점을 발견하고 유쾌하게 웃었다.
그는 '반일종족주의'로 유명한 이승만학당 교장 이영훈 교수의 力作 '한국경제사'(上下卷)를 읽고 있다면서 감탄을 했다. 한국역사 2000년을 관통한 이 글은 경제사로 분류되지만 사실은 韓民族이 살아온 길, 즉 文明史라고 평했다. 실은 나도 이 책을 精讀하고 있다. 몇 주 전 복거일 선생이 쓴 이승만 傳記 소설('물로 씌어진 이름') 출판 기념회에서 이영훈 교수를 만났는데 씁쓸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 大作이 나온 지 7년이 지났는데 學界에서 제대로 된 書評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나는 건국 이후 나온 사회과학 책 가운데 가장 높게 평가되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많은 학자들은 애써 외면한다니! 상하권 합쳐서 약 1500페이지나 되는 속이 꽉 찬 내용, 著者가 '한국인의 역사적 전개'라고 붙인 副題에 질린 때문인지, 질투심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나는 일본 특파원에게 "이영훈 선생은 문학적 표현을 군데군데 적어 역사소설처럼 읽힌다"면서 "조선은 바다에서 철수했다"는 대목이 있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가 무릎을 치면서 "저도 그 대목에 밑줄을 쳐놓았다"고 하는 게 아닌가. 明이 永樂帝 이후 海禁 정책을 펴면서 폐쇄적으로 변하는 것과 연동되었는지 조선이 섬을 비우는 空島정책을 펴면서 내륙지향의 폐쇄노선을 선택한 것은 망국과 식민지로 가는 길을 예약한 민족사의 결정적 장면이기도 하다.
한국을 다시 바다쪽으로 돌려 세우려 한 것이 개화운동이고 이 흐름 속에서 등장한 위인이 李承晩이란 점에 우리 두 사람은 생각이 같았다.
그는 아베 전 수상이 '인도-태평양의 안정과 번영'이란 개념을 만들어 외교정책의 근간으로 삼은 점을 자랑했다. 나는 "조선은 태평양이 어디 있는지조차 몰랐는데 태평양을 발견한 사람이 이승만"이라고 자랑했다.
이승만이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쓴 박사 논문이 '미국에 의하여 영향을 받은 중립'이란 국제법 관련 글이다.
'세계 정세를 가장 높은 차원에서 이해한"(무초 미국 대사) 안목에서 한미동맹을 만들어내고, 국제법적 근거를 갖고 평화선을 선포, 독도를 영토로 편입시킨 이승만은, 바다에서 철수했던 나라를 조선조 이전의 해양적 나라 고려와 통일신라 노선으로 돌려세워 해양문화권으로 복귀시킨 지도자이다.
그가 오늘의 한국 번영을 예약한 위대한 先覺이었다는 점에 대해서도 우리는 합의했다. 그는 서울 특파원을 지낸 뒤엔 방콕 특파원으로도 근무했는데 "한국 언론이 동남아를 너무 경시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이 지역에 특파원을 많이 두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한국 기자들은 선진국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다"는 그의 말은 아픈 지적이었다. 머지 않아 GDP 규모에서 인도네시아가 한국을 능가할 것이고 중국의 침체와는 달리 인도 베트남 태국이 올라오는데 언론이 그러니 한국인도 이 지역에 관심이 적은 것 같다는 것이다.
인도는 이미 중국을 젖히고 세계 최대 인구대국이 되었고,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은 인구가 각 1억을 넘는다. 그는 인도의 모디 수상이 21세기의 지도자로 浮上하고 있다고 평했다.
전 서울 특파원은 이승만 기념관 건립을 지지한다면서 일본에선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높은데 평화선을 긋고 일본 어부들을 잡아갔다고 이승만에 대해선 부정적인 면을 안타까워했다.
