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라는 볕
http://cafe.daum.net/bitgeul < 호우는 빛글에서 선연재 됩니다.
(새옴,꽃처럼,먹 물,이유주,민영,김나린)
[원래,기별…]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일단 먹자.]
[어찌… 주서나리를 돕지않고 이리 궁 밖으로 시찰을 나오는 것입니까?]
[…]
[아니그렇습니까? 기별지의 내용은 전하께서 내리시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기별지의 내용은 전하께서 내리시는 것이지.]
주석이 던진 속 모를 답에 은아가 조심스레 되물었다.
[혹 기별청을 통해 민심을 살피고자 하심입니까?]
[그것이 한낱 우리에게 맡길 사명일성싶더냐. 그는 전하의 어사만으로도 충분할테지.]
[그것은 그렇지요.]
[이같은 시찰은 도성에 나도는 소문의 근원을 찾아 벽서를 착출해내기 위함이다.]
[도성에 나도는 소문이라하면…]
말끝을 흐리는 은아에 그가 수저를 들며 마루 한 쪽에 걸터앉아 떠들어대는 사람들을 턱으로 가리켰다.
주막의 주모,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를 신명나는 이야기마냥 듣고 있는 사내 몇과 여인네들이었다.개중에는 손가락을 빨며 엄마의 무릎에 앉아 동그란 눈알을 굴리는 계집아이도 보였다. 그 아이가 졸린 눈을 비벼대며 칭얼거리는 탓에 마침 말이 끊어진 상황이었다. 재미난 구경이라도 하는 듯 하나같이 들뜬 표정들이었다.허나 그들과는 달리 정씨라 부리는 주모의 표정은 사뭇 진지해보였다.
[이번엔 오늘 자시(子時:자정)에 벽보가 붙을 것이오.]
[오늘 자시? 이번엔 참말로 늦은 시간이구만. 아니 근데 자넨 이런 소식을 어디에서 듣는감. 그러지말고 나도 좀 알려주이. 내 그와 관련하여사례는 톡톡히 함세.]
장씨가 말 없이 솥뚜껑을 열어 끓는 국을 여러번 저었다. 볼멘소릴하며 따로 나서서 말 할 필요가 없었다.그 소식에 연명하는 이들이 그마저도 끊길까 두려워 앞장 서 쌍지팡이를 지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당치도 않는 소리 말어.그거슨 나라님이 와도 안 될 말이지.]
[괜히 떼 쓸 생각일랑 말어. 우리같은 치들은 그저 주는 거 잘~받아 먹는 걸로 배부르면 그것으로 그만이여.]
[아니, 근데 이번에도 참으로 믿을만한 소식인가?자시에 붙을거란말 말이여.]
[정씨가 맞춘 것이 한 두번이여! 그것이야 말로 쓸데없는 물음이제.]
주모를 두둔하며 던진 볼멘 소리에 사내가 멋쩍게 웃었다.
[그것이 아니라, 나리께서 조보를 먼저 구해오는 종놈에게 쌀 한가마니를 주겠다 그리 약조하여서 내가 확인 차 물은거이.허허.]
[쌀을 한가마니나?]
엄마어마한 조건에 여인이고 사내이고 할 것 없이 모두의 눈을 둥그렇게 뜨고는 바짝 들어서며 귀를 쫑긋였다.
[이번에 도련님이 대과를 준비하잖여.]
[아아. 그랬구만, 허긴 반가마니가 아깝기나 하겄소.]
[그럼! 한가마니로도 어림도 없지.]
[그래도 성님은 좋겄서. 자시라니까 잊지나 마소.]
그들이 말을 끝마칠즈음 은아가 식은 국밥으로 시선을 떨궜다. 주석은 이미 반이 넘게 먹어가고 있었다.
[들으셨습니까?]
[이리 가까운데 안 들릴 리 있겠느냐.]
[분명 자시(子時)라 하였지요.]
[그래,관청에 들어가면 이를 기별군사들에게 알리거라.]
