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문화유산의 보고를 찾아서
- 군산시편-
서 양 순
오월의 신록이 참 아름답다. 도심을 벗어 나와 눈부신 자연 앞에 모두들 숙연해 진다. 콘크리트 벽에 가려 하늘을 보지 못하고, 매연에 찌든 공기에 시달리다 신록이 뿜어내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니 기분이 상쾌하다. 광주 남구문화원에서 실시하는 문화유적답사는 군산으로 정했다. 공시를 한지 하루도 못 되어 마감이 되었다. 문화탐방에 대한 열망이 높아 가는 듯하다. 군산(群山)은 산이 무리지어 있다는 뜻이다. 고군산도에서 보면 야미도 신시도 선유도 장자도 등 10여개의 유인도와 20여개의 무인도로 이어진 그 모습이 마치 많은 산을 보는듯하여 군산이라는 이름이 지었다 한다.
군산은 개항 한지 100년의 역사를 맞이하고 있다. 군산의 지정학적 위치는 북으로 금강이 있고, 남으로는 만경강 사이에 반도형 모양으로 자리 잡고 있는 천혜의 요새(要塞)요 무역항이다. 조선 태조 9년에는 병마사 관직을 두어 군사를 관리했다. 왜적의 침입을 받아 이를 대파 했던 진포대첩은 군산의 자부심이다. 군산은 수탈의 현장이기도 했다.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쌀 생산의 곡창도 빼앗겼다. 김제 평야를 비롯한 이 지방에서 생산된 쌀은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실어 나르는 항구로 변질 됐다. 우리들이 문화 탐방을 하는 오층석탑이며, 구 시마타니 금고, 이영춘 가옥, 구암동 3.1운동 전시관, 군산 내항 부잔교, 근대역사박물관, 신흥동 일본식 가옥, 동국사 등 일본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 곳이다.
◇ 먼저 오층석탑을 탐방 했다. 이 석탑은 군산시 개정면 발산초등학교 후정에 있다. 보물 제 276호(1963년 1월 21일 지정)로 높이 6m. 2층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형성하고 정상에는 상륜부(相輪部)를 장식한 석탑이다. 탑신부의 경쾌함과 안정감을 주고 있으며 건립연대는 고려시대 전기로 추정 된다. 원래는 봉림사 터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 5츨 석탑뿐 아니라 석등을 비롯하여 많은 석재유물이 전시 되어 있다. 이 유물들은 농장주인 일본인 시마티나 야소야가 우리의 문화재를 불법으로 수집한 것들이다. 발산초등학교 부지도 시마타니 야소야가 농민들로부터 수탈한 벼를 건조 했던 장소다.
바로 50m 쯤 떨어진 곳에 시마타니 금고가 있다. 등록문화재 제182호로 등록된 일제 강점기 때 시마타니 야소야가 1920년대 지은 금고용 건물이다. 농장의 각종 서류 와 현금을 보관하고 불법으로 수집한 수많은 보물을 보관한 창고다. 3층 콘크리트 건물로 입구에는 철제 금고문이 있고, 창문은 쇠창살로 이중 장금이 되어 있다. 해방이 되어 일본으로 반출 하지 못하고, 중앙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오층석탑과 금고를 돌아보면 일본의 잔혹한 횡포와 수탈을 엿 볼 수 있다. 농토를 싼 값으로 매입하여 농민에게 소작을 주었다. 종처럼 부려 먹고 고분고분 말을 듣지 않으면 소작권을 빼앗다.
◇ 다음은 이영춘 가옥을 탐방 했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00호(2003. 10. 31. 지정) 군산시 개정동에 있으며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의 대 지구 구마모토가 지은 개인 별장이다. 이영춘 박사가 살면서 다다미방을 온돌방으로 개조하였으며 전체적인 틀은 그대로 유지되어 있다. 이 건물은 뛰어난 건축양식을 보여 주고 있다. 외부 형태는 유럽 양식을 띄고 있으며 평면 구조는 일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양식의 응접실과 한식의 온돌방이 결합된 한식, 양식, 일본식의 복합된 건축 양식을 보여 주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 군산에서 대규모 농장을 경영하던 일본인 구마모토 리헤이가 1920년대 지은 별장 주택이다. 건축 당시 총독부 관저와 비슷한 건축비를 들여 지은 별장이다. 일 년에 봄철과 추수철에 농장을 방문할 때 임시거처로 사용 했다. 해방 후 우리나라 농촌보건위생의 선구자인 이영춘 박사가 거주하며 이영춘 가옥이라 불리게 되었다. 아름다운 건물 외관으로 인해 빙점, 모래시계, 야인시대 등 영화 드라마의 찰영 장소가 되기도 했다.