그에게 몇 달 전 바이든이 주최한 백악관 國賓만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아메리칸 파이'를 멋지게 불러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다고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자랑했다.
"야, 이건 처음 보는데요. 잘 놀고 특히 노래 잘하는 대통령을 가진 한국인, 부럽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일본 기자로부터 한국 정치인 칭찬을 들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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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노태우 박세직에게 감사해야 할 이유
88 서울올림픽을 유치, 준비, 개최하여 한국과 세계를 바꾼 세 사람
趙甲濟
*2008년에 쓴 글
며칠 전 한 외국인 기자가 88 서울 올림픽과 한국의 민주화 사이의 관련성을 취재하기 위해 나를 찾아왔다. 그 기자는 '한국이 민주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북한의 위협을 받아가면서 서울 올림픽을 성공시켰고 그 올림픽이 한국의 북방정책을 가능하게 했으며 부분적으로는 소련 및 동구 공산권 붕괴에도 영향을 끼친 것이 경이롭다'고 말했다.
그는 2008년 북경 올림픽이 중국의 민주화에 일정한 영향을 끼치지 않을가 생각하여 서울 올림픽을 취재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올림픽의 성공에 큰 역할을 한 세 사람은 全斗煥, 盧泰愚, 朴世直씨이다.
全斗煥 전 대통령은 1981년 국제올림픽 위원회에 서울 개최를 신청하도록 결단했고, 그 뒤에도 올림픽의 성공을 위해 거국적인 지원을 하도록 정부를 독려했다.
盧泰愚 전 대통령은 서울 올림픽 유치 작전을 지휘했고 올림픽 조직위원장으로 일하기도 했으며, 올림픽 성공 후 북방외교로써 소련·동구권·중국과 수교했다.
朴世直씨는 개최시의 서울 올림픽 조직위원장이었다. 서울 올림픽이 역대 올림픽 중 가장 정확하게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그리하여 흑자까지 남길 수 있도록 했다.
특히 全斗煥 대통령은 1985~1987년의 민주화 격동기에 평화적 정권교체와 서울 올림픽 개최라는 2대 국정목표를 성공시키기 위해 뚝심있게 밀고 나갔다.
그가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와 함께 6·29 선언을 통해서 직선제 개헌을 수용한 이유 중의 하나도 서울 올림픽을 기필코 성공시켜야 한다는 계산이 있었다. 체육관 선거로 뽑힌 대통령으로는 서울 올림픽을 축복속에서 진행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전두환-노태우 정부는 국내의 민주화와 북한의 도전이란 협공을 견디어내면서 민주화와 서울 올림픽 성공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지금껏 지속되고 있는 1987년 민주체제는 이 두 사람의 합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 체제를 가능하게 했던 핵심이 서울 올림픽이었다.
민주화와 서울올림픽은 운명적으로 묶여 있었다.
전두환·노태우 두 사람은 서울 올림픽에 관한 한 사심이 없었고, 국민들도 정파적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서울 올림픽을 성공시키려고 했다. 한국인이 가장 순수했을 때가 그 시절이었다. 서울 올림픽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일념이 집권층의 군대 동원을 말렸고, 시위대의 과격화에 제동을 걸었다. 5공 시절 대통령 통치사료 담당을 했던 金聲翊 비서관(현재 인하대 객원교수)이 기록한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語錄에도 이때의 고민들이 자주 나온다. ========================================================== 1986년 3월17일 저녁 6시부터 8시45분까지 全斗煥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기독교 지도자들을 만찬에 초대했다.
