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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크시티 [자전거캠핑(자캠)/자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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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유 게 시 판】 스크랩 영흥도 1
[I/C]한국의산천 추천 0 조회 113 12.05.13 23:4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오월의 영흥도 라이딩 1 [하늘과 바닷물이 파랗고 싱그러운 오월 십삼일 일요일(솔나리님 / 한국의산천 2명)]

 

그섬에 가고 싶다.

영흥도에는 임도가 많은 섬이다. 특히 싱글코스는 다양하게 많이 분포되어있는 곳이기에 앞으로 오토캠핑과 더불어 자주 찾아야 할곳으로 마음에 두었다.

 

▲ 선재도에 있는 아주 작은섬 목섬 ⓒ 2012 한국의산천

인천 옹진군 영흥면 선재도 바로 앞에 있는 무인도인 목섬. 바다가 하루에 두 번 갈라져 모랫길을 만들어 준다. 목섬까지의 거리는 왕복 1km정도로 걸어서 왕복하기 부담없는 거리이다.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  김 승 희

 

가장 낮은 곳에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도 사랑의 불을 꺼트리지 않고 사는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그래도,
어떤 일이 있더라도
목숨을 끊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천사 같은 김종삼, 박재삼,
그런 착한 마음을 버려선 못쓴다고

 

부도가 나서 길거리로 쫓겨나고
인기 여배우가 골방에서 목을 매고
뇌출혈로 쓰러져
말 한마디 못해도 가족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
중환자실 환자 옆에서도
힘을 내어 웃으며 살아가는 가족들의 마음속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섬, 그래도
그런 마음들이 모여 사는 섬, 그래도

 

그 가장 아름다운 것 속에
더 아름다운 피 묻은 이름,
그 가장 서러운 것 속에 더 타오르는 찬란한 꿈

 

누구나 다 그런 섬에 살면서도
세상의 어느 지도에도 알려지지 않은 섬,
그래서 더 신비한 섬,
그래서 더 가꾸고 싶은 섬 그래도,
그대 가슴 속의 따스한 미소와 장밋빛 체온
이글이글 사랑과 눈이 부신 영광의 함성

 

그래도라는 섬에서
그래도 부둥켜안고
그래도 손만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강을 다 건너 빛의 뗏목에 올라서리라,
어디엔가 걱정 근심 다 내려놓은 평화로운
그래도 거기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시인 김승희 

1952년 전남 광주 출생. 서강대 영문과와 동대학원 국문과 졸업.이 상(李箱) 연구로 박사 학위.  서강대 교수(국문학).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및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등단.

시집으로 '왼손을 위한 협주곡',  '태양미사(1979)' 등단소설 '산타페로 가는 길(1997)' '미완성을 위한 연가', '달걀 속의 생'이 있고

산문집으로 '33세의 팡세', '바람아 멈춰라 내리고 싶다' 이상평전 '제13의 아내도 위독하오' 등이 있다. 
1991 제5회 소월시문학상 대상

 

▲ 33년전부터 함께 자일을 엮어 바위를 오르던 친구 솔나리님 ⓒ 2012 한국의산천

 

▲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가? ⓒ 2012 한국의산천

 

人間은 누구나 가슴깊은 곳에 섬(島) 하나씩 가지고 살아간다.

 

자식이 힘들게 하여도 그래島 자식인데...

사업이 힘들어도 그래島

언젠가는 잘 될거야 라는 희망의 메세지를 전해주는 섬 그래島.

 

그래島...세상의 절망과 모든 부정을 긍정으로 바꿔주는 섬

우리 인간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꼭 필요한 아름다운 희망의 섬입니다.

 

그섬에 가고 싶다. 영흥도

오랫만에 느긋하게 좋은 풍경을 시원한 바람을 가슴과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 솔나리님과 접선하기로 한 솔나리님 아파트 앞에서 ⓒ 2012 한국의산천

 

사람은 늙고 나이 들어서 새로운 도전에 대한 꿈을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에 대한 꿈을 접을 때 늙는다.
만약 꿈이 없다면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천천히,그러나 확실히 시들어 버릴 것이다. - 엘링 카게 -

 

엘링 카게 (ERLING KAGGE)

노르웨이의 탐험가 엘링 카게는 1990년에 설상스쿠터도, 개썰매도, 식량저장소도 없이 세계 최초로 북극에 도착했다. 그리고 1993년 역사상 최초로 혼자서 그것도 걸어서 남극에 도착했고 1994년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세계 최초로 남극점, 북극점,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덕분에 그는 '타임' 誌로부터 “모험의 한계를 밀어내고 있는 현대의 탐험가”라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 예쁜꽃으로 활짝 핀 선재대교를 넘으며 ⓒ 2012 한국의산천 

 

▲ 오전 밀물때의 목섬 풍경 ⓒ 2012 한국의산천

 

人間은 누구나 가슴깊은 곳에 섬(島) 하나씩 가지고 살아간다.

