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 군사우편 디지털 메일 저녁마다 출력 배달매주 금요일에는 ‘손편지’ 전달 훈련병 편지 스마트폰 통해 촬영 후 인터넷 카페 업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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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5사단 신교대대 훈련병이 부러움 가득한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부대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편지를 훈육조교로부터 건네받고 있다. |
8일 밤 9시. 고된 훈련을 마치고 긴 하루를 마감하는 점호시간.
입대한 지 4주차 된 육군5사단 신교대대 11중대 13-7기 훈련병들은 한 줄로 반듯하게 앉아 이 시간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이들의 얼굴엔 ‘오늘은 누구에게…’라는 궁금증과 설렘이 가득하다. 모든 훈련병이 소머즈보다 뛰어난 청력과 ‘매의 눈’으로 중대 훈육조교의 두 손에 얌전히 들려 있는 종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조교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리길 학수고대하던 찰나,
“이중구 훈련병! 여자친구한테 편지 왔다.”
“이건희 훈련병! 어머니께 편지 온 것 같네.”
“석우는 오늘 패스~.”
훈련병들 사이에선 순식간에 희비가 엇갈렸다.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느냐, 기대만큼 큰 실망을 맛보느냐의 순간이다. 조교가 쥔 종이의 정체는 부대 인터넷 커뮤니티 다음카페 ‘열쇠 신병교육대대’에 가족과 애인, 친구들이 올린 메일을 출력한 편지. 이처럼 군 생활 중인 장병은 물론 그 가족들 사이에서 몇 해 전부터 아날로그 감성이 듬뿍 묻어나는 손편지와 간편하고 빠른 디지털 메일의 장점만을 취한 ‘하이브리드’ 군사우편이 큰 인기다.
부대 정훈공보실은 A4 용지 한 장 안에 훈련병들에게 온 네 건의 편지글과 사진을 편집한 후 출력해 매일 저녁 단비 같은 편지를 훈련병에게 전달해 준다.
“사춘기 이후부터 어머니와 사이가 계속 안 좋았어요. 그러다 입대했는데 어머니가 편지까지 보내실 줄 몰랐습니다. 군대 와서 보니 어머니께 잘 못해 드린 점이 너무 후회스러웠어요. 저도 답장을 보내 서로 편지로 화해했어요. 그랬더니 어머니가 사진을 보내셨습니다.”
어머니의 편지와 사진을 보이며 사진 위로 눈물을 뚝뚝 흘리는 이건희(22) 훈련병은 카페에 올라오는 어머니와의 편지 덕분에 그동안의 앙금이 풀리는 듯하다고 털어놨다.
아버지가 20여 년 동안 인도네시아에서 근무하시는 주민석(21) 훈련병은 “입대할 때도 뵙지 못하고 왔고 수료식 때도 못 오실 아버지”라면서 “얼마 전 인터넷 카페를 통해 ‘군 생활 즐겁게 하고, 많은 사람과 사귀라’는 편지를 보내주셔서 힘이 났다”고 말했다.
본인의 아버지도 아닌 친구의 아버지로부터 편지를 받은 금영환(22) 훈련병은 “초등학교 때부터 친한 친구가 먼저 입대했는데, 친구의 아버지께서 인터넷 카페에 편지를 써 주셨다”며 “생각지도 않았는데 너무 놀랐고, 지금 감사의 답장을 쓰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며칠째 여자친구한테 온 편지와 사진들을 바라보며 흐뭇해하는 임정연(21) 훈련병은 지금껏 87통의 편지를 받아 부대 생활관에서 기간 대비 가장 많은 편지를 받았다. 그는 “부모님이 의류공장을 하셔서 늘 바쁘신데 부모님의 빈자리를 여자친구가 잘 채워줘 정말 고맙다”고 전했다.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훈련병들에게 사랑하는 이들의 편지는 힘을 낼 수 있는 큰 원동력이 되고 있다. 반대로 훈련병의 소식을 빨리 접할 수 있는 가족·친구들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인터넷 카페에 훈련병들의 답장은 물론 다양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 신속하게 탑재되기 때문이다.
이재원(22) 훈련병의 어머니 강효지(49) 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인터넷 카페에 들른다”며 “혹시 우리 아들 사진이라도 나왔는지 보고, 또 매일 편지를 쓰면 출력해서 나눠 준다니 보고 싶은 맘이 간절해 글도 자주 남긴다”고 말했다.
부대는 매주 금요일 오후 훈련병의 답장을 카페에 업로드한다. 한 기수당 훈련병의 수는 250~270명. 부대는 욕설이나 군대 비하 발언, 훈련 보안사항 등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두세 개 기수 훈련병들의 편지 700~1000통을 각 소대장의 인가된 스마트폰을 통해 촬영한 후 업로드한다.
이기택 (중위·26) 11중대 1소대장은 “한 훈련병당 A4 용지 1/4 크기로 답장의 분량이 정해져 있다”며 “일일이 촬영해 업로드하는 것이 간단한 작업은 아니지만 한 주 동안 고생한 훈련병들이 마무리도 잘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촬영한다”고 말했다. 인터넷 카페에 공개된 편지는 훈련병이 수료하면 비공개 처리된다.
신교대대 인터넷 커뮤니티 카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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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병들이 쓴 손편지를 인터넷 카페에 업로드하기 위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
“사진으로 보니 우리 민혁이가 몸이 안 좋아 보이던데 감기약은 먹었는지 궁금합니다.
- 민혁맘.”
자녀를 걱정하는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 부모가 남길 법한 글이지만, 실은 군대 간 아들의 부모가 남긴 글이다.
육군5사단 신병교육대대가 운영하고 있는 인터넷 카페에는 부대에서 훈련받는 아들의 소식을 알고 싶어 그 부모가 올린 글 바로 아래에 정훈장교의 댓글이 달려 있다.
“민혁이는 의무대에서 약을 처방받아 복용한 후 쉬고 있습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훈련소로 떠난 자식의 안부를 알 길이 없어 부모들이 애태우던 풍경은 이제 옛이야기가 돼 가고 있다.
육군이 훈련병과 그 가족들의 소통을 위해 2006년부터 신병교육대대마다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페를 통해 신병들의 교육훈련 사진과 개인 사진을 공개하고 부모·여자친구·지인들이 다음카페에 올린 글을 출력해 전해 주는 ‘장병 위문편지 출력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각 신병교육대대는 인터넷 카페에 식단, 교육훈련 상황, 훈련소 면회 방법 등을 공지하고 있다. 또 부모나 여자친구가 편지를 쓰는 공간과 부대 쪽에 궁금한 점을 물어볼 수 있도록 한 게시판도 마련했다.
저녁 시간대에는 신병교육대대 인터넷 카페의 동시 접속자 수가 100여 명에 육박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워진다.
박아람(중위) 5사단 신병교육대대 정훈장교는 “훈련 사진 등 새로운 소식이 올라올 때마다 인터넷 카페 방문자 수가 크게 늘어난다”며 “인터넷 카페가 군과 사회를 잇는 훌륭한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