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 -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Pape Satàn Aleppe: Cronache di una società liquida)
유동 사회는 사람들이 <포스트모던>이라 부르는 흐름과 함께 부각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포스트모던은 모호한 <포괄 개념>으로 건축에서 철학을 거쳐 문학에 이르는 다양한 현상을 아우르지만, 항상 통일적 관련성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포스트모던은 세계를 하나의 질서 모델로 묶으라고 요구한 <거대 서사>의 위기를 강조했다.
또한 과거를 유희적 또는 풍자적으로 새롭게 검토하는 작업에 나섰고, 그 과정에서 몇몇 방식으로 허무주의 경향과 겹치는 부분이 생겨났다.
그러나 보르도니가 볼 때, 포스트모던도 그사이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포스트모던은 일시적 현상이었고,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을 지나왔으며, 언젠가는 전기 낭만주의를 연구하듯 포스트모던을 연구하는 날이 올지 모른다.
포스트모던은 무언가 새로 생겨난현상을 일컫는 데 사용된 개념으로서, 근대부터 아직은 이름이 정해지지 않은 현재까지의 과도기를 표현하고 있다.
바우만이 볼 때, 현대에 새로 생겨난 특징 중 하나가 국가의 위기다.
초국가적 실체의 권능에 맞서고 있는 지금의 국가들에 어떤 결정의 자유가 남아 있을까?
개인에게 우리 시대의 문제를 동질적 방식으로 해결할 가능성을 보장하던 조직체는 사라졌고, 그런 조직체의 위기와 함께 이데올로기의 위기 역시 심화되었다.
이어 정당의 위기가 고조되었고, 개인의 욕구를 이해하고 해석하면서 조직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을 개인에게 심어 주던 가치 공동체도 전반적인 위기에 빠졌다.
공동체 개념의 위기와 함께 오직 자기만 아는 무분별한 개인주의가 생겨났다.
이런 사회에서는 누구도 더는 타인의 동반자가 아니다.
주변엔 오직 내가 맞서서나 자신을 지켜 내야 할 경쟁자나 적뿐이다.
이런 <주관주의>로 근대의 근간이 흔들리고 허물어졌고, 그와 함께 확고한 기준점의 결여로 모 든 것이 어느 정도씩 유동하는 상황이 생겨났다.
우리는 법에 대한 믿음을 잃었고(사법부는 이제 적으로 느껴진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남의 눈에 띄는 것이 기준점 없는 개인의 유일한 해결책이 되었다.
돈으로 자신을 드러 내는 행태(내가 성냥갑 칼럼에서 자주 다룬 현상이다), 소비주의, 무절제한 소비 행태가 그런 것들에 속한다.
이런 소비 행태는 대상을 소유해서 즐기는 것이 아니라, 욕망의 대상을 구매하자마자 바로 폐물로 만들어 버리면서도 끝없이 배를 채워야만 직성이 풀리는 폭식증 환자처럼 걷잡을 수 없는 구매 충동에 사로잡혀 이 물건 저 물건을 계속 집어 드는 것이 목표다.
스마트폰을 떠올려 보라. 신형이 예전 것보다 성능 면에서 별 차이가 없는데도 이런 광란의 욕망 대열에 참여하려면 아직 멀쩡한 핸드폰을 폐물로 만들어 버려야 한다.
이데올로기와 정당의 위기는 어떤가! 흔히 말하길, 오늘날의 정당은 국민의 지도자(유혹자)나 마피아 보스가 투표권 뭉치를 들고 올라타는 택시와 비슷하다고 한다.
이 지도자는 그때그때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에 따라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이 쇼핑하듯 정당을 고르는데, 이전이라면 파렴치한 철새 정치인이라고 손가락질했겠지만 더 이상 그럴 수도 없을 듯하다.
요즘은 개인 뿐 아니라 온 사회가 지속적인 프레카리아트화 과정 속에서 살아간다.
(주 : 프레카리아트 precariat는 이탈리아어로 ‘불안정한(precario)’과 프롤레타리아트의 합성어
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 불안정한 고용과 노동 상황에 처한 비정규직, 파견직, 실업자 등을 총칭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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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첼리 신부님의 대답은 내가 무슨 일을 완수했더라도, 또 그 일이 아무리 선하고 옳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뻐길 필요는 없다는 것을, 특히 자만심에 빠져 떠벌리고 다녀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렇다면 자기 일을 최대한 잘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뜻일까? 천만의 만만의 말씀!
나는 돈 첼리 신부님의 대답을 떠올리면 어디서 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올리버 웬들 홈스 2세의 금언이 생각나곤 한다.
<내 성공의 비 밀은 젊었을 때 내가 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데 있다.>
자신이 신이 아님을 깨닫고, 자신의 행위를 항상 의심하면서 지난 삶을 충분히 잘 살지 못했음을 자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만 나머지 시간을 더 잘 보내려고 노력할 수 있다.
이런 말을 왜 하필 선거전이 시작된 지금 하느냐고 물을지 모른다.
다시 말해,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어느 정도 신처럼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고, 조물주가 세상을 창조한 뒤에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완수한 일이 정말 잘됐다고 선전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앞으로 더 훌륭하게 완수할 자신이 있다고 선언하면서(물론 신은 이미 가장 훌륭한 세계를 창조했다는 것에 만족하고 더 이상 나가지는 않았다) 웬만큼 과대망상 증세를 드러내야 하는 이 선거 기간에 말이다.
나는 여기서 도덕적 설교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건 가당치도 않다.
선거에 이기려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
유능한 정치인을 기 대하는 유권자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후보를 상상할 수 있을까?
<저는 지금 껏 하는 일마다 되는 게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더 잘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런 후보는 당선되지 못한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여기서 도덕주의를 설파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텔레비 전에서 이런저런 정치 토론을 보고 있자니 나의 옛 스승인 돈 첼리가 절로 떠올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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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문화에서는 과거를 현재에 동화시키는 이런 일이 거리낌 없이 이루어 지고 있다.
심지어 본인이 철학 교수임에도 다음과 같이 당당히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인간의 생각하는 방법에 대해 데카르트가 말한 것을 이제는 굳이 알 필요가 없다.
중요한 건 오늘날 인지 과학이 그중 얼마나 많은 것을 과학적으로 밝혀냈느냐 하는 것뿐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인지 과학이 지금의 위치에 도달하게 된 게 17세기 철학자들이 그와 관련한 토론을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과거의 경험에서 미래의 교훈을 끌어내려는 시도를 포기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역사를 인생의 스승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을 곰팡내 풀풀나는 서당 훈장의 잔소리 정도로 치부하지만, 그럼에도 분명한 건 있다.
만일 히틀러가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을 면밀히 연구했더라면 과거와 똑같은 덫에 빠지지 않았
을 것이고, 부시가 19세기 영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잘 알고 있었더라면, 아니 최소한 소련이 초기 탈레반과 벌인 최근의 전쟁이라도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아프가니스탄 원정을 다르게 기획했을 것이다.
처칠을 허구의 인물로 여기는 영국의 골빈 사람들과 15일이면 문제를 깔 끔하게 해결할 거라는 믿음으로 미군을 이라크로 보낸 부시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둘 다 역사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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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에선 이렇게 주장한다.
포스트모던의 세계에선 아름다움과 추함의 대립이 모두 사라졌다고.
이는 단순히 「맥베스」에서 마녀들이 <아름다운 것은 추하고, 추한 것은 아름답다>고 말하는 차원이 아니다. 둘의 가치가 융함됨으로써 그것을 가르는 특성들까지 완전히 사라졌다는 뜻이다.
맞는 말일까? 만일 청년이나 예술가들의 그런 행동 양태가 단순히 주변부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것도 지구의 전체 주민 수에 대면 아주 적은 사람들만 열광하는 현상에 불과하다면?
텔레비전에서는 배만 불룩 튀어나왔을 뿐 뼈만 남은 굶주린 아이들이 수시로 나온다.
우리는 침략군에게 강간 당한 여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무자비하게 고문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안다. 게다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가스실로 끌려 들어간 또 다른 해골 같은 사람들의 모습도 우리 눈앞에 반복해서 아른거린다.
우리는 어제 바로 고층 건물의 폭발이나 비행기 추락으로 사지가 갈기갈기 찢긴 몸뚱이들을 보고, 어쩌면 내일 바로 우리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간다.
이 모든 것이 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아무리 미학적 판단이 상대적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것들까지 쾌락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다.
사이보그, 스플래터 영화, 괴물 영화, 재난 영화는 대중에게 열광적인 찬사를 받지만,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실은 허구일 뿐이라고 치부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짓누르고 포위하고 두려움으로 가득 채우는 저 심층의 추함을 무시하고 내쫓으려는 외적 몸부림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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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요즘 사람들이 텔레비전 화면에 나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건 할 용의가 있는 세태를 두고 토론하는 중이었다.
