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강화양명학 국제학술대회 축하 및 조선왕조와 명왕조 양국 학술의 동조와 탈동조 현상
2022년 12월 2일
한국양명학회 김용재 회장님을 비롯한 임원 여러분들께서 제19회 학술대회를 성대하게 준비한 것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강화군 유천호 군수님과 강화군민들께서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국제학술대회를 지지해주신 것에 높이 치하드립니다. 아울러 하곡학연구원 회원들께서 하곡 정제두 선생과 하곡 후학들의 학술을 배우고 계승하려는 뜻에도 격려드립니다.
2004년 양명학회 국제학술이사를 맡아 제1회 국제학술대회를 준비하였던 저로서는 당시 기억이 새롭고 감개가 큽니다. 국제학술대회가 앞으로 더욱 발전하여 많은 사람의 맑은 마음에 도움이 되기를 발원합니다.
제19회 국제학술대회의 주제는 “동아시아 양명학의 새로운 지평과 역할”입니다. 이 주제는 한국양명학회가 주도적 입장에서 한국의 양명학 연구를 동아시아 학계로 넓혀서 이해하고 평가하려는 학술적 의지를 나타냅니다. 또 각국의 학계가 서로 교류하고 민간교류를 확대하여 상호 이해를 넓혀 동아시아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려는 큰 역할을 높이 평가합니다.
동아시아에서 명나라 왕양명 학술에 관심을 가진 국가는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과 베트남이 있습니다. 특히 한중일 삼국이 일찍이 각기 심학을 건립하였던 역사환경은 서로 다르며 또 근현대시기에 서양 열강의 동점(東漸)에 대응하면서 각기 다르게 학술을 연구하고 각가지 대안을 제시하고 행동하고 실천하였습니다. 따라서 삼국의 심학에는 서로 다른 학술주장과 행동실천이 있습니다. 본 국제학술대회의 주제는 이렇게 서로 다른 점을 이해하고 공유하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과 중국 양국 학계의 동조화(coupling)와 탈동조화(decoupling) 관점에서 본 국제학술대회 주제를 간략히 살펴보려고 합니다. 원나라 세조 연간부터 행정국가를 지향하였기에 동아시아에서 한국과 중국의 학계는 주자학을 경세학(사회과학, 통치술)으로 간주하였습니다. 원나라 붕괴 과정에서 각기 조선왕조와 명왕조를 건립하여 주자학을 유능하고 청렴한 행정관원 양성에 적용하였기에 주자학 이념을 공유하였습니다. 양국은 주자학 이념을 유지하며 서로 지지하여 핵심국가가 되어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유지하였습니다. 이것은 동조화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16세기 초에 이르러 한국과 중국 학계에서는 각기 주자학을 반성하고 사회개혁을 주창하는 정학(正學)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명나라에서는 이몽양(李夢陽, 1473-1530)이 주도한 고문운동에서 양송시기 형성된 성리학 모델을 버리고 한위(漢魏) 왕조의 고문을 개혁모델의 정신으로 삼으면서 정학운동이 일어났고 진헌장(陳獻章, 1428-1500)을 계승한 왕양명(王守仁, 1472-1529)이 호응하여 심학을 건립하였습니다. 조선에서는 조광조(趙光祖, 1482-1519)가 정학운동을 일으켜서 서경덕(徐敬德, 1489-1546)과 남언경(南彦經, 1528-1594)도 송대 성리학 모델에 회의를 품고 북송 오자를 초월하려는 학술목표를 갖고 조선 심학을 건립하고 자주적 역사관을 제시하였으며 하곡 정제두(鄭齊斗, 1649-1736)가 계승하여 심학 체계를 세웠습니다. 조선 심학 학계는 명나라 양명학을 지지하였습니다.
당시 명나라의 대다수 관원과 학자들은 송원시기의 주자학을 신봉하였고 몇몇 관원 학자들은 남경을 중심으로 주자학의 경세학을 더욱 발전시키려고 노력하며 진헌장과 왕양명의 심학을 반대하였습니다. 조선학계에서는 퇴계와 율곡 두 분께서 정주학을 연구하고 송원시기 정주학을 계승 발전하려는 명나라 주자학계의 입장을 지지하였으며 조선의 심학자 서경덕뿐만 아니라 명나라 심학도 배척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양국 학계는 원나라 세조 연간부터 경세적 주자학의 동조화가 일어났고 다시 16세기에는 탈동조화가 일어났습니다. 탈동조화 과정에서 주자학에서 심학으로 또는 주자학 강화로 바뀌어 겉모습이 비슷하지만 실제 학술의 내용은 양국 학계 내부에서 서로 다르게 발생하고 발전하였으며 개혁모델과 회귀 대상도 서로 달랐습니다.
임진왜란 전후 시기에는 양국 학자들이 만나 학술토론을 진행하여 서로를 이해하고 상대국 학계를 존중하였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명나라 지원군 참모 원황(袁黃, 號了凡, 1533-1606)이 조선에 와서 양명학을 공개적으로 주장하기에, 조선 관계와 학계는 조선의 정주학 학술주권을 지키기 위하여 반년만에 그를 귀국 조치시킨 사건도 있고 조선의 심학자들은 오히려 양명학을 지지하자고 건의하기도 하였습니다. 학계 대화를 보면 윤근수(尹根壽)와 육광조(陸光祖)의 주륙(朱陸)논변, 유성룡(柳成龍)과 명왕조 국자감생의 대화, 이정귀(李廷龜)와 송응창(宋應昌) 진영의 『대학』 강론 등은 양국 학계의 탈동조화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조선학계의 연구성과를 깊이 이해하고 평가하려면 동시대 명나라 학계의 변동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비교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한국은 정치민주화와 경제성장을 이루고 선진국을 지향하며 평화통일과 동아시아 평화를 유지하려고 국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중국의 관계와 학계에서도 정치민주화와 경제성장을 최종 목표로 지향하지만 현재는 부득불 신권위주의를 임시방편으로 유지한다고 스스로 말합니다. 따라서 양국의 현재 정치체제가 다르더라도 한국 심학과 중국 양명학의 학술 교류를 통하여 서로 상호 이해를 넓혀 동아시아와 세계 평화에 기여하길 바랍니다.
참석하신 여러분들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