자식이 힘들게 하여도 그래島 자식인데...

사업이 힘들어도 그래島 언젠가는 잘 될거야 라는...

그래島...

우리 인간에게는 참 아름다운 섬이다.

 

▲ 오후가 되어 썰물이 되니 모랫길이 나타나며 많은 사람들이 섬으로 건너가고 있습니다 ⓒ 2012 한국의산천

 

선재대교 다리 밑에는 선재어촌체험마을이 있다. 선재어촌계 조합원들이 어촌체험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40명을 동시에 태울 수 있는 트랙터를 타고 갯벌에 들어가 바지락, 동죽 등을 캘 수 있다. 바닷물이 빠지면 이곳에서 무인도인 목섬까지 걸어갈 수 있다.

선재리 서쪽 1km 거리에 있는 측도는 5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데 썰물 때만 차량 및 도보 통행이 가능하다. 

 

▲ 영흥대교 ⓒ 2012 한국의산천  

영흥대교는 2001년 11월 15일 국내 기술진에 의해 최초로 건설된 사장교(斜張橋)다. 영흥대교는 야경의 모습이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러 온다.

인천 옹진군 영흥도는 영흥대교가 개통된 뒤 배를 타지 않고 쉽게 오갈 수 있는 ‘교통이 편리한 섬’이 되면서 관광객이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에만 304만 명이 이 섬을 찾았다.

 

▲ 영흥대교는 국내 기술진에 의해 최초로 건설된 사장교(斜張橋)다 ⓒ 2012 한국의산천  

 

영흥도는 작은 섬이지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영흥도를 아래와 같이 소개하고 있다.

 

'택리지 경기편'에서...

육지가 끝나는 바닷가에 화량포 첨사(僉使)의 진(津)이 있고 진에서 바닷길을 10리쯤 건너면 대부도가 있다. 대부도는 화량진에서 움푹 꺼진 돌맥이 바다속을 지나가서 된것이다. 돌맥이 꼬불 꼬불 벋었고 그 위는 물이 매우 얕다. 옛날에 학이 물속에 있는 돌맥 위를 따라 걸어가는 것을 보고 섬사람이 따라가서 그 길을 발견하여 그 길을 학지라 부른다.

-중략-

여기서 서쪽으로 물길을 30리쯤가면 연흥도(영흥도)가 있다. 고려 말년에 고려의 종실이었던 익령군 기(琦)는 고려가 장차 망할 것이란은 것을 알았다. 그래서 성명을 바꾸고 온가족과 함께 바다를 건너 이섬에 숨었다. 익령군의 영(靈)자를 따서 영흥도(靈興島)라 했다. 그리하여 고려가 망한 뒤에도 물에 빠져 죽임을 당하는 환난을 면하였고 자손은 그대로 이섬에서 살았다.    

 ‘택리지’의 저자인 이중환이 살았던 시대에는 그들의 신분마저 낮아져서 말을 지키는 마장목자(馬場牧子:목동)이 되었다고 한다. 

또 영흥도에는 1270년 배중손이 이끄는 삼별초가 강화도에서 진도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영흥도를 기지로 삼아 70여일 동안 항몽전을 벌이기도 했던 곳이다.

 

▲ 출발에 앞서 영흥대교를 배경으로 솔나리님 ⓒ 2012 한국의산천

 

자전거가 당신을 자유롭게 하리라

 

33년전 그러니까 1979년 예쁜 처녀가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산악회 사무실을 찾아왔다. 그리고 함께 산을 종주하고 바위를 찾았다.

그 당시 인천세관에 근무하던 솔나리님과의 첫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어 우리는 매주 토·일요일 도봉산 선인의 바위를 올랐다.