설사 인터뷰 하는 사람의 뒤에서 손을 흔들거나 터무니없이 V자를 그리는 바보 같은 모습으로 나오더라도 말이다.
최근에 이탈리아에서는 잔인하게 살해된 한 젊은 여자의 오빠가 고통스러운 얼굴로 매스컴을 타는 영예를 누렸다. 그 뒤 그는 마약 판매와 텍스 파티로 몇 차례 감방을 들락거린 전력이 있는 연예 기획사 대표 렐레 모라를 찾아가 텔레비전에 나갈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자신의 비극적인 유명세를 적절히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요즘엔 텔레비전에 나오려고 공개적으로 아내가 바람이 났다고 털어놓고, 스스로 발기 부전이라거나 사기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범죄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연쇄 살인범 중에도 마지막에 체포되어 유명해지는 것이 범죄의 주동기일 때가 드물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리는 이런 미친 짓이 대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궁금했다.
마리아스는 인간이 더 이상 신을 믿지 않아서 그렇다는 과감한 가정을 내놓았다.
옛날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건 항상 자신을 지켜보고, 자신의 모든 행동과 생각을 읽고, 자신을 이해하고, 또 필요할 땐 벌까지 내릴 수 있는 존재가 최소한 하나는 있다고 확신했다.
누구는 공동체에서 버림받기도 하고, 누구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기도 하고, 심지어 누구는 주변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죽은 지 몇 분 만에 모두가 까맣게 잊어버리는 <가련한 인생>일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저 위의 한 존재만큼은 자신을 알아줄 거라는 확신을 품고 살아갔다.
자식들에게 버림받은 병든 할머니는 말한다. <이 괴로운 마음을 신은 알 거야.>
부당하게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렇게 스스로 위안 한다. <신은 내가 죄가 없다는 걸 알 거야.> 어머니는 배은망덕한 아들에게 말한다. <내가 너를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 신은 알 거야.> 버림받은 애인은 이렇게 소리친다. <신은 내가 얼마나 너를 사랑하는지 알 거야..> 운명의 시련에 빠져 고통받고 있지만 아무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이렇게 한탄한다. <내가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는 신만이 알 거야.>
이처럼 신은 모르는 것이 없고, 날카롭고 정의로운 눈으로 김빠지고 진부하기 짝이 없는 삶에도 하나의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로서 인간들에 의해 거듭 소환된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이 위대한 증인이 사라지거나 쫓겨나고 나면 뭐가 남을까?
사회의 눈, 타인의 눈이 남는다.
사람들은 남들에게 잊히지 않기 위해, 이 사회에서 익명의 블랙홀에 빠지지 않기 위해 속옷만 입은 채로 술집 테이블 위에서 춤을 추는 얼간이 짓도 마다하지 않는다.
모두 남의 눈을 의식한 행동이다.
텔레비전 출연은 저 초월적인 존재를 대신하는, 전체적으로 고마운 유일한 대용품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텔레비전이라는, 현실과 다른 피안의 세계에 들어가 있고, 그 피안에서 남들에게 자신을 보여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 지상의 피안에서는 모두가 우리를 본다. 우리 자신도 여기 아래에 있다.
비록 재빨리 사라지는 덧없는 순간이지만 이때만큼은 불멸의 느낌을 즐기고, 그와 동시에 지상의 우리 집에서 천국으로의 비상을 축하받을 가능성이 열린다.
생각해 보라. 그게 얼마나 황홀한 일일지!
다만 어리석은 일은 이런 경우 사람들이 ‘알아본다’는 의미를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성취나 희생, 또는 그 밖의 좋은 특성을 남들이 <알아주기>를 원한다.
하지만 우리가 텔레비전에 나온 다음 날 누군가 카페에서 우리를 보고는 <야, 어제 너 텔레비전에 나온 거 봤어!> 하고 말한다면 그건 단순히 네 얼굴을 알아봤다는 것이지, 너를 알아준다는 뜻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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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는 시골 마을이나 도시 외곽에 대형 TV 화면을 갖다 놓고 스포츠 경기를 틀어 주는 술집과 비슷하다.
거기엔 동네 바보를 비롯해 이놈의 정부 가 없는 사람들의 주머니만 턴다고 불평하는 영세업자, 대학 병원 해부학 교수 자리에 지원했다가 떨어져서 괴로워하는 보건소 의사, 이미 혀가 꼬인 취객, 로마 외곽 순환 도로에서 영업하는 춘부에 대해 게거품을 물고 이야기하는 화물차 운전사, 그리고 가끔은 이성적인 얘기도 하는 사람들까지 온갖 인간 군상이 다 모여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내뱉는다. 거기서 오가는 말은 모두 그 자리에만 머문다.
술집에서의 수다가 국제 정치를 바꾸지는 못한다.
다만 파시즘 정권만이 술집에서 오고 가는 수다로 정치가 바뀔 것을 걱정해서 그런 곳에서 정치
이야기를 금지한 바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다수의 생각은 각자 자기 생각을 내놓은 뒤 집계되는 투표용지의 수로 나타날 뿐이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내놓은 의견이 선택되면 술집에서 말했던 것들은 모두 잊히고 만다.
이처럼 트위터상에는 별 의미 없는 가벼운 의견들이 난무한다.
그건 아무리 거대한 이념이라도 140자 이하로 표현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인 것 같기도하다.
예를 들어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라는 표현처럼 말이다.
하지만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The Wealth of Nations'에 대해 쓰려면 그보다 더 많은 글자가 필요하고, E=mc2의 의미를 설명하려면 그보다 훨씬 많은 글자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엔리코 레타 같은 권력자들까지 왜 트위터를 하는 것일까?
내각 수반으로서 자신의 의견을 성명서 형태로 뉴스 통신사에 보내면 곧바로 신문과 텔레비전에 보도되어 인터넷을 하지 않는 수많은 사람에게도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말이다.
그건 교황도 마찬가지다.
교황은 자신의 축복과 강론을 텔레비전을 통해 수백 수천만 명의 사람에게 전달해 놓고도 왜 바티칸의 많은 신학 연구생에게 다시 짧은 말로 요약해서 인터넷에 올리게 하는 것일까?
솔직히 난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아마 누군가 인터넷 이용자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득했을지 모른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엔리코 레타와 프란치스코 교황은 뭐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세상의 그 많은 장삼이사나 필부들은 대체 왜 트위터를 하는 것일까?
혹시 잠깐이라도 자신이 총리나 교황과 비슷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즐기기 위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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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득 이런 의문이 든다.
사생활이라는 게 실제로 우리한테 그렇게 많을까?
예전엔 프라이버시의 가장 큰 위협 요소는 남들의 구설수였다.
그게 무서웠던 이유는 그로 인해 우리의 사회적 위신이 치명상을 입고, 자신의 치부가 남들에게 공공연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엔 어쩌면 이른바 유동 사회 때문에, 그러니까 모두가 정체성 위기와 가치 혼란에 빠져 방향타가 되어 줄 기준점을 상실한 이 유동 사회 때문에 사회적 인정을 받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예전에는 부모나 친구에게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숨기려 했던 여자들도 요즘엔 <에스코트 걸>이라는 명칭까지 당당히 써가면서 자신의 공적인 역할을 받아들이고, 심지어 텔레비전에까지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떳떳하게 들려준다.
과거에는 남들 이목 때문에 가정 내 싸움을 꼭꼭 숨겼던 부부도 이제는 흔쾌히 쓰레기 같은 방송에 나와 관객들의 박수갈채 속에서 어떤 때는 바람을 피운 역할로, 어떤 때는 파트너에게 배신당한 역할로 자신을 드러낸다.
버스나 기차에서도 사람들은 핸드폰으로 큰 소리로 통화하면서 남들이야 듣든 말든 자신의 가정사를 미주알고주알 털어놓고, 자신의 세금 신고를 대행해 주는 세무사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소상히 이야기하기도 한다.
심지어 쫓기는 범죄자들도 예전처럼 사회적 분노가 가라앉을 때까지 시골로 도망가 숨는 것이 아
니라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 앞에 나타나길 좋아한다.
모두에게 무시당하는 성실한 사람보다는 세상 사람이 모두 알아보는 도둑이 되고 싶은 것이다.
얼마 전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La Repubblica에 지그문트 바우만의 글이 실렸는데, 거기서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감시하는 도구 역할을 하는 페이스북 같은 소셜 네트워크는 여러 권력 기관의 통제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지만, 사용자들의 열정적인 기여 덕분에 우리를, 바우만의 표현에 따르면 고백 사회로 이끈다.
