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피를 부르는 천선장
삼 일 후의 한밤중이었다.
장안에서 삼십 리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군유명과 그가 거느리는 사람들은 네 갈래로 나뉘어 곧장 장안 철위부를 향해 다가갔다. 원한을 갚고 치욕을 씻을 격전이 바야흐로 전개되기 직전이었다.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네 조로 나뉘었다. 군유명과 그의 육살 및 일룡, 그리고 조돈력이 한 조가 되어 오백 명을 거느렸다.
금씨 집안의 대호걸 금괴와 금미, 그리고 구자춘, 하구가 한 조가 되어 이백오십 명을 거느렸고, 금초와 금우마, 금려, 애소장, 애소복 다섯 사람이 이백오십 명을 거느리고 한 조가 되었다.
그밖에도 광마혈인 관구와 그의 여섯 명의 대파수가 그를 따라온 삼백 명의 대비당 건아들을 이끌었다.
황량한 들판.
이곳저곳 형극이 자라 있었으며 시퍼런 잡목 숲이 울창하다.
네 조로 나눠진 그들은 정중하게 인사를 나눈 후 각자가 다른 길을 따라 전진하기 시작했다.
군유명은 조금 전 헤어질 때 금미가 아쉬워하며 묵묵히 자기를 바라보던 눈길을 되씹어보았다. 충분했다. 그것으로 금미의 가슴 속에 갈무리된 많은 말들이 그에게 전해졌고 많은 아쉬운 이별의 정감을 그에게 전해 주었던 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짧은 이별에 불과하겠지만…
오백여 필이나 되는 철기들이 소용돌이처럼 온산과 들판을 뒤덮고 장안성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새카맣게 들판을 뒤덮고 허연빛을 번뜩이고 있는 사람의 그림자들은 옛날의 철위부에 충성을 하던 건아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옛날의 그 박도를 들고 똑같은 모양의 백포를 입고 있었다. 하나같이 전의와 사기가 드높았다.
그들은 이제 그토록 기다려 오던 그들은 복수의 순간을 맞이한 것이었다.
군유명을 바짝 뒤따르고 있는 사람은 악굉원이었다.
이 때 그는 갑자기 말을 서둘러 몰아 군유명과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무겁고도 힘찬 어조로 물었다.
『공자, 성 안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관가에 통보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군유명은 빙긋이 웃었다.
『나는 오늘 해질 무렵에 이미 담자다를 보냈네. 장안성의 수비(守備)와 나는 평소에 교분이 두터웠고 육선문(六扇門)의 대포두(大捕頭) 신유자(辛幽子)는 나의 제자일세. 그래서 나는 담자다에게 날이 밝고 두 시진이 더 지난 후에 사람을 보내 조사하라고 전갈했네. 그 때쯤이면 우리 일도 아마 끝났을 것이네…』
악굉원은 나직이 웃었다.
『하하, 신유자는 시야가 넓은데다가 눈치가 빠른 사람이니 형세를 가늠해 보고 동강이 오늘 밤 무너진다는 것을 짐작했을 겁니다. 이렇게 된다면 그는 우리들을 배신할 수 없지요.』
군유명은 살짝 고삐를 잡아당기며 웃었다.
『그들이 내가 되살아난 일을 믿지 않을까봐 특별히 담자다에게 한 가지 신표, 내가 영원히 몸에서 떼어 놓지 않던 은교련을 주었네!』
악굉원은 깜짝 놀라 급히 되물었다.
『공자, 그것은 공자의 호신병기가 아닙니까? 어째서 그것으로 신표를 삼았소이까?』
군유명은 평온하게 말했다.
『긴장하지 말게, 굉원. 오늘 밤에 그 물건은 필요 없어졌네!』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말머리 옆에 걸려 있는 그 두 자루의 쇠가죽 자루를 가볍게 어루만지며 다시 말했다.
