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3년의 나비라니 외 1편
나희덕
해변에서 거센 바람을 맞으며 떠올렸다
온갖 난파된 것들을
1849년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이민자들을 싣고 오던 배가 난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고가 난 해변으로 발길을 돌렸다
새로운 대륙에 닿기 직전
더 새롭고 알 수 없는 세계로 떠나버린 그들은
삶 속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난파된 것들을 토해내는 해변에서
소로가 목격한 것은
죽은 자들에 대한 애도가 아니라
익사한 시체들과 잔해물에 대한 신속한 처리과정이었다
사람들은 여느 때처럼 해변을 산책했고
쓸 만한 잔해물과 해초를 모아 부지런히 수레에 실어 날랐다
폭풍에 절벽이 계속 침식되어
위태로워진 등대는 내륙 안쪽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몇십 년 지나지 않아 더 안쪽으로 옮겨져야 했다
등대 전체가 줄줄 샌다. 모든 게 열악한 상태다.
등대지기의 일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등대의 상태와 지나가는 배의 숫자,
그날 그날의 날씨,
이따금 난파나 사고를 알리는 기록도 있었다
어느 날의 일지 속에는
날개가 접힌 채 잘 마른 나비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1883년의 나비라니,
끝도 없는 파랑이 두려워 여기로 숨어든 것일까
등대지기가 잡아서 넣어둔 것일까
나비의 두려움도 등대지기의 고독도 만져질 듯한데
까마득한 시간의 해변으로 문득 떠내려온 나비 한 마리
난파된 영혼 하나 숨을 고른다
자리를 두 번이나 옮긴 등대 울타리 위에서
산호와 버섯
- 호주의 시인 사만다 포크너에게
산호와 버섯의 공통점을 아니?
포자로 번식한다는 거야.
유성생식으로 아이들을 낳은 우리도
이제는 조금 산호와 버섯에 가까워지고 있지.
단단하고 울퉁불퉁한 뼈를 지닌 동시에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것 같은 영혼을 지니고 있으니까.
깊은 바닷속을 상상하면서도
축축한 나무 그늘에 숨는 걸 좋아하니까.
시라는 이름의 산호 또는 버섯,
그 포자들이 자라는 시의 그늘에서 우리는 만났지.
그리고 서로의 영혼을 금세 알아보았지.
그녀는 나의 시에 자라는 버섯에 대해 묻고
나는 그녀의 시에 자라는 산호초에 대해 물었지.
세상 끝의 버섯에 대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저편에 대해
숲에서 버섯을 캐고 있는 가난한 손들에 대해
값비싼 송이버섯을 따라 움직이는 자본의 흐름에 대해
하얗게 죽어가는 산호초의 안부에 대해
몇 달 동안 계속된 산불에 대해
불이 나야 번식을 하는 유칼립투스 나무에 대해
이야기하며 우리는 아주 멀리 가기도 했지.
나는 그 먼 바다의 깊이를 알지 못하고
그녀는 이 땅의 흙냄새를 맡아본 적 없지만
그녀의 고향 토레스 아일랜드,
섬집에 누워 그 푸른 하늘을 잠시 엿본 것 같네.
부족들의 다정한 얼굴에 둘러싸여
짧은 단잠을 자고 일어난 것 같기도 하네.
수영을 못하는 내가 그녀를 따라
바닷속 깊이 내려가 산호초를 본 것도 같네.
내일은 그녀와 헤어지는 날
나지막이 나는 말하려네 야오*, 다음에 만나
*Yawo : 토레스 아일랜드 원주민이 헤어질 때 하는 인삿말로, ‘안녕’이라는 뜻.
나희덕
1966년 충남 논산 출생. 연세대학교 국문과 졸업, 동 대학원 박사 졸업.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뿌리에게 그곳이 멀지 않다 사라진 손바닥 파일명 서정시 등.
시론집 한 접시의 시 등. 산문집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 등.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 수상. 현재, 서울과기대 문창과 교수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