이 사회는 <공개적인 자기표현을 구성원들의 사회적 실존을 증명하는 중요하고도 쉽게 이해되는 명확한 증거의 지위로까지 승격시킨다.>
달리 표현하자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비밀 탐지의 대상이 비밀을 캐야 하는 스파이의 일을 덜어 주려고 그들과 협력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이러한 항복에서 만족감을 얻는다.
그들이 존재하는 동안 누군가는 그들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그들이 범죄자로 보이건, 바보로 보이건 그건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다른 진실도 있다.
언젠가 누군가 모두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이 모두가 지구 주민 전체로까지 확장되는 일이 벌어진다면 이런 식의 정보 과잉은 혼란과 소음, 침묵만 불러올 뿐이다.
물론 그로 인해 불안한 건 스파이 뿐이다.
반면에 비밀 탐지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자신과 자신의 비밀에 대해 친구건 이웃이건, 아니면 적까지 다 알고 있다고 해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
그들은 그런 식으로만 자신이 살아 있다고, 또 사회의 능동적인 일원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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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노인에게 연금을 주려면 누군가는 일을 해야 할 텐데, 누가 할까? 대안이 있다.
이탈리아 국적을 취득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지금도 곳곳에서 저임금과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이민자들이 그들이다.
이들은 예부터 늦어도 쉰 살이면 죽곤 하는데, 다른 신선한 노동력에 기존 역할을 물려줄 절호의 타이밍이다.
이제 두 세대 이내에 수백만 명의 갈색 피부 이탈리아인들이 수많은 종자를 거느린 돈 많은 백인들의 안락한 삶을 보장해 줄 것이다.
이 백인 노인들은 식민지 저택 같은 집의 베란다나 호숫가 또는 해변에서 소다를 탄 위스키를 홀짝거린다.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 빈민가엔 홈 쇼핑에서 산 표백제로 떡칠한 유색 좀비들만 득실거린다.
덧붙이자면, 우리가 현재 게걸음으로 나아가고 있고, 진보란 그사이 퇴보와 같은 말이 되어 버렸다는 내 소신에 맞게, 사람들은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그 옛날 인도와 말레이군도, 중앙아프리카의 영국 식민지 제국과 비슷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음을 의료 기술의 발달로 운 좋게 백 세까지 산 사람은 자신이 마치 말레이시아 사라왁주에서 백인 왕으로 등극한 제임스 브룩 경이 된 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내가 에밀리오 살가리의 소설을 읽으면서 동경하게 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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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례도 있다.
한 학생이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방향도 올바르고 내용도 충실해 보인다.
하지만 이것 역시 인터넷에서 베낀 내용이다.
나는 이건 그렇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잘 베끼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정확하고 올바른 자료를 찾아낼 줄 아는 학생은 좋은 점수를 받을 권리가 있다.
사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도 학생들은 도서관에서 관련 책을 찾아 베꼈다.
그런 면에선 바뀐 건 전혀 없다. 다만 옛날엔 품이 좀 더 들었을 뿐이다.
훌륭한 강사라면 어떤 과제물이 무작위로 베낀 것인지 바로 알아내고, 변조나 위조의 냄새도 쉽게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반복하자면 좋은 자료를 잘 찾아내서 베낀 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인터넷의 결함을 교육적으로 활용할 효과적인 방법도 있을 듯하다.
예를 들어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과제를 주고 에세이나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하는 것이다.
<어떤 주제에 대해 인터넷상에서 전혀 신빙성이 없어 보이는 일련의 자료들을 찾아보고, 그것들이 왜 신빙성이 없는지 이유를 설명 하시오!〉
이는 여러 자료를 비교하는 기술과 비판 능력을 요하는 과제인 동시에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를 분간하는 기술을 연마할 기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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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은 학생에게 거의 모든 것을 말해 주지만, 그 정보를 어떤 목적에 맞게 어떻게 찾을지, 찾은 다음에는 어떻게 거르고 선별할지, 또 어떤 기준으로 수용해야 하는지는 알려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저장 공간만 충분하다면 누구나 새로운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정보가 저장할 가치가 있고, 어떤 건 그렇지 않은지 판단하는 데에는 섬세한 기술이 필요하다.
그 기술을 장악하고 있느냐가 설사 성적이 나쁘더라도 정규 학교 수업을 들은 학생과 천재적인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독학자 사이의 차이를 만든다.
그럼에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는 교사조차 옥석을 구분하는 기술을 가르칠 능력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모든 지식 영역에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럼에도 교사는 자신이 그럴 수 있어야 한다는것을 안다.
어떻게 옥석을 가리는지 정확한 지침을 줄 수 없다면 최소한 인터넷이 제공하는 정보를 매번 비교하고 평가하는 데 정성을 쏟는 누군가를 예를 들어 줄 수는 있다.
결국 교사는 인터넷이 알파벳 순서로 제공하는 것들을 하나의 체계로 묶으려고 매일 노력해야 한다. 인터넷은 티무르와 외떡 잎식물이 있다는 것은 말해 줄 수 있지만, 이 두 개념 사이에 어떤 체계적인 관련이 있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그런 관련은 학교에서만 가르칠 수 있다. 학교가 아직 그럴 능력이 없다면 빨리 배워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인터넷internet, 정보information, 투자 investment로 이어지는 세계는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는 당나귀의 울음소 리에 그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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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에는 입속에 돌을 넣은 것이 아니라 핸드폰을 넣었다.
내게는 굉장히 상징적인 의미로 다가왔다.
새로운 범죄 조직은 더 이상 촌스럽지 않다. 대신 세련되고 기술적이다.
그래서 죽은 사람을 재갈 물린 염소 따위로 만들지 않고 사이보그로 만든 것은 자연스럽다.
게다가 누군가의 입에 핸드폰을 쑤셔 넣는 것은 그 사람의 성기를 잘라 내는 것과 비슷하다.
그의 소유물 중에서 가장 내밀하고 개인적인 것을 훼손하는 일일 테니까.
그사이 핸드폰은 자연스럽게 우리 육체의 일부가 되었다.
귀의 연장이고, 눈의 연장이고, 심지어 페니스의 연장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그의 핸드폰으로 질식시키는 것은 그의 창자로 목을 졸라 죽이는 것이나 진배없다.
<자, 받아, 메시지 왔어!>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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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에 프랑스의 여러 대성당을 돌아다닌 직후 내가 어떻게 갑자기 사진 찍기를 중단하게 되었는지는 이미 여러 자리에서 밝힌 바 있다.
그것도 틈 만나면 미친 듯이 세상의 모든 것을 렌즈에 담던 인간이 말이다.
사진을 찍고 집에 돌아가면 내 앞에는 나쁜 사진만 수북이 쌓여 있었다.
정작 내가 본 것들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뒤로 나는 카메라를 던져 버렸다.
이후의 여행에서는 내가 본 것들을 모두 마음에만 담았고, 타인과 나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기억하려고 마음에 드는 엽서를 사기 시작했다.
열한 살 때였을 것이다. 우리가 피난 갔던 도시의 성벽 근처에서 이례적인 소리가 들려 달려갔다. 저 멀리 화물차와 마차가 충돌한 광경이 보였다.
마부석에는 농부 부부가 타고 있었던 것 같은데, 아내는 이미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머리가 깨진 채로. 그녀는 피와 뇌수를 철철흘리며 죽은 채로 누워 있었고(이 끔찍한 장면은 마치 딸기 크림 케이크가 짓뭉개진 것 같은 모습으로 내 머릿속에 아직도 단단히 각인되어 있다), 남편은 그런 아내를 부둥켜안고 절망적으로 울부짖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공포로 온몸이 굳어 버렸다.
아스팔트 위에 사람의 뇌수가 흘러내린 광경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다행히도 그게 마지막 이다). 게다가 죽은 사람을 본 것도, 돌이킬 수 없는 슬픔과 절망을 본 것도 처음이었다.
만일 그때 내가 오늘날의 거의 모든 청소년처럼 카메라 기능이 장착된 핸드폰을 갖고 있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어쩌면 나는 사고 현장에 내가 있었다는 걸 친구들에게 보여 주려고 그 장면을 찍었을 것이고, 그다음에는 남의 불행을 나의 행복으로 아는 사람들을 위해 그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을 지 모른다. 그다음에도 그런 짓을 계속해 나가다가 또 다른 사고 장면들을 찍고, 그래서 타인의 고통에 무덤덤한 인간으로 변해 갔을지 모른다.
그 대신 나는 모든 것을 내 기억 속에 저장했다.