『오늘 밤 필요한 것은 나의 천선장일세!』
악굉원은 그만 감개무량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공자, 공자께서 그 무기를 사용하게 된 것이 얼마만입니까…』
군유명은 빙그레 웃었다.
『그렇군.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또 다르네. 자네도 알다시피 생사존망의 고비에 이르지 않으면 나는 좀처럼 천선장을 사용하지 않네. 그런데 지금이 바로 그와 같은 때야.』
말들은 쉬지 않고 달려가고 있었다. 말발굽소리는 무겁고 둔탁하면서 급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밤바람이 불어와 귓가를 스치면서 휘익, 하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주위 풍물과 사물들이 신속하게 뒤를 향해 밀려나고 살벌한 기운이 감돌아 으스스하게도 사람들의 가슴 속으로 파고드는 것이었으니…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악굉원은 다시 입을 열었다.
『일을 끝낸 후에 장안은 틀림없이 크게 진동할 것입니다. 공자, 신유자가 감당해 낼 수 있겠습니까?』
군유명은 담담히 말했다.
『그는 반드시 구실을 만들어 내야 할 것이며 책임은 그의 윗사람들이 지는 것일세. 그의 윗사람들이란 굉원, 내가 순무아문(巡撫衙門)까지 움직일 수 있으니 그 일에 대해서는 안심하게…』
거기까지 말하다가 군유명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라곤도 따라왔는가?』
악굉원은 재빨리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는 반드시 따라오겠다고 고집을 피웠습니다. 제가 아무리 말려도 듣지를 않더군요. 그래서 그를 이미 꽁무니에서 따라오도록 안배했습니다.』
군유명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 녀석의 상처는 어떤가?』
악굉원은 잠시 망설이다가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별로 좋지 않습니다.』
군유명은 혀를 찼다.
『쯧, 나중에 공격이 전개되었을 적에 라곤은 사람들을 데리고 철위부 밖을 에워싸고 매복하고 있다가 도망가는 길목을 가로막는 책임을 맡도록 하고 그가 직접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판에 뛰어드는 것을 허락하지 말게. 그것은 내 엄명이라고 전해 주게!』
악굉원은 즉시 대답했다.
『예, 공자.』
군유명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 오늘 밤 하일랑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장면은 훨씬 더 신났을 텐데…』
악굉원 역시 탄식해마지 않았다.
『그가 실종된지 이토록 오래되었으니… 사람을 곳곳으로 보내도 그의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었는데 혹시 중이 되어 절로 들어간 것이 아닐까요?』
군유명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틀림없이 급히 우리들의 소식을 알아보려고 마구 쫓아다니다가 상황이 불리해진 것을 느끼고는 줄곧 숨어서 지냈을 것이네.』
『그 녀석이 도대체 어디로 숨었을까요?』
군유명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내가 보게에 십중팔구 장안 부근에서 떠나지 않았을 것이네. 나는 어떤 예감이 드는데 오늘 밤의 혈전에서 어쩌면 그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
악굉원은 빙그레 웃었다.
『아무쪼록 그렀기를 바랍니다.』
철기들은 떼를 지어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 넓다랗고 황량한 들판을 가로지르고 물이 말라 버린 개울을 뛰어넘었고 숲을 가로지르기도 했다.
그들은 자라 뒷등 모양의 산등성이 아래에 이르게 되었다.
별안간 군유명은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그가 타고 있던 말은 한 소리 나직이 히힝, 하고 울부짖으면서 앞발을 번쩍 쳐들더니 제자리에서 한 번 맴을 돌고 비스듬히 다섯 걸음을 뛰쳐나갔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안장 위의 군유명은 꼼짝도 하지 않았으며 그의 왼팔을 높이 쳐들었다.
평소 훈련을 받은 정예의 기마대는 즉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엄숙하니 아무 소리도 없이 신속하게 양쪽으로 날개처럼 진을 펼쳤다.
그들이 이와 같은 행동을 펼치고 있을 적에 앞쪽 어둠침침한 산등성이에서 어느덧 수 필의 말을 탄 사람들의 그림자가 나는 듯이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악굉원은 눈초리가 매우 예리해서 흘낏 보더니 즉시 입을 열었다.
