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짙은 안개와 높은 습도...폭염 경보
☞ 산행거리: 도상거리 25.2km + 들머리 1.1km / 10시간 3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장유사-신낙남정맥(?)갈림길-용지봉-암봉-조망봉-장유사 갈림길-522.4m봉-쉼터
무명봉-쉼터-임도-돌탑-502.4m봉-안부-암봉-장유체육공원 갈림길-473.2m봉
능동마을 갈림길-갈림길-NO5송전탑-갈림길-시멘트 도로-냉정 배수지
전경부대 입구-냉정고개-1,042번 지방도 지하차도-냉정마을 버스 정류장
이동통신탑-NO127송전탑-140.6m봉-남해고속도로 암거-국악연수원 갈림길
원오추모공원-밀양박공 묘-단고개?-김해스카이힐C.C 클럽하우스-관리동
N06송전탑-국악원 갈림길-시멘트 도로-276.2m봉-보현행원 갈림길-갈림길
338.1m봉-불티재-394.7m봉-무명봉-내삼저수지 갈림길-안부-332.9m봉-안부
안부-NO16송전탑-황새봉-내삼폭포 갈림길-덕암 갈림길-안부-고령마을 갈림길
갈림길-무명봉-김해1터널 위-당고개-김해추모의 집 관리동-누릉내미고개
공터-무명봉-376.1m봉-쇠금산-안부-무명봉-까막골재-낙원공원묘지 마트
낙원공원묘지 정문-272.0m봉-분성허공 묘-납골묘-갈림길-삼거리-237.9m봉
무명봉-망천고개
☞ 소 재 지: 경남 창원시 성산구 불모산동 / 김해시 대청동, 장유동, 진례면
주촌면, 한림면
올해는 유난히도 장마철이 길다...구라청(기상청)의 예보로는 49일째라나 뭐라나
당체 이 기관의 일기예보를 믿을 수 있어야제...오죽하면 젊은 친구들은 구라청의
예보를 믿을수 없어 외국의 기상청 앱을 다운받아 사용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참으로 창피하고 뭔 짓거리인지도 모르겠다...그런데도 정신을 못 차리고 남 탓만
하고 있으니...
여기저기 벌여논 지맥길이 수도 없이 많다...한번만 가면 끝나는 곳도 여러 곳이고
첫 구간을 하고 발걸음을 못한 지맥길이 많은데, 대체적으로 경북 북부지역과
충북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이곳은 이번주에도 계속 비가 온다고 한다.
그렇다고 구라청의 예보를 아주 무시할 수도 없다.
이번주는 일도 좀 바쁘고, 토요일과 임시 공휴일인 월요일에도 고객과의
상담이 있다...이러다가는 지맥길을 운제 끝낼지 모를것 같다.
일기예보를 보니 중부 이북지역은 주말까지 계속 장맛비가 이어진다고 하지만
남부지방은 비가 오지 않는다고 예보가 되어 있어 늘 맘속에 담고있는
화포 동(무척)지맥 첫 구간을 걸어보기로 하고 밤 11시 넘어 집을 나선다
화포 동(무척)지맥 개념도
무척지맥(無隻枝脈)은
낙남정맥의 용지봉(△743m)에서 북동쪽으로 분기하여 △471.3m봉, 장고개, 황새봉(△393.1m), 당고개,
금음산(△376.1m), 여운리고개, 안산(x252m), 무척산(△702.2m), 비암봉(x350m)을 거쳐 낙동강/밀양강
합수점인 김해 창암나루터까지 이어진 도상거리 38.7 km인 산줄기를 말하는데 이것에 대한 의견도 많다
낙남정맥의 용지봉에 이르러 남.북으로 갈라진 두갈래의 산줄기에 대해「산경표」와 「신산경표」는
해석을 각각 달리하고 있다.
「산경표」에 의하면 낙남정맥은 용지봉에서 황새봉, 금음산을 거쳐 여운리고개를 지나 신어산,
동신어산을 지나 낙동강 고암나루터로 이어진 산줄기 라고 하였다.
그런데,「신산경표」(박성태 著)에 의하면 낙남정맥은 용지봉에서 남쪽의 불모산, 화산, 굴암산 보개산으로
이어가는 대신에, 용지봉에서 북동쪽의 황새봉, 여운리고개 에서 무척산을 거쳐 창암나루터로 이어진
산줄기를 "무척지맥"으로 명명 하였고,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화포천 동쪽의 산줄기라하여
화포동 지맥이라고 부르며 약 44.5km의 거리를 말하는데 합수점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지맥의 끝점을 볼 때, 신산경표의 사명산은 양강의 합수점에서 조금 벗어나 있으므로
1. 사명산 전 △244.2봉에서 서쪽으로 도요고개를 넘어 창암나루로 내려서면 영축지맥의 맞은편이 되고
2. 무척산에서 서쪽 말티고개로 내려선 다음, 346.5봉~작약산(377.8m)~213.9봉을 거쳐 마사굴로 내려서면
건너편 비슬지맥의 끝점을 마주보며, 양강의 합수점과 가장 근접할 것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출처: https://hansemm.tistory.com/23 [조은산]
그래서 일부 산꾼들은 산경표상의 낙남지맥에 해당하는 용지봉에서 영운리고개까지의
화포 동(무척)지맥을 걷는 맥꾼들은 용지봉에서 영운리고개까지 낙남정맥이 겹쳐진다고하여
이 구간을 생략하고 영운리 고개에서 합수점까지만 산행을 하는데, 범여도 2010년 3월에
낙남정맥이라 생각하고 이 구간을 걸었지만 다시 걸어보기로 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 경부발 → 김해 장유행 심야고속 버스표
낮에 일이 바빴다...현장 2곳을 다니면서 낼 내가 없으니 차질없이 일을 마무리 하라고
책임자에게 부탁을 하고 늦은 시간에 집에와서 베낭을 챙겨 집을 나서니 식구들은 아예 말도 안한다
어이가 없는지 ‘닭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말린다고 해서 안 갈 사람도 아니고...
유일하게 내가 눈치보는 아들은 운동을 갔는지 안 보인다...20분만 터미널에 도착한다
23시 50분 장유행 심야고속버스
서울에서 김해 장유까지 4시간 50분 소요가 된다고 한다
정시에 출발한 버스는 중부내륙고속도로 선산 휴게소에 들려서 10분 정차하다가
다시 김해로 향하는데 예상보다 훨씬 빨리 왔는지 4시간 05분만에 장유 정류장에 도착한다
장유고속버스 정유장(03:55)
원래 계획은 이곳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날이 밝은 다음에 장유사로 향하려 했는데
이곳에 내리니 아침을 해결할 식당이 보이지 않는다...도로를 건너 구시가지를 가도
식당은 보이지 않고 20분정도 식당을 찾아 헤매다가 허탕을 친다
이곳에서 아침을 해결할 요량으로 아침을 준비하지 않았고, 간식으로 샌드위치 하나 뿐인데...
이곳에서 무작정 기다릴 수 없어 택시를 타고 장유사로 향한다
장유환승장 버스 시간표
김해시 장유((長有)는 오랜 역사의 향기가 깃들어 있는 고장으로 가락국의 시조인 수로왕의 처남 허보옥이
허왕후를 따라 이 나라에 와서 이곳 장유산에 절을 세우고 오랫동안 머물러 돌아가지 않았다가 입적하시니
장유불, 후세에 장유화상(長遊和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지금 대청리 장유사의 경내에 사리탑이 있고 그 연유로 장유촌의 이름이 생기게 되었고, 유하촌을
유지앵소(버드나무 가지에 있는 꾀꼬리 집)의 명당 자리가 있기 때문에 버등으로 불렀고, 능동마을은
가락국 어느 임금의 능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능동의 일부는 신라 말기부터 향, 소, 부곡이라는 특수부락의 하나로 절미향이라고 불렀던 곳이다.
이보다 앞서 신석기시대부터 철기시대 초기에 걸친 유적인 수가리 가동마을과 유하리 하손마을은
이 고장 서인들의 주거지(집터)이며 청동기시대 유적으로 무계리의 지석묘(고인돌)는 오랜 역사를
말해주고 있는 곳으로 순조 10년(1810년)에는 유하면(柳下面)이 되었다가 고종 16년(1879년) 다시
유등야면으로 돌아갔으며, 고종22년(1885년) 지금의 이름인 장유면(長有面)으로 개칭 되었다.
고종 25년(1888년)에는 장유면8개 리(부곡, 유하, 내덕, 무계, 대청, 삼문, 신문, 관동)와 수남면 4개 리
(율하, 장유, 응달, 수가)로나누었다가 다시 1914년 합병되어 오늘의 장유면이 되었다.
일제시대에는 김해서부의 중심지로서 버스노선과 우편국, 금융조합 등이 있었고 신문장터가 물자
집산지의 역할을 해 왔었다. 지금은 장유 중앙을 관통하는 남해고속도로와 최근 창원터널이 개통되면서
부산, 김해, 창원, 마산의 한가운데 위치하며 택지개발과 경상남도 복합유통단지 설치 등 여러 가지
대규모 신도시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고장이다
버스 정류장 앞 지하차도 위에는 가야왕도 조형물이 보인다
이곳 김해는 삼한 시대, 낙동강 하류 유역에 있던 여섯 가야중 하나인 금관 가야의 본거지이다
육가야(六伽倻)란 금관가야(金官伽倻:김해), 대가야(大伽倻:경북 상주), 아라가야(阿羅伽倻:경남 함안),
고령가야(古寧伽倻:경북 고령), 소가야(小伽倻:경남 고성), 성산가야(星山伽倻:경북 성주)가 이에 해당한다.
금관가야는 기원 전후 시기부터 532년까지 경상남도 김해를 중심으로 존속했던 고대국가. 금관가야라는
명칭은 〈삼국유사〉 5가야조에 인용된 〈본조사략〉에 보이고 있으나, 〈삼국지〉 위지동이전에는
구야국으로, 왜인전에는 구야한국으로, 〈삼국사기〉에는 금관국으로 되어 있다.
