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구려 최후의 맹장 연개소문
얼마 전 드라마로도 방영되었던 연개소문, 역적과 충신이라는 두 극단적인 평가 사이에서
오로지 단 하나의 공통된 평가는 그가 뼛속 깊은 무골이었다는 점이다.
고당전쟁 당시, 중국에서 가장 강한 장수들이었다던 방효태와 그의 열 셋 아들들이 고구려로 쳐들어왔을 때,
쉰이 넘은 고령의 나이로 날려나가 열 셋의 아들들 중 세 명을 담숨에 베어버렸다.
비술과 창술은 그야말로 신기라 불렸고 당대의 사학자들은 한결 같이
'연개소문의 무위는 중원에서도 따를 자가 없다'라 극찬했다.
2. 고려의 소드마스터 척준경
고려 말의 장수, 역사서에는 반역자로 이름이 올라있는데, 이 사람이 세운 공은 가히 기적이라 할 만 하다.
5만의 여진족 대군사이로 종횡무진 뛰어다니면서 포로가 된 장군이나 인질들을 구한 것이 수차례,
한 번은 성벽을 타고 넘어가 홀로 성을 점령한 적도 있었다. 이후 이자겸의 난에 동참했다가
고려 임금이 자신의 편이 되면, 모든 지위를 넘기겠다는 말에 혹해서 이자겸을 귀향보내고,
권력쟁탈에 휘말려 귀향가 죽었다. 수 만의 군대를 말 한 필과 칼 한자루로 뛰어드는 것은
그야말로 비장. 삼국지에서 여포를 이르러 인중여포마중적토라 한 것이 무색할 만하다.
3. 조선의 태조, 이성계
역사서에 금칠을 할 만큼 조선대에 이성계에 대한 평가는 극호평이다.
고려 말, 명문 귀족 출신에 활솜씨가 귀신을 잡을 만하다라는 평을 받았으며,
사냥터에서 활을 쏘는 것 만으로도 임금과 신하들을 겁에 질리게 만들었다.
그의 활은 사슴 허벅다리 힘줄을 엮은 국궁인데, 당시 그 활을 당기기만 하는 것도 극소수 였다고,
왜구와 북방족은 이 이름만 들어도 도망칠 정도로 무예와 지략이 뛰어났다.
조선 초 태조와 이후 임금들의 입김이 닿았던 것을 감안하더라도 연개소문에 뒤지지 않는다.
4. 근육 없는 헐크, 김덕령
조선 초, 임진왜란 당시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곽재우, 사명대사 등 이름 높은 의병들 중에서도
가장 큰 전공을 떨친 것이 바로 김덕령. 조선의 무관이었으나, 외모는 학자를 연상시킬 정도로
빈약해 보였으나,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는 괴력을 소유했다고 한다.
이 모습을 본 많은 이들이 자진해서 김덕령의 아래로 모여들었다.
5. 가상? 실재? 김형언 오도류
조선 중기, 숙종 임금이 일본 정벌을 기획하였으나 청나라에 의해 무산되었다는 기록 '일본여도'에 등장하는 위인,
일본에 상륙하여 승전보를 기록하던 중 500여 명의 조선군이 왜군에게 포위당했다.
이 때 다섯 자루 검을 이어 붙인 김형언이 김형언 오도류라는 검술로 날이 저물도록
5만 여명의 왜군 사이에서 분투, 천 오백 명을 죽였다.
이 위인에 대해서는 사실무근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그가 일본열도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무사 유키오를 죽였으며,
이 때문에 일본에서 김형언이라는 이름은 공포의 대명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는 만큼
그가 실존인물인지 가상의 인물인지는 추측하기 어렵다.
위 5인은 그야말로 소설에나 등장할 법한 위인들이다. 판타지나 무협에서 날아다니며,
무공을 쓰는 주인공들과 동급이라 할 만한 사람들이다. 게다가 현존했던 인물들이니 더 말할 것도 없다.
그 중에서는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척미네이터라 불리는 척준경은 그야말로 소드마스터.
드세기로 유명한 5만의 여진족 사이에서 인질을 구출해오려면 얼마나 많은 이들을 베어넘겨야 가능할까.
아마 인중여포가 아니라 인중준경 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다.