『공자, 저들은 우리들이 내보내 길을 염탐하도록 한 형제들입니다.』
군유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네. 그들이 말을 몰아 총망하게 달려오는 것을 보니 틀림없이 뭔가 발견한 모양일세!』
오고 있는 세 사람은 세 필의 말에 타고 있었는데 모두가 몸에 백건포를 걸치고 있는 군유명의 수하들이었다.
달려오는 말들이 미처 멈춰서기도 전에 말을 타고 있던 세 명의 기사들은 어느덧 말안장에서 굴러 떨어지듯 땅 위로 내려섰다.
세 사람은 모두 다 온 머리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일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군유명은 냉랭히 말했다.
『서두를 것 없다. 숨을 돌리고 난 후에 말해라.』
악굉원이 짙게 코웃음 치더니 버럭 소리를 쳤다.
『흥, 꼴좋다. 너희들 세 녀석이 어째서 그 몰골이냐? 조금도 침착성이 없으니 무슨 큰일을 하겠느냐? 무슨 급한 일인데 궁둥이에 불이 붙은 것처럼 급하게 달려왔느냐?』
그 세 명의 대한들은 절을 하더니 크게 숨을 헐떡이며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공자께 알립니다. 저 거북의 등과 같은 산등성이를 돌아가게 되면 잡목나무들이 이곳저곳 자라 숲을 이루고 있는 비탈이 있는데 그곳에 지금 신분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싸우고 있습니다.』
군유명은 물었다.
『복장과 외모, 무기에 어떤 특징이 있던가?』
그 대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날이 어두운 데다가 저희들은 가까이 가서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멀리서 상황이 잘못된 것을 발견하고 즉시 돌아와 알리는 것입니다.』
군유명은 조금도 고려해 보지 않고 입을 열었다.
『굉원, 기마대를 통솔하는 권한을 자네가 잠시 이어받아 천천히 앞으로 밀고 나아가게. 나는 초이귀를 데리고 앞으로 달려 나가 한 번 알아보도록 하겠다.』
악굉원은 즉시 대답하고는 이어 의견을 물었다.
『사람을 더 데리고 가십시오.』
군유명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고루살 초이귀를 불러오도록 했다. 그는 초이귀에게 급히 몇 마디 당부하고 말 옆에 달려 있는 검은 소가죽으로 만들어진 병기 자루를 떼어들고 나는 듯이 앞장서서 달려갔다.
백포를 펄럭이면서 군유명은 재빨리 달려갔는데 그 재빠름은 그야말로 한 가닥 흐르는 번갯불 같았다.
순식간에 그는 이미 산등성이를 돌아서 그 비탈에 이르게 되었다. 젖 먹던 힘을 다해서야 초이귀는 간신히 군유명의 뒤를 따라붙을 수 있었다.
바로 그들이 막 비탈 왼쪽에 이르렀을 때 저쪽의 듬성듬성한 숲속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번득이면서 싸우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군유명은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더니 다시 나직이 말했다.
『여섯 사람이군!』
초이귀는 숨을 몰아쉬며 시력을 모아 관찰을 하더니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여섯입니다. 다섯 명이 한 사람을 공격하는 국면인 것 같군요!』
군유명은 조심스럽게 몸을 숨기고 앞으로 나아가며 말했다.
『나의 지시에 따라 일을 처리하게!』
초이귀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 한 쌍의 맑고 검은 동공이 적은 눈동자를 깜박였다.
『알고 있습니다.』
재빠르게 그들 두 사람은 어느덧 그 한 떼의 신분을 알 수 없는, 싸우는 사람들의 오른쪽에 가서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군유명은 조심스럽게 그쪽을 바라보았다. 바라보는 순간 그는 자기도 모르게 전신을 흠칫했다.
군유명의 등 뒤에 있던 초이귀 역시 자기의 우두머리의 그와 같은 이상한 반응을 발견했다.