〈가락국기〉에 의하면 시조는 수로왕이라 한다. 낙동강 하구 요지에 있어 한 때 번창했으나
532년 왕 김구해가 신라에 항복함으로써 멸망했다. 금관가야 왕실의 후손은 신라의 진골귀족으로
편입되어 신김씨계를 형성했다.
육가야 지도(다음 백과사전 인용)
이른 새벽이라 그런지 김해시 장유에는 택시도 잘 안보인다
간간히 만나는 빈 택시는 부산서 손님을 태우고 이곳까지 왔다가
부산으로 돌아가는 택시라 탈 수가 없다.
한참을 헤매다가 빈 택시를 잡아 장유사로 향하는데 미터기도 꺽지않고
장유사 천왕문 앞에 도착하더니 장유에서 이곳까지 통상적으로 15,000월을
받는다고 하면서 요금을 달라고 하는데 기분은 그리 썩 유쾌하지 않다.
미터요금이 그렇게 나오면 당연히 그리 주겠지만 시비하기 싫어 그냥 주고 내린다.
지난주에도 영축산에서 에덴밸리까지 걸으면서 양산 택시한테 설음을 많이 받았는데
하여간에 집 나오니 개고생이구먼...
5년전 진권아우와 둘이서 신낙정맥이란 걸 할 때도 김해시내에서 이곳까지
올 때 요금이 16,000원 나왔을 때 20,000원 달라고 해서 그리 유쾌하지 못했는데...
차에서 내리니 짙은 안개가 자욱하고 비가 온 뒤라서 그런지 습도가 상당히 높다
장유사 천왕문과 종루(16:28)
장유사 천왕문은 특이한 형태의 건축 양식으로 가람의 터가 그리 좁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1층은 천왕문이고 2층은 종루로 꾸며져 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인데 1층은 사천왕(四天王)을 모신 천왕문(天王門)이고
2층은 불전사물(佛殿四物)을 봉안한 종루(鐘樓)로 사용되고 있다
천왕문은 콘크리트 건물로 정면에는 사자를 타고 연꽃을 든 문수보살과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을, 후면에는 관세음, 대세지보살을 좌.우의 벽화로 그렸으며 내부에는 아귀를
밟은 채 앉아있는 사천왕상을 좌우로 2구씩 봉안하였다
2층 종루는 목조건물의 팔작지붕으로 묵서(墨書)로 된 상량문(上樑文)에 의하면
1998년 보월(寶月)스님에 의해 중건되었고, 범종, 운판, 목어, 법고 사물은 그때 봉안되었다
천왕문을 통과하면서 오늘의 무사 산행을 기원하며 사천왕상에게 예를 올리고 절집 마당에 들어선다
절집 마당에 들어서니 대웅전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대엿명의 신도와 주지스님인지 부전스님인지
모를 스님 한 분이 새벽 예불을 집전하고 계신다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
광명운대, 주변법계, 공양시방, 무량불.법.승 (중략)
오랫만에 들어보는 새벽예불의 오분향례가 참으로 정겹게만 들린다
대웅전으로 들어가서 새벽예불에 동참할까 생각도 했지만 괜스레 민폐가 될 것 같아서
어둠이 짙게 깔린 마당에서 선 채로 저두삼배의 예를 올리고 주위 두리번 거린다
안개는 점점 짙어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2015년 5월 31일 신낙남정맥 산행때의 사진
장유사(長遊寺)
김해시 대청동 용지봉 아래에 있는 절로서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인 범어사(梵魚寺)의 말사로
우리나라 불교의 남방 전래설을 입증하는 사찰로, 사찰측의 기록에 따르면 48년에 인도 아유타국의
태자이자 승려인 장유화상(長遊和尙)이 가락국 김수로왕의 왕후가 된 누이 허씨를 따라 이곳으로 와서
최초로 창건한 사찰이라고 한다.
장유사는 선찰(禪刹)로서 수많은 수행승들이 이곳에서 수행을 하였으며
또한 이곳에서 출가한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들을 장유화상이 직접 가르치시던
도량이며, 후에 하동소재 칠불암으로 가서 수행하기까지 주석하셨던 수행도량이다,
그러한 연유로 장유사와 칠불암은 각별한 인연으로 맺어저 있다,
장유사는 옛 가아국과 관련된 전설이 아주 많으며 김해 허씨의 시조가 되는
허왕후와 밀접한 사찰이며, 현재 사찰에는 장유화상 사리탑(경상남도 지방문화재
(제31호) 이 있으며 다만, 가락국 제8대 질지왕이 세운 장유화상사리탑은 현재에도 이 절에 남아
있는데, 임진왜란 때 왜구들이 탑을 헐어서 부장품을 훔쳐갔으며, 그 뒤 파손된 탑을 복원하였다.
조선시대 후기부터 민족항일기에 이르기까지 운파(雲坡)·영담(映潭)·우담(雨潭)·만허(萬虛) 등이
이 절에 머물면서 중건·중수하였으나 6·25전쟁 이후에 점차 퇴락하였다. 1980년부터 주지
화엄(華嚴)스님을 중심으로 중창불사를 시작하여 현재는 규모 있는 사찰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인법당(因法堂)과 관음전(觀音殿)·칠성각(七星閣), 장유선원이라는
편액이 붙어 있는 응향각(凝香閣), 요사채·객실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1호인 장유화상사리탑과 가락국장유화상기적비가 있다.
장유사의 연혁을 살펴보면 인도 아유타국의 태자였던 장유화상이 AD 48년에 허왕옥과
함께 가락국으로 와서 창건했다고 되어 있는데 정사에서는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파된 것을
4세기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보다 먼저 가락국에 인도의 남방불교가 전파된 것이다.
고구려, 신라, 백제 삼국을 중심으로 기술된 삼국의 불교전파 역사에는 가야의 불교전파 시기가 빠져 있다.
장유화상은 한반도 최초의 승려였고 김해의 고찰인 은하사와 동림사의 창건도 장유화상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니, 우리나라의 불교전파 시기가 기원후 1세기로 수정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장유사는 선찰로서 장유화상이 토굴을 짓고 수행했던 장소가 아직도 있다고 하며
지금도 수도승들이 토굴에서 수행하고 있으며 故 노무현 대통령이 이곳에서
16개월동안 사법고시 공부를 하면서 토굴생활을 한 곳이라기도 한 곳이란다
짙은 안개로 인해 뭐가 뭔지 볼 수가 없어서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용지봉으로 향한다
용지봉 오르는 입구에 있는 지장보살 좌상
천왕문 좌측으로 나와 용지봉으로 오르는 등로 우측에 커다란 지장보살 좌상이 있다
김해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보고 계시는 지장보살님은 육환장을 흔들면서 사바세계의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하러 애쓰시는 모습이다...산행을 시작하다(04:45)
최근의 장마로 인해 등로는 상당히 미끄러운데 거적을 깔아놓아 편하게 올라간다
신낙남정맥 갈림길(05:00)
장유사를 출발하여 0.4km 지난 시점에 신낙남정맥 갈림길에 도착한다
어둠속에 안개는 짙어지고 헤드렌턴이 무용지물 일 정도로 앞이 잘 안 보인다
그러나 등로는 뚜렸하다...높은 습도 탓인지 좌측 폐를 절개한 범여는 이런 날씨가 가장 힘이 든다
어둠속에 암봉을 지나고 잠시후에 평상이 나오면서 안개낀 용지봉 정상에 오른다
용지봉 정상 이정표
용지봉(龍池峰:744.7m:05:52)
경남 창원시 성산구 불모산동과 김해시 장유면 대청리에 걸쳐있는 봉우리로
북쪽으론 대암산과 이어지고 남쪽으론 불모산으로 이어지는 낙남정간의 갈림길이다
원래 명칭은 용제봉(龍祭峰)으로『여지도서(輿地圖書)』 김해도호부 단묘에
“용제봉은 김해도호부의 서쪽 불모산에 있으며, 50리이다. 기우단을 두었다.”고 하였다.
이로써 용제봉은 기우제(祈雨祭)와 관련하여 생성된 지명임을 알 수 있다.
이와 달리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에는 용제산(龍蹄山) 또는 용제봉(龍蹄峰으로 나온다.
제(祭)가 제(蹄)로 바뀐 배경은 알 수 없고 이에 대해 주민들은 ‘용제(龍祭)’와 ‘용제(龍蹄)’는
이름처럼 상이한 기원 설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용제(龍祭)는 무제와
관련되고, 용제(龍蹄)는 진례면 무송리 용소의 용 승천설화와 관련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용제봉이 지금의 이름인 용지봉으로 된 것은 자음 변이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용제봉은 야생화를 전문으로 찍으러 다니는 산꾼들에게 용지봉은 여름 야생화의 천국이다.
확 트인 산사면과 꽤 넓은 정상 주변에는 20여 종의 다양한 야생화가 자태를 뽐낸다.
계요등 까마중 자주꿩의다리 고추나물 오이풀 닭의장풀 쥐손이풀 며느리밥풀꽃
백리향 패랭이 마타리 금불초 등이 주로 눈에 띄는 대표적 야생화들이다.
용지봉이라고 새긴 정상석과 김해에서 세운 용제봉 유래비가 있고 정상의
동쪽 비탈에는 김해시에서 세운 용지정이란 누각이 있는데 한여름 계곡 산행지로도 빼놓을 수 없다.
가야 문화와 남방불교에 관심이 많은 사학도에게도 용지봉은 놓쳐선 안 될 필수 코스이다.