[예.그런데.어찌 장씨를 관아에 발고하지 않으십니까?그렇지 않습니까.그 소식이 들어 맡는 것을 보면 분명 줄이 닿는 곳이 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그러지 않았겠느냐?추포하여 전하께서 직접 심문하였으나 그 답을 끝내 내주지 않은 자이다.하여 당분간은 소식통으로저리 두고보기로 하였다. 하여 오늘도 감찰차 이 곳에 들린 것이다.]
아아-.그의 일목요연한 설명에 고개를 두어번 끄덕였다.주모 장씨.기억해 둘 필요가 있는 주요인물이었다. 주모장씨.
[그런데 넌 어찌 숟가락을 들지 않는게냐.]
주석이 골똘히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는 은아앞으로 어서 먹으라는 듯 장을 밀어주었다. 먹지 못한다 말하기에 무수리가 가릴 것이 아니었다.무수리가 국밥을 먹지못한다 이만큼 우스운일도, 이만큼 의심스러운 일도 없을 것이다.굳이사서 의심을 살 필요는 없었다.
[아,예 안 그래도 지금 딱 먹으려던 참입니다.]
[그래 저잣거리에도 들러야 하니 부지런히 먹거라.]
도저히 그 장만은 풀 용기가 나지 않아 이를 못 본척 냉큼 고기 몇 가닥을 수저에 얹었다. 어찌 잘하여 이것을 수저에서 떨굴까 한참을 고민하였지만 여지 없는 주석의 시선은 자신에게서 떨어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야속하여라. 어젠 그리 말 수도 적던 양반이 이것이 무어라고 계속 쳐다보는 것인지. 벌어진 입술사이로 절로 한숨이 세어나왔다. 결국 두 눈을 꾸욱 감은 은아의 입으로 수저가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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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욱-.하아.]
[못 먹는다 말을 할 것이지.]
[하아. 아닙니다.조금만 있으면 나아…후우. 질 것입니다.]
한참을 토악질을 한 탓에 진을 모두 쏟아 낸 은아가 연신 고개를 저었다. 미덥지 못하다는 듯한 주석의 표정에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며 나무기둥을 붙들고 무릎에 힘을 주어 몸을 추켜세우려하였지만 팔이 힘 없이 미끄러저버렸다. 이미 입궐하려하였던 시간을 한참 넘긴 후였다. 이리 될 것이었으면 솔직히 못먹는다 그리 말할 것을 뒤늦게 후회하는 은아였다.
[하아. 소녀때문에 이리 지체되어 어찌합니까.]
[궐로 오는 여정이 고되었던 모양이구나.]
[소녀 이젠 정말로 괜찮사옵니다…]
[정녕 의원에게 보이지 않아도 되겠느냐.]
무뚝뚝함이 평생의 것이었을 주석의 음성은 그리 다정하진 않았으나, 그 순간 겹쳐지는 누군가의 다정함에 은아가 작게 미소지었다.
휘도였다. 마음속으로 그 이름을 잠시 꺼내었을뿐인데 분명 이전까진 팔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는데 지금은 어쩐일에선가 버틸 힘이,아니 버티고 있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가 의원을 찾던 일. 그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간 주석의 말대로 고되었던 여름날의 일이었다. 석달.짧으면 짧다 할 시간, 자신에겐 지독히도 길었던 그 시간. 고통스럽기만 한 지난 날에도 추억할만한 기억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그리고 원인모를 그리움에 뜻없이 구슬퍼졌다. 그것이 휘도와 연관된 기억이라는 것에 깜짝놀라 그대로 가슴에 자갈 몇 개를 던져 생채기를 내게했지만 그새 맘이 바뀌어 그 자갈이 구르도록 심장을 그리움으로 뜨겁게 데우고 있는 은아였다. 오늘만은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은 그것이 힘차게 굴러도, 그리 두고 싶었다.
은아가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많이 나아졌습니다.]
[여전히 안색이 좋지 않은데…]
[정말 괜찮습니다…이만 저잣거리로 가시지요. 많이 지체됐습니다.]
[오늘만 날이 아니니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
[바람을 쏘이면 좀 나을 것도 싶어 그럽니다…]
[몸이 좋지않거든 바로 얘기하거라.]
예, 힘 없이 대답한 채 주석을 따라 힘겹게 걸음을 떼었다.
