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 4일차
눈을 떠보니 5시가 안되었다. 창밖은 조금 어두웠다. 더 자도 되는 시간이지만, 다시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일어났다. 답사에 오면 밤에는 많이 자야 5시간, 적게 잘 때는 2~3시간 잠을 자는 것 같다. 낮에 버스에서 조금씩 졸기 때문인지, 아니면 긴장해서 인지, 밤에 깊게 잠을 자지 못한다. 어저께 못 썼던 하루의 일기를 쓰고 아내와 통화한 후에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다가, 6시 45분경에 1층에 내려왔더니 가이드가 하는 말이 백두산을 답사하기가 어렵게 되었다라고 얘기한다.
어제부터 백두산 답사를 못한 팀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설마했는데 눈이 와서 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폐쇄되었단다. 다만 해발 1700~1800m에 위치한 금강대협곡은 관람이 가능하단다.
고민을 해야 했다. 짐을 차에 넣고, 먼저 식사부터 했다. 출발 때까지 빨리 결론을 해야 한다. 백두산에 있는 호텔 아침 메뉴는 많이 부실했다. 갖고 있던 컵라면 4개를 털어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나눠 먹었다. 빨리 식사를 하고 가이드에게 혹시 유하현 나통산성으로 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금강대협곡을 보고 나통산성까지 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에 가이드는 이것저것 알아보더니, 우선 비용이 들고 나통산성은 유원지로 개발되어 오후 4시에 입장을 마감하는데 우리가 4시 전에 도착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렇다고 나통산성을 보기 위해 금강대협곡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본럐 계획에 없는 나통산성을 포기하고, 오늘 밤에 묵게 될 통화시에 있는 만발발자 유적을 보기로 했다.
호텔에서 다른 한국인팀을 만났다. 그들은 어제 백두산 북파 방면으로 오르려고 했는데 날씨 탓에 오르지 못하고 오늘 서파로 왔는데 또 다시 오르지 못하게 되어 온천으로 방향을 바꾸었다고 하였다.
지금까지 백두산을 10여번이나 올랐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별로 다 보았고, 북파, 서파 두 군데로 다 올랐지만, 이번처럼 백두산에 오르지 못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중국이 등반객의 안전을 위해 백두산 정상으로 오르는 차를 운행하지 않는 것은 뭐라고 할 수 없었다. 중국이 자연 보호, 안전, 위생 이런 면에서 예전과 달리 많이 신경을 쓰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 점에서 수긍이 되었다. 결국 금강대협곡만 보고 내려와서, 송강하에서 식사를 하고 예정보다 일찍 통화시로 가기로 했다. 백두산 입구에서 표를 내고 입장했다. 이때 여권을 보여줘야 했다.
백두산에서만 운행하는 차를 타고 금강대협곡으로 갔다. 금강대협곡은 이번이 4번째다. 볼 때마다 장엄하고 대단하다. 무엇보다 금강대협곡 주변의 숲길을 걷는 것이 또 하나의 경험이다. 잣나무, 자작나무 등 침엽수가 울창한 숲에는 다람쥐, 새 등은 여러 동물들이 산다. 작은 나뭇가지와 이끼까지 많은 생물들이 서식하기 좋은 숲을 지금 사람들은 나무로 만든 인공다리 위를 걷고 있다. 하지만 내 머리 속에는 이렇게 깊은 숲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를 떠올려지고 있었다. 최근 나의 가장 큰 화두인 숲과 인간의 삶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백두산 숲이었다. 약 1시간 가까이 숲길과 금강대협곡을 보며 걸었다.
금강대협곡을 마치며 내려오는 버스에서 백두산 정상이 보였다. 짙은 안개와 구름 사이로 눈 덮힌 산의 모습이 보였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호텔이 있는 송강하진으로 내려갔다. 본래 예정했던 백두산 휴게소에서 산중 비빔밥을 먹으려고 했던 것을 포기하고 산 아래에 어제 저녁을 먹었던 송강하진 식당에서 점심을 다시 한 번 먹게 되었다. 점심을 먹고, 버스를 타고 통화까지 약 3시간 반을 달렸다.
2시간 쯤 지나서 강원(江源)이란 휴게소에 들렀다. 주차장은 엄청 넓었고, 상점도 크기는 컸지만, 물건은 동네 가게만큼도 없었고, 종업원도 상점안에서 식사를 하고 손님 맞을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다. 손님도 적어서 고속도로 휴게소라고 상상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중국의 전부는 아니다. 강원은 백산시에 소속된 곳으로, 중국의 변방 중의 변방이니까.