말발굽 모양의 용지봉 기슭에 둥지를 튼 장유사는 가락국 허왕후의 오빠 장유화상의
전설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낙남정맥의 논란의 중심에 선 용지봉
우리나라의 산줄기를 15개의 산줄기로 '족보' 형태의 도표로 정리한 여암 신경준(旅菴 申景濬, 1712~1781)의
조선광문회 본 산경표(山徑表)에 따르면, 한국의 산줄기는 백두대간을 주축으로 1개의
정간(正幹: 장백정간)과 13개의 정맥으로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연대·작자 미상의 「여지편람」의
산경표에는 1대간, 2 정간(正幹: 장백정간, 낙남정간), 12정맥으로 나누고 있지만, 그 맥은 동일하다.
낙남정간(맥)은 지리산 영신봉에서 시작해 섬진강과 낙동강 수계를 가르며 낙동강 하구에 이르는
도상거리 232km(580리)산줄기로 국토의 최남단을 떠받치는 주춧돌이다.
이 때문에 낙남정맥의 끝을 규정하는 것은 백두산에서 발원한 한반도의 산줄기가 국토를 동서로
양분하며 남으로 내달려 어느 지점에서 그 끝을 맺는가를 확정 짓는 문제라 할 수 있다.
산경표에서 낙남정맥을 기술한 부분을 보면, '지리산에서 시작한 산줄기가 창원 불모산
(지금의 용지봉까지 포함)을 지나 남쪽으로 분산(盆山)에 이르고 그 아래에 김해부 관아가 있다'고 돼 있다.
분산은 지금의 김해 북쪽 분성산을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논란의 불씨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산경표 전체를 관통하는 대원칙은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산은 스스로 물을 가르는 고개'는
'산은 물을 못 건너고 물은 산을 못 넘는다'는 뜻이다)'과 '주맥(主脈)은 반드시 바다에서 끝이 나야 한다'는
것인데, 분성산은 물과 연결되지 않아 산꾼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산경표의 원칙을 고수하려는 산꾼들은 분성산에서 동쪽으로 향하여 신어산을 넘어 동신어산
아래 매리 낙동강변을 그 끝으로 정하기에 이르렀다. 즉, 지리산 영신봉에서 시작해 남하하다
옥산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대곡산, 여항산, 무학산, 대암산, 용지봉을 지나 신어산에서
끝을 맺는 이 구간은 지난 1994년 한 등산전문지가 '산경표에 따른 낙남정맥'이라는 제하로
현장 답사하면서 국내 산꾼들 사이에서도 정설로 받아들여지게 되었고, 동신어산에는
「낙남정맥이 시작되는 곳」이라는 동판이 설치되면서 「낙남정맥의 끝이자 한반도 산줄기의 끝」
이라는 지위가 부여됐다.
그러나 10여 년 전부터 부산·경남지역 산꾼들을 중심으로 다른 주장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동신어산에서 매리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낙동강 유역으로 떨어지는 산줄기이기 때문에,
엄밀히 따져 주맥(主脈)은 바다에서 끝나야 한다는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 주장의 핵심이며,
게다가 용지봉에서 냉정고개-황새봉으로 방향을 틀면 장엄한 기세로 이어져 내려오던 낙남정맥의
기세가급격히 꺼져 버려 낙남정맥 종주에 나선 많은 산꾼들이 고개를 갸웃거리곤 했다.
이 때문에 일단의 산꾼들이 주목한 곳은 서낙동강 녹산수문이 위치한 봉화산이었는데, 1967년
완료된 대규모 매립공사로 현재의 해안선이 만들어지기 이전 봉화산이 위치한 서낙동강의 하구
녹산은 바다였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용지봉에서 북동쪽으로 가는 대신, 바다가 있는 남동쪽으로
방향을 틀어,불모산-화산-굴암산-너더리고개-두동고개-보배산(보개산)-장고개-봉화산을 지나
부산 강서구 녹산수문에 이르는 도상거리 24㎞의 구간을 일명 '낙남꼬리'로 하여 낙남정맥의
끝자락으로 새로 규정하고, 기존의 낙남정맥과 구분 짓기 위해 '신(新) 낙남정맥'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산줄기에는 700~800m에 이르는 고봉들이 많아 기존 코스에 비해 능선이 뚜렷하며, 산꾼들이
많이 찾는 인기산도 여럿 포함돼 있어 종주의 즐거움도 한결 낫다는 평가가 나기 시작하여 차츰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최근 들어서는 기존 낙남정맥을 완주한 뒤 '낙남정맥 꼬리'를 이어가는
코스 종주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신산경표의 저자 박성태님은 아예 '신낙남정맥'의 산줄기를 '낙남정맥'으로 바꾸어 명명하고,
용지봉에서 이어지는 기존의 낙남 산줄기를 '무척지맥'으로 바꾸어 규정하면서, 산줄기 마져도
신어산 서봉에서 동쪽의 동신어산 방향이 아니라, 북쪽 방향으로 나가 무척산을 거쳐 낙동강과
밀양강의 합수점으로 떨어지는 산줄기를 '무척지맥'으로 명명하고 있는데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화포천 동측의 산줄기라 하여 화포 동지맥이라 부른다
용제봉(龍祭峯)유래비
용제봉은 장유면과 진례면 그리고 창원시 불모산등에 걸쳐있는 산이며 한자어로 龍祭峯(용제봉),
龍蹄峯(용제봉), 龍池峯(용지봉)으로 여러 유래가 있다.
"龍祭峯"이란 비를 관장하는 용에게 기우제를 지내는 봉우리라고 하여 龍祭峯이라 명명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 祈雨壇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고, "龍蹄峯"은 진례 신안 무송의 龍沼에서
용이 승천하면서 잠깐 쉬었다 간 발자욱이 바위에 남아 있다고 하여 龍蹄峯으로 유래되고 있다.
"龍池峯"은 龍祭峯,龍蹄峯의 자음 "용제봉이 "용지봉"으로 변이된 것을 그렇게 차차 표기한 것으로
것으로 보여지며, 위의 여러 유래에서 보듯이 龍祭峯,龍蹄峯,龍池峯 모두 사용이 가능하다고 사료되며
어떤 地名을 사용하느냐 하는 것 보다 누구나 즐겨 찾는 용제봉이 될 수 있도록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10년전 낙남정맥길에 만났던 또다른 정상석은 보이지 않는다
용지봉 정상에서 3분정도 머물렀다가 용지정 아래로 내려선다
화포 동(무척)지맥의 첫 발을 내딛는다
짙은 안개로 인해 5년전에 걸었던 불모산(佛母山)은 분간조차 안 된다
용지봉 정상 아래에 있는 용지정의 모습
용지정에 걸려있는 편액
서서히 黎明이 시작된다...헤드렌턴을 벗어 베낭속에 넣는다
내리막길에는 예전에 없었던 가마니 같은것을 깔아놨다
토사 유출을 막기위한 조치인 모양이다
선답자들의 시그널을 만난다.
오늘도 짙은 안개가 앞을 가린다
2주전에 영남 알프스 능선, 영축산, 함박등, 채이등, 죽바우등,시살등, 오룡산, 염수봉 구간을
홀로 걸어면서 짙은 안개로 인해 깜깜히 산행을 했는데 오늘도 범여의 德이 모자람인가?
암봉(05:30)
조망봉(05:32)
조망봉에서 바라본 대청계곡은 짙은 안개로 아무것도 분간할 수가 없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장유사 갈림길(05:50)
맥길은 전경부대 방향으로 이어진다
완만한 오르막길
남부지방에서는 잘 볼수없는 잣나무 조림지를 지난다
522.4m봉(05:56)
좌측에 돌탑이 보이고 우측으로 꺽어져서 내려가는데 비에젖은 등로가 상당히 미끄럽다
쉼터(06:00)
가야할 502.4m봉 넘어로 해가 솟아 오르고...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막으로 오른다
무명봉(06:07)
다시 내리막길
쉼터(06:09)
쉼터 우측으로는 장유사로 이어지는 좁은 등로가 보인다
곧바로 차량이 다닐만큼 넓은 임도가 나온다
임도(06:10)
김해시 장유동 대청마을에서 진례면 신안리 평지마을을 잇는 임도이다
사각정자와 이정표가 있고 전경부대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쉼터가 있다
대청(大淸)마을은 냇물이 맑아서 대청리라 하였고, 마을 이름을 붙여 대청천이
되었으며, 대청리 일대에서는 발원지 이름을 따서 '잿점내'라고도 하였다
임도에 있는 이정표
새벽에서 장유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왔어야 하는데 식당을 찾지못해서
점심으로 가져온 샌드위치로 이곳에서 아침을 해결한다
아침식사(06:10~25)
날씨가 비가 온 이후라 그런지 엄청나게 후덥지근하고 바람한 점이 없다.
중부지방에는 계속 비가 온다는데 이곳은 비가 올 것 같지는 않다
산행시작 1시간 반이 조금 지난것 같은데 옷은 땀으로 인해 다 젖어 버렸고,
땀냄새 때문인지 산모기가 떼거지로 달라들어 물어대는 바람에 샌드위치를
먹는둥 마는둥 하다가 베낭을 메고 다시 길을 나선다
모기들이 얼마나 독하던지 모기 기피제를 몸뚱아리에 뿌려도 소용이 없다
오르막길로 오른 다음 능선에 올라서니 앙증맞은 돌탑이 보인다
돌탑(06:32)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등로에서 바라본 김해시 진례면 산본리(山本里)의 모습
마을 남쪽에 남쪽에 마봉산이 위치해 있고 산본천이 흐르며, 산본저수지가 있다.
용제봉 중턱에 용전 폭포가 있는데 자연마을로는 관동, 산본(산밑), 생법(성법, 용전) 등이 있다.
용제산 밑에 위치하였다고 하여 산밑 또는 산본이라고 이름 붙었으며, 관동은 산본리에서
제일가는 마을로 관장이라는 장이 있다고 한다.
생법은 산본 서쪽에 있는 마을로 뒤에 용제봉이 자리잡고 있다.
전답이 많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소나무가 멋있는 등로를 지나니 502.4m봉이 나온다
502.4m봉(06:35)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06:38)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암봉(06:39)
다시 조금전에 헤어진 등로로 내려선다
장유체육공원 갈림길(06:41)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걷는다
473.2m봉(06:43)
473.2m봉 삼각점(△김해301 / 1995재설)
등로는 점점 좁아지고...