70년이 지난 뒤에도 이 기억 속의 영상은 나를 따라다니면서 타인의 고통에 냉담한 인간이 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
사실 요즘 아이들에게 그런 어른이 될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도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어른들은 영원히 구제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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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이 핸드폰 증후군을 다른 책이 수십 권이나 출간되어서 더 이상 따로 덧붙일 말이 없다는 건
나도 잘 안다. 그래도 또 곰곰이 생각해 보면 거의 모든 인류가 똑같은 광기에 사로잡혀 이제는 서로 얼굴을 맞대고 시선을 교환하는 일이 없을 뿐 아니라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주변을 관찰하지도 않는다.
오직 귀신 들린 것처럼 말하고 또 말하고, 그렇다고 굳이 해야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평생을 바보들의 끝없는 대화처럼 보낸다는 사실이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다.
이유는 아마 수백 년 동안 마법이 약속해 온, 인류가 그렇게 열망하던 세 가지 소망 중 하나가 처음으로 실현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첫 번째 소망은 하늘을 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비행기를 타야만 가능할 뿐 우리는 아직 스스로 공중으로 떠올라 두 팔을 저으며 날지 못한다.
두 번째 소망은 특정한 주문을 외거나 인형에 바늘을 찌름으로써 적이나 사랑하는 이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었다.
세 번째 소망은 신령스러운 정신이나 신비한 대상의 힘을 빌려 아무리 멀리 떨어진 사람과도 대양과 산맥을 넘어 소통하는 것이었다. 그 꿈은 이루어졌다.
이제 우리는 순식간에 리보르노에서 히말라야로, 이니스프리섬에서 팀북투로, 바그다드에서 미국의 포킵시로 이동해서 시간 손실 없이 수천 마일 떨어진 사람과도 소통할 수 있다.
그것도 혼자 힘으로 말이다.
텔레비전은 아직 그게 안 된다. 왜냐하면 거기서 우리는 여전히 타인의 결정에 종속될 수밖에 없고, 항상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이 마법의 꿈을 인간이 이룰 수 있게 해준 것은 무엇일까?
바로 빨리빨리 정신이다. 마법은 우리가 단번에 원인에서 결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약속했다.
중간 단계를 거칠 필요 없이 곧장 직접적인 연결을 통해서 말이다.
우리는 주문을 외워 쇠를 황금으로 바꾸고, 천사를 불러 소식을 보낸다.
마법에 대한 이런 믿음은 실험 과학의 등장으로도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원인과 결과의 동시성이라는 꿈은 테크놀로지로 전환되었다.
오늘날 테크놀로지는 인간에게 원하는 모든 것을 즉시 안겨 준다.
(예를 들어 핸드폰 버튼만 누르면 당장 시드니에 있는 사람과 대화가 가능하다.)
반면에 느릿느릿 나아가는 과학의 조심스러운 느림보 걸음은 우리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우리는 암 치료제를 내일 당장은 아니더라도 곧 얻게 되길 원한다.
그래서 몇 년 동안 기다릴 필요 없이 즉석에서 신비의 약을 약속하는 마법의 치료사를 믿고 싶어 한다.
기술에 대한 열광과 마법적 사유의 관계는 매우 밀점하고, 번개처럼 실현되는 기적에 대한 종교적 희망과 연결된다.
신학적 사유는 예나 지금이나 신비에 대해 말하고, 신비스러운 일이 얼마만큼 상상 가능한지, 또는 얼마나 헤아릴 수 없는 것인지 우리에게 보여 주려고 논증하고 또 논증한다.
반면에 기적에 대한 믿음은 우리 앞에 나타나 주저 없이 행동에 나서는 신성한 것, 불가사의한 것, 신적인 것을 드러낸다.
우리에게 당장 암 치료제를 약속하는 기적의 치료사와 경건한 비오 신부님, 이동 전화, 그리고 「백설 공주」에 나오는 못된 왕비 사이에 혹시 관련성이 있을까?
어떤 의미에서는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길에서 나와 부딪친 그 여자분은 마법의 거울보다는 음향 촬영 기기의 마법에 걸린 동
화 속 세계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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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세계가 우연으로 생성되었다고 믿기에, 트로이 전쟁부터 오늘날까지 수천 년 동안 인류를 괴롭혀 온 대부분의 사건이 예나 지금이나 우연 아니면 다른 터무니 없는 짓거리들의 동시적 조합으로 발생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체질 적으로, 그러니까 회의주의와 조심성에서 늘 모든 형태의 음모론을 의심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나 같은 인간은 단 하나의 음모론이라도 실제로 완성하기엔 너무 머리가 나쁘다.
그건 별 근거가 없는 얘기인 줄 알면서도 뿌리칠 수 없는 충동에 따라 부시 대통령과 미 정부가 이 모든 걸 기획했을 거라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 때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나는 전체적으로 설득력 있게 들리는 상반된 두 테제의 논거를 일일이 거론하고 싶지는 않고(지면이 허락하지 않는 이유도 있다), 다만 <침묵의 증거>에 대한 이야기만 언급하고 싶다. 지금도 미국인의 달 착륙이 텔레비전 스튜디오에서 조작된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주장을 반박하는 논거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침묵의 증거다.
만일 미 우주선이 실제로 달에 착륙한 것이 아니라면 당시에 누군가는 그 사실을 말했을 것이다. 지구상엔 그것을 검증할 능력이 있는 누군가가 있었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 그 누군가의 이익에도 부합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소련이다. 하지만 당시 소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엔 그것만큼 미국인들이 실제로 달에 착륙했다는 것에 대한 명백한 증거는 없어 보인다. 이것으로 논란 끝!
이제 끝으로 음모와 비밀에 관해 말해 보자.
우리는 (역사적) 경험으로 다음사실을 안다.
첫째, 비밀이 있다면, 그게 설령 단 한 사람만 아는 비밀일지라도 당사자는 웬만큼 시간이 지나면 애인과의 잠자리에서라도 비밀을 털어놓게 돼 있다. 물론 순진한 프리메이슨 단원이나 유치한 템플 기사단 신봉자라면 여전히 누구도 모르는 비밀이 있다고 믿는다.
둘째, 비밀이 있다면 적당한 가격에 그것을 팔 용의가 있는 사람도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한 영국군 장교에게 다이애나 왕세자비와의 잠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털어놓게 한 뒤 그 이야기의 저작권을 사는 데는 수십만 파운드면 족하다. 협상 대상이 다이애나의 시어머니라면 액수는 두 배로 높아진 다. 그 정도면 제아무리 신사라고 해도 넘어가지 않을 도리가 없다.)
9• 11 테러도 마찬가지다. 음모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의 말마따나 쌍둥이 빌딩에 테러를 저지른 범인이 진짜 따로 있다면, 그게 빌딩에 폭발물을 설치하는 일이 됐건, 공군의 개입을 가로막는 일이 됐건, 아니면 다른 거추장스러운 증거들을 없애는 일이 됐건 그를 위해 동원되어야 할 사람은 수천 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수백 명은 필요했을 것이다.
게다가 그런 목적에 투입된 사람들은 대체로 신사가 아니다.
그렇다면 그 모든 가담자가 하나같이 어떤 거금에도 흔들리지 않고 비밀을 팔지 않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간단히 말 해서 9• 11 테러엔 <깊은 목구멍>이 없다.
(주 : Deep Throat. 1972년에서 1973년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던 제보자의 별칭이다. 이 인물은 2005년에야 신분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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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미에서, 의심을 동반한 해석은 우리를 우리 자신의 책임으로부터 해방시킨다.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 뒤에는 하나의 비밀이 숨어 있고, 비밀의 은폐가 우리에게 해를 끼치기 위한 작당이라는 믿음을 우리에게 주기 때문이다.
음모를 믿는 것은 기적의 치료를 믿는 것과 약간 비슷하다.
다만 기적의 치료는 위협이 아니라 불가해한 행운을 설명하려 할 뿐이다.
(포퍼의 말에 따르면 사람들은 항상 신들의 작당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다행인 것은 일상생활에서도 음모와 비밀보다 더 투명한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음모는 그게 효과적일 경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 결과가 명확하게 드러나면서 백일하에 밝혀지기 마련이다.
비밀도 마찬가지다. 비밀은 보통 <깊은 목구멍들>에 의해서만 누설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비밀이라면 기적적인 물질의 형태건 정치적 기획의 형태건 시간이 지나면 밝혀지게 돼 있다.
음모와 비밀이 끝까지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건 어설픈 음모이거나 알맹이 없는 비밀, 둘 중 하나다.
비밀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힘은 그것 을 숨기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비밀이 있다고 우리가 믿게 하는 데서 나온다.
이런 의미에서 비밀과 음모는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이 갖고 노는 효과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
게오르크 지멜은 비밀에 관한 한 유명한 논문에서 이렇게 썼다.