[기별청은 어찌 오게 된 것이냐.]
몸보다 무거운 물음에 걸음이 갑작스레 가던 길을 멈추었다. 주석이 그런 은아를 돌아다봤다. 혹여 다시 속이 안 좋아져 걸음을 멈춘 것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주석의 시선에 제 속내를 감추려 어색하게 입가를 가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자신을 걱정하는 이를 속이는 것이 탐탁치만은 않았으나 의심을 덜기위해서라면 생각할 시간을 벌어야만했다.
[…어찌 그런 물음을 하십니까.]
[왠지 너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듯 하여 묻는 것이다.]
[무엇이…]
[수사(水賜)가 된 것 말이다.]
수사,무수리를 일컷는 말이었다. 그의 성격에 맞는 조심스러운 말이었고 그러한 부름은 정작 무수리에게는 과분한 것이었다. 그에게서 묻어나오는 배려에 은아가 작게 미소지었다.
[그저 소녀 십이연기의 유(有:다음 세상의 과보를 불러올 업.)라 그리 여기고 있습니다.]
[허… <유가사지론>을 읽은 것이냐.]
억불이 지속되어오고 더는 유학사상이 없으면 국책을 논하지 못하는 때가 당도한 것이 불과 얼마지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것을 이전의 것으로 논하기에 지금이 편리한 때는 아니었다. 주석이 놀란 것은 그때문만은 아니었다.
여인이 아니 무수리인 여인이 십이연기를 논한다는 것은 만의 하나에도 있을 법한 일이 아니었다. 만에하나 글을 아는 무수리가 있다면 모를까.이는 진정 기이한 일이었다.주석이 가던 길을 멈추어서 은아에게 눈길을 쏟았다.역시 무엇인가 달랐다. 콕 찝어 말할 순 없었지만 비범함이 보였다. 제게로 쏟아지는 의심스러운 시선에 당황할 법도 하였지만 은아의 대답은 이전보다 제법 노련해졌다.
[그것이 <유가사지론>입니까…. 소녀 책…책쾌를 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 그저 그 발치에서 쏟아지는 서책 몇 권을 읽었을 뿐입니다.]
[…하여도.]
[…]
[제법이구나.십이연기라.]
[그저 딱 하나 기억나는 것을 꺼내었을 뿐인데 찬이 과하십니다. 혹 나리께서 추후에 찾으시는 서책이 있거든 말씀해주셔요.소녀에게 아직 연이 닿는 곳이 있으니….]
대차게 꺼내어 이어붓인 말을 결국 끝까지 잇지 못하고 흩날리 듯 부스러뜨렸다. 제 스스로 꺼낸 뻔뻔하게 그지 없는 대답에 가슴 속 언저리가 꽉 막히는 기분 탓이었다. 노련함과는 별개의 문제였나보다. 그 때문에 주석의 얼굴을 제대로 보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래,그러마.]
더이상 거짓을 내뱉고 싶지 않음을 알아차린 것일까 다행이도 주석은 궁색하게 늘어놓은 이야기에 죄책감마저 더하게 하진 않았다. 표현하진 않았지만 그는 기꺼이 자신에 대한 것을 묵인하여 주려하는 것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답답하기 그지없던 그의 묵묵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표현하진 않았으나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은아는 앞선 주석을 따라 걸었다.
저잣거리에는 꽤 늦은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발 길이 끊일 것 같지 않았따. 모르긴 몰라도 진시는 되었을 터인데 유별나게 장사치들까지 역시 장사를 파할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이를 의아하게 여긴 주석이 짚신을 파는 치의 좌판 앞에서서 물건을 고르는 척 하며 물었다.
[오늘따라 어찌 이리들 소란인게요.]
[어허-.아직 못들었소?]
[무엇을 말이요.]
[내일 자시에 벽서가 나타날 것이란 이야기 말이오. 벌써 그 소식이 자안에 파다한데, 이쪽 사람이 아닌가 보구먼.]
장사치의 훑는 시선에 주석이 들고있던 짚신을 내려놓았다.
[그것 때문에 이 소란이란 말이오?]