이 건물은 일제 강점기 때의 토지 수탈의 실상을 보여 주는 역사적 상징적인 건물이다. 해방 후에는 농촌 보건 위생의 선구자 쌍천(雙泉) 이영춘 박사가 이용했다는 의료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 구암동에 있는 3.1운동 전시관을 탐방했다. 구암교회는 군산의 독립운동사와 근대교육사업에 큰 발자취를 남긴 곳이다. 구암유치원, 알락소학교(현 구암초등학교), 3.1 운동의 주역인 영명학교(현 제일중.고등학교), 멜볼딘여학교(현 영광중.고등학교-미국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진 학교)를 중심으로 우리의 독립의지를 알린 군산지역 3.1운동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많은 사진들이 전시 되어 있다. 특히 소여물을 써는 작두로 독립 운동가들의 목을 베는 장면은 일본인의 잔인성을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 군산내항 부잔교(뜬다리)는 서해안의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하여 물 수위에 따라 다리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도록 건설하였다. 일본은 곡창지대에서 생산 된 쌀을 수탈하여 효과적으로 실어가기 위해 부잔교를 만들고, 대형 창고, 도로를 포장하고, 철도를 건설하였다. 일제 강점기 당시 수탈 현장을 말해 주고 있다.
◇ 동국사는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일본식 사찰이다. 1913년 일본 강점기 때 일본인 승려 우치다(內田)에 의해 ‘금강선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된 동국사는 한국의 전통 사찰과는 다른 양식을 띠고 있다. 주요 건물로 대웅전, 요사체, 종각 등이 남아 있다. 8.15 광복 후 김남곡 스님이 동국사로 사찰 이름을 바꿔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 24교구인 선운사의 말사이다. 대웅전은 2003년에 등록문화재 제 64호로 지정 되었다. 이 사찰을 지을 때 모든 건축 자제를 일본에서 들여와 공사를 하였다고 한다.
◇ 근대 역사박물관을 찾았다. 1층은 해양 물류 박물관으로 꾸며 있다. 번창 했던 군산의 과거를 확인하고 현재와 미래를 열어 가는 공간이다. 국제무역항, 삶과 문화, 해상유통의 중심, 해상유통의 전성기, 현대근대의 무역, 바다와 문화로 구성 되어 있다. 영상을 배치하여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고 있었다. 2층은 기증전시실로 꾸몄다. 개인이나 단체가 소장하고 있던 유물을 기증 받아 그 뜻을 기리기 위해 만든 공간이다. 3층은 근대 생활관으로 꾸며졌다. 일제의 강압적 통제 속에서도 굽히지 않고 치열한 삶을 살았던 군산 사람들의 모습을 재현한 공간이다. 근대 생활관은 도시의 역사, 수탈의 현장, 서민들의 삶, 저항과 삶, 근대 건축물, 탁본 체험으로 구성 되어 있다. 그리고 기획 전시실은 다양한 테마 전시를 위해 전시물을 교체 하여 박물관 방문객들에게 꾸준한 관심을 유도 하고 있다.
◇ 시간에 쫓겨 더 많은 문화재를 답사하지 못했다. 특히 채만식 문학관을 답사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채만식 선생은 1902년에 태어나 중앙고보를 거쳐 일본 와세다 대학 예과에서 수학했다. 1924년에 조선 문단에 발표된 ‘새 길로’로 문단에 등단하였다. 장편 소설 ‘인형의 집을 찾아서’를 조선일보에 연재 하여 작가로써 입신을 하였다.
군산은 근대문화 중심도시로 발전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군산은 중국과 교류가 활발 해 지고 새만금 사업이 완성되면 그 어느 도시 보시보다도 활기 넘치는 도시가 되리라 기대 한다. 회원들과 함께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 의미 있는 하루가 되었다. 김현아 사무국장님과 직원들의 노고에 감사하고 큰 박수를 보낸다.
(글쓴이 수필작가)
첫댓글 근대문화유산 군산편을 잘 읽었습니다.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