'비밀은 그것을 가진 인물에게 예외적인 위치를 선사하는 동시에 특정한 사회적 매력으로 작용한다. 이 매력은 원칙적으로 비밀의 내용과는 상관없고, 그 중요도나 포괄성에 따라 상승한다. (…..) 인간의 자연스러운 이상화 충동과 두러움이 미지의 인간에 대한 판타지를 통해 그 가치를 상승시키고, 이미 드러난 현실로는 결코 받을 수 없는 주목을 받는다.’
역설적으로, 모든 가짜 음모 뒤에는 어쩌면 우리에게 그것을 진짜 음모로 믿게 만듦으로써 이익을 보는 사람의 음모가 숨어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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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일치를 더 듣고 싶은가? 얼마든지.
에이브러햄 링컨은 1846년에 하원 의원에 당선되었고, 존 F. 케네디는 1946년에 의회에 입성했다. 링컨이 대통령이 된 것은 1860년이고, 케네디는 1960년이었다.
둘 다 백악관에 있는 동안 아내와 자식을 잃었고, 둘 다 금요일에 남부 출신 남자가 쏜 총에 머리를 맞았다.
링컨의 비서 이름은 케네디였고, 케네디의 여비서 이름은 링컨이었다.
링컨의 후임자는 1808년 출생 앤드루 존슨이었고, 케네디의 후임자는 1908년 출생 린든 B. 존슨이었다.
링컨 암살범 존 윌크스 부스는 1839년생이고, 케네디 암살범 리 하비 오즈 월드는 1939년생이다. 링컨은 포드 극장에서 살해되었고, 케네디는 포드에 서 만든 <링컨> 자동차에서 총에 맞았다.
링컨 암살자는 극장에서 총을 쏜 뒤 창고에 숨었고, 케네디 암살자는 창고에서 총을 쏜 뒤 극장에
숨었다. 부스와 오즈월드는 둘 다 재판에 들어가기전에 의문의 죽임을 당했다.
게다가 점입가경인 것은, 링컨은 살해되기 일주일 전에 메릴랜드주의 먼로에 있었고, 케네디는 메릴린 먼로와 함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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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언급한 방송이 TV 시청자들의 관음증적 욕구를 자극한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시청자들은 부자연스러운 상황에 처한 몇몇 개인이 서로 속내를 숨기며 반전을 노리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한다.
사실 인간은 그리 선한 존재가 아니다.
예부터 인간들은 기독교인들이 사자에게 갈기갈기 찢기고, 동료를 죽여야만 자신이 사는 비정한 경기장 안으로 검투사들이 들어서는 장면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게다가 돈을 주면서까지 연시에서 기형의 여자들이 재주 부리는 것을 구경했고, 서커스에서 광대에게 엉덩이를 걷어차이는 난쟁이들의 굴욕을 보고 웃었으며, 장터에서 사형수가 공개 처형되는 것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그에 비하면 「빅 브라더」 방송은 한결 도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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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빅 브라더에서는 극소수의 인원이 만인을 관찰한다면 같은 이름의 텔레비전 방송에서는 정반대다. 모든 사람이 극소수의 인원을 관찰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빅 브라더를 매우 민주적인 것으로 여기는 동시에 무척 재미있게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우리가 방송을 보는 동안에도 우리 등 뒤에는 진짜 빅 브라더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다. <프라이버시>에 대한 국제회의에서 다룬 것도 바로 이 빅 브라더였다.
우리가 인터넷 웹 사이트를 방문하거나, 신용 카드를 사용하거나, 우편으로 무언가를 주문하거나, 병원에서 진찰을 받거나, 심지어 CCTV가 설치된 마트를 어슬렁거릴 때도 이제 이 진짜 빅 브라더는 속속들이 지켜본 다.
모든 걸 감시하는 몇몇 권력 집단이 바로 그들의 정체다.
만일 이들의 활동이 엄격하게 통제되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의 등 뒤에서는 정말 엄청난 자료들이 축적될 테고, 이 자료들은 우리를 완전히 발가벗기는 동시에 우리 모두의 내밀한 면과 사생활을 훔쳐 갈것이다.
「빅 브라더」 방송을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깔깔거리는 우리의 모습은 본질 적으로는 같은 시각 다른 장소에서 배우자가 심각한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작은 바에서 별 의미 없는 연애질에 열을 올리고 있는사람과 비슷해 보인다.
따라서 「빅 브라더」라는 제목은 바로 이 시각에도 우리 등 뒤에서 고소한 표정을 지으며 양손을 비비고 있는 누군가의 존재를 우리가 간과하거나 잊게 만드는 데 일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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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자신의 의무를 다했을 뿐인, 용감하고 신중한 사람을 영웅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 갈릴레이의 생애Leben des Galilei’에서 영웅이 필요한 나라는 불행하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왜 불행 할까? 그 나라에는 묵묵히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보통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남의 것을 빼앗아 자기 배를 불리지 않고,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정직한 방식으로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사람들, 요즘엔 이런 표현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프로 정신으로>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보통 사람들이 없다면 그 나라는 필사적으로 영웅적 인물을 찾기 마련이고, 그렇게 찾은 사람에게 금메달을 나눠 주기에 급급하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자신의 의무가 뭔지 몰라 일일이 지시 내려 주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를 필사적으로 찾는 나라는 불행하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바로 그것이 『나의 투쟁」에 담긴 히틀러의 이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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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대 전체를 사로잡은 이 전체주의적 교육이 이탈리아인들의 국민성에 깊은 흔적을 남겼을까? 이 대목에서 자연스럽게 파솔리니의 발언이 떠올랐다.
그는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이탈리아의 민족성은 이전 독재 체제보다 전쟁 이후 신 자본주의에 의해 각인된 것이 더 많다고.
(중략)
반면에 베를루스코니에 이르기까지 몇몇 현상 속에서 신자본주의가 우리에게 제안한 것은 무엇일까?
귀신에 쓴 것처럼 물건 사들이기, 정 급하면 할부로라도 자동차와 냉장고, 세탁기, 텔레비전 구매하기, 탈세를 합법적 요령 정도로 여기기, 바보상자 앞에 앉아 저녁 내내오락 방송 보기, 그러다 밤이 깊어지면 반라의 댄서들 구경하기, 클릭 한 번으로 편리하게 하드 코어 포르노 보기,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기, 투표장엔 되도록 가지 않기(이건 기본 적으로 미국식 모델이다), 자식 적게 낳기 같은 것들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인생 뭐 있나’하는 정신으로 되도록 쉽게 살라는 것이다.
수많은 이탈리아인이 환호성을 올리며 이 모델에 적응했다.
가난하고 절망에 빠진 제3세계 주민을 돕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많은 이들의 말처럼 집에서 바보상자 앞에 앉아 있는 대신 자기 자신을 찾으러 떠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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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흥미로운 건 코란이 그렇게 하라고 명령했기에 무슬림 여성들이 히잡을 써야 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최근에 이슬람 수니파에 속하는 예라히 할 베티 형제단의 이탈리아 총대리 가브리엘레 만델 칸이 ‘이슬람 Islam’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내가 보기엔 이슬람 세계의 역사와 신학, 도덕, 관습을 엿볼 수 있는 최고의 개론서인 듯하다.
거기엔 얼굴과 머리카락을 가리는 히잡이 이미 이슬람 시대 이전에도 일상화되어 있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주로 기후적인 원인에서 말이다.
그런데 히잡 착용과 관련해서 늘 인용되는 코란 24장에는 그런 규정이 없다고 한다.
가슴만 가리라고 기술되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나는 만델이 코란을 너무 현대적 감각으로 또는 너무 온건하게 번역했을 수 도 있겠다 싶어 인터넷에서 이슬람 당국이 공인한 권위 있는 코란 번역을 검색해 보았고, 그 과정에서 이탈리아에 있는 이슬람 연합회의 코란을 찾아 냈다.
거기 24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독실한 여성들에게 이르노니 시선을 늘 낮추고, 순결을 지키고, 밖으로 드러낼 수밖에 없는 것외에는 어떤 장신구도 내보여서는 안 된다.
또한 천으로 가슴을 가려야 하고, 남편, 아버지, 남편의 아버지, 자신의 아들, 남편의 다른 아들, 자신의 형제, 형제자매의 아들 등을 포함해서 여자의 알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들 말고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매력적인 곳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나는 또 혹시 몰라 마지막으로 위대한 이란 학자 알레산드로 바우사니의 고전적 코란 번역을 찾아보았고, 거기서도 미세한 어휘의 차이를 제외하고 ‘여성들은 베일로 가슴을 가려야 한다’는 규정을 발견했다.
나처럼 아랍어를 모르는 사람으로선 서로 다른 세 번역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코란은 여성들에게 단순히 정숙하게 입을 것을 요구했다.
만일 오늘날 서방 세계에서 코란이 쓰였다면 배꼽을 가리라고 했을지 모른다.
