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상의 정체가 판이든 프리아포스든 이 도상은 디오니소스 제례의 무절제한 충동, 상실된 대상에 대한 시원적인 애도를 나타낸다. 죽음은 필연적으로 사랑의 대상을 영원한 상실로 데려가기 마련이다. 또한 푸생의 그림 [판의 승리]에서 처럼 통상 디오니소스 제례 장면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하는 사티로스 판이라든지 프리아포스 조각상은 남근(팔루스, phallus) 자체로 간주되기도 했을 정도로 생식, 다산과 관련이 있다. 티에폴로의 그림에서 팔이 잘린 이 조각상은 비극적 사건을 바라보는 증인 역할을 한다. 동시에 화면 왼편의 사람들과 함께 건축요소의 일부로 사건을 둘러싸면서, 애도하는 아폴로와 히아신스의 죽음을 감싸안고 있다. 따라서 조각상은 사건에 대한 애도적 의미를 암시하며 아폴로의 동성애적 욕망이 중단되어 버렸다는 점을 나타낸다. 한 줄기 불어온 바람, 그 바람에 의해 방향이 뒤바뀐 원반에 의한 예기치 못한 죽음. 우연적 요소의 개입으로 인해 터무니없이 죽음을 당한 히아신스의 주검은 태양처럼 무한한 사랑의 방사이자 합리적 이성을 상징하는 아폴로가 가진 욕망의 한계점을 의미한다. 아폴로의 욕망이 끝나버린 그 지점에 눈부신 미청년의 주검이 놓여있는 것이다. 마치 아폴로의 사랑이 슬픈 모습으로 현현한 것처럼 부패하지 않는 영원한 예술의 모습을 하고 말이다.
아폴로가 던진 원반에 맞아 숨진 히아신스
신화 속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그리스 신화에서 미청년 히아신스는 스파르타의 왕 디오메데스와 아미클라스 혹은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에서는 마케도니아왕 피에로스와 클리오의 왕자로 등장하는 잘 생긴 젊은이다. 그는 태양신 아폴로와 원반 던지기를 하며 놀았고 토론을 벌이며 계곡과 언덕을 거닐곤 했다. 어느 날 아폴로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원반을 던졌고 히아신스는 원반을 잡으러 달려 나갔다. 그러나 바람이 원반의 방향을 바꿔버렸고, 히아신스는 연인이 던진 원반에 맞아 땅 위에 쓰러져 죽는다. 아폴로는 친구의 상처로부터 흐르는 피를 꽃으로 변형시켰으며 너무나 슬픈 나머지 히아신스의 꽃잎 하나하나에 그리스어로 ‘아아 Alas’하는 탄식을 새겼다고 한다. 유사하지만 조금 차이가 있는 다른 버전의 이야기는 살인의 범인을 명시하고 있다. 아폴로와 마찬가지로 히아신스를 사랑하게 된 서풍 제피로스(Zephyros)가 질투 때문에 원반의 방향을 일부러 바꾸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 이야기를 다룬 그림 속에서 히아신스는 언제나 잠들어 있는 듯 대지에 누워있는 미청년으로 묘사된다(미청년의 잠든 모습이라는 점 때문에 다음에 다시 다루겠지만 오로라와 엔디미온, 리날도와 아르미다와의 유사성도 암시된다). 티에폴로의 그림 속에서 놀란 모습으로 탄식하는 아폴로는 그의 상징물인 월계관을 머리에 쓰고 있다. 그림 속 사이프러스는 옛 서양에서 주로 무덤가에 심던 나무로 [햄릿] 중 ‘오필리아 죽음 장면’에서 언급되는 버드나무, 방부제격인 허브 로즈마리와 함께 죽음과 애도를 나타내는 이미지이다. 히아신스의 머리맡에 위치한 날개 달린 아기는 큐피드이며 큐피드는 아폴로와 히아신스라는 두 인물을 원으로 에워싸듯 감정적으로 결합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림 전경의 라켓과 볼은 원반 던지기를 묘사한 신화의 내용을 화가가 자신의 시대에 유행한 스포츠로 새롭게 번역한 재미난 요소이다. 화가는 고대의 원반 던지기 대신 18세기에 유행했던 테니스를 등장시킨 것이다.
제우스의 술 시중을 드는 미청년 가니메데
히아신스와 함께 또다른 유명한 미청년인 가니메데는 어떠한지 살펴보자. 호메로스에 따르면 올림푸스의 신들은 트로이 왕자 가니메데를 연회 동안 술 시중을 들게하기 위해 올림푸스로 납치했다. 다른 버전의 신화에서는 어떻게 제우스가 이 젊은이와 사랑에 빠져 독수리로 하여금 그를 납치해오는지 언급하고 있다. 때문에 가니메데는 주로 독수리에 낚여 하늘로 오르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또한 가니메데는 술 따르는 시종이기에 고대에 술병으로도 쓰이던 그릇 암포라(amphora)를 들고 등장하기도 한다. 이 도상은 종교적 의미로 해석되기도 했다.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의 중세 기독교적 번안인 [도덕화한 오비디우스 Ovid moralisée]라는 책에서는 가니메데를 복음사가 요한으로, 독수리는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보고 있다. 르네상스 인문학자들은 이 신화를 신에 의해 보다 높은 곳으로 이끌려지는 인간 정신의 상징으로 해석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철학자들인 신플라톤주의자들은 불완전한 사물의 상태에서 벗어나 완벽한 빛 상태인 ‘일자(一者)로의 회귀’를 열망했기 때문이다. |
첫댓글 재미있게 봤습니다. 기정씨 고마워요~~~
저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