이 자리에는 兪虎濬 지도자협의회 회장, 朴明壽 장로회 합동 총회장, 金知吉 NCC 회장, 李種聲 장로회 통합 총회장, 鄭晋慶 성결교회 총회장, 金奉錄 감리회 총회장, 池元祥 루터회 총회장, 金章煥 침례교회 목사, 辛信默 88 세계복음화대성회 회장, 崔薰 교역자협의회 회장, 張聖萬 민정당 정책위 의장 등이 참석했다. 구라파는 역시 구라파입니다 ▶金知吉 목사 기도:
대통령과 목사들의 마음 통하는 대화 기대를 감사 드립니다. 대통령께서 구라파 순방 임무를 잘 감당해서 이 민족 복지에 좋은 결실을 맺도록 축복 베푸소서. 진실로 이 민족이 민주 발전을 더 크게 도모하는 역사 이루게 하소서.
▶대통령: 아세안 순방 직전에도 목사님들이 기도해 주셔서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었습니다. 1981년에 내가 싱가포르를 방문했을 때는 李光耀 수상이 자신만만했었는데 작년부터 싱가포르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그 분이 수상한지 25년이 됐을 겁니다.
참 장기 집권이지요.
李수상이 말하기를, 싱가포르의 경우 국민소득이 1000달러에서 3000달러 될 때까지가 어렵더라는 거예요.
1000달러가 넘으면 국민이 다 즐기려고 한다는 겁니다. 3000달러가 넘으면 사회가 안정이 된다고 해요. 중산층이 형성되면 급격한 변화를 바라지 않고 안정을 바란다는 거지요. 싱가포르가 작년부터 경제가 쓰러져서 모든 임금을 동결했습니다.
그 양반이 올해에 서울에 오겠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발전을 보고 느낀 바가 많아서 와서 배우겠다는 거겠지요.
지금 세계 경제가 전쟁입니다.
미국에 더몬트라는 상원 의원이 있는데 사우스 캐롤라이나 출신으로 80세가 넘은 분입니다. 공화당 매파로 한국을 지지하는 분인데 내가 그 분을 두 번 만났습니다.
그 양반이 나한테 자기 선거구에 섬유가 많이 나는데 우리 섬유 제품 때문에 실업자가 4만 명이라고, 한국에서 자기를 좀 도와달라는 거예요. 선거 때가 되니 그 양반이 섬유수입 제한법안을 제안했는데 자기 선거 앞에는 한국 안보고 뭐고 없어요.
내가 전에는 구라파가 쇠퇴해가는 세력이 아니냐 해서 크게 비중을 안 두었는데 이번에 방문 준비를 해보니 구라파는 역시 구라파입니다. 정치, 외교가 구라파에서 이루어져요.
소련 사람, 미국 사람, 모두 구라파에서 만나요.
영국 인구가 5600만,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인데 금의 가치를 거기서 매겨서 1년에 40억 달러를 남겨요. 국민 총생산액이 6000억 달러나 됩니다. 이번에 내가 가는 영국, 서독, 프랑스, 벨기에 4개국 인구가 모두 2억에 전부 소득이 1만 달러가 넘고 고급 기술을 가지고 있어요. 영국은 대처 수상이 7년째 맡고 있는데 여자지만 대단한 사람이지요.
▶한 참석자: 손녀딸 잘 크시나요. 할아버지를 닮았다고 하던데요.
▶대통령: 여자애가 날 닮으면 어떻게 해요. 섭섭하게 생각지 말라고 그런 말 하겠지만… 할아버지 노릇하기가 참 어려운 겁니다. 귀여우면 안아주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말랑말랑해서 꽉 안을 데가 없어요. 그걸 모르고 안으면 목이 뒤로 확 젖혀지고… 오래 보니 피곤해요. 요새 웃고 그러는데 아, 참 귀여워요.
여러 가지 애를 써서 한번 웃겨 보려고 하는데… 우리 애 기를 때는 그런 귀여운 맛 몰랐는데 참 귀엽더만.
▶申賢均 회장: 韓景職 목사를 만났더니 하루에 세 번 각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전해달라고 하십니다. ▶대통령: 금년에 연세가 어떻게 되셨지요? ▶申회장: 만 85세 입니다. ▶대통령: 감사합니다. ▶한 참석자: 민정당 정책위 의장을 목사에게 준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통령: 기도 많이 하라고 그랬지요. 우리 나라는 믿는 나라 아닙니까. 물론 우리 사회가 위선자가 진실된 자를 괴롭히고 위선으로 정의를 말하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형편도 있습니다.
