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지표시제 이후 달라진 풍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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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업 희망찾기 2009 집중기획 ⑬‘음식점 원산지표시제’ 1년…성과와 과제
구이용 쇠고기에 한정됐던 음식점 원산지표시제가 모든 쇠고기와 쌀로 확대 시행된 지 8일로 1년이 지났다. 쇠고기와 쌀은 지난해 7월8일부터, 돼지고기·닭고기·배추김치는 12월22일부터 원산지표시가 의무화됐다. 그 사이 유명 음식점에서 수입 쇠고기가 줄줄이 퇴출됐고, 판로를 찾지 못한 수입쌀은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 특히 미국산 쇠고기는 굴욕에 가까울 정도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수입 농축산물의 홍수 속에서 국내산 농축산물을 보호하는 수단이자 효율적인 소비촉진 방안으로 부각되는 음식적 원산지표시제는 시행 1년 만에 비교적 성공적으로 정착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음식점 원산지표시제 이후 달라진 풍속도를 알아봤다.
◆쌀=서울 영등포의 한 예식장. 이 예식장내 식당은 20㎏들이 한포대에 국산보다 7,000원가량 싼 중국쌀을 사용하다 1년 전부터 국산쌀을 쓰고 있다. 원산지표시 대상 품목에 쌀이 포함된 직후 식당 한편에 ‘쌀(중국산)’로 표시했다가 고객으로부터 “결혼식 하객들에게 중국쌀을 대접하느냐”는 항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음식점의 쌀 원산지표시제는 육류나 김치에 비해 비교적 빠르게 정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수입쌀을 국산쌀로 속여 팔다 적발된 업소가 지난해 하반기 8곳에서 올 상반기엔 2곳으로 줄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은 물론 지자체까지 대대적인 단속과 홍보에 나서면서 수입쌀을 사용하던 음식점의 상당수가 국산쌀로 돌아섰다는 게 관련업계의 설명이다.
박용상 서울 양곡도매시장 중도매업협회장은 “수입쌀을 구매한 식당에 대해 농관원과 구청 위생과가 일일이 추적 조사하고 있다”며 “1년 전만 해도 예식장·뷔페는 상당수가 수입쌀을 썼지만 지금은 대부분 국산쌀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현상은 수입쌀 공매에도 영향을 미쳤다. aT(농수산물유통공사)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밥쌀용 중국쌀은 전체 수입계획량 4만2,066t 가운데 9.3%인 3,939t만 팔렸다. 미국쌀 역시 1만8,989t 가운데 2,677t(14%)에 그쳤다. aT 관계자는 “지난해의 경우 6월까지 75%가 팔렸다”며 “음식점 원산지표제가 수입쌀 소비를 위축시켰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원산지표시 대상에서 제외된 100㎡(30평) 미만의 영세 식당과 도시락 등의 배달음식은 수입쌀 관리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회사원 김모씨(27)는 6월9일 경기 남양주의 예비군훈련장에서 위탁급식업체가 가져온 점심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슬이 맺히듯 밥은 척척했고 밥알도 평소에 먹던 것보다 길쭉했다. 예비군들 사이에서는 ‘수입쌀을 쓴 것 같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김씨는 배달원에게 “도시락에 원산지표시가 안돼 있다”고 따졌지만 “배달음식은 원산지표시 대상이 아니다. 무슨 쌀을 썼는지는 나도 모르겠다”는 답변만 들었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전국의 음식점 65만곳 중 영업면적이 100㎡ 를 넘는 곳은 13만7,000곳으로 20%에 불과하다. 음식점 10곳 중 8곳은 아무런 표시 없이 수입쌀을 판매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수입쌀은 비교적 규모가 작은 중국집과 김밥집·분식점·고시원 등을 급속히 파고들고 있다.
김동환 안양대 교수는 “지난해 수입쌀을 취급한 음식점의 90%가 원산지표시 대상이 아닌 100㎡ 미만의 영세 식당으로 조사됐다”며 “이는 제도의 실효성이 낮다는 것을 뜻한다”고 지적했다.
◆축산물=정모씨는 지난 주말 가족과 함께 서울 인근의 한 갈비타운을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지난해 3월쯤 1인분에 3만3,000원 주고 사 먹었던 등심가격이 1만9,000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정씨는 주인에게 “원료(고기)를 바꿨느냐”고 물어봤지만 “10여년째 같은 원료를 쓰고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정씨가 메뉴판에 적힌 원산지를 확인해 보니 ‘호주산’으로 표시돼 있었다. 정씨는 이날 지불한 돈이 예상보다 적었음에도 지난해 한우가격을 내고 먹은 고기가 수입산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에 찜찜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대기업 공장단지가 몰려 있는 경기지역의 또 다른 갈비타운. 지난해 봄까지 불야성을 이뤘던 이곳엔 요즘 손님들의 발길이 뜸하다.
