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채우는 하루지식습관 2> 박선영 외 4명 / 한빛비즈 (2024)
[My Review MDCCLXXXII / 한빛비즈 148번째 리뷰] 독서는 꾸준해야 한다. 말이 나온 김에 한 사람이 평생동안 읽을 수 있는 책의 수를 생각해보자. 요즘 '100세 시대'라고 외쳐대고 있으니 100살까지 산다고 계산해보겠다. 하루에 1권씩 독파하는 독자가 있다고 치자. 1년이 365일이니 1년동안 365권의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100을 곱하면 36500권을 읽을 수 있다. 4년마다 윤달이 낑겨 있으니 25권의 책을 더하면, 모두 36525권의 책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태어나자마자부터 읽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시력과 체력이 감퇴되어 책읽기가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10살 전후부터 시작해서 70세까지 꾸준한 독서를 할 수 있다고치면 한 사람은 대략 60년 정도 읽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럼 40년치가 깎여서 365권X40년+10권(윤달)=14610권을 빼야 한다. 그럼 대략 22000권 정도다. 하지만 어찌 사람이 매일 한 권씩 읽을 수 있겠는가. 이틀에 한 권꼴이면 절반인 11000권이고, 일주일에 한 궐꼴이면 약 3000권 정도, 한 달에 한 궐꼴이면 약 700권 정도밖에 읽을 수 없다.
그럼 이제 거꾸로 생각을 해보자. 한 사람이 몇 권의 책을 독파해야 '지적인 담론'을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지혜로워질 수 있겠는가 말이다. 책 한 권 읽어가지고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을 것이다. 물론 처음으로 '완독'한 기쁨은 하늘을 찌를 정도로 기쁠 테지만, 안타깝게도 담론을 나눌 만큼 똑똑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10권쯤 읽으면 굉장히 뿌듯해질 것이다. 어디가서 취미가 고상하게도 '독서'라고 자랑하고 싶어질테니 말이다. 하지만 고작 10권의 지식을 쌓았다고 해박한 지적교양을 뽐내기 힘들 것이다. 100권쯤 읽으면 어떤가? 자랑할 만한 수에 도달하긴 했지만, 여전히 지적교양으론 어딘가 부족한 수임에 틀림없다. 그럼 200권, 300권쯤 읽으면 지적담론을 논할 수 있을까? 오, 가능해진다. 해볼만 하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대단한 사람들은 차고 넘친다. 자신이 2~300권의 책을 읽었다고 자랑할 즈음에 이미 1000권을 독파한 지식인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하는 말과 글에 귀를 기울이고 눈을 씻고 다시 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1000권의 책을 독파하는 순간 '지적담론'을 나눌 만큼 자신감이 붙게 될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이미 많이 늙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루에 한 권씩 읽었다면 3년 정도면 돌파할 수이건만 일주일에 한 권씩 읽으니 어느새 30대에 접어든 자신을 발견할 것이고, 한 달에 한 권씩이면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물론 책읽은 숫자과 지적교양과의 직접적인 상관관계는 증명된 바가 없음을 밝힌다.
문제는 '속도'다. 교양을 쌓았어도 자신이 충분히 젊지 못하다면 그 지적교양을 얻은 것을 온전히 '자신'을 위해서 써먹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적어도 20대에는 1000권을 독파할 정도로 지적교양을 쌓아야 남은 여생을 지적교양으로 온전히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셈이다. 그렇다. 10대에서 20대로 접어드는 십 몇년 사이에 1000권 이상의 책을 독파할 정도로 '지적교양'을 쌓아야만 한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그렇다면 10년 동안 1000권의 책을 읽으려면 적어도 1년에 100권 정도를 책읽는 습관으로 길들여야 한다. 1년은 52주이므로 '일주일에 2권 정도'의 책을 읽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다시 말해, 학창시절에 엄청난 학업 분량을 충분히 소화시키면서 책읽는 습관까지 너끈히 해내야만 한다는 '또 하나의 결론'에 다다른다. 시험기간이고, 가족여행이고, 쉴틈없이 부지런하게 읽어대야 한다.
