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기쉬운 평신도 신학공부 (새물결운동 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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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어떻게 압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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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은 처음과 나중이시오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주 만물을 역사하시고 주관하시며 계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계신 것을 압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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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 우주의 인과법칙을 보면 살아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에는 반드시 원인과 결과가 있습니다.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이 우주가 생긴 것도 누군가가 창조했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우연히 생겼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연치고는 너무 오묘합니다. 우연이라면 우연임을 증명할 것이 있어야 하는데 무엇으로도 증명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성경에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라고 분명히 가르치고 계십니다. 히브리서 3장 4절에는 ‘집집마다 지은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은이가 하나님이시라.’ 했고, 로마서 1장 20절에서는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주를 보면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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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 자연의 오묘한 법칙과 질서를 보면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주의 모습을 보면 신비하고 오묘하기 그지없습니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여름이 오고, 여름이 지나가면 어김없이 가을이 옵니다. 봄이 되면 새싹이 돋고, 꽃이 피고, 여름이면 열매 맺고, 가을이 되면 열매가 익습니다. 사과나무에서는 사과가 열리지 배가 열리지 않습니다. 이런 자연의 오묘한 현상을 볼 때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찬송가 40장에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 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숲 속이나 험한 골짝에서 지저귀는 새 소리들과 고요하게 흐르는 시냇물은 주님의 솜씨 노래하도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그렇습니다. 오묘한 우주의 질서를 보면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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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셋째, 인간의 도덕성을 통해서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도덕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도덕성을 부여해 주셨습니다. 소위 무신론을 주장하는 분들도 죄짓는 것은 싫어합니다. 또, 죄를 지으면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도덕적 양심을 부여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양심은 곧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이 양심은 선과 악을 구분하게 해 줍니다. 그리고,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게 합니다. 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우리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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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째, 인간의 종교성은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게 합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종교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하나님 자신을 의지하며 살도록 만드셨고, 우리의 마음 속에 종교성을 부여해 주셨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도 위기에 처해 있을 때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도 그들의 마음 속에 하나님을 찾으려는 종교성이 잠재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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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째, 개인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권능과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해 이적을 통해 하나님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나타내어 보여주실 때가 더러 있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도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심으로써 하나님의 권능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오늘날도 놀라운 기도의 능력이 여기저기에서 나타나는 신비로운 모습을 볼 때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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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섯째, 성경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일 점 일 획도 거짓이 없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빼면 남는 것은 겉장뿐입니다. 성경은 여러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에 의해 썼습니다. 시간과 공간이 다른 여러 사람들이 썼어도 신약과 구약을 통해서 볼 때 하나도 어긋남이 없이 연결된 것을 보면 오묘하기 그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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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여러 종교들을 보면 다 착하게 살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모든 종교는 결국 같은 것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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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부터 말하겠습니다 종교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는 기독교, 불교, 이스람교 ,유대교, 유교, 조로아스터교 등 참으로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종교들은 그 특징이 서로 다릅니다. 어떤 종교는 저급하기도 하고, 어떤 종교는 차원이 높은 것도 있습니다. 어떤 종교는 참되고, 어떤 종교는 거짓됩니다. 구원이 있는 종교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종교도 있습니다. 또 자력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종교가 있는가 하면 타력으로 구원을 얻는 종교도 있습니다. 자력 종교는 스스로 도를 닦아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 스스로 구원한다는 종교요, 타력 종교는 신의 힘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믿는 종교입니다.
- 지금 질문은 아마 윤리적인 측면만 보고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 대부분의 종교는 윤리적인 면에서는 거의 비슷합니다. 그러나 종교란 윤리가 아니라 구원입니다. 구원이 없는 종교는 엄밀한 의미에서 철학이나 윤리이지 종교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면에서 기독교는 참 종교요 구원의 종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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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선하게 살면 모두 천국에 가지 않나요? 믿어야만 천국에 간다는 것은 모순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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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기독교인은 착한 행실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착한 행위만을 가지고는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착한 행실은 인격수양이나 도를 닦는 데는 도움이 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책한 행실 그 자체가 구원의 조건은 되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무슨 법으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잇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로마서3장 27,28)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3:20)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라’(엡2:8,9)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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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하나님은 우주창조 전에는 무엇을 하고 계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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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을 인간처럼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는 분으로 생각하고 하신 질문 같군요. 하나님의 창조는 전적으로 무에서 유를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창조 전에는 오직 3위의 하나님만 계셨습니다.(요17:24)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으로(출3:14) 처음 되시고 나중이 되시는 분이시십니다. 우주만물의 근원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창조 전에 무엇을 하고 계셨느냐는 별 의미가 없는 질문입니다. 아마 앞으로 창조하실 죄에 빠진 인간들을 내다보시고 구원의 계획을 세우고 계셨을 지도 모르지요.