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 관한 시모음 4)
꽃에도 마음이 /장진순
꽃에도 마음이 있다면
꽃들도 서로 질투하겠지
장미는 짙은 화장으로
아름다움을 뽐낼 것이고
백합은 은은한 향기로
뼈대 있는 신분임을
과시하겠지
초야에 묻혀 사는
야생화도 은근히
고고함을 드러내려 할 것이고
진달래도, 가시떨기들도
영역을 넓혀가며
동산을 차지하려 할 것이다
꽃이
마음이 있다면 불평도 하겠지
하지만 사람보다야...
꽃의 밀어 /박철원
꽃은
살아 있는 이의
몫이다
피어 있는
너.
생명의 생식기이니
그의 향기
꽃술 속
유혹의 숨결인 듯
꽃은
가진 생 자신의
몫이다
벌 나비 찾아드니
고고하게
피어날 대로 두려오
그리하여
내 세상
꽃 천지가 되리니
길섶에 핀 꽃 /박청규
누구도
관심 있게 보지 않아도
나는
길섶에
홀로 자랐답니다
사계절의 시련을 견디고
살아온 세월들
뒤돌아보면
기나긴 여름철
장마와 강렬한 햇빛
그리고
초가을부터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과
숨 막히도록
거칠게 몰아치던
설한풍
주위의 모두가
외면하고
고통을 주었지만
그때마다
남몰래 힘을 키우고
인내를 배우며
스스로 강하게 자라는
지혜를 배웠기에
이제는
모두가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간밤엔
하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
누르고 덮었지만
나는
헤치고 일어났답니다
혼자 힘으로
그리고
이젠
아름다운 꽃을 피웠답니다.
꽃은 피고 지고 /천상스님(박헌철)
목련 꽃이 피고,
봄이 오는 것을
알아차리고 나니
목련 꽃이 지고,
봄이 가는 것을
알아 버렸네
목련 꽃이 피고 지고,
이내 인생 꽃도
어느덧 지려하네.
꽃 /정연복
- 생일 축시
성공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남보다 뛰어나려고
안달하지 않는다.
자기보다 예쁘다고
질투하지 않고
자기보다 못생긴 꽃이라고
깔보지도 않는다.
세상에서 유명하다고
교만을 떨지 않고
무명(無名)하다고
풀죽지도 않는다.
이 땅에 와서
한철 피었다 질 때까지
그냥 자신의 본래 모습에
만족하고 충실한 뿐
자기 아닌 다른 것이
되려 하지 않는다.
말없이 행복한 꽃!
꽃에게 빗방울 심어주기 /박종영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가 연약하여 부대끼는
빗방울을 붙잡아 함께 흘러내린다
어리고 미약한 방울은 주워 담아 대열에 끼워 넣는다
약한 빗물도 힘을 합하니 더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
그 사이 연잎에 떨어진 빗방울은 흔들리는 잎이 즐거운 듯
영롱한 보석을 만들고 으스댄다
어느 빗방울은 키 작은 풀잎에 걸터앉아 그네를 탄다
저러다가 거친 땅에 떨어지면 한풀에 사라지는 눈물이다
적당한 빗물이 산천에 스며드니
마침내 한 폭 풍경이 노랗게 열린다
과연 으뜸가는 가을의 시작이다
빗방울이 나지막이 땅을 두드려 산야에 묻힌
가을꽃들을 깨운다
일제히 똑같은 빛으로 일어서는 꽃들의 환호
촉촉한 비를 맞으니 향기가 곱다
비를 맞아야 살아나는 향기의 절정을 위해서
가장 행복한 빗방울 하나 꽃의 가슴에 심어준다
발설하면 안 되는 첫 밤의 밀어가 달콤할 것이다
꽃 /조재완
꽃이 향기로운 것은
욕심이 없기 때문
꽃이 아름다운 것은
시샘하지 않기 때문
베풀기 위해
꿀을 품고
나누기 위해
향기를 뿜는다
자주 보면
싫증을 낼까 봐
꽃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꽃잎 /김정윤
하얗게 탈색한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고 있다
몇 해 전 끝내
겨울을 나지 못하고
떠나가신 어머니
곱슬곱슬 유난히
하얀 머리를 흔들며
꽃샘바람이 부는
가파른
삼월의 능선을 넘어
사월 하늘 가득히
돌아왔다
바람은 東에서 西로
西에서 東으로
불던 곳으로 돌아와
다시 불고
솜사탕처럼 부푼
머릿결이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처럼
흩어져 날아간다
하늘 가득히
그리운 어머니의
환영이 되어 훨훨 날아간다.
숨은 꽃 /박진표
내가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건
숨어서 피는
숨은 꽃이 있기 때문 입니다
지치고 힘든 이들 동무가 되어주고
낮은 꽃
작은 꽃
아름답게 서럽게 피어
아침 이슬처럼 순간을 영유하는
서럽고 아프지만 이쁜 꽃이기 때문입니다
자랑하지 않고
뽐내지 않고
낮은 꽃으로
세상을 희망으로 지펴주는
눈물 나도록
가슴 시리도록
서럽게
서럽게
피어나는 꽃이기 때문입니다
꽃향기 /이남일
가까이 바라보는 것만으로
향기는 소리 없이 다가온다.
침묵 속에 귀 기울이면
두근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그 깊은 눈빛만으로
말없는 고백을 들을 수 있다.
누가 알까. 침묵의 향기만으로
꽃은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군가 꽃향기에 끌린다면
그것은 침묵의 고백을 듣는 때
꽃을 찾아 /장선희
너무 예뻐 널 바라보다
향기 따라 슬며시 다가가니
코를 잡아 바짝 들러붙는다.
반가움에 널 두고 갈 수 없어
머물던 그 자리 떠나지 못해
미련이 너무 많았나 보다.
그 자리 마음 담아 놓고
걱정하지 말라 다독이며
잊지 못할 미련을 또 놓아둔다.
매일매일 만나자 조르고 싶지만
가슴에 새긴 그대로 두고
다시 만날 그날을 약속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