원산지표시제 확대로 수입 쇠고기를 한우인 것처럼 팔던 상당수 음식점들이 마지못해 수입국을 표시하자 그동안 한우고기만을 사 먹었다고 내심 기뻐한 소비자들이 행선지를 바꾼 탓이다.
이 갈비타운 인근에 사는 직장인 손모씨는 “어느 때부터인가 직장 동료들과 회식할 때는 일반 음식점 대신 한우전문점에 가거나 아예 국내산 돼지고기 집만 찾게 된다”고 말했다.
음식점 원산지표시제가 시행된 지 1년 만에 나타나고 있는 쇠고기 소비 풍속도다. 그동안 수입 쇠고기를 알게 모르게 한우로 속여 팔던 음식점들이 어쩔 수 없이 원산지표시를 할 수밖에 없게 된데다, 건강을 중시하는 깐깐한 소비자들이 많아지면서 감지되는 변화인 것이다.
이 같은 소비 형태는 수입 쇠고기, 그 중에서도 미국산 쇠고기가 ‘굴욕’에 가까운 수모를 당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일부 음식점들은 미국산 쇠고기 취급을 아예 포기했고, 취급하더라도 호주산으로 속여 판매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가 이처럼 음식점에서 ‘찬밥’ 신세로 전락하다 보니 수입업체들도 부도로 문을 닫거나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올 1월 3,843t이었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량이 5월 1,945t으로 반토막 난 사실 등이 수입업체가 처한 현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돼지고기는 어떨까. 식육 유통 전문가들은 돼지고기를 음식점 원산지표시제의 최대 수혜자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수입 돼지고기는 물론 수입 쇠고기 소비자들이 국내산 돼지고기를 즐겨 찾고 있어서다.
서울 마장동의 식육점 주인 박모씨는 “그동안 수입산과 국내산 돼지고기는 가격 차이가 크지 않았으나 지난해 12월 원산지표시제 도입 이후 점점 커지고 있다”며 “부위별로 차이는 있지만 10%에서 최고 80%까지 벌어진 상태”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난 4월 축산물도매시장에서 경락된 국내산 돼지고기의 지육 평균가격이 1㎏에 5,100원까지 오르는 등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하기도 했다.
물론 수급상황 등이 가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겠지만 음식점 원산지표시제가 가격을 지지한 측면도 빼놓을 수 없다는 게 임남빈 농협 서울축산물공판장 공판부장의 설명이다.
임부장은 “돼지고기는 쇠고기와 달리 둔갑판매에 따른 이득이 상대적으로 적다 보니 마음을 졸여 가며 수입산을 국내산으로 속여 팔기보다는 국내산을 제값 받고 판매하는 분위기가 서서히 정착돼 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닭고기는 원산지표시제가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닭고기는 완전히 끓이거나 튀겨 먹기 때문에 원산지표시 개념이 상대적으로 희박하고, 닭고기 소비량의 30%를 차지하는 배달용 치킨의 경우 원산지 의무표시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배추김치=지난해 12월22일 배추김치 원산지표시제가 시행된 이후 일반 식당에서 중국산 배추김치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똑똑한 소비자들이 국내산과 수입산을 확인한 후 주문을 하기 때문이다.
경기 과천의 족발집 사장인 이모씨는 “메뉴판에 중국산 배추김치라고 적어 놓으면 망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실제 정부과천청사 인근에 위치한 주요 음식점들을 조사한 결과 중국산 배추김치를 사용하고 있는 곳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 같은 현상 때문에 음식점 원산지표시제가 국내산 농산물 소비촉진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가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그러나 김치 수입물량을 살펴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지난해 수입량은 22만1,220t으로 2000년 473t에 비해 468배나 늘었다. 1990년의 수입실적(29t)과 비교하면 무려 7,628배나 급증했다.
100㎡(30평) 이상 식당에서는 중국산 배추김치를 찾아보기 힘든데, 김치 수입량은 해마다 급증하고 있으니 이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올 들어 5월 말까지 배추김치의 원산지를 허위 또는 미표시해 적발된 건수는 46건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원산지표시 대상에서 제외된 100㎡ 이하 소규모 식당들이 수입 김치의 주요 소비처가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원산지표시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는 이유다.
첫댓글 우리것이 좋은것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