민정당은 정의 사회 구현을 지향하는데 정책위 의장을 목사로 하면 국민들이 민정당 정책을 신뢰해주지 않겠나, 위선이 없이 진실된 대화가 믿는 사람 사이에 이루어질 것이다 해서 그랬습니다.
우리가 통일을 해야 하는데 상대는 신을 믿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이 요새 와서는 종교가 있는 척 하는데 저것도 굉장한 위선입니다. 인권 문제를 말하지만 저기에는 사람을 동물 취급하니까 우리 힘으로 구원해 주어야 합니다.
▶池元祥 목사: 유럽 순방에 대한 기대는 어떤 것입니까? ▶대통령: 오늘날 외교는 정치 외교, 경제 외교, 군사 외교 등 세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우리 경우는 정치적 외교는 못합니다.
군사적인 힘의 뒷받침이 없는 정치 외교는 입씨름밖에 안됩니다.
우리는 무기나 장비 같은 군사력을 가지고 남의 나라를 구원해줄 수 있는 나라가 아니고 유엔에도 가입 못 한 나라이니 국제 무대에서 정치적으로는 약합니다.
공산주의 국가는 소련에서 말 한마디만 하면 그대로 움직이지만 자유 진영은 단합이 된 것 같으면서도 국가 이익이 상충되니, 가령 북한이 자유 진영의 어떤 나라에 가서 물건 5억 달러어치를 사겠다 하면 지지해 줍니다.
의리 같은 것 국제 사회에는 없습니다.
내가 이번에 구라파에 가는 이유는 경제 외교를 통해서 정치 외교를 하려는 겁니다. 우리는 구라파의 첨단 기술이 필요하니 그들의 기술을 가져오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이번에 우리 기업인들을 데려갑니다.
정부 대 정부로는 한계가 있어요. 기업가들이 잘합니다. 우리 기업들은 미국이나 구라파에서 보호 장벽으로 막아도 뚫고 들어가서 물건을 팔아요. 그것을 보면 우리 국민이 위대합니다. 지도층을 중심으로 단합해서 밀고가면 무서운 민족이라고 봅니다. 핵폭탄 터지면 한반도가 불바다 ▶대통령: 자동차의 창시국인 미국에 우리 자동차를 수출할 줄 누가 알았습니까. 구주 4개국 GNP가 2조 몇 천억 달러, 결국 구매력이 그러니 경제 외교를 하면서 기술을 좀 빼오자는 겁니다.
그게 미국과 일본을 뚫는 방법이기도 해요. 목사님들 앞에서 안됐지만 내가 필요하면 張聖萬 의장한테 기술을 훔쳐오라고 지시할 수도 있어요(웃음).
기술 있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합니다.
구라파가 외교의 중심입니다. 내가 이번에 가서 구라파 나라들이 소련에 영향을 끼쳐 북한이 전쟁을 못 일으키게 하라 하는 것을 얘기하려 합니다.
동북아에서 전쟁이 나면 구라파에서도 안 터질 수 없다, 구라파가 과거처럼 한반도에서 전쟁 나는 것을 구경만 해서는 안 된다, 한반도에서 미국이 고전해서 구라파 주둔 미국이 그 쪽으로 가면 소련이 구라파를 가만 두겠느냐, 그러니 북한이 전쟁을 못 하도록 소련에 압력을 넣으라는 거지요.
세계 대전이 나도 한반도에서 일어나면 안 돼요. 핵폭탄 몇 개만 떨어지면 불바다가 됩니다. 내가 북한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군사력이 있다고 전쟁을 하면 너희들도 다 죽고 우리도 다 죽는다.