그는 한편으로 싸우는 사람들을 몰래 살피면서 한편으로는 불안한 듯 나직한 소리로 물었다.
『공자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군유명은 깊이 숨을 내쉬고 말했다.
『이귀, 나의 예감이 들어맞았네!』
초이귀는 싸우고 있는 몇 사람을 똑똑히 보더니 흥분되어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공자, 공자, 하일랑 녀석이 아닙니까?』
군유명은 눈을 감고 매우 흥분한 듯 말했다.
『바로 하일랑일세. 나는 조금 전에도 그런 느낌을 받았지. 그를 만나게 되리라고…』
초이귀는 주먹으로 손바닥을 후려치면서 말했다.
『우리 나가보죠, 공자. 하일랑이 약간 몰리고 있습니다.』
군유명은 빙긋이 웃었다.
『물론 나가야지.』
그 말의 여운이 미처 가시기도 전에 초이귀는 급히 맹렬한 기세롤 몸을 날려서 뛰쳐나갔다.
그의 백포가 어둠속에 한 가닥의 희끄므레한 빛을 발산하는가 했는데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목에 걸고 있던 주먹만한 크기의 해골 꾸러미가 어느덧 손에 들려졌다.
초이귀는 별안간 호통을 질렀다.
『손을 멈춰라!』
그가 호통칠 필요도 없었다. 바로 그가 몸을 숨기고 있던 곳에서 뛰쳐나가는 그 순간 싸우고 있던 여섯 사람들은 즉시 싸움을 멈췄다. 다섯 명의 체구가 우람하고 사납게 생긴 대한들 모두 구레나룻을 기르고 있었고 손에 비각(飛角)을 들고 있었다.
이와 같은 비각은 길이가 한 자 남짓한 소뿔처럼 생긴 것이 양쪽으로 뾰족하고 예리하게 나와 있었다. 그 중간에는 셋째 손가락 굵기의 쇠사슬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 무기는 앞쪽이 예리하고 뒤는 통통하여 것이 매우 무거웠는데 손에 쥐고 유성추의 초식으로 마구 휘두를 수 있고 열 걸음 밖에서도 상해를 입힐 수가 있었다.
그들의 맞은편에는 체구가 수척하고 얼굴이 창백한 귀견수 하일랑이 서 있었다.
초이귀가 느닷없이 출현한 것은 땅바닥에서 솟아난 것처럼 보여, 비단 그 다섯 명의 비각을 사용하는 대한들만 놀란 게 아니고 하일랑도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초이귀가 괴소를 흘리며 호통을 내질렀다.
『하하하, 나의 아들 일랑아, 너는 아버지인 초 둘째 나리도 못 알아보겠느냐?』
하일랑은 격동하여 크게 부르짖었다.
『초 둘째형!』
고루살 초이귀는 성큼성큼 다가가 맞은편 다섯 사람들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우리 형제 두 사람은 그 동안의 회포를 이따 풀기로 하고 먼저 저 다섯 분을 처치하세. 그들은 어디서 온 자들인가, 어떻게 자네와 이곳에서 싸움을 벌이게 됐나? 비열하게 떼를 지어 사람을 공격하니 후레자식들이군.』
하일랑은 오른손에 꼭 쥐고 있는 자린도(紫鱗刀)를 왼손으로 옮겨쥐고 상대방 다섯 사람을 노려보며 싸늘히 외쳤다.
『둘째형, 비각오호(飛角五豪)가 바로 이자들이외다!』
초이귀는 쳇, 하더니 비아냥거리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동강이라는 그 개새끼에게 매수되어 그들을 도와 간악한 짓을 저지른다는 비각오호가 바로 이 다섯 병신들인가? 제미럴, 언제나 떼를 지어 착한 사람을 못 살게 구는 군!』
비각오호 가운데 우두머리인 붉은 얼굴의 건장한 대한이 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호통을 내지르며 수염과 눈썹을 모조리 곤두세우고 날카롭게 외쳤다.