오늘날 서방에서는 백주 대낮의 길거리에서도 거리낌 없이 벨리 댄스를 추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여성들에게 베일을 쓰라고 요구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만델은 어느 정도 고소한 심정으로 답한다.
그 인물은 바로 「고린도 전서」의 사도 바울이라는 것이다.
물론 바울은 이 의무를 설교하고 예언하는 여성들에게로 한정했다.
그런데 바울 이후 또 다른 기독교인인 테르툴리아누스가 코란이 나오기 아주 오래전에 자신의 저서 ‘여성의 치장De cultu feminarum’에서 이렇게 썼다
(테르툴리아누스는 몬타누스파의 동조자이기는 했으나 줄곧 기독교인으로 남았다).
'너희는 오직 너희 남편의 마음에 들도록 해야 한다.
너희가 다른 남자의 마음에 들지 않으려고 노력할수록 남편은 더욱 흡족해할 것이다.
걱정하지 마라, 너희 마리아의 후손들이여, 어떤 아내도 남편의 눈에는 추해 보이지 않는다. (…) 세상의 모든 남편은 만일 기독교 인이라면 아내의 방정한 품행을 중시하지, 아내에게 아름다움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 나는 너희에게 짐승처럼 야만적으로 꾸미고 다니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불결함과 더러움의 유익함을 설득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너희가 너희 몸을 올바로 가꾸는 방식을 가르치고 싶을 뿐이다. (…)
살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화장으로 왜곡하고, 눈썹을 검정 물감으로 길게 그리는 여자는 하느님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
하느님은 너희가 베일을 쓰길원하신다.
아마 남들이 너희 얼굴을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오호, 이제야 알 것 같다.
과거의 온갖 그림들 속에서 성모 마리아와 독실한 여성들이 왜 무슬림 여성들처럼 베일을 쓰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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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말해서 에드몽 로스탕의 희곡에 나오는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로스탕의 숭배자들에게 이런 소식을 전하게 된 것을 참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한 다), 또는 비트겐슈타인처럼 어느 정도 솔직하게 스스로 동성애자라고 밝힌 경우를 제외하면 우리가 위인 중에서 확실하게 독신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칸트뿐이다.
심지어 헤겔도 결혼했다. 헤겔 같은 사람이 바람둥이일 거라고는 상상이 되지 않지만 어쨌든 그는 식탐이 많았던 데다가 사생아 아들까지 하나 있었다.
마르크스는 특별히 말할 게 없다. 지극히 합법적으로 예니 폰 베스트팔렌과 결혼했으니.
남은 문제 하나. 젬마는 단테에게, 헬레나는 데카르트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역사가 입을 다물고 있는 다른 수많은 아내는 말할 것도 없다.
만일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이 진짜 그의 아내 헤르필리스가 쓴 것이라면?
확인할 길은 없다.
다만 남편들이 쓴 역사는 아내들을 익명으로 숨겨 둘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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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가 만일 샤를리였다면 무슬림의 감정을 조롱하면서 고소해하거나 재미있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건 기독교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 불교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가톨릭 신자들이 성모 마리아를 모독한 사람에게 격분한다면 그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기껏해야 성육신 이론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려 깊은 역사적 논문만 쓰고 말 것이다.
하지만 가톨릭 신자들이 성모 마리아를 모독한 사람을 쏘아 죽인다면 우리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그 사람과 맞서 싸울 것이다.
갖가지 종류의 나치와 반유대주의자들은 <추악한 유대인>이라는 악의적인 캐리커처를 널리 퍼뜨렸다.
최근의 서방 문화는 그런 모욕적인 표현들까지 의사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용인한다.
하지만 선동자들이 캐리커처에 그치지 않고 학살 행위로 넘어가는 순간 사람들은 그에 반대해서 일어난다.
다시 말해, 19세기에 프랑스 언론인 에두아르 드뤼몽도 반유대주의를 극단 적으로 표현할 자유를 존중받았지만, 나치 범죄자들은 뉘른베르크에서 단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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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사랑을 표방하는 종교도 근본주의에 빠지면 증오를 부추길 때가 많다.
적에 대한 증오는 국민과 신도를 하나로 묶어 동일한 불꽃으로 활활 타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몇몇 사람을 향해서만 내 가슴을 따뜻하게 하지만, 증오는 수백만 명의 사람이나 한 국가, 한 인종, 다른 피부색이나 다른 말을 쓰는 인간 집단들을 향해 나와 내 이웃의 가슴을 분노의 불꽃으로 뜨겁게 한다.
이탈리아 인종주의자들은 모든 알바니아 사람과 루마니아 사람, 또는 집시와 롬족을 증오한다. 북부 동맹의 공동 설립자 움베르토 보시도 남부 이탈리아인들을 증오한다.
그건 그의 연금이 남부 이탈리아인들의 세금으로도 지급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모욕과 조롱이 뒤
섞인 비열함의 극치다.
베를루스코니는 모든 판사와 공산주의자를 증오하고, 우리에게도 그렇게 할 것을 요구한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따라서 증오는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범위가 넓고 많은 사람에게 해당된다.
또한 단 하나의 불꽃으로 거대한 군중을 껴안는다.
소설에서는 사랑으로 죽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야기하지만, 신문에서는(최소한 내 어릴 적 신문에서는) 증오하는 적에게 폭탄을 던짐으로써 사지로 뛰어든 영웅의 죽음이 얼마나 황홀한지 묘사되곤 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류의 역사가 예부터 증오와 전쟁, 학살로 점철된 이유이다.
거기엔 사랑이 끼어들 자리가 별로 없다.
사랑의 행위가 우리에게 내재된 견고한 이기주의의 좁은 울타리를 뛰어넘고 나오려면 정말 불편하고 힘든 점이 많기 때문이다.
증오의 환희에 대한 우리의 본능은 각 나라의 지도자들이 국민을 그리로 몰아가기 무척 쉬울 정도로 자연스럽다.
반면에 인간을 보편적 사랑으로 이끄는 것은 나병 환자에게 입을 맞추라는 끔찍한 요구처럼 우리 체질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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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죽음에 관해 사람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죽음은 우리와 동떨어진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이제는 공동묘지까지 운구 행렬을 따라갈 필요가 없으며, 우리는 죽은 사람들을 주변에서 더는 보지 못한다고 가르치지 않는가?
뭐? 죽은 사람들을 더는 보지 못한다고?
아니다, 우리는 그들을 끊임없이 본다. 누군가는 택시 유리창에 부딪혀 머리가 박살나고, 누군가는 공중으로 날아가고, 누군가는 발에 돌덩이를 매단 채 바다에 빠지고, 누군가는 도로에서 몸이 으깨지고, 누군가는 머리통이 길바닥에 나뒹군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아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도 아니다. 그저 TV나 영화 속 배우일 뿐이다. 심지어 죽음은 우리 집에서도 구경거리가 되고 있다.
강간 살해된 소녀나 연쇄 살인범의 희생자들을 보도하는 언론을 통해서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피 흘리는 시체가 직접 나오지는 않는다.
그건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죽음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대신 사건 현장에 꽃을 갖다 놓으면서 눈물짓는 친구들만 보여 줄 뿐이다.
그러고는 훨씬 더 고약한 사디즘적 성향으로 피해자 어머니를 찾아가 이렇게 묻는다.
<따님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심정이 어떠셨습니까?>
이로써 그들은 죽음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고통이나 벗들의 슬픔을 연출할 따름이다.
이렇듯 죽음을 우리의 직접적인 경험 영역에서 몰아내면 훗날 때가 되어 죽음 앞에 섰을 때 우리는 더한층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나게 된다.
죽음은 태어날 때부터 원래 우리 삶의 일부였고, 현자는 평생을 죽음과 함께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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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강을 따라 걷다가 헌책방 앞에 멈춰 서는 건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여기서도 우리는 예
전에 책에서 읽었던 수많은 낭만적 산책을 함께 즐 길 수 있다.
또한 멀리서 노트르담 성당을 바라볼 때면 자연스레 콰지모도와 에스메랄다가 떠오른다.
파리에 대한 우리의 기억 속에는 많은 것이 있다.
맨발의 카르멜회 수도원에서 펼쳐진 삼총사의 결투, 발자크의 연인들, 발자크의 작품에 나오는 뤼시앵 드 뤼벰프레와 라스티냐크, 모파상의 벨아미, 플로베르의 프레데리크 모로와 아르누 부인, 바리케이드에 올라선 위고의 가브로슈, 프루스트의 스완과 오데트 드 크레시......