물론 이 외에도 홍의장군이라 불렸던 곽재우나, 조자룡에 버금가는 창술의 대가라 불렸던 김시민,
천하장사라 불렸던 대한제국 말의 신돌석, 고려의 대들보였던 최영, 열 네살에 멧돼지를 때려잡은 이징옥,
여진을 복속시킨 고려의 명장 유금필, 소금팔이에서 고려 최고의 장수로 성장한 장사 이의민,
이의민의 라이벌이자 고려의 용장 두경승, 이성계를 능가하는 궁수 주몽, 문무지략에 뛰어났던 백제왕 견훤,
호랑이 꼬리를 잡고 빙빙 돌렸다던 김알천, 해신이라 추앙받는 충무공 이순신 등 수 많은 용장, 전략가 등이 우리나라에 있었으나,
위의 5인이 무예로써는 그야말로 먼치킨이라 보이므로 위 5인만 소개해 올렸다.
창고자료. 일본여도, 네이버 사전, 카페 삼국지 도원결의 게시물, 일부 지식in
1. 연개소문(고구려) - 당나라에 방효태와 그의 13 아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중국 전체에서 가장 센 장수들이였다고 한다.
당나라가 방효태와 그의 13 아들을 내세워 쳐들어 올 때, 연개소문은 나이가 50에 가까운 백전 노장이었는데
창질 몇번으로 그의 13 아들 중 3명을 단숨에 베어버렸다고 함. 단검 던지기와 창술은 신기에 가깝다고 했을 정도.
당시 중국역사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연개소문의 무력과 평판에 대해서 그를 이길자는 중원에는 없을 정도라고 했음.
2. 금강야차 이의민(고려) - 평민 소금장수 아들로 태어나 젊은 시절 하도 그의 힘이 대단하다고
소문이 자자하여 당시 지역의 수비대장 정도로 되는 사람이 이의민의 힘을 시험했다 함.
어찌나 그의 힘이 대단하던지 모든 주변의 장수가 덜덜...
결국 평민의 출신으론 드물게(평민도 평민 나름이지 소금장수면 일자무식 상평민에 해당) 무관으로 선출된 인물.
3. 두경승(고려) - 고려시대 금강야차이자 라이벌인 이의민과 함께 최고의 힘과 무술을 지닌 인물.
한 일화로 두경승의 개인방(수련과 책을 보는 곳이겠죠)에 있는 사방의 벽에는
구멍이 뚫린 주먹자국이 있었다고 한다.
4. 척준경(고려) - 고려의 용맹한 장수.
여진족이 쳐들어왔을 때 매우 많은 수의 적군이 몰려오자 전부 gg치고 도망가려 할 때
홀로 결사대(최고 잘싸운놈들만 추린 부대) 10명을 이끌고 대군이 있는 여진족 진영에 뛰어들어
적군 수백명을 배자 여진족이 감히 성앞에 오지 못하였다고 한다.
말타고 칼로 싸움을 하는 것에선 당시대에 당할자가 없었다고 한다.
5. 태조 이성계(고려 말) - 명문 귀족 출신치곤 엄청난 용력을 자랑했던 이성계
한 예로 그가 8도의 각 귀족들과 왕들이 모여있던 사냥터에서 활을 쏘자 주변에 있던 신하,
심지어 그의 아들까지도 덜덜 떨었다고 함.
이성계가 사용했던 활은 몽고 친위대가 사용했던 활과 같은 형태로써 사슴의 허벅다리 힘줄로 엮은 국궁이라 함.
당시 그 활을 당길 수 있는 장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이성계가 그 중 한명이었음.
연개소문과 비교해도 결코 손색이 없는 장수라고 본다.
6. 무등산 사나이 의병 김덕령(조선) - 임진왜란 당시 조선 무관이였던 김덕령은
일본의 임진왜란으로 인해 의병모집의 필요성을 느기고 병의 사기를 높히고자
직접 산에서 호랑이를 맨손으로 잡아왔다고 한다.
당시 조선시대에 그의 힘을 따를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일제시대 의병장 신돌석 힘 또한 대단했다고 함.
7. 오도류 검객 김형언(조선) - 처음에는 승전했으나 차차 수적 불리로 500여명남짓한 군사로
5만의 군사에게 포위당해 싸운다. 여기서 김형언 오도류라는 검술을 보인다.
오도류...다섯 자루의 검을 두자루씩 손잡이 부분 끝마디로 이어 그 중 오른쪽 2개의 검을 이은
마디 중간에 1개의 검을 붙어서 잡아서 쓰는 검술이다.
여기서 김형언은 화려한 검술을 보이며 혼자서 날이 저물때까지 5만의 군사중 1500명을 혼자서 죽였다고 한다.
그의 검술은 당시 일본 최고의 무사라고 불리는 유키오라는 무사를 죽일만큼 일본에서
그의 이름만 들어도 웬만한 무사들은 벌벌 떨었다고 한다.
출처:http://blog.paran.com/meisternieun/380920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