『너는 그 죽은 귀신 군유명의 수하 가운데 한 놈, 초이귀로구나. 초가야, 군유명이란 녀석은 이미 두 다리를 뻗었다. 너희들은 적당한 곳을 찾아서 여생을 보낼 것이지 왜 이곳에서 바람을 일으키고 풍랑을 만들어 본전을 찾아가려 하느냐? 제에미, 너는 꿈꾸지 말아라.』
다른 한 명의 비각오호가 싸늘한 어조로 맞장구쳤다.
『큰형, 이자들은 관을 보지 않으면 눈물을 흘리지 않아요. 우리 형제들이 그들의 뜻을 이루어 주어, 그들이 황천길로 가서 군유명과 만나 마음껏 회포를 풀게 해 줍시다!』
초이귀는 짙게 코웃음 쳤다.
『불쌍하게도 너희들 몇 명의 등신들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아직 모르고 있구나. 여전히 그곳에서 제미랄, 미친 개소리만 하고 있군. 좋아! 말만 하고 직접 솜씨를 보이지 않는다면 사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모두 덤벼라! 너희들이 관속으로 들어갈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들어갈 것인지 어디 두고 보자!』
하일랑은 한숨 돌리고 있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자린도를 쳐들고 사납게 입을 열었다.
『둘째형, 우리 공격합시다!』
그 붉은 얼굴의 대한이 싸늘히 냉소를 흘렸다.
『죽고 사는 것을 모르는 것들이군. 잠시 후에 너희들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황천길로 가도록 해라. 우리 나리들께서는 너희의 시체에 오줌을 갈겨 너희들을 전송하겠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비각오호의 나머지 네 사람은 즉시 왁하니 크게 웃었다.
하일랑은 그와같은 말에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큰소리로 꾸짖었다.
『나는 너희를 산 채로 껍질을 벗기겠다!』
초이귀는 손을 뻗쳐서 그를 말리며 음침하게 그 커다란 입을 벌려 싯누런 앞니를 드러내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긴장할 것 없다, 다섯 명의 옛 친구들. 지금 너희들이 그토록 기뻐하는데 너무 이른 감이 없지 않다. 시험해 보자꾸나. 정말 그 어느 쪽에서 누구를 위해 오줌을 누고 전송하는지 두고 보자!…』
초이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왼쪽의 잡목나무의 그늘진 곳에서 어느덧 군유명이 유령처럼 표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싸늘하기 이를 데 없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말 한 번 잘했네. 이귀, 비각오호라는 다섯 분의 천고에 드문 영웅들이 오늘 밤에는 아무래도 불이익을 당할 것 같군!』
비각오호는 어두운 곳에 적이 잠복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터라 그만 깜짝 놀라 눈길을 옮겼다.
이 때 하일랑이 어느덧 큰소리로 한 번 외치더니 털썩 무릎을 꿇고 격동된 음성으로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공자, 공자시군요… 어르신이 틀림없죠? 정말 어르신이십니까?』
다섯 녀석은 그 말에 후닥닥 뒤로 물러섰으나 그 자리에서 뻣뻣해져서 다섯 쌍의 눈을 찢어질 듯 부릅떴다.
그들의 눈동자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얼음구덩이로 떨어져 혈액이 응고된 듯했으며 오장육부까지 마비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군유명은 온화하게 웃었다.
『우리들은 잠시 후에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자. 일랑, 자네는 몸을 일으키게.』
벌벌 떠는 하일랑은 초이귀의 부축을 받아서야 겨우 일어설 수 있었다. 그는 희세의 기이한 보물을 보듯 군유명을 쳐다보고 있었다.
초이귀는 하일랑을 한 번 꼬집어 주고는 입을 열었다.