미·소가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 하는 겁니다. 우리는 미국을 붙들어 놓아야 전쟁을 억지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큰일입니다. 레이건 정책이 옳은 건데 의회가 깎아요. 미국이 소련을 제압해야 소련이 머리를 숙이게 됩니다.
지금부터 앞으로 10년간 한반도에서 전쟁 없이 밀고가면 우리도 일본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다만 변수가 국내 정치인들, 정부를 무조건 반대하는 사람들입니다.
▶대통령: 이북은 GNP가 우리의 5분의 1인데 군사력은 우리보다 더 많습니다. 군사력이라는 게 돈덩어리예요. F16을 들여오는데 한 대에 미국 돈 2400만 달러입니다.
소련이 한 대에 1000만 달러에 북한에 준다고 해도 56대면 5억 6000만 달러 아닙니까. 군사력에 투자하면 국민이 필요한 데에 투자 못 하게 되고… 이북이 연간 GNP 160억 달러 가운데 4분의 1을 군사비에 투입하고 있으니 국민 생활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식생활이 안 되어서 옥수수죽을 먹고 있어요. 우리가 경제를 발전시키면서 국방비로 6% 정도를 쓰면 총액이 곧 이북을 따라잡게 됩니다. 우리 경제력이 7배 이상 되면 싸움이 안 돼요. 서독이 동독의 10여 배 되는데 서독은 군사비에 193억 달러를 씁니다. 북은 올림픽 방해 위해 테러할 거요 ▶대통령: 우리가 올림픽을 하면 자동적으로 16일간 텔레비전을 돌려서 전 세계 40억 인구가 보게 됩니다. 그 선전비를 돈으로 따지면 얼마가 되겠어요. 그게 바로 우리 국력이고 경제력이고 우리 제품에 대한 보장이 됩니다.
그렇게 밀고가면 북한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金日成·金正日 체제가 무너집니다. 그걸 북한이 잘 알 겁니다. 자기네 체제를 유지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기로입니다.
金正日이가 세습을 하려면 한국이 86·88을 못 하게 해야 하고, 그러려면 버마 사건 식으로 게릴라를 집어넣는다든지 가만 안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미국과도 협조해서 군경이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대통령이 스스로 자리를 내놓고 물러가는 것을 한번도 못 한 나라 아닙니까. 그래서 갈등과 불신도 있습니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두고 권력을 잡으면 내놓기가 힘들어요.
내가 해보니 그렇습니다. 나한테도 88올림픽이나 마치고 가야지 그냥 가면 어떻게 하느냐 하는 미국 상원 의원, 우리 야당 의원도 있었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모든 정력을 쏟고 전쟁과 빈곤에서 탈피해서 우리 국민이 행복하게 살고 괄세 안 받는 위치로 올리는 게 내 소망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내가 헌법을 준수해서 헌법대로 권력을 넘기고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는 게 민주주의 전통 수립의 첫걸음입니다.
나보고 군인 출신이다 뭐다 하는데 나도 나름대로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해요. 내가 집권한 후 학생들이 시끄러워도 치안을 경찰에 의해서 유지해 왔습니다. 군대를 동원해서 한 일이 없어요. 모든 문제를 힘이 아니고 순리로 하려고 무척 애를 써 왔습니다. 종교인이 정치인 앞잡이 노릇을 해서야 ▶대통령: 정치인들이 안보와 경제도 잘 모르면서 정권적 차원에서 자신이 꼭 해야겠다고 하면 나라 망치는 겁니다. 권력에 미쳤다고 할까, 누구를 이용하느냐 하면 학생들을 이용하고 있어요.
왜 남의 집 귀한 자식을 선동해서 희생시킵니까. 정치란 권력을 잡으려고 마누라도 판다고는 하지만… 그리고 종교인을 이용하는데 종교란 성직자로서 교회에서 하나님 말씀을 존중하고 전파하는 것이지, 사회적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할 것은 정치인이나 사회 전문가에 맡겨야 합니다.
