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유산 도시 영주
대한민국의 수많은 지자체 중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두 개 이상 보유한 도시는 많지 않다. 오백년 동안 조선 왕조의 중심이었던 서울과 천년 고도 경주를 제외하면 손에 꼽을 정도다. 유교 전통을 잘 보존한 안동에는 하회마을을 비롯해 도산서원과 봉정사를 포함 세 개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있으며, 백제의 수도였던 공주에는 백제 유적과 함께 마곡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안동과 공주 하면 고개를 끄덕일 사람은 많지만, 또 다른 도시 하나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두 개를 보유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편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부석사와 소수서원이 있는 경북 북부의 도시 영주다.
한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이야기 47 - 소수서원 (紹修書院)
1541년(중종 36) 풍기군수(豊基郡守)로 부임한 주세붕(周世鵬)이 이듬해 이곳 출신 유학자인 안향(安珦)을 배향하기 위해 사묘(祠廟)를 설립하였고, 1542년 유생 교육을 겸비한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설립한 것이 소수서원의 시초다. 1544년에는 안축(安軸)과 안보(安輔)를 추가 배향하였다.
1546년(명종 1)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한 안현(安玹)은 서원의 경제적 기반을 확충하고 운영 방책을 보완하는데 주력하였다. 그는 사문입의(斯文立議)를 마련하여 서원의 향사(享祀)에서부터 학전(學田)과 서적의 운용 및 관리, 노비와 원속(院屬)의 관리 등 서원의 운영·유지에 필요한 제반 방책을 마련하였다.
1548년 풍기군수로 부임한 이황(李滉)은 서원을 공인하고 나라에 널리 알리기 위해 조정에 백운동서원에 대한 사액(賜額)과 국가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1550년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 사액되었고, 아울러 국가의 지원도 받게 되었다. 또한 명종(明宗)은 대제학 신광한(申光漢)에게 명하여 『사서오경(四書五經)』과 『성리대전(性理大全)』 등의 서적을 하사하였다.
이러한 조처를 통해 소수서원은 공인된 교육기관으로서, 이후 다른 서원들의 설립과 운영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이는 서원이 단순한 향사와 교육 기능 수행만이 아닌, 지방 사림(士林)들의 정치·사회 활동에 중심 역할을 하는 곳이라는 의미도 포괄하고 있어, 소수서원의 설립과 발전 내용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사액을 받기 이전까지 백운동서원은 풍기 사림들의 호응을 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서원이 풍기에 세워지긴 했으나, 경상도 내 각 군현 유생들에게도 교육 기회가 개방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액을 받고, 국가에서 인정한 사학(私學)의 위치를 굳힘에 따라 풍기의 사림들도 적극적으로 서원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처럼 소수서원이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한 부분을 담당하면서 향촌 사림의 정치적·사회적 기구로 정착되자 이후 전국에 서원들이 설립, 운영되어 조선시대 사학의 중심기관으로 발전하였다.
그 뒤 1633년(인조 11) 주세붕을 추가 배향하였으며, 서원의 지나친 건립과 부패로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에도 훼철(毁撤)되지 않고 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가 되었다.
경내 건물로는 문성공묘(文成公廟)·명륜당(明倫堂)·일신재(日新齋)·직방재(直方齋)·영정각(影幀閣)·전사청(典祀廳)·지락재(至樂齋)·학구재(學求齋)·서장각(書藏閣)·경렴정(景濂亭)과 탁연지(濯硯池)·숙수사지 당간지주(보물, 1963년 지정) 등이 있다. 그 밖에 1963년 국보로 지정된 안향 초상, 1968년 보물로 지정된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 1981년 보물로 지정된 주세붕 초상이 소장되어 있다. 매년 봄과 가을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서장각에는 141종 563 책의 장서가 있다.
서원의 배치는 강학(講學)의 중심인 명륜당이 동향, 배향의 중심 공간인 사당(祠堂)이 남향이며, 기타 전각들은 어떤 중심축을 설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배치된 특이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강당인 명륜당이 자리 잡고 있어 곧바로 명륜당의 남쪽 측면으로 출입할 수 있게 되어있다. 명륜당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기와집으로, 중앙의 대청과 온돌방 및 마루방으로 되어있고, 대청·온돌방·마루방 주위로 툇마루를 둘렀다.
일신재와 직방재는 각각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로서 다른 서원에서는 강당 좌우에 대칭으로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서원에서는 하나의 연속된 채로 건립하여 편액(扁額)을 달아 구분하고 있다.
문성공묘는 명륜당의 서북 측 따로 쌓은 담장 속에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맞배집으로 장대석의 낮은 기단 위에 원형의 주좌(柱座)가 있는 다듬은 초석이 있고, 그 위에 배흘림 두리기둥을 세웠다.
그 밖에 서고·전사청·고직사(庫直舍) 등은 모두 사당 담 밖에 세워져 있다.
부석사와 쌍벽을 이루는 유적, 소수서원에 가다
애초에 영주로 여행을 떠나게 된 건 온전히 부석사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수학여행 당시 경주 불국사를 비롯해 수많은 사찰을 방문했는데, 부석사도 그중 하나였는데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 유적의 중요성에 대해 안내해 주는 선생님도 없었고, 있었다 하더라도 친구들과 놀기 바빴던 내 귀에 지루한 역사 이야기가 들어올 리 만무했다. 다만 돌이 떠 있어서 부석사가 되었다는 담임 선생님의 이야기만 기억 한쪽 모퉁이에 남아있었다.