능동(陵洞)마을 갈림길(06:44)
장유동에 속해있는 능동마을은 가락국 어느 임금의 능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능동의 일부는 신라 말기부터 향, 소, 부곡이라는 특수부락의 하나로 절미향이라고 불렀던 곳이다.
송전탑을 지나는데 번호판이 반대로 있어서 그냥 통과~~~
갈림길(06:47)
등로가 뚜렸한 우측 능선을 버리고 좌측으로 꺽어져야 하는데
독도에 상당히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무심코 걷다보면 대형알바다
알프스 대장님의 흔적인가?
잠시 후 갑자기 등로가 사라진다
잡목을 헤치고 내려서니 선답자들의 흔적이 보이고 우측에 송전탑이 있다
NO5 / NO5송전탑(06:50)
송전탑을 내려서니 뚜렸한 등로가 나온다
갈림길(06:54)
뚜렸한 직진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무수하게 걸려있는 선답자들의 흔적
급경사로 내려가는데...
갑자기 등로가 사라진다
등로 좌측은 원시림을 방불케 한다
데크목 계단을 내려서는데 나무가 비에 젖었는지 상당히 미끄럽다
조심을 했는데 기어이 사고(?)를 당한다.
미끄러지면서 앞으로 꼬꾸라졌는데 4개월전에 동대문에서
35.000원주고 산 스틱 하나가 뿌려졌다...에공 아까운 거...
조심스럽게 내려오다가 2번을 더 넘어진다
힘들게 데크목 계단을 지나고...
편안한 곳으로 내려선다
시멘트 도로(07:10)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간다
지나온 능선을 뒤돌아 본다
이른 새벽과는 달리 안개는 걷혔으나 이른 아침인데도 날씨가 장난이 아니다
오늘 이곳의 기온이 34도라 폭염 경보가 내린다고 하는데 걱정이 앞선다
기왕 이곳까지 왔으니 안 갈수도 없고...그래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하지 않았던가
사위질빵꽃(꽃말:비웃음)
나무 이름인 사위질빵에는 숨겨진 깊은 뜻이 있다고 한다.
질빵은 짐을 질 때 사용하는 멜빵을 말하므로 사위의 멜빵이 된다.
한편 비슷하게 생긴 덩굴로 할미밀망이 있는데, 할미질빵, 혹은 할미밀빵이라고도 부른다.
사위질빵은 덩굴이 가늘고 약하여 큰 짐을 옮기는 멜빵으로 부적합하고, 할미밀망은 덩굴이
굵고 튼튼하여 무거운 짐을 나르는 데 제격이다.
귀한 사위가 힘든 일을 하지 않도록 지게의 멜빵끈을 끊어지기 쉬운 사위질빵으로 만들어 조금씩
짐을 나를 수 있게 한 반면에 항상 들볶아대는 ‘얄미운 사람’인 시어머니에게는 튼튼한 할미질빵으로
멜빵끈을 만들어 골탕을 먹였다는 해석이다.
사위질빵은 전국 어디에서나 자라는 낙엽 덩굴 나무로 잎자루마다 잎이 세 개씩 달리는
3출엽이며 마주나기로 달리며, 갸름한 작은 잎은 끝이 뾰족하고 깊이 팬 톱니가 드문드문 있다.
가을까지 꽃이 피며 한 꽃에 암술과 수술이 같이 들어 있다. 열매가 익어 가면 작은 씨앗 끝에
흰 깃털이 호호백발 할머니의 머리카락처럼 짧게 밑으로 처진다. 여기에는 바람을 타고 멀리멀리
날아가서 ‘아들딸 낳고 잘 살라’는 선조들의 음덕이 배어 있다.
줄기는 한방에서 ‘여위(女萎)’라 하여 열이 날 때나 부종, 설사 등에 사용했다.
도로옆에 이쁘게 핀 겹삼잎국화가 이른 아침부터 산꾼을 유혹한다
겹삼잎국화(꽃말:충실한 기다림)
잎 모양이 삼(麻)잎과 비슷하게 생긴 삼잎 국화와 닮았지만 꽃이 겹으로 핀다고 해서
겹삼잎국화라고 부르면 또 다른 이름으로 키다리 국화라고도 한다
북아메리카 원산으로 화단에 관상용으로 심어 기르는 여러해살이풀로 줄기는 곧추서고
높이 1.5-2.0m, 분백색이 돌며, 뿌리잎은 5-7갈래로 갈라지며, 줄기잎은 3-5갈래로 갈라진다.
잎 가장자리는 톱니 모양이다. 꽃은 7-8월에 줄기와 가지 끝에 머리모양꽃차례가 1-3개씩
달리며, 황록색이며, 겹꽃이며, 어린잎은 식용이 가능하다
‘삼잎국화’와 달리 꽃잎이 만첩이다.
냉정배수지(07:16)
주위에는 감나무밭이 보인다...하기사 이곳이 진영단감으로 유명한 곳이 아니던가
단감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진영의 특산물로 진영단감의 유래는 1927년경
진영역장을 지낸 일본의 "요코자와"씨가 일본인 식물학자 요시다, 사토오, 히가미 등
세 사람이 단감의 보급을 위해 토질과 기후, 풍토 등을 연구 조사해 오던 중 이곳 진영의
토질과 산세 기후 등이 단감 재배에 최적지라고 판단하고 신용리에 약 100주를 식재한 것이
이 고장의 단감 재배의 근원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단감 생산량의 65% 정도를 경남지역에서 생산한다.
수도권 거래량의 80%가 경남단감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대다수의 단감 종류는
‘부유단감’이라고 한다. 특히 경남지역과 진영단감은 거의 모두 ‘부유단감’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라고 하며 이 ‘부유단감’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점령한 후 단감재배를
위한 적지를 찾는 과정에서 진영지역을 중심으로 재배하기 시작해서 ‘진영단감’이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이후 진영 지역 뿐 아니라 인근의 창원, 마산, 창녕, 진주, 의령 등으로 넓혀졌다.
사실 진영보다도 경남 인근의 창원 등의 타지역 생산량이 더 많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남단감의 절반가량의 브랜드가 ‘진영단감’으로 불릴 정도가 되었다.
사실 진영은 읍 정도의 소도시이다. 그런데도 이토록 유명해진 것은 단감의 시발지이기
때문에 그 브랜드를 그대로 가져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원래 우리나라 단감은 ‘서촌조생’,‘차랑’종이었는데 일제시대 ‘부유’종을 1910년대부터
키우기 시작해서 지금은 80% 정도가 ‘부유단감’이라고 한다.
전경부대 입구(07:17)
부대가 이사를 갔는지 정문은 폐허처럼 을씨년스럽게만 보인다
전경부대 입구의 현판
전경부대를 내려서니 맥꾼들의 산행기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김해축산이 보인다
냉정고개는 장유에서 진례와 진영으로 이어지는 1042번 지방도가 맥길을 짤라 먹었다.
무단횡단을 해보려 했지만 워낙 교통량이 많아 포기하고 우측으로 우회한다
이 고개는 현대사의 비극인 6.25전란 속에서도 직접 점령을 당한적이 없었던 김해 땅이건만..
전쟁의 소용돌이 휘말린 비극은 마찬가지로 피할 수야 없었던 이 고갯길..
남로당 보도연맹 사건의 유일한 재판이 있었던 슬픈 역사를 가진 고갯길이기도 한다
6.25 동란이 지난지가 70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이 나라의 지도자들은 자기들의
이익 추구를 위해 극명하게 좌.우로 갈라놓고 힘없는 民草들을 Populism으로 선동한다.
이 나라 지도자의 자기편들의 이익을 위한 狂氣는 언제쯤 멈출 것인가
70년도 넘은 이곳에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포플리즘에 희생당한 저 영혼들에게
어떻게 설명하야 하나...내일이 광복절인데 서울 한복판에서 보수든. 진보든 간에
고통받는 민초들은 아랑곳 않고 오직 자기 계파들의 이익을 위한 지랄발광을 하겠지
힘없는 민초들은 언제쯤 편안한 삶을 추구할 수 있을런지...
냉정고개(冷井峙:90m:07:19)
냉정고개(冷井峙)는 김해시 진례면 산본리와 주촌면 양동리 경계에 있는 고개로 김해시
장유에서 진례를 넘는 2차선 1042번 지방도인 구 도로와 신 도로가 나란히 지나가고 있다
냉정(冷井)마을은 옛날부터 김해에서 서부경남으로 가는 요지(要地)로서 장유면(長有面),
진례면(進禮面), 주촌면(酒村面)의 경계가 되는 마을로 지금은 남해고속도로 북부지선과
서부지선이 갈라지는 곳이기도 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에 의하면 냉천원(冷泉院)이 김해도호부에서
서쪽으로 30리에 있었으며,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냉천원이 김해도호부에서 서쪽으로
30리에 있었는데 생법역(省法驛)으로 옮겨 설치하였다고 한다.
냉천원이 있던 곳이 냉정마을인데, 지금은 ‘찬물등(嶝)’이라고 부른다.
옛날부터 이곳에 ‘찬물샘’이 있었기 때문에 벼슬아치나 여행객들을 위한 숙박시설을
설치하였고 마을이름의 유래가 되었던 곳이며 ‘찬물샘’은 전경부대 입구부근 계곡안에
‘정(井)’자 모양으로 쌓은 돌샘이었는데, 지금은 토사에 묻혀 그 흔적을 찿기 어렵다.
냉천원의 ‘천(泉)’과 냉정마을의 ‘정(井)’은 같은 뜻이기 때문에 어느 때인가부터 ‘냉천’ 대신에
‘냉정’으로 표기하고 있는 것이다. 2000년 9월 읍면 경계 조정으로 인하여 주촌 냉정과
장유 냉정으로 뉘어졌다.