자기네가 정치 활동, 사회 활동을 하면 스스로 성직의 영역을 축소시키는 것입니다. 진실한 성직자는 그런 거 할 시간이 없을 겁니다. 한눈 팔 여지가 없지 않겠습니까.
순수한 신도들의 이름을 도용해서 모든 신도의 이름으로 자기 정치 노선에 맞춘다든지 하면 종교 분야에는 뜻이 없고 정치에 뜻있는 사이비 성직자라고 할까, 정치인 앞잡이라고나 할까요.
나는 중요한 직위에 있을 때는 특정한 종교는 안 가지기로 하고 있지만 우리 집안도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교회의 참된 지도자들이 교파를 초월해서 힘을 합쳐서 국민과 신도들을 올바로 인도해주시면 좋겠고 내가 처음으로 정권을 내놓고 나가려고 하는데 기도해 주셔서 힘이 되어주시면 좋겠습니다.
▶金知吉 회장: 각하께서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를 위해 애쓰시는 것 잘 압니다. 개헌은 1989년에 가서 논의하자고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바라는 것은 대통령 임기 중에 여건을 조성해서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는 게 순서가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1989년에 가서 논의한다는 것은 석연치 않습니다. 임기 중에 절차를 밟아서 후임자에게 넘기려면 각하께서 임기 전에 개헌하는 것이 순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대통령: 내가 李敏雨 총재를 불러서 정당 차원의 개헌 운동은 인정한다, 절대 혼란을 안 된다고 했어요. 개헌을 하면 86 아시안게임이고 뭐고 안 됩니다. 조용히 하면 못 할 것도 없지요. 민정당은 기술이 없어 폭력도 못 일으켜요.
국민 소득이 60달러일 때 정치한 사람들이 지금도 같은 방법을 쓰려고 하는 게 문제예요. 나는 88년에 그만두기 때문에 89년에 헌법 바꾼다는 소리는 내가 할 수 없어요.
80년 상황을 보세요. 나라가 망한다고 했었지 않아요. 그게 수습이 되어서 안정이 되니 모두가 잊어버립니다.
직선이든 간선이든 내가 국민에 약속한 것은 평화적 정부 이양을 한다는 것이었으니 그렇게 하고, 86·88 대사를 치루고 그때 개헌하자고 하면 해야지요.
나는 대통령으로서 헌법 수호를 선서한 사람입니다. 7년 가서 또 헌법을 바꾸면 나라가 안 돼요. 李敏雨 총재한테 내가 그랬습니다. 직선제 개헌을 그렇게 간단히 할 수 있느냐고. 한두 달 연구해서 헌법을 고치면 나라 망한다고. 국가 행사가 없으면 바꾸자, 헌법에 손대게 되면 바꿀 게 많다, 대통령 선출 방식뿐만 아니라 인구도 늘고 했으니 전 조항을 손대야 한다고 했습니다.
국가 대사를 앞두고 내가 재임하는 동안에 개헌을 하면 내가 나쁜 사람 되는 것 아닙니까. 꼭 하려면 내가 사임한 다음에 해야지. 어떤 사람은 직선제를 하면 민정당이 이길 자신이 없어서 그런 것 아니냐, 임기 중에 개헌을 해놓고 나가라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조리에 안 맞는 얘기입니다.
국회에서 밤새워 민정당, 신민당이 헌법을 가지고 토론했는데 이론적으로 야당이 손들었어요. 그래서 李敏雨 총재가 선수를 바꾸자고 했어요. 물에서 건져 놓으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해
▶대통령: 우리 나라의 큰 문제입니다만 정치하는데 무엇을 하면 유명해지느냐, 법 어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검찰에서 조사받으면 그 사람 이름이 알려져요. 돈 안 들고 선거 운동 되는 거지요. 이런 의식을 가지고는 민주주의가 안 됩니다. 내가 88년에 가서 한번 더 해야겠다, 눈물 줄줄 흘리면서 한번 더 기회를 달라고 하면 국민들이 정이 많아서 동정도 하고 또 정부가 힘이 있으니 불법이라도 밀어 부치면 알 수 없습니다.