나이가 들고 국내 여행을 하면서 한국의 산사가 가진 아름다움에 반하게 되면서 부석사에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항에 거주하고 있던 당시, 경주의 유명한 절들을 방문하고 폐사지에 남은 아름다운 석탑을 보면서 한국의 불교 유적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때였다. 이제 견문을 넓혀 포항과 가까운 절들부터 하나씩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대구 팔공산 동화사, 김천 황악산 직지사, 안동 천등산 봉정사와 같이 유명하고 보존이 잘 된 절들을 하나씩 들린 뒤 드디어 영주 소백산 부석사가 눈에 들어왔다.
영주는 포항과 같은 경상북도에 속해있지만 포항에서 가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영주까지 가는 직행버스가 하루 7회 있긴 했지만 완행이라 도착하는 데 3시간이나 걸렸다. 서울에서 영주까지 가는 직행버스가 3시간이 안 걸린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경상북도에 살고 있다고 해도 영주까지 쉽게 이동하는 혜택은 전혀 없다고 볼 수 있다.
우여곡절 끝에 영주에 도착해 부석사를 본 뒤 영주의 다른 유적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영주의 유적이 꽤 넓은 지역에 펼쳐져 있었지만 부석사를 새벽 일찍 들렀기 때문에 하루에 여러 군데를 둘러볼 수 있었다. 부석사를 두 시간 정도 본 뒤 들린 곳이 바로 조선 최초의 사액 서원인 소수서원이었다.
소수서원이 있기 이전에는 지방의 사림들이 서원이라는 특별한 공간 안에서 학문을 연마하며 교류한 것이 아니었다. 퇴계 이황이 명종 재위 시절에 위대한 유학자인 안향을 배향한 공간에 국가 지원을 요청하였고, 백운동 서원이 인정받으면서 서원이 전국 각지로 퍼져 나가게 된 것이다. 백운동 서원은 이후에 소수서원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고 조선 최초의 사액 서원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서원 철폐에서 살아남은 47개의 서원 중 하나가 되었고, 2019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다른 서원과 비교하면 소수서원 내 건물은 상당히 많은 편이다. 소수서원이 있던 자리에는 예부터 숙수사라는 절이 있었으며, 숙수사지 당간지주가 남아있어 그 역사를 전한다. 절이 있던 터라 그런지 서원이 차지하고 있는 영역도 꽤 큰 편이며, 서원의 양식이 자리 잡기 이전이라 건물의 배치 또한 자유로운 편이다. 직방형으로 배치되어 내부로 진입하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전각들로 이루어진 다른 서원과 달리 소수서원은 마치 양반 가옥처럼 건물이 담으로 나뉘어 널찍히 떨어져 있는 편이다. 덕분에 소수서원은 확실히 다른 서원과 다른 느낌을 준다. 최초의 서원이라 자유로운 형식을 갖춘 것이 티가 나는 것이다.
소수서원의 핵심건물은 문성공 안향을 모신 문성공묘다. 고려 시대에 성리학을 들여온 위대한 학자 안향은 조선 유학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안향 초상이 국보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로 안향은 성리학에 있어 대표적인 인물이며, 조선 건국의 기초인 유학의 시작이자 서원의 시작이 되었다.
하지만 문성공묘는 생각보다 단출한 모습이다. 주심포 양식이며 맞배지붕을 갖추고 있는 건물은 다포 양식이 주가 아니던 조선 초기의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정공(文貞公) 안축(安軸) · 문경공(文敬公) 안보(安輔) · 문민공(文敏公) 주세붕(周世鵬)의 위패도 안향의 위패와 함께 봉안하고 있다.
문성공묘와 함께 보물로 지정된 건물은 강학당이다. 강학당은 서원의 양대 기능 중 하나인 학문을 강론하던 장소다. 강학당의 정면은 동쪽을 향하고 있으며, 서원 입구에서 바로 강학당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남쪽 기단에 계단을 설치하였다. 내부 대청의 북면에는 명종의 친필인 '소수서원(紹修書院)' 이란 편액이 높이 걸려있다.
소수서원에서 하천을 건너면 선비촌이 나온다. 선비촌은 영주시에서 잊혀가는 한국의 전통 선비 문화를 기리고 계승하기 위해 조성한 테마공원이다. 조선 시대 가옥을 재현한 한옥 건물들 사이를 걷고 있으면 이곳에서 학문을 연마하기 위해 애쓴 사림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선비촌에서 하루를 묵으며 소수서원을 온종일 볼 수도 있다고 하니 더없이 좋은 장소임에는 틀림없다고 할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한국의 서원은 9개나 되며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전부 방문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각 서원이 지닌 특징과 지방 고유의 유교 문화를 느끼기 위해 몇 년에 걸쳐 전부 방문하는 데 성공했다. 먼저 유교 문화의 중심인 경상도 지방의 서원을 다 들리고 난 뒤 다른 충청남도의 돈암서원, 전라북도의 무성서원, 전라남도의 필암서원을 들리는 것으로 서원 탐방을 마무리하였다. 다음에 소개할 서원은 살고 있던 포항에서 가장 가까웠던 서원, 경주 옥산서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