[아닌 것이 맞구먼. 자시에 벽서가 나타나면 관군이다 뭐다 죄다 쑥대밭이 될 것이 분명하니 남은 것을 죄다 팔고 좌판접으려는 것 아니겄소. 괜히 여느 때처럼 좌판을 그대로 깔아두었다간 박살이 날게 뻔하니. 다들 저리 마음이 급한건요.]
[그래서 사람들도…]
듣기만하던 은아의 작은 중얼거림에 장사치가 그 말을 반토막내며 나섰다.
[벽서가 나타나는 다음 날은 관군이 판치는 날일 것이 뻔하니 미리미리 준비들 하는 것이지 않소.괜히 내일 같은 날 잘못 걸리면 관아에 잡혀가 고초를 치룰 수도 있으니 조심들 하는것이지.]
[허면 상인들은 이를 어찌 여기고 있소? ]
주석에 범상치않은 물음에 장사치의 눈에 한 웅큼에 의심이 뿌려졌다.
[어찌 그것을 물으시오.]
대답이 이전에 대하던 것과 달리 제법 퉁명스러웠다. 이를 간파한 주석이 일부러 사람좋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내 관아 사람은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오.]
[아님 되었고.]
흠. 헛기침을 한 장사치가 짚신을 정리하는 척하며 답했다.
[뭐 딱히 길조라 할 것이 무엇이겠소. 그나마 저잣거리가 돌아가는 것이 이전보다 나으니 대부분 호사(好事)라 여기는 듯 허이. 충분이 답이 되었소?]
[덕분에.감사하오.]
[물건을 사는 이들은 없고 죄다 벽서의 행방을 묻는 이들 뿐이니, 내 자리를 옮기든가 해야지 원….]
[잠깐-]
주석이 가던 길을 되짚어 좌판 앞으로 가 섰다.
[혹 벽서에 대해 또 묻는 이가 있었소?]
[오늘만해도 벌써 댁처럼 물은 이가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세 번째요. 허니 댁도 괜히 사나운 날 이것저것 묻고다녀 관아에 발고되지말고 이만 돌아들가시오.]
주석이 떫떠름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그도 그럴 것이 장사치의 말대로라면 발고 될 것이 염려되어 방금 자신이 던진 것 같은 질문을 할 리가 없었다. 자신 역시 이러한 질문을 던질 수 있었던 것은 주상이라는 믿는 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헌데 자신과 같은 질문을 한 이가 있다는 것은 어쩌면 이를 사명으로 여기는 이가 더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것이 반대세력이고, 그 세력들이 움직이려 하는 것 일수도 있었다. 확인이 필요한 일이었다.
[궁까지 가는 길을 잊진 않았느냐?]
이에 여인을 동행할 수는 없었다.
[예.어찌 물으시옵니까…]
[먼저 입궐을 하거라. 내 볼 일을 보고 추후에 입궐토록 하겠다.]
[이 시간에 말입니까?]
[내 이를 깜빡하였다.]
[그게 …]
무어라 말하려던 은아가 급해보이는 몸짓에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하겠사옵니다.]
[사잇 길을 통하지 말고 곧장 큰 길을 통해 가거라.그 길은 종종 걸인배들이 출현하니.]
[예. 늦으셨다하지 않으셨습니까. 얼른 가보셔요.]
말을 그렇게 했다만 주석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걸음을 달리하자 혼자 남겨진 은아는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휘영청 달이 제 빛을 다하고는 있었으나 초행길의 도성은 결코 만만치 않은 곳이었다. 단 한번 지나온 길. 그는 분명 큰 길이라 하였지만 어디가 큰 길이고 어디가 사잇길인지 은아로써는 도무지 알 턱이 없었다.
그리 한 자리에서 머뭇거리는 동안 장사치들도 모두 장사를 접는 탓에 작던 호롱불마저 그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젠 정말 달빛 그 하나 뿐이었다. 길을 물으려 가는 길을 붙들고자 하였지만 모두 은아의 가슴에 걸린 패를 보곤 그대로 외면해버렸다. 이를 알리 없는 은아는 발을 동동구르며 안절부절하였다.
[어찌 그런 표정인게냐.]
사내의 부름에 은아가 뒤를 돌아다 보았다.
