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다르빗슈 이후 일본 최고의 고교 투수다."
"그는 일본의 스티븐 스트라스버그
(MLB 드래프트 역사상 최고의 재능이라고 평가받는 선수)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16세 유망주 중 한 명이다."
이 극찬을 받은 선수가 있었다.
이 선수의 전설은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마자 시작된다.
많은 선수들이 벤치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1학년 여름대회.
그는 벤치입성에 그치지 않고 마운드에 올랐다.
최고구속 148km/h이라는 강속구와 함께
계속 140km/h이 넘는 직구를 던지며
27이닝 31K을 잡아냈다.
특히 8강전에서는 8K 1실점 완투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봄 고시엔 진출권이 걸린 가을 대회.
1학년 투수는 학교의 에이스로 마운드에 올랐다.
이 대회에서 그는 67.1이닝 87탈삼진을 기록하며 현대회 우승을 일궈냈다.
특히 17K의 가와노에전과
14이닝 218구 21K의 마츠야마세이료전을 포함해
전 경기에서 완투승을 올렸다.
그리고 2학년 때 더 성장해
2학년 춘계 고시엔에서는
2학년 고시엔 최고 구속인
152km/h를 기록했다.
그의 투구는 단순히 구속이라는
숫자 뿐만 좋은 게 아니었다.
경기 내용도 완벽에 가까웠는데
첫 경기인 코료전에서는 13이닝 13삼진 232구
두 번째 경기인 세이세이코전 9이닝 8삼진 159구
세번쨰 경기인 기후상고전 9이닝 7삼진 138구
준결승전인 고치고전 9이닝 7삼진 134구
(코료전의 투구 내용
13이닝 232구 10피안타
13탈삼진 6사사구 3실점)
결승까지 4경기에서 모두 완투를 하며
40이닝을 663구를 던지면서
32피안타 35탈삼진 9실점이라는
압도적인 투구를 보여주며
사이비 고교를 9년만에 다시
고시엔 우승의 문턱까지 끌고 갔다.
준결승 직후의 인터뷰에서
"우승해 보고 싶다. 설렙니다."라며 피곤함을 느끼지 않는 듯 말했지만
이제 2학년이 된 선수에게 이 일정은 버티기 힘들었다.
첫 경기에서 152km/h를 기록했던 직구는
결승전에서는 142km/h를 넘기지 못했고
경기 중반에는 120km/h대 후반까지 떨어졌다.
4회까지 2피안타로 막은 그였지만
5회에만 5연속 안타 포함해
총 8개의 안타를 허용하며 7실점으로 무너졌다.
1루 땅볼에 베이스 커버도제대로 가지 못하고
스파이크의 끈이 풀린 것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그가 지쳤다는 건 그라운드에 있던 선수들도 감독도 알았다.
죠코 마사노리 감독은 그를 5회가 끝나자 내리려고 했으나
그는 한 이닝 더 던지겠다는 말을 하고 6회에도 등판.
2실점으로 막아낸 후 마운드를 내려왔다.
이 날 그가 던진 공은 총 109개.
결승전 이전까지 포함하면
5경기에서 총 772구를 던진 것이었다.
이 대회에서 그의 모습은 팬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고
이라부 히데키, 에가와 스구루 등
왕년의 강속구 투수들을 소환하며
특급 스타가 됐다.
그리고 그 평가와 함께
곳곳에서 많은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772구면 프로에선 두 달치 투구수다."
"이제 2학년이고 많으면 3번 더 고시엔에 오는데
투구 수 제한이 필요하지 않겠냐."
"고시엔에서 그가 당한 것은 아동학대보다 심각한 수준이었다."
"이건 투지나 희생 정신이 아니다. 아동학대다."
특히 2학년의 신분으로 모든 경기를 선발로 나선 후
어깨 부상으로 3학년을 날리고 재활 후에도
구위를 찾지 못한 다카츠카 노부유키처럼 되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많았다.
"잘했다는 말을 들어도 끝까지 마운드를 지키지 못한 것이 속상하다.
3연투로 제대로 던지지 못한 나 자신이 한심하다.
너무 많이 던졌다고 하는데 오히려 잔뜩 던져 기뻤다.
투구수를 줄이기 위한 변화구 습득과
하체 강화로 지금 이상으로 던지고 싶다."
(대회 종료 후 하체 운동을 하는 모습)
그리고 그는 이런 우려에 대해
문제 없다는 투의 인터뷰를 했다.
하지만 4월과 5월에 등판을 하지 않자
우려의 목소리는 더 커져갔다.
세이세이코전에서의 타구에 맞으면
생긴 부상의 영향이라고 설명했지만
야구 팬들은 모두 772구의 후유증으로 인해
큰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리고 그는 이런 우려의 시선이 무색하게
하계 고시엔 현 예선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대회에서 본인의 최고 구속인 157km/h 기록.