직진으로 가면 냉정J.C가 나오고 맥길을 잇기 위해 1,042번 도로 굴다리를 통과한다
도로 우측에는 냉정마을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1.042번 지하차도(07:21)
냉정마을 버스 정류장(07:22)
1,042번 지방도 굴다리를 나오니 반대편에도 냉정마을 버스 정류장이 있다
이곳은 1,042번 구 도로인 셈인데 나처럼 화포 동(무척)지맥은 타는 산꾼은 없을 것이고
낙남정맥이라며 고암나루터로 향하는 산꾼들은 아주 주의해야 할 곳이다
이 지역 산악회들이야 당일 산행을 하면 문제가 없겠지만, 수도권이나 중부 이북지역에서
오는 산악회는 어차피 무박으로 올 것이고, 그렇다면 이 냉정고개가 들머리이자
날머리가 될터인데 이곳에서 원칙을 고집하지 말고 정류장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파란 지붕이 나오는 집앞 시멘트 도로를 따라가길 권한다
난 원칙대로 가고싶어 버스 정류장에서 직진하여 1,042번 구 도로를 따라서 간다
1,042번 구도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올라간다
뚜렸한 임도가 나오고...
이동통신탑(07:28)
넓은 임도를 따라서 올라간다
NO 127 / NO4 송전탑(07:32)
다시 넓은 임도를 따라서 올라간다
140.6m봉(△:07:37)
지형도상에는 140.6m봉이라 분명히 표기가 되어있고 삼각점이 있다고 한다
사실 나도 조금전 버스정류장에서 우측의 편안한 길로 가려했지만 이 봉우리가
눈 앞에 아련거려 이곳으로 왔다...그런데 아무것도 없고 맥꾼들의 흔적도 안 보인다
정상에는 묵묘 2기가만 보일 뿐 삼각점도 찾을 길이 없다
한참을 수색을 해도 찾을길이 없어 포기를 하고 우측의 내리막으로 향한다
우측의 능선으로 내려간다
반가운 선답자의 흔적...나만큼이나 독한 산꾼인 모양이다
근데 갑자기 등로가 사라지고 잡목의 강력한 저항을 받으며 길을 헤맨다
힘들게 내려서니 남해고속도로가 길을 막는다
무릇(꽃말:강한 자제력)
다년생 초본으로 인경이나 종자로 번식하며 전국적으로 분포하며 산 가장자리와 들이나 밭에서 자란다.
인경은 길이 2~3cm 정도로서 난상 구형이며 외피는 흑갈색이고 화경은 높이 25~50cm 정도이다.
선형의 잎은 길이 15~30cm, 너비 4~8mm 정도로 약간 두꺼우며 털이 없고 윤택이 있다.
7~8월에 개화하며 길이 12cm 정도의 총상꽃차례에 달리는 꽃은 아래에서부터 무한형으로 피고
6개의 꽃잎은 도피침형으로 연한 자주색이다.
삭과는 길이 5mm 정도의 도란상 구형이고 종자는 넓은 피침형이며 초지나 과수원에서 문제잡초가 된다.
꽃차례의 길이가 15~30cm 정도인 점이 ‘무스카리’와 다르다. 인경과 어린잎을 식용하고, 봄에 어린잎은
데쳐서 우려내고 초고추장이나 된장에 무쳐 먹는다. 새싹은 삶아 나물로 먹는다.
비늘줄기는 조려서 먹거나 데쳐서 조림을 한다. 인경이 엷은 껍질로 싸이고 화경에 잎이 없다.
관상식물로 심기도 한다.
하는 수 없이 감나무밭으로 올라간다
감나무밭을 힘들게 빠져 나오니 농막인듯한 비닐하우스가 보이고...
우측에는 조그만 저수지도 있다
감나무밭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간다
좌측에는 남해고속도로가 보이고...
닭의장풀(꽃말:순간의 즐거움)
외떡잎식물의 닭의장풀과에 속하는 한해살이풀로 원산지는 북아메리카, 아시아, 유럽이다.
약 100종이 있으며 주로 열대, 아열대 지역에서 자라고 크기는 약 15~50cm로 자란다.
줄기는 옆으로 뻗으면서 자라고 마디에서 새로운 뿌리가 나오기도 한다.
꽃은 7~8월에 나비와 비슷한 생김새로 피며, 6장의 꽃덮이조각 중 3장은 하얀색으로, 2장은 파란색으로,
나머지 1장은 하얀색이다. 번식력이 강한 식물이며, 식물 전체를 나물로 먹기도 하며 한방에서는
해열·해독·이뇨·당뇨병 치료에 쓰인다.
고속도로옆 포도밭 우측 너머로 조금전에 지나온 능선을 조망한다
남해고속도로 암거(07:58)
냉정고개 버스 정류장에서 우측으로 오면 2~3분이면 올 수 있는 거리를 35분이나 걸렸다
이런 걸 두고 ‘사서 개고생 한다고 했던가’...절대 따라서 하지 마시고 편하게 통과하셔요
남해고속도로를 통과하여 좌측으로 꺽어진다
도로 우측 전봇대에는 선답자들의 흔적이 보이고...
남해고속도로를 바라보면서 맥길을 이어간다
국악연수원 갈림길(08:03)
국악연수원이라고 했는데 아마도 무속인들의 푸닥거리를 가리키는 곳인 모양이다
이곳에서도 맥꾼들이 조심해야 할 구간이다...원 지맥길은 좌측으로 가야 맞지만
이곳도 고속도로와 롯데에서 운영하는 스카이힐 김해C.C가 맥길을 짤라먹고 있어
맥길의 큰 의미가 없으니 특히 무박 산행을 하면서 야간에 이곳을 통과하면
상당히 애를 먹는 곳이니 그냥 우회길로 올라가는게 좋을 듯 싶다
한꼬라지하는 범여는 직진으로 향한다
앞에 보이는 저 능선이 고속도로로 인해 끊어진 원 지맥길이다
시멘트 도로가 끊어진 곳에서 좌측으로 향한다
다시 좌측으로...
넓은 공터가 나오고...
원호추모공원(08:10)
원호추모공원 휀스옆으로 향한다
원오추모공원을 통과하고...
다시 숲속으로 들어간다
밀양박공 묘(08:18)
이른 아침인데도 더위가 장난이 아니다
반가워요
마루금에 복귀한다(08:24)
마루금에서 내려서니 골프장으로 가는 도로가 나온다
초반이지만 너무 덥워서 그런지 물이 엄청나게 먹힌다
1.5L짜리 수통이 거이 다 비워진다...가다가 보충할 수 있으리라
생각을 하고 우선 목이 마르니 먹을수 밖에 없다
도로가에 주저앉아 5분정도 휴식을 취한다
다시 골프장 도로를 따라서 올라간다...도로가 맥길이다
도로에서 바라본 김해시 진례면(進禮面)의 모습
조선조 예종(睿宗)때의 경상도지리지(1469)에 의하면 부서 진례촌(府西 進禮村)으로 나와 있었다.
가락국때 수로왕이 왕자를 진례성주(進禮城主)로 봉했다고 하고(三子許明) 통일신라말에는
김인광(金仁匡)이 진례성 제군사(諸軍事)가 되어 이곳을 지켰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청천면(菁川面)으로서 청내(晴川)라 속칭하였다.
진례면 열두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모두 청천(晴川)에 모여 북쪽으로 흐르기 때문에
'열두청내'라고 불렸으며 청천소모진(晴川召募鎭)은 7진관(鎭管)의 병마도호(兵馬都護)가
습열(習閱)하던 곳으로 지금의 예비군 훈련장 같은 곳이 창원으로부터 이곳에 이설되어 뒤에
웅천현(지금 웅동면 청천)으로 옮겨 갔으며 (광해군 8년(1616)부터 효종 7년(1656)까지 이곳에 있었음)
1894년 갑오경장때 진례면 5리(청천.시례.송정.초전.신안)와 율리면(栗里) 9리(산본.신월.송현.담안.
고모.고령.관동.성법.개동)로 나누었다가 1914년에 중북(中北)면의 의전리 일부와 죽곡리 일부를
합병하여 진례면이 되었다.
경남에서 가장 큰 들녘이며 곡창지대였던 김해는 지금 논보다는 공장이 더 많아 보인다
모든게 다 변해버린 느낌이다... 저 어디쯤에 내가 잘 아는 어리버리한 여인이 살고
있을텐데 잘 사는지 모르겠다...참으로 순수하고 착한 여인이었는데?...
60이 넘었으니 지금이야 쪼그랑 밤탱이가 되었겠지... 아련한 옛 추억이지만 보고싶다
단고개(?:08:36)
롯데스카이힐 김해C.C 클럽하우스 초입인 이곳을 오룩스 맵에서는 단고개라 알려준다
그러나 실제 단고개는 이곳이 아닌 국안연수원에서 올라오는데 있는 고개이다
클럽하우스가 보이는 곳에서 맥길은 우측 능선으로 이어지나 그냥 주차장으로 향한다
롯데스카이힐 김해C.C 클럽하우스(08:37)
클럽하스 주차장에서 터널을 통과한다
다시 주차장에서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터널위 넓은 공터에서...
우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공터에서 바라본 클럽하우스의 모습
롯데그룹에서는 스카이힐이라는 이름으로 부여, 김해,제주에 골프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부여와 제주에는 한번씩 가봤으나 이곳 김해는 한번도 와보지 못했다
잡목을 헤치고 능선으로 올라서니 스카이 코스 18번홀이 보인다
롯데스카이힐 김해C.C 18번홀의 모습
주말 골프들이 라운딩을 즐기고 있다
나도 담주 목요일날 라운딩이 있는데 이렇게 산에만 다니고 있으니...
