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함께 가는 그 새끼!
솔향 남상선/수필가
여느 때처럼 카톡 자료를 130여 통이나 보냈다. 일과가 바로 카톡 보내는 걸로 시작되었다.
시간 소요가 너무 많아‘이거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고민도 했으나 지금은 즐기는 생활이 되었다. 친구 지인 제자들한테 보내는 카톡 자료가 130통, 화답으로 오는 자료가 5-6통 정도다. 주변에서는 내가 보내는 자료가 너무 좋다고 하는 분도 꽤 있는 편이다. 그 바람에 조금은 즐겁고 어쭙잖은 자위의 감정에 빠져 본 때도 있었다. 마침 카톡에 연인 사이에 오가는 편지 얘기가 있었다. 감동이 됐던지 70년대 후반에 있었던 일화 한 편이 생각났다. 안타깝기가 남 얘기 같지가 않았다. 세상에 비밀은 없는 것이다.‘쉬쉬!’했던‘처녀와 우편 배달부의 결혼 얘기’가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지금부터 그 얘기를 좀 해보겠다.
나는 대전여고에서 재직할 때 대동에서 살았다. 대동 인근엔 K라는 처녀 하나가 살고 있었다. 처녀는 펜팔로 사귄 남자가 하나 있었다. 남자는 총각인데 대구에 살고 있었다. 총각은 처녀를 많이 사랑했다. 하지만 둘은 직장 관계로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만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총각은 처녀에게 사랑의 편지를 보냈다. 자그만치 2년 동안에 400통이 넘는 편지를 보냈다. 대단한 열정이었다. 드디어 2년 후에 처녀는 결혼을 했다. 남자는 누구였을까? 당연히 400통의 편지를 보낸 그 총각으로 생각했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편지를 2년 동안 무려 400번이나 배달한 우편배달부였다. 이것은 편지로 사랑을 고백하기보다는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 하겠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입장에서 총각의 심사를 헤아리다 보니 이태호의 명곡 ‘간대요 글쎄’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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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 한대요 가야 한 대요. 이 한잔 커피를 마시고 나면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 대요. 자기밖에 모르도록 모르도록 만들어 놓고.
남의 사람되려고 간대요 글쎄. 남의 사람되려고 간대요 글쎄.
싸늘한 커피 잔에 이별을 남기고 돌아가야 한 대요.
간대요 글쎄, 간대요.글쎄, 이 한잔 커피를 마시고 나면
타인으로 돌아가야 한 대요 자기밖에 모르도록 모르도록 만들어 놓고
남의 사람이 되려고 간대요 글쎄 남의 사람이 되려고 간대요 글쎄.
텅 빈 커피 잔에 눈물을 남기고 글쎄 가야 한 대요 -<간대요 글쎄/이태호>- 」
자기밖에 모르도록 만들어 놓고.남의 여자가 되려고 떠나는 여인!
싸늘한 커피 잔에 이별을 남기고 가야만 하는 여인, 생각만 해도 피가 거꾸로 흐를 일이다.
‘그녀와 함께 가는 그 새끼! ’
400통이나 편지를 쓸 정도 마음을 빼앗아 간 그 여인이 지금은 우편배달부의 아내가 되어 함께 걷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면 어떤 생각이 들었겠는가!
심한 저주, 원망, 쌍욕, 그 어떤 표현으로도 안 되었으리라.
여기 씌어진 ‘새끼!’가 바로 그런 단어라 하겠다.
자주 만나지 않고 편지만 400통 보낸 남자보다는,400번이나 만난 우편배달부가 결혼에 골인한 것이다. 우리 속담에 ‘멀리 있는 친척보다 가까이에 있는 이웃이 낫다’라는 말이 있다. 친척도 친구도 오랫동안 만나지 않게 되면 서먹서먹해진다. 안 보면 마음도 멀어지고 곧 잊혀지기 마련이다. 영어에 ‘아웃 어브 사이트, 아웃 어브 마인드 (Out of sight, out of mind)’ 란 말도 있지 않은가! 사랑하는 사이라 한다면 가끔씩이라도 만나야 애정도 우정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한자성어에 축계망리(逐鷄望籬)란 ))는 말이 있다. 우리 속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기>와 통하는 말이라 하겠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처녀라면 한 번 만나지도 않고 편지만 400통 써서야 되겠는가!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관주위보:貫珠爲寶)란 말도 있지 않던가!
사랑한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편지만 썼으니 서 말 구슬을 께어 보지도 못하고 보배를 놓친 격이 아니겠는가?
골키퍼가 있어도 방심하면 골은 들어가는 것이다.
총각은 처녀만 믿고 너무 소홀히 하여 처녀는 남의 여자가 된 것이 아니겠는가!
처녀가 총각의 아내라고 혼인 신고라도 한 사이였던가? 아니면, 하늘의 점지라도 있었던가?
그 후에 총각은 충격이 컸던지 삶을 비관하고 스님이 되려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녀와 함께 가는 그 새끼! ’
저주, 원망, 복수심의 화신 청년이여!
스님이 되기 전에
헬렌 켈러의 명언
<교육의 최고의 성과는 관용이다>를 새기고 살아라.
아니, 토마스 풀러의 말
<가장 나쁜 사람은 용서를 모르는 사람이다.>를 품고 살아라.
첫댓글 정말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었군요. 안타깝습니다.
사랑은 마음대로 되는게 아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