[…어찌.]
휘도였다. 이 넓디넓은 도성에서 단 한사람 밖에 모르는 본인이 그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도무지 납득이 불가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 사내는 분명 휘도였다. 하마터면 그를 스승이라 칭할 뻔 하였다. 더이상 스승이 아니라 말하였던 그 입으로 그리 부를 뻔 하였다.
[길을 잃은 것인게냐.]
어루는 듯 나즈막한 음성. 여전히 그 누구보다 다정하고 가슴 아파지게 하는 음색. 기쁨인지,슬픔인지 뜻 모를 감정에 휩싸인 은아의 눈시울이 금새 붉어졌다. 휘도가 당황하여 놀란 눈을 떴다.
[어찌,그러는 게냐.]
[…]
[어찌 우는 것이냐. 왜….]
[정녕 천치이십니까?]
[무어…]
무엇이라 얘기도 하기 전이었다. 진정 자신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거늘, 모욕을 당한 것은 정작 자신이거늘 굵은 눈물방울을 뚝뚝 떨구는 통에 휘도는 그 연유도 모른 채 말을 잃어야만했다. 어찌 우는 지 묻고 싶었으나 그 우는 모습이 하도 가여워 쉽사리 그조차 꺼내지 못했다.
[어찌 소녀에게 그리도 다정하신 것이옵니까!]
[…]
[어찌 지금 이리 나타나시어 소녀를 의지할 수 밖에 없게 하십니까!]
[…]
[어찌 소녀더러 짐이 되시라 하십니까! 어찌하여요!]
악을 쓰듯 풀어 낸 말에 은아는 가슴을 들썩이며 큰 숨을 여러번 내뱉었다. 휘도의 얼굴엔 어떠한 표정변화도 없었다. 도리어 이전과 달리 화가 난 듯 보였다.
[고작 그것때문에 그리 우는 것이냐.]
[고작…이라니요…저에겐,저에겐…]
'그것이 전부입니다. 지금으로썬 그것이 제게 전부입니다.'
'고작'…자신이 참아낸 것들을 너무도 쉬이 말하는 사내가 미웠다.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이 두려워 몸서리까지 쳐졌다. 서로가 생각하는 것이 너무도 다름을 깨달음에 이으려던 말문을 결국 놓아버렸다.
달라도 한참 달랐던 것이 문제였다. 그것을 조금이나마 같을거라 여긴 아둔함이 자신을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정작 바보는 제 자신이었다.
[그것이 정녕 전부인 것이냐. 허면 나의 연유를 말해주랴?]
고개를 숙인 은아의 어깨를 휘도가 붙들었다.
[…놓아주셔요.소녀 궁금하지 않습…아.]
냉정히 말하며 손을 가르는 행동에 성난 휘도가 더욱 세게 어깨를 움켜쥐었다. 그 때문에 크게 은아의 크게 몸이 휘청였다. 낯선 행동에 몸을 틀며 빠져나오려 했지만 완강한 힘에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은아가 눈을찡그리며 휘도를 올려봤다.
[내 너를 궁에서부터 뒤 쫓았다.]
[…]
[네 꽁무니를 놓칠 새라 그리 뒤를 뒤를 밟았단 말이다.]
[…]
[네 곁에 있는 사내가 궁금하여 속이 끓는 것을 겨우 참아내었다. ]
[…]
[하여,그가 자릴 비운 때에 비겁하게 네 앞에 우연을 가장 해 나타난 것이다. 네 얼굴을 보려고 말이다. 나더러 천치라 하였느냐?]
붙잡고 있는 강한 힘때문인지, 그의 말때문인지 옴짝달싹 못한 채 그저 입만 뻥긋거렸다.
[맞다. 천치! 제 맘을 헤아리지 못하니 그것이 바로 천치아니더냐. 맘을 헤아릴 수 없으니 이젠 마음 가는대로 할 것이야. 맘이 가는데도 몸도 따를 것이다.네가 이것을 감당할 수나 있겠느냐!]
