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진단이 통과된 직후인 지난 2일 오전 잠실 주공5단지. 입구에서 조금 들어가니 이내 재건축 추진을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실익 없는 재건축 해산만이 대안이다’ ‘내 재산 지키려면 해산동의서 빨리 내자!’ 등 모두 현재 재건축추진위를 해산시키자는 내용이다.
입주자대표회의, 자치부녀회, 경로당 등에서 나건 것으로 사업성이 없는 현재 방식의 재건축 추진을 중단하고 상업지구로 용도변경을 하거나, 획기적으로 사업 여건이 개선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더 좋다는 주장이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는 ‘재건축조합설립추진위원회 해산동의서 접수처’가 마련돼 있었다. 올 초부터 지금까지 조합원들을 상대로 해산동의서를 접수받고 있다.
입주자대표회의를 중심으로 한 반대파들의 모임인 전권특별위원회 최석동 회장은 “지금 같은 방식의 재건축 사업은 조합원에게 큰 손해”라면서 “추진위를 해산시킬 수 있는 규모인 조합원의 50%에 육박하는 해산동의서를 거의 다 받았다”고 말했다.
추진위 반대 세력 적극 활동
안전진단을 통과했지만 잠실주공5단지의 재건축 사업이 쉽게 진행되진 않을 듯하다. 반대파들의 목소리가 커서다. 재건축추진위에서 사업의 다음단계인 조합을 결성하려면 조합원의 75%가 찬성을 해야 한다. 하지만 반대파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어 유효 인원수 만큼의 찬성 동의서를 받아내는 게 최대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잠실주공5단지가 안전진단을 통과해 마치 금방 재건축이 추진될 것처럼 알고 문의를 해오는 사람이 있는데 사업이 기대처럼 진행되긴 어려울 것”이라며 “반대파는 물론 세입자가 많아 조합설립에만 1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입자가 많은 단지는 일반적으로 재건축 조합원 동의서를 받는 게 더 어렵다. 다른 곳에 거주하고 있는 집주인에게 일일이 조합설립 동의서를 받아야 해서다.
이 같은 현상은 은마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은마아파트는 지난 3월 안전진단에 통과하면서 재건축 사업이 빨라질 것이란 기대감으로 일시적으로 호가가 움직였으나 역시 조합원 간의 내부 갈등으로 현재까지 사업이 전척 돼지 못하고 있다.
은마아파트 조합원들은 기존 추진위 계획대로 재건축을 추진하자는 쪽과 용적률이 대폭 허용되는 역세권 개발이 가능할 때까지 기다리자는 입장, 그리고 재건축 반대 등 크게 3가지 의견으로 나뉜다.
이중 역세권 개발을 원하는 쪽과 재건축 반대를 추진하는 조합원들은 은마재산찾기위원회 등의 모임을 결성해 조직적으로 재건축추진위의 조합결성을 막고 있다. 이곳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은마아파트도 재건축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이 워낙 달라 조합설립이 빨리 추진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했다.
안전진단 통과가 전세값 하락 원인?
은마아파트는 특히 안전진단을 통과한 것이 오히려 전세가격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돼 불만을 터뜨리는 조합원들이 많다. 한 조합원은 “안전진단을 통과하면 집값이 1억원 수준으로 오를 것으로 기대했지만 호가만 일시적으로 올랐을 뿐 거래는 없다”면서 “안전진단에 통과해 사업이 빨라질 것이란 소문이 나돌면서 불안해진 세입자가 집을 내놔 전세금만 1억원정도 떨어졌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잠실주공5단지와 은마아파트 재건축 단지의 반대파들은 기본적으로 부동산 시장이 침체된 상황에서 재건축을 추진하는 것은 조합원들에게 손해라는 점을 강조한다. 소형평형 의무비율 적용, 초과이익환수, 분양가상한제 적용 등의 규제로 인해 지금 재건축을 추진하는 게 실익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도 공통점이다.
따라서 이들은 기존의 재건축추진위를 해산시키고 새로운 조건에서 사업을 하는 게 좋다고 주장한다. 잠실주공5단지의 경우 상업지역으로 변경되기를 바라거나, 은마아파트의 경우 역세권개발지역 등으로 용도가 바뀌기를 기대하고 있다. 기존 추진위를 상대로 각종 고소고발, 소송 전을 치르고 있는 점도 공통점이다. 재건축추진위가 기존 시공사 선정과정과 조합원 자금 집행 과정에서 비리를 저질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주택시장 침체 심화될수록 반대파 거세져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은 최근 주택 시장 침체에 따라 재건축을 해도 실익이 없어진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한다. 시장이 활기를 띠면 재건축을 통한 수익이 확실히 보장돼 대부분 조합원들이 이를 찬성하지만 시황이 불확실하면 반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구조다. 조합원간의 분쟁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예스하우스 전영진 사장은 “재건축 사업은 시장상황이 좋지 않으면 반대파가 늘어나면서 추진이 어려워지는 게 일반적 현상”이라면서 “안전진단이 통과됐다고 무조건 사업이 빨라지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자료원:중앙일보 2010. 7.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