반가운 소식은 대한민국 학생들의 '독서력'이 예전에 비해 상당히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학창시절에 '참고서'를 제외한 서적을 연평균 90권 이상을 읽는다고 한다. 위에 열거한 수치가 '불가능'은 아니라는 얘기다. 굉장히 고무적인 소식인데 안타까운 것은 초등에서 중등으로 올라오면 절반으로 줄어들고, 중등에서 고등으로 진학하면 거기에 또 절반으로 줄어들며, 대학생 이후 성인들의 독서력은 고작해야 한 달에 1~2권꼴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그마저 대한민국 성인의 '독서력 편차'는 심각한 수준이어서 많이 읽는 사람이 한 달에 30권을 읽고, 안 읽는 사람들을 견인해서 전체 평균이 1~2권 정도라는 것이다. 다른 선진국들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많은 책을 읽는 경향이 뚜렷한데, 대한민국은 여전히 '거꾸로'다. 성인이 되면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은 '지적담론'을 나눌 수 있겠는가? 날로 심각해지는 사회문제와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빈부격차, 국내외를 막론하고 대한민국을 위기로 내몰고 있는 현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해결방법을 온국민이 함께 고민하고 결정해야 할텐데, 제대로 된 논의조차 할 수 있는 지적능력들을 갖고 있냔 말이다. 대통령 하나 잘 뽑았냐 못 뽑았냐를 따지는 것으론 아무런 해결방법을 내놓을 수 없다. 국민들 개개인이 뛰어난 지적담론 실력을 뽐내야 권력자들과 엘리트들이 국민들이 무서워서라도 제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겠느냔 말이다. 속여 먹기 딱 좋은 지적수준을 갖고 있으니 되도 않는 헛소리를 지껄이며 국민들을 윽박지르고 말을 듣지 않으면 법적조치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 아니냔 말이다. 서당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개소리 삼 년동안 국민들은 뭘 배웠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똑같은 300만 원이라도 권력자가 받으면 뇌물이고, 배우자가 받으면 선물이란다. 공직자윤리법에 적용해도 마누라는 공직자가 아니니 처벌할 수 없단다. 부부는 일심동체 아니었던가? 그럼 그동안 본인이 아닌 자식이 받아먹고 형제가 받아먹고 친인척이 받아먹고, 그래서 '처벌' 받은 사람들은 억울한 사람들이었단 말인가? 이걸 '권력비리'가 아니니 수사선상에 올리지 못한다고 못을 박는 사람들은 도대체 머리에 ㄸ...쿨럭쿨럭
이 책 <나를 채우는 하루지식습관>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는 걸 밝혀두는 바다. 그보다는 더 심오한 내용을 다루며 하루 10분이면 머리에 쏙쏙 담을 수 있는 '하루지식습관'을 기를 수 있는 유용한 책이라는 사실을 꼭 알아두셨으면 좋겠다. 다시 원론으로 되돌아가서, 교양 많은 책을 꾸준히 읽는 습관이 매우 중요하며, 그 습관에 '속도'를 붙여 20대에 지적담론을 나눌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려야만 한다는 사실을 몇 자 적어보았다. 그리고 이 책 <나를 채우는 하루지식습관 2>에서는 '나아가기'라는 부제를 달았다. 1권이 '홀로서기'였다면, 2권에서는 '나아가기'다. 마치 어린아이가 두 발로 우뚝 서는 기쁨을 1권에서 채웠다면, 2권에서는 위풍당당하게 발을 내딛으며 걸어가는 즐거움을 맛보라는 것처럼 말이다. 그에 걸맞게 2권에서는 '인류의 발자취'에 관한 내용을 주로 담았다. 호모 사피엔스가 두 발로 걸어서 전세계로 뻗어나가는 내용부터 교통의 발달로 세계를 누비다 드디어 우주까지 누비게는 되는 교양지식들을 말이다. 어찌보면 '서고', '걷고', '달리고', '날으는' 단계별로 시리즈가 차곡차곡 진행될 것 같은데 벌써 우주까지 지적영역을 확장시켰으니 너무 앞서간 것처럼 느껴질 법 하다. 하지만 각 단계별로 '또 다른 지적향연'이 마련되어 있을테니 그런 걱정을 하덜 말아야 할 것이다.
