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쇠고 곰배령에 노란 복수초를 보러 가기로 한 약속이
하필이면 수 십년만에 폭설이 내린 날 이었다.
빠꾸라는 단어가 없었던 우리 막무가내 무데뽀들도
이제 오십이 넘어서 철딱서니가 조금 들었던지
스노체인을 준비하고 만반의 행장을 차렸다.
선자령 국사성황당과 대관령 옛길을 넘고
조침령으로 우회하여 곰배령으로 들이 닥치기로 하고 출발을 하였다.
야호!
폭설 온다고 차도 없고 좋네~~
횡계 ic 까지 졸라게 밟아됐다.
대관령 구고속도로 입구에 들어서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앞서 가던 관광버스들이 눈 언덕길에서 헛 바퀴질을 하고 있었다.
즉각 회차를 결정하면서 나의 첫 번째 좌절을 맛 봤다.
시간이 너무 이르니 주문진항은 포기하고
동해 용왕신에게 남은 여정 무사무탈을 빌자고 휴휴암으로 차를 돌렸다.
눈은 내리다 멈추고, 멈추다가 다시 지속적으로 내렸다.
동해바다는 눈이 반이고 푸른 물결이 반이었다.
좌절된 답답함이 뻥 뚤리는 것 같다.
포기 하는 것도 때론 필요한 거구나.
밀어 부치기가 전공인 내가 포기를 함으로서 얻은 첫번째 깨달음이었다.
기분도 좋고 동해안인데 싱싱한 회에 술 한잔 나누기 위하여 포구를 찿았다.
나는 비싸더라도 눈 내리는 동해바다가 창 밖으로 보이는 경치가 좋은 외옹치나 대포항을 원했고,
운전수인 장광모는 가깝고 실속있는 물치항을 원햇다.
종신회장인 내 의견이 핸들을 잡고 있는 광모한테 무시 당했다.
여기서 두번째 좌절을 당했다.
물치항에는 동네 어부들이 직접 배를 몰고 나가서 잡아오는 자연산 횟감들이 넘쳐났다.
우리는 이시가리.밀복, 장치, 전복치 등 동해 깊은 바다에서만 잡히는 최고급 어류들을 시켜두고 퍼 마셨다.
광모한테 지기를 정말 잘했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고 중도의 길이 최상의 길이다.
눈은 내리고 또 내렸다.
해 지기전에 곰배령으로 넘어가자.
곰배령 가는 길은 온통 눈 세상이었다.
미천골 가는 길에 있는 송천 떡마을 떡 장수들도 집에서 떡을 치시는지 장사를 접었고,
조침령을 넘나들던 새 조차 한 마리 날지를 않는다.
포클레인을 앞 세우고서야 기어이 곰배령 강선계곡 입구에 도달 했다.
국유림 관리사업소 직원들과 산장 주인이 제발 돌아 가시라고 통 사정을 한다.
아, 세상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구나!
여기서 나는 세번째 좌절을 권고 받았다.
빗발치는 눈 폭탄을 뚫고 무사히 미시령에 위치한 콘도에 여장을 풀었다.
쟈니워커, 발렌타인, 앗싸리 맥주로 떠들고 지랄폭탄을 하는 와중에도
눈은 내리고 또 내렸다.
곰배령으로 쳐 올랐으면 길도 끊기고 월요일 출근 못할 정도로 눈이 쌓였다.
지는 것이 사는 것이구나.
오직 중도와 중용이 정도를 걷는 것이구나를 느낀다 .
하지만 점봉산 곰배령 가는 길이었는데 산행을 한번도 못하고
홋카이도 눈 구경만 하고 갈 판이니 회장 체면이 영 말이 아니다.
다음날 아침,
서울 가는 길은 월정사 전나무 숲이라도 걷다가 가세!
라고 약간 내가 지는 척 하면서 목적지를 정했다.
반대 의견도 없고 조용하다.
내가 탄 1호차는 엉금 엉금 대관령을 넘었고,
반골들이 탄 2호차는 눈 속에 파 묻혀 거의 기다시피 영동지방을 탈출했다.
차 속에서 가만 생각 해보니
2호차 녀석들이 막히는 차 안에서 나를 씹고 있을 거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고집을 굽히는 것이 이기는 것이란 것을 이틀에 걸쳐 깨달은 나,
오늘 오대산 월정사행은 취소하고 원주로 가서 추어탕 먹자! 라고
선수를 쳐서 2호차에 목적지 변경을 알렸다.
마직막으로 결단을 한 나의 좌절 이었다.
2호차가 원주 추어탕에 도착하여 추어 튀김에 술을 한잔 하더니
월정사를 포기하고 서울로 직행해 버릴려고 작당질 한 것을 토로한다.
결국 최종적으로는 내가 먼저 포기 해 버려서 회장의 대우를 받았다.
포기 하는 것, 내려 놓는 것, 중도의 길을 가는 것이야말로 좋은 길을 가는 것이다.
우리 친구들 꽃 피는 봄에
이번에 포기한 모든 계획을 기어이 다시 만들세...
이건 거역할수 없는 종신회장님의 지엄한 명령일세! ㅎㅎ
첫댓글 재미난 글 잘 읽고 갑니다~~^^
돌아 댕기면 언제나 재밌는데
요즘 연로하신 똥찬이 때문에 쏴돌아 댕기질 못하네요.
이십대 친구와 여행을 가려면
책을 찾아서 버스편 기차편 알아보고 경비계산하고
그런 준비가 참 즐거웠어요.
그런데 계획이 어긋나면 참 많이 속상해했지요.
지금은 계획이 필요하지 않아요.
그냥 함께 하는 시간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되어서...
뜻 하지 않은 변수가 생기면 그것도 즐기는 세월이 되었네요.
즐감했습니다 ^*^
원리 원칙 규정 규칙 ...자승자박 같아요.
대충 적당히 살면 좋을 듯.
대충 적당히 봐줘가면서
치열하게 사십시다. 늘 해오셨던 거 처럼
아, 우리 만득님이 종신 회장님이셨군요?
입당을 해볼까 했는데, 죄들 아저씨들만 있는 거예요.
여자라도 한명 끼었다간
서로 천신하려고 난리 난리
종신회장도 통제불능에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