<실제> 파리는 어쩌면 피카소와 모딜리아니 시대나 모리스 슈발리에 시대의 몽마르트르 언덕을 떠올리게 해주는 파리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머릿 속 진짜 파리에서는 조지 거슈윈의 ‘파리의 미국인’과 그 음악을 바탕으로 제작된 진 켈리와 레슬리 캐론 주연의 잊지 못할 달콤한 동명의 뮤지컬 영화를 빼놓을 수 없고, 파리의 하수구로 도망치는 팡토마도 잊을 수 없다.
또한 앞서 언급한 매그레는 우리의 가슴속에 오르페브르 부두의 밤과 안개, 선술집의 풍경을 영원히 새겨 놓았다.
우리가 인생과 사회, 사랑과 죽음에 대해 알고 있는 많은 것들을 비록 상상 속 허구의 세계이지만 현실보다 더 진짜 같은 그 파리에서 배웠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에 그날의 테러는 우리 모두의 집, 그러니까 주소지 등록을 하지 않았어도 우리 가슴속에 살아 숨 쉬던 그 집에 대한 테러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모든 기억에서 새삼 희망을 걷는다.
여전히 <센 강은 흐르고, 또 흐르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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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는 좀 다르다.
특정 주제를 언급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즉 터부가 문제시되고 있다.
이런 식의 모든 터부는 그와 관련해서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넘어온 정치적 올바름의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되었다.
이 이데올로기는 다른 모든 이들을 존중하자는 좋은 의도에 서 출발했지만, 그사이 유대인과 무슬림, 장애인뿐 아니라 스코틀랜드인, 벨기에인, 제노바인, 근위대원, 소방대원, 환경미화원, 에스키모(이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불러서는 안 된다고 하는데, 만일 그들이 원하는 이름으로 부른다면 아무도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에 대한 농담까지도 금기시해 버렸다.
20년 전쯤 나는 뉴욕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텍스트 분석법을 설명하려고 한 소설을 선택했다. 반드시 그 소설일 필요는 없는 우연에 가까운 선택이었다.
어쨌든 그 소설에서(딱 한 줄이다) 한 선원이 아주 속된 말로 창녀의 음부를 <누구누구의 자비심만큼이나 아주 넓다>고 표현했는데, 그 누구누구의 자리에는 어떤 신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강의가 끝나고 무슬림이 분명한 한 학생이 내게 다가오더니 어째서 자신의 종교를 존중하지 않느냐며 따졌다.
나는 그저 타인의 상스러운 표현을 인용했을 뿐이라고 답하면서도 마음이 상했다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런데 다음 날 나는 같은 강의 시간에 기독교 세계에서 매우 명망 높은 한 인물을 좀 무례하면서도 재미있는 표현으로 비꼬았다. 다들 웃음을 터뜨렸고, 어제의 그 학생도 함께 웃었다.
나는 강의가 끝난 뒤 그 학생의 팔을 붙잡고는 왜 내 종교는 존중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러고는 장난기 어린 비꼼과 신 이름의 쓸데없는 거론, 신을 모독하는 말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그 청년을 좀 더 큰 관용의 세계로 인도하고자 했다.
학생은 사과했고, 나는 그가 내 뜻을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물론 가톨릭 세계, 특히 이탈리아 가톨릭 세계의 지극한 관용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생각해 보라. 독실한 신자가 입에 담지 못할 수식어를 최고 절대자에게도 자유롭게 붙일 수 있는 관용의 <문화> 속에 산다면 다른 일에 분노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물론 모든 교육 과정이 그 학생과 나의 사례처럼 그렇게 평화롭고 교양 있게 진행되지는 않는다.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다만 어떤 잘못된 말로 해를 입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학자와 선생들이 예를 들어 아랍의 철학자를 아에 끌어들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런 문화는 장차 어디로 가겠는가?
아마 기억의 말살, 즉 침묵을 통해 존경할 만한 다른 문화의 소멸에 이르게 될 것이다.
문화 간의 소통과 이해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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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현상을 파리 바스티유 광장 주변에 성행하는 철학 술집들과 비교하고 싶지는 않다.
철학 술집에서는 일요일 오전에 페르노 한 잔을 시키면 정신적 치유 목적의 철학 수업이 짧게 진행된다. 일종의 저렴한 심리 분석인 셈이다.
하지만 청소년들이 주로 참가하는 이 행사에서는 대학 강의 수준의 강연이 몇 시간씩 진행되고, 사람들은 그저 그리로 가서 강연을 듣고 다시 돌아간다.
그렇다면 두 종류의 대답만이 남아 있다.
첫 번째 대답은 카톨리카의 문화 행사 이후 이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바 있다.
즉 청소년들 가운데 일정 비율은 가벼운 오락거리나 신문 지면에 겨우 열 줄 분량으로 제한되는 피상적 평론들, 그리고 자정이 지나서야 방영되는 책 관련 TV 프로그램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아이들은 높은 수준의 문화 프로그램에 목말라 있다.
집계에 따르면 문학 페스티벌을 찾는 관객은 수백 명, 때로는 수천 명이라고 한다.
전체 청소년 수에 비하면 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규칙적으로 대형 서점을 찾는 것도 이 아이들이다. 그렇다면 의심할 바 없는 엘리트, 그것도 집단 엘리트다.
70억 인구에서 이 엘리트 집단이 차지하는 비율은 한 사회가 독립적 인간과 비독립적 인간의 비율에서 요구할 수 있는 최소치에 그친다. 통계적으로 더 이상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들마저 없다면 세상은 얼마나 황량할까!
두 번째 대답은 이러한 대규모 문화 행사들이 새로운 유형의 가상 사회에 대한 불만을 고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신은 페이스북으로 수천 명과 교류 할 수 있지만, 거기에 완전히 미쳐 있지 않다면 결국엔 당신이 피와 살을 가진 사람들과 실제로 교류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고 나면 당신과 생각이 같은 사람들을 만나 경험을 공유하고픈 갈망을 느낀다.
우디 앨런이 어느 글에선가(어딘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추천한 것처럼 여자를 만나고 싶으면 클래식 콘서트에 가야 한다.
무대를 향해 고래고래고함을 지르고 옆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는 록 콘서트장이 아니라 휴식 시간에 만남을 시도할 수 있는 교향곡과 실내악 연주회장에 가야 한다는 말이다.
파트너를 만나기 위해 페스티벌에 가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 얼굴을 보기 위해 가는 측면도 분명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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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로서의 범죄물은 의심할 바 없이 형이상학적 탐색의 단순한 환원 모델이다.
둘 다 <그걸 누가 했을까?> 하는 물음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서히 범인을 추적해 들어가는 범죄물은 <그걸 누가 했을까?>의 철학적 버전이다.
영국 작가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은 범죄 소설을 가장 미스터리한 것의 상징으로 정의했고, 들뢰즈는 심지어 철학서가 일종의 범죄 소설이 되어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게다가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다섯 가지 방법 역시 누군가 남긴 흔적을 찾아가는 추적 과정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하드보일드 속에도 함축적인 철학이 존재할까?
파스칼과 그의 내기를 생각해 보자.
자, 우리 카드를 새로 섞은 다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자.
필립 말로 풍의 철학일까, 아니면 샘 스페이드 풍의 철학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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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모든 기계적• 전기적 • 전자적 데이터 저장 매체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단언할 수 있다.
그 매체들은 새로운 것에 밀려 시장에서 재빨리 사라지고, 그래서 우리는 그것들의 수명을 확인할 시간이 없다. 아니, 어쩌면 영원히 그것을 확인할 기회가 없을지 모른다.
게다가 전자 저장 매체의 자력이 훼손되는 데는 합선이나 정원에 내리친 번개, 또는 그보다 훨씬 더 일상적인 불운만으로 충분하다.
만일 블랙아웃이 라도 좀 길게 지속되면 나는 어떤 하드 디스크도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내 전자 기억 장치에 아무리 「돈키호테」 작품 전체가 들어 있더라도 그걸 촛불 아래서나 해먹, 보트, 욕조, 그네에서는 읽을 수 없다. 반면에 아무리 불편 한 상황에서도 책은 내게 그것을 허용한다. 또한 노트북이나 전자책 리더기 가 6층 창문에서 떨어지면 나는 수학적 확률상 모든 걸 잃을 각오를 해야 하지만, 종이책이 떨어졌다면 기껏해야 모서리에 조금 손상이 갈 뿐이다.
현대의 전자 저장 매체들은 모두 정보의 안전과 보존보다는 확산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 듯하다.
그에 반해 책은 정보 확산의 주요 수단인 동시에 (프로테스탄트의 종교 개혁 과정에서 인쇄된 성서의 역할을 생각해 보라)안전과 보존의 수단이기도 하다.