다시 50분을 더 달려서 통화시에 들어왔고, 통화시에 들어와서 만발발자 유적을 보았다. 함께 답사를 한 김용규 선배의 버킷리스트라고 했던 곳이고, 나도 한번은 가고 싶은 곳이었다. 하지만 박물관을 만들려는 계획이 있었는데 아직 개방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유적지에 가보아야 별로 볼 것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이번 답사에서 가지 않으려고 했던 곳이었다. 하지만 백두산 천지를 볼 수 없게 되어 시간이 남았기 때문에, 만발발자 유적을 보게 되었다. 만발발자 유적은 거북 모양처럼 생겼다. 그런데 하필 거북 등에 해당하는 해발 100m 남짓한 산을 올랐다. 이곳에서 유물이 발견되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유적발굴 현장을 다 덮어두어서, 어디서 발굴되었는지 알기 어려웠다. 결국 반대방향으로 내려오니 아래에 만발발자 유적 표지판이 있었고, 연못가에 만발발자 유적에 대한 안내판도 있었다. 안내판에는 신석기 시대부터 명나라 시대까지 이곳에서 발견된 유물 사진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만발발자 유적지는 고구려 선주민의 생활터전이었다. 고구려 관련 유적지로 주목받는 곳이다. 정경희 교수는 이곳에서 발견된 제단 유적을 홍산문화, 백두산 문화와 연관지어 해석하고 있다. 그의 책을 읽어보기는 했지만, 조급하게 단정 짓는다는 느낌이 들어 가능성은 인정하지만, 쉽게 동의하기는 어려웠다. 안내판 설명을 마치고 귀두부분에 해당되는 곳에 올랐다. 유적을 발굴했던 흔적이 보이는 곳이 정상부분에 있었다.
만발발자 유적은 통화시내를 가로지르는 혼강변에 위치하고 있다. 혼강 하류에는 환인현이 있다. 『삼국사기』 기록에 맞추어 보면, 이곳은 고구려와 한때 자웅을 겨루었던 송양왕의 비류국의 터전이 될 것이다. 만발발자 유적은 압록강 중류 유역에 고구려 건국 이전부터 중요한 세력이 자리잡았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발견된 유물들을 제대로 보고 싶어 만발발자 박물관이 있다면 보고 싶었다. 그런데 연못 옆에 박물관 건물이 있어 가보았다. 그런데 기대했던 만발발자 박물관이 아니라, 통화시 만족문화 전시관이었다. 만주족의 토템 기둥을 만들어 옆에 세워놓았다. 현지시간 5시가 넘었기 때문에 전시관은 물론 문을 닫았다. 만발발자 유적지의 아쉬움을 남기고 식사를 하러 다시 버스를 탔다.
통화시내를 지나가는 길에 창밖을 보니 강변 방향으로 외벽에 온도계를 표시한 건물이 유독 눈에 띄였다. 참신한 아이디어라고 생각되었다. 확실히 눈에 들어오는 건물이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한림원 상무빈관으로 곳으로 샤브샤브 집이었다. 한국에도 있는 중국식 샤브샤브집인데, 개인이 소스를 처음부터 만들게 한 것이 특이했다. 소고기, 양고기를 비롯해 각종 채소와 버섯, 어묵 등을 탕에 넣어 끌인 후 소스에 찍어 먹는 음식이다. 탕은 개인별로 하나씩 주어졌고, 각자의 취향대로 무제한 먹을 수가 있었다. 매우 만족스러운 식사였는지 술도 곁들이면서 식사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식사를 마치고 7시 40분 호텔에 투숙했다. 통화역 바로 앞에 있는 전계주점(全季酒店)은 전국적 체인방을 가진 호텔이라서, 자기들이 구축한 네트워크에 가입해야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다. 이 점이 몹시 불편했지만, 호텔 1층에는 빨래방도 있고 작지만 매우 깔끔했다. 다만 객실이 3층이면 식당이 있는 1층과 3층만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있고, 다른 층은 갈 수가 없게 했다.
오늘 저녁에는 내가 고구려와 숲에 대해 강의를 하겠다고 했다. 2일째 날과 달리 반드시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 모임이었다. 이번 답사에서 고구려인이 살던 땅을 둘러보고 있는데, 고구려 당시에 가장 중요한 생태환경이 숲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강의를 하게 되었다. 박삼수, 한순희님과 함께 호텔 밖에 나가 맥주 6병, 백주 1명, 콜라 8명, 과자 4개, 노가리 1개를 90위안에 사가지고 왔다. 맥주 500ml, 콜라 355ml 각 1병이 우리돈 550원 정도다. 콜라 가격은 1998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2.5~3위안 정도에 사먹는 것 같다. 입장료, 식당가격은 크게 올랐지만, 콜라가격만큼은 변함이 없다. 맥주도 칭따오 정도를 제외하면 3~4위안 같은 가격에 샀다. 물가가 변함없는 이유가 궁금하다.
저녁 9시 내방에 10분이 오셨다. 본래 숲과 한국사 강의만 하려고 했는데, 오늘 점심 때 이야기가 나온 여성사 강의까지 해버렸다. 노트북을 가져갔고, 예전에 했던 강의 ppt가 있었기 때문에 강의는 문제가 없었지만, 밤 늦게 길게 할 수는 없어서 요점을 중심으로 각 강의를 1시간 안에 끝냈다. 여성사 강의 후에는 몇몇 분이 느낀 점 등을 말하기도 했다. 쉬는 시간, 먹고 정리하는 시간까지 12시에 모임이 끝났다. 함께 공부하고 이야기하는 모임이 늘 좋다. 일기를 쓰고, 1시 경 잠에 들었다.
첫댓글 저도 천지모습을 기대했는데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