고시엔 본선에서는 고시엔 최고 구속 타이인 155km/h를 기록하며
우려를 잠재웠다.
본선에서는 어깨의 염증 영향으로 2경기 19이닝 동안 13실점을 하며 탈락.
봄대회 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진 못했지만
좋지 않은 상태에도 이닝을 뛰어넘는 21탈삼진을 잡아냈다.
그리고 대회 후에 열린 세계청소년야구대회에 차출된 그는
베네수엘라전 9이닝 2피안타 16K 무사사구 완봉승
쿠바전 8이닝 6피안타 10K 완봉승으로
대회 최우수 평균자책점, 최고 승률 타이틀과 함께
올스타팀 선발투수에도 뽑히며 대회 최고의 투수임을 인정받았다.
186cm의 좋은 피지컬
최고구속 157km/h의 강속구
당연히 많은 일본 야구 팬들들은 많은 기대를 가졌고
그를 학교가 있던 지역을 붙여
"에히메의 괴물"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괴물의 모습은 여기까지였다.
가을대회에서 그의 팔꿈치는 문제를 일으켰고
결국 봄대회에 출장할 수 없었고
여름에 복귀하지만 최고구속은 148km/h에 머물렀고
고시엔에 진출하지 못한 채
현대회 3회전에서 탈락했다.
혹사 이력
부상 이력
떨어진 구속
이것들은 그의 평가가 떨어지게 만들었고
그 해 최대어라는 타이틀 역시 대학 투수였던 아리하라 코헤이에게 넘어가
드래프트장에서는 두 구단의 지명만을 받는데 만족해야 했다.
(와세다 대학 시절 아리하라 고헤이)
결국 그는 본인을 지명해준 구단 중 하나인 라쿠텐에 입단했다.
그가 선택한 번호는 20번.
그는 그 번호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밝혔다.
"20년 간 활약하고 싶고,
20승을 달성하고 싶어서
등번호 20번을 선택했습니다."
-안라쿠 토모히로-
그렇게 입성하게 된 프로 무대.
하지만 고시엔에서의 혹사는
그의 프로 커리어에도 영향을 미쳤다.
라쿠텐 투수 최초로 1군 데뷔전에서 승리를 기록했지만
이 날 최고 구속은 146km/h에 그쳤다.
데뷔시즌인 2015년부터 선발투수로의 기회를 꾸준히 받았지만
줄곧 부상에 시달리며 5년 간 나온 경기는 단 37경기.
선발투수로 나온 경기는 28경기에 그쳤다.
또한 고교시절 157km/h까지 기록했던
구속도 평균 140km/h를 간신히 넘는 수준이었다.
결국 2020년부터는 선발투수로서의 꿈을 포기하고 중계투수로 정착.
불펜으로 전향한 후에도 가끔씩 150km/h를 간신히 넘기는 정도로
이전과 같은 강속구는 나오지 않았지만
주무기인 체인지업을 오프스피드 구종으로 활용하며
느려진 직구의 위력을 부활시켜가며 팀의 필승조의 일원으로 자리잡았다.
결국 고시엔은 안라쿠와 그 윗 세대부터 이어진
혹사의 사슬을 끊기 위해 1주 최대 500개라는 투구 제한을 두기로 했다.
1주에 500개도 많은 수치인 것 부정할 수 없다.
이전까지 괴물이라는 소리를 들은 선수들이 던진 투구수들을 보면
이거라도 해서 다행이라는 말이 나온다.
다나카 마사히로 658구
마쓰자카 다이스케 782구
요시다 고세이 881구
사이토 유키 948구
고시엔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그 다르빗슈 역시 고시엔 한 대회에서 총 505구 투구했었다.
모든 선수들이 프로를 꿈구는 건 아니기에 망가져도 괜찮다는 마음 가짐.
미래보단 지금을 즐기는데 집중하는 마음 가짐.
그런 일편단심이 현재 고시엔이 프로야구 못지않게
많은 관심과 응원을 받게 해주는 요소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대회가 끝난 후 선수들의 모습까지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변화다.
157km/h를 뿌려대며 "160km/h가 꿈도 아니다"라며
극찬을 받던 고교 시절과 비교하면
150km/h을 간신히 넘기는 현재 안라쿠의 모습은
초라하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가 결승전에서 보여준 그 모습 그대로.
최대 무기인 직구의 구위와 구속을 잃어버리고
보조무기인 변화구들의 예리함도 잃어버렸지만
학교의 우승을 위해 청춘을 불태우며
묵묵히 마운드를 지키던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망가져 버렸지만 아름다운 안라쿠의 남은 야구 커리어
그가 모두의 걱정을 이기고 부상에서 잘 복귀했듯
아름답게 꾸며나아가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치겠다.
https://www.fmkorea.com/best/5633661722
첫댓글 ㄷㄱ
잘보다가 욱일기에 글 내림 개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