인간은 지식을 통해서 '기쁨'과 '즐거움'을 누려왔다. 하지만 동시에 알면 알수록 고뇌와 고통에 빠지는 경험도 했더랬다. 그래서 '아는 것이 힘'이지만 '모르는 게 약'이라는 푸념도 즐겨 쓰곤 한다. 하지만 모르는 게 정말 약이 될까? 내 남편, 내 아내가 불륜을 저질렀더라도 '나만 모르면 행복'이라는 말이 나오는 까닭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나만 모르면 바보'가 정답이 아닐까?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부정한 사실'인데, 나만 모르고서 허허하며 웃고 지내는 것이 어찌 행복이란 말인가. 그렇게 행복한 나를 향해 주변 사람들은 뭐라 생각하겠느냔 말이다. 그럼 주변 사람들까지 '완벽하게 비밀스런 불륜'을 저지르면 되겠다는 생각에 다다른 멍청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언제까지 '속이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완벽이란 것은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꼭 직접적으로 체험을 해봐야 깨닫는 멍청이는 없을 것으로 믿는다. 그러니 나쁜 짓은 할 생각도 말고 도덕적, 윤리적으로 살아가야 한다. 지적교양을 쌓은 사람들이 부정, 부패, 비리 따위를 싫어하는 까닭도 그런 것이다. 단순히 똑똑한 머리를 가지고 '단순지식'을 많이 쌓았다고 해서 교양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지적교양이란 결코 부도덕할 수 없는 법이다.
예를 들어보자. 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첨예한 대립을 보여주는 '전공의 파업' 사태 말이다.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이 망가진 탓이 과연 누구에게 있단 말인가? 파업에 동참한 의사들 탓인가? 아님 '의대정원 확대정책'을 밀어붙이는 정부탓인가? 지적교양을 가진 사람이라면 둘 모두에게 있다고 탓할 것이다. 왜냐면 두 집단(?)이 모두 파렴치하게 부도덕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외과, 소와과 같은 필수의료를 행하는 의사수가 부족하다며 의대생을 더 많이 뽑겠다고 하지만, 의사들이 왜 '필수의료과'에 지원하지 않는지 잘 알면서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의대생을 많이 뽑으면 해결될 것이라 낙관하고 있고, 이에 발끈한 '전공의들'은 파업도 불사하면서 자기 밥그릇을 지키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돈벌이에 비해 힘들고 고된 일이라며 외과나 소아과에 가지도 않으면서, 늘어나는 의대생 때문에 자기몫(의사 평균 연봉 3억원)이 줄어들까봐 환자들의 생명까지 내팽개치고서 거리로 나섰다. 이런 파렴치한 짓거리를 일삼는 무식쟁이들에게 생명을 맡기고 나라를 맡겼다. 그러니 선량한 국민들이 무식한 탓이라도 해야 하는가? 이는 부도덕한 가해자들이 즐겨(?) 써먹는 '피해자 탓'이고 궤변이다. 잘못은 저들이 저질러 놓고서 되레 '억울하게 당한 사람'에게 덤터기를 씌우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적교양을 가진 이들은 누구 탓을 해야 옳을까? 당연히 '무능한 정부탓'을 해야 하고, '이기적인 전공의 탓'을 해야 한다. 응급실 뺑뺑이로 죽은 환자들에게 미안하지도 않느냔 말이다. 생명이 위독한 중환자를 방치하고도 과연 의사 자격을 논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환자 돌보기에도 바쁜 의사들을 거리로 나설 지경으로 만든 '정부의 무능함'은 지적교양을 가진 국민들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이 책 <나를 채우는 하루지식습관>에서는 '지식'이 곧 '무기'라는 진리를 이야기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지적교양으로 '무장'한 선량하고 도덕적인 사람에게 맞서는 무지랭이들이 없어질 것이란 말이다. 맹자는 '인자무적'이라고 했다. 어진 사람에겐 대적할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이토록 어진이가 지혜까지 충만하다면 당해낼 재간이 없게 된다. 다시 말해, 도덕적인 윤리의식을 바탕에 두고 널리 사람에게 이로운 지혜를 발휘한다면 못할 일이 없다는 뜻도 된다. 지적수준을 높게 쌓았어도 '자기이익'만을 위해서 써먹는 사람들은 권력자나 엘리트라고 불릴 수는 있어도 결코 '지적교양'을 쌓았다고 볼 수 없다. 왜냐면 그들에게는 이웃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도 찾아볼 수 없고 영혼은 더더군다나 깃들 수 없는 고깃덩어리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몸에 걸치고 있는 명품이 부럽고 반짝이는 보석들이 아름답다고 여긴다면 지적교양을 더 수련해야 할 것이다. 이 책 <나를 채우는 하루지식습관>으로 올바른 지적교양으로 입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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