『자네는 왜 그렇게 공자를 노려보는가? 공자께서 한 가닥의 연기처럼 흩어질까 봐 걱정되는가? 제미럴, 어째서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멍청해지는 것이지?』
하일랑은 흐느끼는 소리로 자기의 격앙된 감정을 억제하려고 애쓰면서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둘째형… 공자께서는 돌아가시지 않았군요.』
초이귀는 침을 탁, 뱉고는 웃었다.
『쓸데없는 소리. 죽었다면 어떻게 지금 이곳에 모습을 나타 낼 수 있겠느냐? 이제 그런 문제는 접어두기로 하고 우리들은 공자께서 어떻게 개새끼들의 머리를 잘라내는지 보자!』
이 때 군유명은 비각오호를 향해 웃으며 담담히 입을 열었다.
『다섯 분께 군유명이 인사를 드리네. 나는 살아 있네. 나는 그 무엇을 되찾아가려고 온 것이지. 물론 여러분들도 내가 받아가려고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되네.』
비각오호라는 다섯 명의 친구들은 그만 온몸이 얼음과 같이 차가와지는 것을 금하지 못했다.
그들은 벌벌 떨면서 약속이나 한 듯이 자꾸 뒤로 물러났다.
군유명은 다가서지 않고 여전히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사람을 죽였으면 목숨을 바치고 빚을 졌으면 돈을 갚으라는 말이 있지, 자네들이 갚아야 할 것은 반드시 갚아야 할 것이네. 자네들도 나에게 빚진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
우두머리 붉은 얼굴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군… 군유명… 당신은 명이 길구려… 그러나… 당신이 돌아와 원수를 갚으려면… 마땅히 음모를 꾸민 주모자를 죽여야 할 것이오… 우리들은… 아, 우리들은 다만 다른 사람의 심부름을 했을 뿐이오. 당신이… 우리에게 손을 쓴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습니다.』
군유명은 빙그레 웃었다.
『자네들은 동강을 도와 함께 악한 짓을 하고 그에게 협조해서 천리에 어긋나는 일을 했네. 자네들이 어떤 대단한 인물들은 아니지만 가볍게 용서할 수는 없지. 적어도 자네들은 한 번 죽을 죄를 지었어.』
붉은 얼굴의 대한은 공포에 질려 부르짖었다.
『당신을 해친 것은 동강이외다. 군유명, 당신은 그 고강한 무공으로 약자들을 괴롭히지 마시오!』
군유명은 안색을 굳히더니 매섭게 입을 열었다.
『나는 원수를 갚으려는 것이다!』
삭, 하는 소리가 나면서 검은빛 소가죽 자루가 벌려지고 군유명의 오른손에는 어느덧 마술을 부린 듯, 간담을 서늘케 했던 무기 천선장이 들려 있었다.
비각오호의 안색이 대뜸 잿빛으로 변했으며 다섯 사람들은 벌벌 떨었다. 입술이 새파랗게 되어 이빨을 딱딱 마주치고 있는데 그 몰골은 너무나 가련했다.
군유명은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실망했네, 실망했어. 강호에서 명성이 알려진 비각오호가 뜻밖에도 이토록 형편없는 놈들이라니 놀랍군. 설마하니 당신네 다섯 분은 그와 같은 모양으로 강호에서 빌어먹을 수 있었단 말인가?』
군유명은 빙그레 웃고서는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헛되이 양식을 축냈지. 당신들이 허우대가 멀쩡하니 보통 사람보다 먹는 양도 많겠군. 이 돼지 같은 놈들아, 내가 한 가지 제안을 하겠다. 다섯이 자결을 한다면 나는 시체를 훼손하지 않겠다. 그리고 땅에 묻어주마.』
별안간 비각오호 우두머리격인 붉은 얼굴의 대한이 미친 듯 날카롭게 호통 쳤다.
『군유명, 너는 제에미, 꿈꾸지 말아라!』
말아라! 하는 소리가 아직도 허공에서 메아리되어 사라지기도 전에 열 개의 비각이 어느덧 시퍼런 유광(流光)을 빛내며 예리한 파공성을 일으키며 열 개의 다른 방향에서 일제히 폭사되었다.