(벧전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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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성경은 역사가 흐르는 동안 베끼고 또 베끼고 했을 텐데 변경되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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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의 1차 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성령의 영감을 받은 36-40명의 사람들에게 받아쓰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에 의해 쓰여진 것으로 모두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숨결 (호흡), 곧 영적 호흡이 인간에게 작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기록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는 사람을 기계적으로 사용했다는 것이 아니라. 오류 없이 정확한 기록이 되도록 역사하셨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성경의 무오성(無誤性)이라고 합니다. 이 성경의 무오성은 글자 하나 하나가 틀림없다는 것이 아니라 내용 하나 하나가 오류가 없다는 말입니다. 번역한 사람에 따라 또 몇 번 번역을 했느냐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겠으나 원본은 오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 율법의 일점 1획도 반드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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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창세 전에 선택받았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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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예정 속에는 당신의 요구에 응할 사람들을 미리 아시고 구원하시기로 정하신 선택자와 그렇지 못해서 버리기로 정하신 유기자가 있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하신 시기가 창세 전 곧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넓은 의미로는 ‘창세 전의 선택'이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의한 사랑과 은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축복,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 등을 모두 표현한 말로, 인간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보아야 하겠지요.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말씀처럼 누구든지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미리 정하셨다는 뜻도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유기자를 두셨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사랑이 없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죄를 조성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으로 보아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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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연옥이란 무엇을 말하나요. 기독교에서도 연옥을 주장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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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신교는 사람이 죽은 후 가는 곳이 천당이 아니면 지옥이 있을 뿐이라고 하는데, 구교에서는 천국과 지옥의 중간 처소로 연옥설을 주장합니다. 연옥이란 지옥 보내기는 그렇고, 천당 보내기는 부족한 영혼들이 일정 기간 머무르며 연단을 받는 곳으로 교황이나 가족의 기도나 공덕으로 그 기간을 단축할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카톨릭에서의 연옥의 주장은 외경 마카베오 2서 12:43~45에서 근거를 두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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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찬양과 찬송은 어떻게 다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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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송이란 한 마디로 말하면 성도들이 성삼위일체 되신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의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 ①찬양 : 성가대나 합창단에 의해 불리워지는 합창곡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 ②찬송 : 찬송가책에 실려 있는 곡으로 회중들에 의해 불리워지는 것을 말합니다.
- ③송영 : 성가대에 의해 불리워지고, 오르간니스트에 의해 연주되는 것이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고 회중들이 함께, 주로 예배 처음 시작할 때 많이 불리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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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찬양이든 찬송이든 예배 음악이라는 측면에서는 똑같으며, 다만 찬양은 회중들 가운데 대표로 뽑아 보다 높은 수준으로 표현한 것이므로 찬송보다 수준이 높으며, 찬송은 모든 회중이 부르는 것이므로 성가대가 부르는 찬양곡보다 음악적인 측면에서는 조금 낮은 음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굳이 나누어 본 것이요, 넓은 의미에서는 이들을 모두 찬송이라고 불러도 상관없지 않나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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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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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로, 제자들과 몇몇 여자들에게 나타나 보이셨습니다.
- 막달라 마리아에게(요20:11-17), 다른 여인들에게(마28:9-10), 베드로에게(고전15:5), 다른 제자들에게(눅24:36-43)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보고 “저희가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했을 때 예수님께서는“어찌하여 두려워하며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고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누가복음 24장 37~39절)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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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로, 군중들이 목격했습니다.
-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 같은 나에게도 보이셨느니라”(고린도전서15장 6~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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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셋째로, 빈 무덤이 증거합니다.
-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마태복음 28장 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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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째로, 현재 천만 명이 훨씬 넘는 우리나라의 교인들이 증명 합니다.
- 그 많은 교인들이 모두 어리석고 우매하기 때문에 예수의 부활 승천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겠습니까?
- 예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한복음 11장 25절)라 하셨습니다. 또“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 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마가복음 9장 9절)고 하시면서 부활을 예언하셨습니다.
- 과학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일,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기에 부활이 있을 수 있었고,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으셨던 예수의 그 부활을 통해 우리가 다시 살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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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성찬식 때 떡과 포도주는 정말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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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마다 교회마다 견해가 조금씩 다릅니다. 즈빙글리는 기념설(記念說)을 말하고 있는데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에서 근거를 찾고 있습니다. 떡과 포도주는 하나의 상징으로 십자가에 나타난 구속의 은총을 기념하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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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주교에서는 화체설(化體說)을 주장하여 빵과 포두주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한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내 몸이라'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본질적인 변화를 강조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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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그렇다면 성찬에 참석한 사람들은 예수와 꼭 닮은 생활을 해야하지 않는가?
- (2)물체의 변화는 그 속성의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 (3)호기심과 신비주의로 빠질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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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교회에서는 화체설은 성서에 없는 미신적인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에 동참하는 의미다. 죄의 회개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고, 루터는 공재설(共在說)을 주장하여 빵과 포도주는 그대로 있으나 예수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실제로 빵과 포도주에 임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개신교에서는 이 기념설을 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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