18번홀에 내려서자마자 관리요원인듯한 직원이 쫒아온다
그러면서 어르신 이곳에 들어오시면 다쳐요 하면서 나가 달라고 한다
맥길은 골프장을 가다가 우측 능선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1분도 안되는 거리라
무시하고 올라가려고 했으나 이제 산행을 1/3정도 밖에 안했는데 식수가 간당간당하다
그래 나갈테니 물이나 좀 주소 하니...카트카를 타라고 하더니 관리동으로 데려간다
골프장 관리동(08:50)
이곳에서 정수기 물을 가득 채우고 또 500ML 물병에도 채우는데
바로 옆에 제빙기가 있는데 얼음이 잔뜩 쌓여있다...이게 웬 떡이야
수통에 물을 좀 줄이고 얼음을 가득 채운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관리동 뒷쪽의 급경사 능선을 치고 오른다
송전탑이 보이는 저 곳이 마루금이다
묘지가 나오고...
뒤돌아 보니 아직도 용지봉은 구름에 가려 보이질 않는다
마루금에 복귀한다
NO6 송전탑(09:05)
잡목을 헤치고 올라서니...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NO가 뒷쪽에 있는 송전탑을 지난다
국악원 갈림길(09:09)
저 아래 국악원 갈림길에서 이곳까지 넉넉잡고 20~25분이면 올 수 있는 거리를
1시간 5분 걸려 이곳까지 왔는데 이곳 역시 사서 개고생을 한 셈이다
갈림길 이정표
등로 좌측에는 호화묘지가 보인다
시멘트 도로(09:13)
시멘트 도로 우측으로는 주촌면에 있는 매봉산과 단고개로 이어지며
좌측으로는 불티재 방향이다...맥길은 도로를 가로질러 숲속으로 들어간다
숲속으로 들어서니...
재선충으로 죽은 소나무 무덤들이 많이 보인다
276.2m봉(09:16)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잡풀지대를 지나는데 땀냄새 때문인지 산모기가 엄청나게 괴롭힌다
사면길을 가면서 미끄러운 등로에 또한번 꼬꾸라진다...오늘만 5번째다
조금전에 헤어진 등로를 다시 만나...
편안한 임도를 따라서 걷는다
보현행원 갈림길(09:24)
보현행원은 주촌면 양동리에 있는 노인요양시설이다
도로를 따라서 가다가 산에서 처음으로 사람을 만난다.
개를 끌고 가는데 개가 나한테 덤빌 태세이다...아이 겁나라
갈림길(09:35)
임도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등로 초입에 있는 선답자들의 시그널
맥길은 지맥스러움을 나타낸다
338.1m봉(09:45)
정상에는 이정표와 숲에 묻혀버린 운동기구들이 보이고 우측 능선으로는
양동산성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이나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간다
양동산성(良洞山城)은 김해시 주촌면에 있으며 경상남도 기념물 제91호 양동산성으로
지정되었다가, 2018년 12월 20일 김해 양동산성으로 문화재 명칭이 변경되었다
김해시 주촌면 양동리와 내삼리의 경계에 위치한 산봉우리를 두른 테뫼식 산성으로 일부는
흙으로 쌓고, 일부는 대강 다듬은 자연석을 사용하였다. 이 산성은 문헌상 '가곡산성', '양동산성'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김해평야와 낙동강 하구를 효과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있으며, 둘레는 약 800m이고
성벽의 높이와 폭은 2.5m이다. 남쪽과 북쪽의 문터에는 주춧돌이 남아있고, 성안에는 우물터의
흔적과 가야 토기조각들이 확인되었다.
이 산성은 주변의 양동리 무덤들과 유하리 조개더미와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며,
원삼국시대에서 가야 때까지의 역사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숲에 묻혀있는 운동기구들
김해시 전시행정을 보는것 같아 씁쓰럼하다
맥꾼 이외는 아무도 오지 않는 이곳에 예측도 안하고 체육시설을
설치했는데 숲속에 묻혀 고철 덩어리가 되버렸다...민초들이 피땀흘려
번 돈으로 낭비하다니...제발 정신들 좀 차리소
등로는 잘 안보이고...
잡풀에 묻혀버린 인동장공 묘지를 지난다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조금전에 헤어진 임도가 보인다
잠시후에 올라가야 할 봉우리도 보인다
편백나무 조림지를 지나 임도로 내려선다
임도를 따르다가 금새 좌측 능선으로 향한다
불티재(佛峴:280m:09:52)
김해시 진례면 담암리에서 주촌면 내삼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불티는 한자로
불현(佛峴)이라 쓰고 있으며 우리나라 산 곳곳에 '불티' '불현'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는데,
주로 돌부처와 관련된 전설이 내려온다...고개 좌측 아래엔 미륵암이 보인다
담안마을에는 옛날부터 '불티재'로 불렸다는 이야기만 전해져온다.
"담안에서 김해로 가려면 불티재를 넘어 주촌으로 가야 했으며
불티재를 사이에 두고 양동산성과 황새봉이 있다.
도로가 없던 시절, 진영괴 진례방면에서 김해로 넘어가는 지름길이었다고 하며
일제시대에 도로가 생기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다고 한다.
불티재란 사람들이 재를 넘어면서 힘이들어 담배를 피우다가 불티가 튀어 산불이
많이나서 지어졌다고 하는데 좀 억지스러움이 보인다
진례마을로 자녀를 시집 보낼때와주촌에서 진례로 장을 보러 갈 때 많이 이용했다고 한다.
불티재에서 급경사의 오르막으로 오르는데 좌측으로는 편백나무를
조림해놨고 나뭇가지 사이로 미륵암이라는 사찰이 보인다
황새봉가는 등로에서 바라본 진례면을 통과하는 송전탑들
그 너머로 용지봉에서 대암산,비음산으로 이어지는 낙남정맥 등로가 아련히 보인다
능선에 올라서서 편안하게 맥길을 이어간다
소나무 한그루를 끼고 우측으로 향한다
394.7m봉(10:08)
완만한 등로는 계속되고...
무명봉(10:11)
무명봉을 지나자마자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우측으로 살짝 꺽어져 내려간다
쉼터의자 2개가 있는 내삼저수지 갈림길이 나온다
내삼저수지 갈림길(10:19)
김해시 주촌면에 있는 내삼리(內三里)는 동쪽으로는 황새봉과 불티고개가 있고, 앞으로 내삼천이 흐른다.
황새봉에는 골안폭포가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내삼(삼내), 못안(지내), 원당(중땀), 아랫각단(하리) 등이 있다.
내삼은 내[川]가 셋 있다고 하여 내삼[川三] 또는 삼내[三川]라고 하였다.
가락국시대에 임금께 진상하던 쌀을 생산하던 현곡적이 있는 지역이며, 인조반정의 주역
김자점과 관련된 연못도 있으며 , 문화유적으로는 임진왜란 때 서쪽에 쌓은 양동산성
(내삼산성이라고도 함)이 있다
안부(10:23)
감사합니다
332.9m봉(10:24)
정상에는 NO15 송전탑이 서 있다
완만한 내리막길
안부(10:30)
흰독큰갓버섯
식용으로 쓰는 큰갓버섯과 유사하나 갓의 중앙에 담황갈색의 대형 막질 인피가 없고
조직은 상처시에 변하지 않으며 갓의 조직과 대의 조직사이에 분명한 경계가 없고 준독성 버섯이다
NO16 송전탑(10:40)
송전탑 아래로 지나간다
황새봉(393.1m:10:47~11:00)
김해시 진례면 고모리와 주촌면 덕암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이정표와 2등 삼각점이 있지만 주위 조망이 없는 그저 밋밋한 산이다
지명의 유래는 아주 옛날에 진례가 모두 물에 잠겨 있었을 때 황새 한마리가 한참
헤매다가 앉을 곳을 찾아 겨우 앉았는데 그곳을 황새봉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황새봉 정상 이정표
날씨가 덥고하니 자꾸만 물을 많이 마신다...체내의 염분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식염 소금을 먹었더니만 물은 더 먹고싶다...잠시후 공원묘지를 지나가니 물 보충은 가능하겠제
여기서 베낭을 내려놓고 여유로운 휴식을 취하는데, 산모기가 얼마나 많은지 팔뚝에
새카맣게 달라 붙어 물어대니 간지러워 미치겠다
거기다가 이른 아침에 데크목 계단에서 넘어진 곳이 아프기 시작한다
황새봉 정상 삼각점(△밀양24)
다시 길을 나선다
황새봉 정상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내리막길은 산악오토바이가 다니는지 길이 많이 패여있다
운동기구가 있는 곳을 지나고...
등로는 고속도로 수준이다
내삼폭포 갈림길(11:06)
등로가 너무 좋아서 그런지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덕암갈림길(11:08)
김해시 주촌면에 있는 덕암리(德岩里)는 덕암천이 흐르며, 마을 북동쪽으로는 황새봉과 주로봉이 있다.
최근 덕암산업단지가 조성되어 많은 기업체가 유입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인구 유입도 증가했다.
자연마을로는 덕암, 옥천, 용곡, 점곡(점골) 등이 있으며, 임진왜란 때 흥해 최씨 형제가 피난을 와서
마을을 조성하면서 후학을 키웠다는 곳이다. 뒷산의 바위를 형제바위(덕바위)라 하고, 동네를
덕암촌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된 지명이고 옥천은 뒷산 옥계계곡에 맑은 물이 흐른다고 하여
옥수골 또는 옥천이라고 하였다. 용곡은 청룡봉 사이에 있는 마을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내리막길로 내려가는데 비에젖은 등로가 상당히 미끄럽다
고달픈 월세살이
안부(11:13)
억새가 무성한 묘지를 지난다
편안한 등로는 계속되고...
고령마을 갈림길(11:18)
진례면 고모리(古募里)에 있는 고령(高嶺:높은재)마을은 고모리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외부에서 마을 모습이 보이지 않으며 높은 재 너머에 위치한 조그마한 분지에 마을이
조성되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등로는 조금씩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갈림길(11:22)
우측으로 시그널이 달려 있으나 맥길은 뚜렸한 우측 내리막이 아닌
직진의 희미한 등로로 가야한다
무명봉(11:23)
추모공원쪽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김해1터널 위(11:31)
이 등로 아래로 진영에서 주촌으로 이어지는 14번 국도 김해1터널이 지나간다
억새가 가득한 묘지를 지나고...