그러다가 지리산 화대종주를 마치고 어느날 갑자기 훌쩍 시집을 갔지만 ㅠㅠㅠ... 지금까지 면면히 우정이 이어지는 아름답고 멋진 산 친구이다   

 

▲ 오전에 이곳 영흥도에 도착하니 해무가 가득하였다 ⓒ 2012 한국의산천

이곳에서 머뭇거리다가는 빠르게 몰려오는 저 여귀(女鬼)의 입김에 휩싸여 목적한 곳으로의 라이딩을 할 수없을것 같다는 생각에 출발을 서둘렀다 

그렇다 영흥도에서 머뭇 머뭇하다가는 대부도 삼거리와 시화방조제에서의 정체로 인하여 많은 고생을 하게됩니다.

 

 

바다가 가까운 곳일수록 해무는 더욱 짙어졌다. 유배를 당하듯 온섬이 짙은 해무에 감싸이고 있다. 김승옥님의 소설 "무진기행"이 다시 생각났다.

 

"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 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곳으로 유배당해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恨)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 쌌고 먼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 김승옥 무진기행'중에서 -

 

 

‘가슴아픈 이들은 포구로 가라’
‘저문 시간이면 순천만에 나간다. 눈앞에 펼쳐지는 너른 개펄이 좋고 개펄 냄새를 이리저리 싣고 다니는 바람의 흔적이 좋다…바람은 순례자의 옷깃을 흔들고, 일찍 도착한 철새 몇 마리가 순례자의 이마 위를 선회한다…하늘에는 노을이 장관이다…그러나 순천만의 노을이 하늘만 다 채운다고 생각하면 그 또한 단견이다. 노을은 땅 위에도 진다…개펄 위에는 썰물들이 남기고 간 작은 웅덩이들이 남아있다. 그 웅덩이 위에 노을이 살아 뜨는 것이다. 처음 그 노을을 보았을 때 나는 개펄 위에 무릎을 꿇었다’ - ‘묵언의 바다’ 中에서

 

 

자전거가 당신을 자유롭게 하리라

 

인류는 언제부터 자전거를 탔을까.

기원전 2300년 중국에서 자전거의 기원을 찾는 견해가 있다. 바퀴 두 개가 달린, 대나무로 만든 탈것이 당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보다 앞서 기원전 4000년경 그려진 이집트 룩소르 사원의 벽화에도 바퀴 두 개를 연결하는 봉 위에 사람이 앉은 모습이 등장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남긴 ‘코덱스 아틀란티쿠스’에 실린 탈것의 설계도는 지금의 자전거와 비슷한 모양이다. 그래서 “자전거를 최초로 고안한 사람은 다 빈치”라고 주장하는 이도 많지만 설계도의 진위가 아직 논란거리다.

 

자전거경기는 1869년 5월 31일 프랑스 파리 생클로 공원에서 최초로 열렸다. 이어 유럽 곳곳에서 자전거경기가 잇달아 열리면서 자전거 기술 개발 경쟁이 본격화했다. 1903년에는 오늘날 세계 최고의 자전거대회로 인정받는 ‘투르 드 프랑스’ 경기가 시작됐다.

자전거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황폐해진 유럽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전쟁으로 5년가량 중단됐던 자전거대회가 1946년 재개되자 유럽인들은 전후 복구에 바쁜 와중에도 자전거경기에 열광했다. “당시 자전거대회의 목표 중 하나는 증오와 복수심으로 분열된 유럽 대륙을 하나로 통일하는 것이었다”고 

 

자전거를 ‘자유’와 ‘승리’에 연결시켰다.

“아이에게 자전거는 생애 처음 누리는 자유다. 아이는 자전거를 통해 세상을 탐험하고, 안전과 균형의 원리를 배우며, 난생처음 승리의 기쁨을 맛보기도 한다. 뒤에서 잡아 주던 사람이 손을 놓는 순간에 두려움을 극복하면서 짜릿한 승리를 만끽하는 것이다.” - donga.com 금동근 기자

 

 

 

소리새 - 그대 그리고 나 | 음악을 들으려면 원본보기를 클릭해 주세요.