[…!]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뜨거운 숨이 코언저리에 와 닿았다. 저항할 틈도 없이 국화향이 은아의 옷섬을 그리고 그 가슴 속 깊숙히 파고들었다. 입안을 헤집고 들어온 뜨거운 열기에 놀라 눈을 휘둥그레 뜨며 뒷걸음질쳤다. 허나 허리춤을 단단히 동여매는 휘도의 손길에 다시금 잃었던 길을 되돌아 갈 수밖에 없었다. 사내의 뜨거운 숨을 그대로 받아냈다. 입안의 부드러운 살을 헤집는 뜨거운 혀에 정신이 아득해져왔다. 그만하라며 그의 가슴을 거세게 두드렸지만 그럴 수록 제 얼굴을 감싸는 힘이 강해질 뿐 그 뜨거움을 멈출 수는 조금도 삭힐 수 없었다. 그렇게 거칠기만 하던 입술이 한순간 떼어졌다.
[하아.]
한 바탕 뜨거운 숨을 뱉어내는 것도 잠시 다시금 휘도는 다시금 입술을 탐하여 들었다. 다시 한번 입술을 집요히 간질이며 틈을 찾으려듬에 숨이 턱끝까지 찬 은아가 결국 그 길을 내어주었다. 이전과 다른 부드러운 구흡이었다. 입을 열어준 것을 허락이라 여겼는 지 정성스레 치열하나하나를 훑으며 안 쪽 깊숙히까지 자신으로 가득히 채우 듯 숨을 불어 넣더니 이내 진하게 빨아들였다.
은아는 그저 모든 것이 버거웠다. 가득 메우는 것에 더해 숨을 쉬는 것도, 그를 받아들이는 것도 이 상황마저도 어느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그가 가진 생각이 무엇이든 깨달을 겨를 또한 없었다. 한 번도 상상한 적 없는 낯 뜨거운 구흡에 그저 끓어오르는 숨을,무너지는 몸을 지탱할 수 밖에 없었다.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제게서 빈틈을 찾을 요령인 것 마냥 그리 입안을 유영하던 휘도가 은아의 혀를 살짝 머금고는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은아의 입에서 달뜬 숨이 토하듯 나왔다.
[하아-.하. .]
여전히 휘도에게 허리를 잡힌 은아가 그것을 떼내며 떨어져나갔다.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이 완강하던 손이 맥 없이 떨어졌다. 은아가 두려운 맘을 다잡으며 휘도를 바라다 보았다. 그 자신과 다를 바 없이 역시 뜨거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붉어진 두 눈으로 은아를 마주하자 은아가 다시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휘도의 눈에 언뜻 슬픈 빛이 들었다.
[소녀에게,어찌.이러십니까.]
[그것이면 되겠느냐.]
[…]
두려운 눈빛을 담은 자신을 마주하는 새하얀 눈길에 가슴 깊숙히에 무거운 것이 내려앉았다. 은아는 자신을 두려워하고있었다. 자신에게 뒷걸음질 치려하고 있었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하여도 어쩔수가 없었다.두려워한들 피할 수 없는 것은 휘도도 마찬가지였다. 세어나오는 마음이 커져 이를 막아낼 방책이 없었다. 위험하다 한들 제 손에서 떠나보낼 수 없었다. 이렇게 원하고 있는데, 이렇게 바라고 있는데 그럴 수는 없었다. 비겁하여도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이 살려면 뜨거움을 모두 토해내는 수 밖에 없었다.
한참을 말 없이 서있던 휘도가 제 가슴언저리를 두드렸다.
[내 마음이 널 연모하는 것이라면….]
'허면'
[너는 어찌 답하겠느냐.]
꽉찬 보름달 빛이 사내의 가슴 그 틈새로 그득히 세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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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가 생겨 예상보다 일찍 오게되었습니다 : )~
즐거운 하루 되세요
첫댓글 글 너무나 잘보고갑니다.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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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좋은글입니다. 가슴이 간질간질할만큼 ㅎ 독자님들 단한줄 저처럼 짧게 쓰셔도됩니다. 한줄의 댓글이 작가님에게 많은위로와 빠른업데이트를 가져다줍니다.ㅎ 좋은글 보시고 그냥 지나치지마시고 짧게라도 한줄 댓글 달아요 우리~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05.16 15: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