조금을 더 내려가니 좌측에서 이어지는 도로가 나오고...
당고개(11:36)
예전에 서낭당이 있었나?
김해추모공원(덕암공동묘지)로 이어지는 도로로 들어선다
도로에서 바라본 김해추모공원의 모습
김해 추모의 집 관리동(11:40~50)
공원묘지 도로에 들어서니 따가운 햇빛이 장난이 아니다
시멘트 도로에서 내뿜는 열기로 인해 숨이 막힐 지경이다
추모의 집 앞 도롯가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행여 관리동에서
식수를 구할 수 있을까 가보지만 문은 굳게 잠겨있다
김해추모의 집에서 바라본 김해시 주촌면(酒村面)의 모습
김해시 중앙부 서쪽에 위치한 주촌면은 경운산, 금음산, 황새봉으로 둘러쌓여 있으며,
원지천, 조만강, 내삼천이 면 중앙을 남류(南流)하며, 현 면소재지가 있는 천곡리,
농소리, 원지리 등8개리를 관할하며 지명은 조선시대 후기부터 불러졌다.
『호구총수』(김해)에 주촌면과 천곡리 등이 기재되어 있고 『여지도서』(김해)에는 "주촌면은
관아에서 20리이다."라고 기록하였다. 『지승』(김해)에 좌부면 서쪽에 주촌면이 묘사된 것을
비롯해 『광여도』(김해), 『청구도』(22층 8면) 등에 주촌면이 표기되어 있다.
주촌 지명과 관련해 주지봉(住持峯) 또는 주주봉(酒主峯) 아래의 마을이라는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신증동국여지승람』(김해)에 기록된 '주촌지(酒村池)'에서 유래했다는 설 등이 있다.
또한 '사람이 살기 좋은 마을'이란 뜻의 '주촌(住村)'으로 불렀다는 설도 있다.
누릉내미고개(265m:11:55)
김해 추모의 집 관리동에서 본관으로 가는 꼬부랑 길이 누릉내미 고개이다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고 맞은편에서 정산C.C가 보인다
김해 추모의 집 본관을 가기 직전에 좌측의 공동묘지로 향한다
도로의 열기가 장난이 아니다
아스팔트에서 돌계단으로 올라간다
공동묘지 가운데 돌계단으로 올라간다
공동묘지에서 뒤돌아 본 모습
공터(12:05)
공터에서 앞에 보이는 도로로 향한다
공터에서 바라본 정산C.C의 모습
정산C.C는 이 지역출신인 故 노무현 대통령의 최대 후원자중에 한 사람이었던
박연차 회장의 소유인 골프장으로 지난 1월에 작고하여 저 곳에서 영면에 들어갔다
맨몸으로 태광산업이라는 거대 기업을 일구었지만 정치적 정쟁에 휘말려 감방도
갔다오면서 영욕의 세월을 보냈던 기업인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정치판에 기웃거리면 다들 감방을 갔다와야 하는건지...
공터 맞은편에는 공무원연금공단에서 운영하는 상록김해G.C도 보인다
덕양공원묘지 끄트머리에서 맥길은 숲속으로 이어지나
이곳은 왠만하면 묘지쪽 우회길로 택하는게 좋을 듯 싶다
이제 물도 달랑달랑하고 먹을것도 쥬스밖에 없는데 배가 고파온다
이곳에서 15분정도 웃통을 벗어놓고 베낭을 베고 누워 휴식을 취한다
무명봉(12:24)
우측으로 내려서니 공원묘지 맨 윗쪽이 나온다
무명봉에서 내려서니 수로가 나오고...
공원묘지에서 바라본 쇠금산의 모습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본다
넓은 공터로 내려선다
천년주택(공원묘지) 너머로 보이는 주촌면의 모습
커다란 노거수도 10년전 그대로인데 나만 늙어가는 것인가?
넓은 공터를 지나 좌측의 숲으로 들어간다
약간의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잡풀이 무성하다
이정표가 쓰러져 있는 376.1m봉에 도착한다
376.1m봉(12:40)
지형도상에는 이곳에 삼각점이 있다고 했는데 아무리 풀섶을 헤매고 다녀도 찾을 길이 없다
해운대 백사장에서 바늘찾기만큼이나 힘이 든다...결국 포기하고 쇠금산으로 향한다
고도차가 없는 등로를 따라서 쇠금산으로 향한다
등로에서 바라본 김해시 한림면(翰林面)의 모습
김해시 북쪽에 위치한 면으로 북동쪽의 낙동강을 통해 밀양시와 마주하며 남쪽의 금음산,
나전고개에서 발원한 화포천에 합류하여 북쪽으로 흐르다가 낙동강에 유입된다
경전선이 면의 북쪽으로 지나가고, 15번 국도가 지나가는 등 교통이 편리한 곳이다
조선시대 상북면(上北面), 중북면(中北面) 지역이었다가 1914년 두 면을 병합해 이북면(二北面)이라고
하였으며 1987년에 이북이란 발음이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해서 한림면(翰林面)으로 개칭하였다.
현재 면 소재지인 장방리를 비롯해 퇴래리·가동리 등 12개 리로 이루어져 있다.
'한림' 지명은 중심마을인 한림정에서 따온 것으로 조선 초기 학림학사 김계희(金係熙)가 지은
정자인 한림정(翰林亭)에서 유래되었으며 『호구총수』(김해)에 상북면, 중북면과 그 소속 동리로
가산리, 퇴래리 등이 기재되어 있다.
이후 『여지도서』(김해), 『경상도읍지』(김해)에는 상북면, 중북면으로, 『신구대조』(김해)에는
이북면으로 기록되었다. 『해동지도』(김해)에 낙동강 남쪽에 중북면과 하북면을 묘사한 것을 비롯해
『광여도』(김해) 등 조선 후기 고지도에 중북면과 하북면이 표기되어 있다
쇠금산(金音山:376.3m:12:45)
김해시 주촌면 덕암리와 한림면 신천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석에는
‘쇠금산’으로 표기가 되어 있지만 각종 자료에는 ‘금음산’으로 기록이 되어있다
이는 가야왕국의 도읍지며 철기문화의 중심지로 '쇠실' '쇠골' '생철(生鐵)' '쇄내' 라는
지명과 같은 연유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가야의 역사는 초기 부분과 신라에 멸망되었던 후기 부분을 제외하면 기록이 전해지지 않아
확실한 전개 과정을 알기 힘들다. 다만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가야의 유물들을 본다면,
가야는 훌륭한 철기 문화를 지녔던 것으로 파악된다.
가야의 철 문화를 상징해 주는 증거로 김해(金海)가 있다.
김해는 초기 가야 연맹의 맹주인 금관가야의 본거지인데, 한자 뜻풀이를 해본다면
‘쇠(金)의 바다(海)’라는 말이 된다. 김해의 왕성한 제철 사업을 상징하는 표현일 가능성이 크다.
또한 중국의 사서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의하면, 가야의 전신인 변한인들은 철을 다루는
기술이 뛰어나 낙랑과 왜국(일본)에 철을 수출했다고 한다. 가야인들도 변한의 기술을 물려받았는지,
철을 잘 다루었다. 한 예로 일본은 서기 5세기 전까지 모든 철을 가야에서 수입해 사용했는데,
철의 원료인 철광석을 가공하는 기술을 몰라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일본의 고대사를 다룬 《고사기(古事記)》나 《일본서기(日本書紀)》를 보면, 왜(일본)가
신라를 공격했다는 내용은 수없이 나오지만 가야를 공격했다는 내용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그 이유는 가야와의 사이가 나빠지면 가야로부터 철을 얻을 수 없으니 왜인들이 가야의 눈치를
살피느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을 가능성이 높다.
쇠금산에서 내려서니 운동기구들이 있는 쉼터가 나온다
이곳은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기에 웃옷을 벗어 말리고 10분정도 휴식을 취하는데
산모기가 새카맣게 달라드는 바람에 서둘러 길을 떠난다...이 넘들은 헌혈증서도
안 주면서 피를 뽑아가네...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12:58)
무명봉(12:59)
계속되는 내리막길...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내리막 등로는 아주 좋다
까막골재(215m:13:10)
김해시 한림면 신천리(新川里)로 내려가는 고개이다
신천리는 마을 북서쪽에서 남서쪽 방향으로 작은 실개천이 흐르고 있으며, 북쪽에
고도가 낮은 산지가 분포하고 있는데 자연마을로는 신천, 점마, 탑골 마을 등이 있다.
신천 마을은 마을 앞으로 내가 흐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점마 마을은 옹기점이
있었다 하여 이름 붙여지게 되었으며 탑골 마을은 옛날 암자가 있던 자리라 하여 불리워진 이름이다.
낙원공원묘지 정상에 올라선다
낙원공원묘지 정상에서 바라본 공무원연금공단에서 운영하는 김해상록G.C의 모습
묘지 뒷쪽 능선의 맥길이다
묘지 뒷쪽을 내려서니...