천선장의 날 위에 연결되어 있는 보름달 모양의 엷은 조각들이 느닷없이 쨍그랑, 하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들리는 순간 군유명의 신형은 더욱더 빠르게 번개처럼 한쪽으로 파고들었다. 시야로 포착하기 힘들 정도로 빨리 그 천선장 윗쪽의 강철날이 두 명 적의 뒷덜미를 스쳤다.
『아악!』
『흐악!』
비각오호 가운데 두 명의 친구는 바람 빠지는 비명을 지르며 일제히 앞으로 푹, 꼬꾸라졌으며 잘려진 머리통이 그 충격을 받아 데굴데굴 굴러가고 핏줄기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군유명은 벼락같이 선회하더니 천선장을 휘둘렀다. 은빛 용이 허공을 날았다.
쨍그랑!
보름달 모양의 엷은 조각들이 진동하는 가운데 네 개의 선회하며 뻗쳐오는 비각이 모조리 퉁겨져 허공으로 날아가고 곧이어 번갯불처럼 천선장의 머리에 달려 있는 예리한 송곳이 어느덧 다른 한 명의 목줄기를 꿰뚫었다.
『켁!』
그 자는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졌다.
그 순간 두 개의 비각이 급히 쏘아지며 들이닥치자 군유명은 천선장을 휘둘러 맹렬히 그 비각을 후려쳤다.
바로 천선장이 번뜩이는 들어올려지는 그 찰나 후닥닥 반대방향으로 뒤집어지면서 천선장의 세찬 힘을 이용해서 온몸을 퉁기듯 아홉 자나 솟구쳐 올렸다.
그 찰나 천선장을 벼락같이 휘둘렀다.
쒸이잉!
소름끼치는 파공성이 일더니 천선장의 그림자가 하늘을 가득히 뒤덮더니 비각오호 중의 한 명이 배가 수평으로 째졌다.
『으아아악!』
그는 미친 듯이 비명을 질렀다.
시퍼러죽죽한 창자가 마치 이상한 뱀처럼 꾸불텅거리며 온 땅바닥에 뿌려지게 되었을 적에 군유명의 천선장은 잇달아 일곱 번이나, 죽을 둥 살 둥 공격해 오는 적의 맹렬한 공세를 차단했다.
보름달 모양의 엷은 조각이 가지각색의 빛무리를 떨쳐 내는 가운데 그가 아홉 번 아래위로 몸을 솟구치는 동안에 최후까지 살아 있던 비각오호의 우두머리 붉은 얼굴의 대한은 몸이 열십자로 쪼개져 네 토막이 나 죽고 말았다.
격전은 시작과 동시에 마무리되었다. 두 번 숨을 쉬는 동안에 끝난 것이었다.
조금 전까지 살아 숨쉬고 있던 대한들은 이미 시체로 변해 뒹굴고 있었다.
군유명은 그 자리에 서서 가볍게 자기의 천선장을 떨쳤다. 천선장에 달려 있는 보름달 모양의 엷은 조각들은 쨍그랑거리며 밤의 적막을 깨뜨렸다.
이어 그는 벙긋 미소를 짓더니 손에 든 힘을 풀었다.
그러자 천선장에 연결된 그의 손목에서 쇠가죽 자루가 수직으로 드리워지더니 천선장은 즉시 자루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하일랑은 갈채를 보내며 외쳤다.
『며칠 공자를 보지 못하는 사이에 공자의 무예는 조금도 감소되지 않았군요!』
군유명은 빙그레 웃으며 다가갔다.
『자네의 그 주둥이도 더욱 야무져졌더군.』
초이귀는 껄껄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하, 이 녀석은 주둥이질을 빼면 시체죠.』
군유명은 천선장을 초이귀에게 건네주었다.
초이귀는 공손히 두 손으로 받아서 닦더니 잘 갈무리했다.
군유명은 뒷짐을 진 채 하일랑을 바라보았다.
『어디 말해 보게. 하일랑.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