몇백 년 후 혹시라도 모든 전자 저장 매체가 사라진다면 우리에게 과거를 알려 주는 유일한 매체는 여전히 아름다운 고판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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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상은 보통 자신의 상품을 밖으로 가져 나가 합법적으로 판매하기 위해 바다를 항해하는 성실한 사람인 반면에 해적은 그런 무역상의 선박을 습격해 약탈하는 악당임에도 둘 다 원산지에서 소비자에게로 상품을 옮긴다는 점에서 서로 비슷하다고 이 비유는 말한다.
해적은 희생자들에게서 물건을 약탈하자마자 노획한 상품을 어딘가에 팔려고 애썼을 것이고, 그런 측면에서 그들은 상품의 운송업자이자 조달자이자 공급자이다.
물론 그들의 고객 역시 그런 불법적인 상품 조달에 책임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상인과 강도의 이러한 예기치 못한 유사성은 일련의 의구심을 일깨우고, 독자는 그런 의구심을 통해 마침내 다음과 같이 말하게 된다. <정말 그러네, 전에는 내가 그걸 못 봤어!>
한편으로 이 비유는 지중해권 경제에서 해적이 차지하는 역할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상인의 역할과 방식에 대해 깊은 의심의 눈길을 보내게 한다.
한마디로 이 비유는 훗날 브레히트가 말한 것으로 전해지는 다음의 말을 앞서 보여 주고 있다.
<은행 강도와 은행 설립자가 다른 게 무엇인가?>
물론 우리의 선한 아리스토텔레스 선생께서야 겉으로 아주 뻔뻔하게 들리는 브레히트의 이 재담이 그 뒤로도 많은 시간이 흘러 우리 시대를 불안하게 하는 요소를 적확하게 지적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겠지만 말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최근에 국제 금융 시장에서 벌어진 일들이 바로 그런 불안 요인들이다.
요약하자면, 군주의 조언자 역할을 했던 아리스토텔레스가 마르크스처럼 생각했을 거라고 주장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이 해적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얼마나 유쾌했는지는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또 다른 아리스토텔레스의 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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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시는 정반대다.
시인은 먼저 말과 사랑에 빠지고, 나머지는 저절로 따라온다.
즉, <말을 먼저 장악하면 사물은 절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몬탈레는 자신의 시에서 묘사한 그런 전형적인 <부수물들>, 예를 들어 수확 후 남은 자잘한 곡식 더미, 불가사리를 품은 바닷말, 가시 식물, 끝을 자른 돈나무 산울타리, 새 잡이용 끈끈이가 잔뜩 달라붙은 깃털, 부서진 납작 기와, 황홀한 배추흰나비, 바위자고새들의 합창, 푸를라나 민속춤, 리고동 춤 같은 것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을까?
누가 그걸 알 수 있을까마는 그게 바로 시에서 말의 가치다.
시에서는 고여 있는 시냇물도 돌돌 말린 <낙엽foglia>과 운을 맞추기 위해 <졸졸거리며gorgoglia> 흘러야 한다.
자연의 시냇물은 소용돌이치기도 하고, 꿀렁거리기도 하고, 철퍼덕거리거나 신음하거나 헐떡거리기도 하지만 말이다.
순수 문학적 필요성은 강이 사부작거리며 아름답게 흐르길 원하고, 그런 식으로 <영원히 남기를 / 하나의 순환처럼 하루를 마무리 짓고 / 기억을 키우는 사물들 중 하나로 남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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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는 참으로 딱한 유형의 독자를 만난다.
교양은 있지만 소설을 전체로 읽는 법을 모르고 단순히 여러 부분을 그때그때 개별적으로 받아들이는 독자, 반어나 풍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 작가의 의견과 등장인물의 의견을 구분할 줄 모르는 독자가 그렇다.
이런 비정신 과학자는 <마치 그런 것처럼>의 세계에 손톱만큼도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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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허구와 실재를 도저히 구분하지 못하는 독자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우선 그들에게 미적 평가는 존재할 수 없다.
그들은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에만 급급하다 보니 그것이 미적으로 훌륭한지, 아니면 형편없는지는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이야기 속에 담긴 의미나 가르침도 발견하지 못하고, 등장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저 내가 <허구의 결핍>이라고 부르고 싶은 상태만 드러내고, <불신을 자발적으로 유예할> 능력조차 없다.
이러한 독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기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들이 놓친 미적 • 도덕적 문제를 환기시키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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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루스코니가 선전의 천재라는 건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가 철저하게 지키는 원칙에는 이런 것이 있다.
<나에 대해 말하게 하라. 나쁜 이야기도 상관없다. 나에 대해 말하기만 하면 된다!>
이건 통상적으로 노출증 환자의 기술이다.
학교 앞에서 바지를 내리고 성기를 내보이는 건 분명 지탄받을 짓이다.
하지만 당신이 그렇게 한다면 내일 신문 1면을 장식할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심지어 그럴 목적으로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면 베를루스코니가 그렇게 많은 유권자의 눈에 카리스마 있는 인물로 비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말과 행동에서 기인하는 것도 분명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어떤 면에선(아니, 아주 확고한 면이라고 생각한다) 신문들이 그를 비판하기 위해 그의 모습을 줄기차게 1면에 실은 탓도 크다고 생각한다.
진단이 이러하다면 다음 선거 때까지 우리는 그에게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까?
(여기서 우리라 함은 그의 지지자들이 아니라 그를 허약한 우리 공화국의 불행으로 간주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중략)
눈치 빠른 독자라면 뒷얘기는 벌써 알아차렸을 것이다.
아무리 <똥싸개>를 외쳐 대도 반응이 없자 나는 더 이상 <동싸개>를 외치지 않았고, 그 뒤로는 좀 더 풍부하고 복잡한 어휘를 배우는 데 전념했다.
그런 어휘들을 감칠맛나게 활용하는 나를 보고 부모님은 아주 유식한 아들을 두었다며 무척 기뻐 하셨다.
어린 시절의 이 기억을 정치인이나 칼림니스트, 신문 편집인들에 대한 충고로 내세우고 싶지는 않으나, 혹시라도 그들의 비판적 태도가 오히려 적에게 대중적 관심의 토대로 사용되는 것을 막고 싶다면 내 어머니의 방법을 한 번쯤 사용해 볼 수는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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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강제 수용소에 대해서는 누가 사죄해야 할까?
현재 나치의 유일한 후계자는 몇몇 네오나치 분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사죄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아니, 기회가 되면 예전과 똑같은 짓을 할 인간들이다.
파시스트에 의해 살해된 자코모 마테오티와 카를로, 넬로 로셀리 형제 사건은 누가 사죄해야 할까? 문제는 오늘날 파시즘의 <진정한> 후계자가 누구냐 하는 것이다.
이 물음에는 당혹스러운 느낌이 든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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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터링은 트위터나 블로그에 실린 의견들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믿을 만하고 유익한 정보도 있지만 온갖 종류의 망상과 비난, 존재하지도 않는 음모, 역사 왜곡, 인종주의, 또는 사실 자체가 틀리거나 부정확하거나 졸렬한 설명이 있는 모든 웹 사이트에도 필터링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렇다면 필터링은 어떤 식으로 해야 할까?
각자 자신이 잘 아는 주제에 관한 웹 사이트를 세심하게 살펴봄으로써 정보를 거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예를 들어 끈 이론에 대해 어떤 사이트가 올바른 설명을 하고 있는지 아닌 지 판단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에선 학교도 별 도움이 안 된다.
교사들도 나와 처지가 똑같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어 교사는 수학의 파국 이론이나 삼십 년 전쟁에 관한 웹 사이트 앞에서는 문외 한이나 다름없다.
해결책이 하나 있기는 하다. 신문은 인터넷의 노예일 때가 많다.
왜냐하면 뉴스 뿐 아니라 가끔은 황당한 이야기도 거기서 가져오고, 그로써 가장 큰 경쟁자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빌려주기 때문이다. 결국 신문은 늘 인터넷 뒤를 절뚝거리며 쫓아가기만 한다. 이제 그런 습성을 버려야 한다.
그 대신 웹 사이트들을 분석하는 데 힘을 쏟는 게 어떨까 싶다.
다시 말해 책과 영화에 관한 지면이 있듯이, 좋은 사이트는 추천하고, 부정확한 정보나 터무니없는 헛소리를 퍼뜨리는 사이트는 경고하는 지면을 신설하는 것이다.
이는 인터넷 사용자들에게 막대한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신문에서 등을 돌린 많은 사람이 다시 신문을 들추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런 시도를 하려면 신문사 입장에서는 당연히 상당수의 분석가가 필요하다.
그것도 편집부 자체 인력을 넘어 외부 인력까지 동원해야 할지 모른다.
결코 비용이 적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문화적으로 상당히 가치 있는 일이고, 신문의 새로운 기능을 여는 서막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