임도가 나오고 좌측으로 내려간다
임도옆에 있는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반갑기만 하다
계속해서 임도를 따라서 내려간다
넓은공터가 나오고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낙원공원마트(13:25~55)
이게 뭐여!.. 식당이 보이기에 식당 안으로 들어간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종업인인듯한 여인 2명이 에어컨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기에 식사를 좀 할 수 있느냐고 하니까...영업은 하지 않고 직원들들 식사만 제공한다고 한다
아직까지 아침도 못먹었다고 하니...측은하게 보였는지 앉으라고 하면서 에어컨을 내쪽으로 돌린다
직원들 식사가 끝나서 국이 식었다고 하면서 국을 데워 주겠다고 한다
내일(8월15일)이 말복이라 직원들에게 삼계탕을 제공했다고 하면서
삼계탕에다가 머슴밥처럼 한그릇 수북하게 담아 주면서 7,000원을 달라고 한다
캔맥주 하나까지 9,000원을 달라고 하는데 너무 고마워서 10,000원을 주니
끝내 사양하면서 1,000원을 되돌려 준다
배도 든든하게 채웠겠다... 시원한 물도 한통 얻어 다시 길을 나서는데
아줌마들이 다음에 또 오소 하기에...죽어서 오라고요 하니까
아줌마들이 배꼽을 잡으면서 拍掌大笑를 한다
식당을 내려서니 낙원공원 관리사무소가 나온다
낙원공원묘지 정문(13:57)
정문을 지나 공원묘지쪽으로 올라간다
공원묘지 옆 돌계단으로 올라간다
生者의 놀이터와 亡者의 주택(묘지)이 공존하는 곳
낙원공원묘지에서 바라본 김해시의 모습
김해 지명은 『삼국사기지리지』에 "김해소경(金海小京)은 옛날의 금관국(金官國,
가락국이라고도 하고 가야라고도 한다)이다. (중략) 경덕왕이 김해경(金海京)으로
개명하였는데, 지금 금주(金州)이다."라는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이후 『세종실록지리지』(김해), 『신증동국여지승람』(김해) 등의 기록을 통해 '가락·가야·
금관국→김해→임해→금주→금녕→김해'로 지명의 변화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1895년 김해군이 되고 1978년 대저읍·명지면·가락면 낙동지구가 부산시로 편입되었다.
1981년 김해읍이 김해시로 승격되었다가 1995년 김해시·군이 통합되어 오늘에 이른다
김해 지명에 대해서 향토지에서는 '쇠가 생산되는 바닷가의 고을'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것으로 설명하였다...변한 때부터 철의 산지로 유명했고, 가락국의 시조 수로왕이 금합에서
나온 황금알에서 탄생해 지명에 '쇠 금(金)' 자를 사용했던 것으로 보는 설이 있다.
현재 1개 읍, 7개 면과 시청소재지인 부원동 등 9개 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擬輓歌辭(의만가사): 죽은 이를 위하여 부르는 노래
도연명 陶淵明 : 365 ~ 427)
有生必有死(필생필유사): 삶이 있으면 죽음도 있게 마련.
早終非命促(조종비명촉): 일찍 죽는다 해서 명 재촉한 건 아니다
昨暮同爲人(작모동위인): 어제 저녁까지는 같은 사람이었는데
今旦在鬼錄(금단재귀록): 오늘 아침에는 저승 명단에 올랐구나
魂氣散何之(혼기산하지): 영혼은 어디론가 흩어졌는데
枯形寄空木(고형기공목): 마른 몸뚱이만 빈 나무 곽에 의지하는구나!
嬌兒索父啼(교아색부제): 아이들은 아비 찾아 슬프게 울부짖고
良友撫我哭(양우무아곡): 벗들은 나를 잡고서 곡하누나!
得失不復知(득실부부지): 생전의 이해득실 다시는 셈하지 못하니
是非安能覺(시비안능각): 옳고 그름인들 어찌 깨달을 수 있겠는가?
千秋萬歲後(천추만세후): 한 세상 지난 후에는
誰知榮與辱(수지영여욕): 그 누가 생전의 영욕을 알랴?
但恨在世時(단한재세시): 다만 한스러운 건 살아생전에
飮酒不得足음주부득족): 술 한 잔 흡족하게 마시지 않았음이라
공원묘지 계단에서 좌측 능선으로 오르는데 등로는 보이지 않는다
272.0m봉(14:10)
편안한 낙원공원묘지로 따라가면 이 봉우리를 놓치는 憂를 범할 수 있다
풀섶에 숨어있는 272.0m봉 삼각점(△밀양460)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오니 다시 낙원공원묘지 상단부가 나온다
묘지 상단부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넓은 공터가 나오고 좌측으로 꺽어지면서 공원묘지와 작별을 한다
숲속으로 들어가는 길에 선답자들의 흔적이 보인다
비교적 뚜렸한 등로가 나오고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NO를 알 수 없는 송전탑 아래를 통과한다
계속 내려가니 묘지가 보인다
분성허씨 묘(14:21)
분성(盆誠)은 경상남도 김해시 일대의 옛 지명으로 낙동강 하구 남서쪽에 위치하여 일찍부터
가락국(駕落國)의 문화중심지로 발전하여 왔으며 532년 (신라 법흥왕 19) 신라에 병합되어
금관군(金官郡)이 되었다.
680년(문무왕 20)에 금관소경이 되었다가 757년(경덕왕 16) 김해소경으로 바꾸어 양주의 관할로 두었다.
940년(고려 태조 23) 김해부로 개칭되었고 임해현으로 다시 강등되었다가 곧 임해군으로 승격되었다.
995년(성종 14)에 김해안동도호부로 개치하여 영동도에 속하였다가 1012년(현종4) 김해군방어사로
강등되었다가 1018년부터는 의안군 함안군 칠원현 웅신현 등을 영현으로 삼았다.
1270년(원종 11) 방어사 김훤이 인접지역인 밀성의 난을 평정하여 김녕도호부로 승격되었다가
1293년(충렬왕 19) 현으로 강등되었다...1308년 금주목으로 승격하였으나, 1310년(충선왕 2)
김해부로 격하되었다. 1413년(태종 13) 김해도호부로 승격되어 세조 때 진을 두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김해군이 되었고 1918년 좌부면과 우부면이 김해면으로 통합되었다.
1931년에는 김해면이 김해읍으로 승격되었고 1981년 김해군의 김해읍이 김해시로 승격하여 분리되었으며
1995년 김해군과 통합하여 김해시가 되었다... 그러니 김해의 옛 지명이 분성이라고 보면 되겠다
조금을 더 진행하니 납골묘가 나온다
분성허씨 납골묘(14:22)
완만한 등로를 따라서 가니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14:28)
스마트폰 맵상의 트랙은 맥길을 직진이라고 하는데 선답자들의 시그널은 좌측으로 달려있다
하나도 아닌 여러개가 그쪽을 가리키고 있어 나 역시 그쪽으로 향한다
편안한 등로를 가다가...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절개지로 내려서니 모래를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야적장이 나오고...
도로를 따라서 간다
조금전에 헤어진 마루금으로 복귀한다...이쪽으로 와도 될뻔 했다
골재 야적장이 맥길을 끊어 놓았다.
오늘은 도로, 고속도로, 골프장, 골재 야적장 등이 태클을 걸어대는
바람에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낙남정맥 산꾼들의 산행기에 단골로 올라오는 저곳...
예전에는 성원 ENT 건축폐기물 처리장이 있었는데 쥔장이 바뀌었는지
(주)해성그린환경으로 간판이 바뀌어 버렸다
모래 야적장과 송전탑이 보이는 저 능선이 맥길이다
삼거리가 나오고 좌측으로 꺽어진다
삼거리(14:40)
맥길을 바라보면서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가는데 더워도 너무 덥다
도로 끄트머리에서 우측으로 꺽어진 다음에 좌측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도로에 오르면서 뒤돌아 본 모습
우측으로는 삼계동쪽으로 이어지는 경운산이 시원스레 보인다
도로에서 5분정도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비포장 임도를 따라서 가다가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 다음에...
마루금에 복귀한다
고향 향우인 한학문 회장님의 흔적도 보인다
요즘 근황은 어떠신지?
집채만 바위가 보이는 237.9m봉에 올라선다
237.9m봉(14:58)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를 지나고...
무명봉(15:03)
등로 우측에 송전탑이 보인다
엄청난 급경사의 내리막길
물기 먹은 등로에서 또한번 꼬꾸라진 다음에 망천고개로 내려선다
망천고개(127m:15:15)
김해시 한림면 신천리에 있는 고개로 한림면소재지에서 삼계동으로 이어지는
4차선의 김해대로가 지나가고 E-1 LPG 충전소와 맞은편에는 김해CNG 충전소가 보인다
맥길을 타는 산꾼들 사이에는 망천고개라 부르며 낙원고개라고도 부른다
산행을 종료하다
원래 계획은 나밭고개까지 가서 다음 구간에 새벽에 내려와 나밭고개에서
합수점까지 간 다음 삼랑진에서 서울로 갈 계획으로 2구간을 끝내려 했다
이곳에서 나밭고개까지 가려면 최소한 2시간은 더 소요될 듯 싶고 먹을것이
없어 다음구간은 다음에 고민하기로 하고 좌측으로 가니 LPG 충전소가 보인다
이곳에서 직원에게 사정하여 시원한 생수 1병을 얻어 마시고 가스충전을 하러온
택시를 타고 김해 터미널로 향한다
김해터미널(15:30)
터미널에 도착하여 15시 50분에 서울가는 버스표를 예매하고 장애인 화장실에 들려
문을 걸어 잠근 다음에 깔끔하게 씻은 후 옷을 갈아입고 나니 5분정도 밖에 시간이 없어서
빵과 우유를 사서 버스에 오른다
서울가는 버스에는 생각보다 손님이 적어 편하게 혼자서 좌석 2개를 차지한다.
5시간 정도 걸린 다음에 경부터미널에 도착하여 집으로 향한다
첫댓글 낙남정맥,신낙남정맥,무척지맥,,,,동신어산은 유령산이 되고마는건가요,,ㅎㅎ
더운날씨 복날에 고생많으셨습니다. 낙원공원묘지가 많이 변했네요 ㅎㅎ 거기서 119신세를 진적이 있어서.,,,ㅎ
더워도 너무 더워 죽는줄 알았습니다
휴가는 댕겨왔소... 참 문교대장과 류소운님
전번 좀 카톡으로 찍어주소...핸폰 잃어버리면서
자료가 없네요
@범여 정문교 010 2245 1685
유소운 010 4745 0019
더위도 형님의 진군을 멈추지 못하는군요. 우리산을 밟아가는 형님의 발걸음에 작은 거인의 풍모가 뿜어 나옵니다.
왱,,,역마살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