저 사람들이 내놔라 하더니 내가 하는 걸 보니 틀림없이 나가려고 하거든요. 물에 빠진 사람 구해놓으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더니. 내가 처음부터 이 시점까지 그때 가봐야 알겠다고 만 했다면 지금쯤에는 그냥 나가기만 해달라고 했을 겁니다.
나는 너무 순진하니까 상대방을 너무 믿었어요. 그러나 나는 양심대로만 할 겁니다. 정치인은 혼란이 생겨야 수지가 맞지만 혼란이 생겨 손해 보는 것은 국가와 국민입니다.
작년에 이런 예가 있었어요. 신한당이 나와서 정치가 좀 시끄럽게 되니까 大宇가 미국 은행에서 돈을 꾸어오는데 그 쪽에서 이자를 2% 더 내라고 나왔어요.
나라가 불안해지면 가난한 사람은 굶어 죽습니다. 돈 있는 사람, 정치하는 사람이 굶어 죽습니까? 우리 나라는 가장 무서운 적이 부안 요인입니다. 대통령 직속으로 헌법연구위원회를 만들 겁니다. 현행 헌법에서 정말 나쁜 게 무엇인지, 전반적으로 검토할 겁니다. 완벽한 헌법으로 고치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내가 처음부터 대통령이 되려고 했다면 현행 헌법을 다르게 만들었을지 몰라요. 나는 대통령 되기 보름 전까지만 해도 그런 생각을 안 했던 사람입니다.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건 경제입니다 ▶대통령: 대통령이 된 후 청와대에 와서도 송구스러워 의자에도 안 앉고 소파에서 일을 했습니다. 경제가 제일 어려웠습니다. 나라 경제가 얼마 못 갈 것 같았어요. 지금도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게 경제입니다.
야당 떠드는 것은 내가 까딱하지 않습니다. 경제는 항우 장사, 경제학 박사가 와도 안 돼요. 한 쪽에 구멍이 나면 걷잡을 수가 없어요. 알젠틴(아르헨티나)에 박사가 없어서 경제가 저 모양입니까. 알젠틴에서는 수레에 돈을 싣고 간다고 NHK가 보도했대요.
우리 나라 도매 물가가 마이너스로 떨어진 것은 모든 외국인도 신비하다고 합니다. 물가 안정이 되어서 경제가 살아났어요. 3저호기(三低好機)에 활동 저력을 가졌습니다. 지금 인플레가 40% 된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물가가 내려가 있으니 우리 물건이 일본 시장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에 비해 기술이 너무 뒤떨어져 있습니다. 1981년부터 기술에 무지무지한 정력을 투입했는데 요새는 국산도 일본과 경쟁할 만한 게 나옵니다. 5년간 이렇게 밀고 가면 웬만한 것은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봅니다.
국제 수지가 금년부터는 흑자가 날 겁니다. 외채를 갚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일본이나 미국이 윌 경제를 더 잘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미국이 재정 적자가 2200억 달러, 국제 수지 적자가 1500억 달러입니다. 그래서 미국이 저 난리지요. 우리가 잘 되어야 합니다.
▶兪虎濬 회장: 제가 민정당 盧대표께 말한 일이 있습니다. 경제도 잘하고 스포츠도 잘하는데 잘못하는 게 정치라고. 뉴스 시간만 되면 초조해진다, 정치는 국민에 희망을 주고 국민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것인데 뭔가 잘못된 거 아니냐,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도록 해달라고 했습니다.
오늘 저녁 시간 많이 갔는데 구라파 갔다 오신 후 정치의 밝은 전망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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