그대 그리고 나 - 소리새

푸른 파도를 가르는 돛단배처럼 그대 그리고 나  낙엽 떨어진 그길을 정답게 걸었던 그대 그리고 나
흰눈 내리는 겨울을 좋아했던 그대 그리고 나  때론 슬픔에 잠겨서 한없이 울었던 그대 그리고 나 

텅빈 마음을 달래려 고개를 숙이던 그대 그리고 나 우린 헤어져 서로가 그리운 그대 그리고 나
때론 슬픔에 잠겨서 한없이 울었던 그대 그리고 나  텅빈 마음을 달래려 고개를 숙이던 그대 그리고 나
우린 헤어져 서로가 그리운 그대 그리고 나

 

 

▲ 밀물때인가 봅니다. 방파제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가 시원하고 정겹습니다 ⓒ 2012 한국의산천  

 

 

▲ 이곳 모래밭 민박을 끼고 우회전하면 십리포로 가는 ?은 임도를 타게 됩니다 ⓒ 2012 한국의산천

 

 

 

▲ 숲이 우거진 아름다운 업힐구간입니다 ⓒ 2012 한국의산천

 

 

 

언제나 당당하신 아버지

언젠가 돌아서 가시는 아버지의 쳐진 어깨를 보이신 뒷모습에서 측은함을 느낀적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자전거를 탈때 정면으로 다가오는 사진도 좋지만 달려 나가는 뒷모습 사진이 더욱 더 좋다

그 이유는 ?

 

 

자전거를 타고 나가는 뒷모습에서 진취적인 시작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미지에 대한 궁금증과 두려움도 있지만 그 두려움이 더욱 나를 이끄는 매력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다가오는 모습은 끝이자 편안한 안착이지만 뒷모습은 미지의 세계로 박차고 나가는 기백이라고... -산천 생각-

 

 

 

 

 

▲ 해수욕장은 벌써 여름이 온듯 많은 텐트가 쳐저 있었습니다 ⓒ 2012 한국의산천 

 

 

 

 

▲ 십리포해수욕장에 있는 소사나무군락 ⓒ 2011 한국의산천

 나무를 키운것은 바람이었나?   영흥도 안에 위치한 십리포해수욕장은 우리나라 어느지역에서도 볼 수 없는 소사나무 최대의 군락지다. 

전국적으로 유일한 괴수목 지역으로 300여본의 소사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여름에는 가족적인 분위기 속에서 산책을 즐기며 피서 할 수 있는 곳이다   

 

소사나무 군락지는 지금으로부터 150여년전에 내2리(내동)마을에 사는 선조들이 농업에 종사하면서 살던 중 해풍이 심해 방풍림을 심어 바람막이를 조성하려고 여러차례에 걸쳐 여러가지 나무를 심어 봤었으나 현지 토양이 모래, 자갈로 이루어져 있어서 모두 고사하기 때문에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강한 서어나무를 구해 구덩이를 깊이 파고 흙을 식재한 후 정성껏 자식과 같이 가꾸었다고 전해오고 있다.

 

▲ 십리포해수욕장에 있는 소사나무군락 ⓒ 2012 한국의산천

한여름 피서철에는 이곳을 개방하여 나무아래에 텐트를 치는 캠핑장으로 탈바꿈한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멋진 배려라고 생각한다.

 

▲ 영흥도 국사봉 임도의 시작점 ⓒ 2012 한국의산천  

십리포해수욕장에서 바다를 오른쪽에 두고 앞에 보이는 산까지 무조건 직진하면 산 바로 앞에서 우측으로 오르는 작은 업힐이 나옵니다. 

 

▲ 정면에 보이는 산까지 한눈팔지 말고 고고씽 ⓒ 2012 한국의산천  

 

 

 

 

 

 

 

 

 

 

▲ 농어바위 해변 ⓒ 2012 한국의산천 

 

 

 

 

 

 

 

 

 

 

 

 

 

 

 

 

 

 

'차를 마시는 법은 客이 많으면 수선스럽고 수선스러우면  아늑한 정취가 없어진다.

홀로 마시면 신묘하고, 둘이서 마시면  좋고, 서넛이 마시면 유쾌하고, 대여섯이 마시면 덤덤하고,  칠팔인이 마시면 나눠먹이와 같다'

 - 초의선사(艸衣禪師.1786∼1866)의 <동다송(東茶頌)>에서 -

 

 

 

▲ 계속해서 임도를 타고 국사봉 방향으로 올라 농어바위 해변으로 이동합니다 ⓒ 2012 한국의산천

 

영흥도 농어바위 해변과 장경리 해수욕장으로 이동하기 >>> http://blog.daum.net/koreasan/15605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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