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민족의 기원과 구성
중국인들은 처음 어느 지역에서부터 살기 시작했을까?
발굴된 유적지와 고대전적에 따르면 황하 중하류가 한문화(漢文化)주체의
중화문화가 시작된 발상지였음이 증명되었다. 이 일대에 살기 시작한
황제의 자손으로 불리던 이들이 화하(華夏)계를 형성했는데 바로 한족이다.
따라서 황하 중하류 지역이 바로 중국의 고대문화, 고대민족이 발원한
곳이며 이를 중심으로 남, 북, 서쪽으로 점차 확산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중국의 신석기 문명
황하는 중국에서 두 번째로 긴 강인데, 5464킬로미터에 이른다.
황하 중하류를 중심으로 고대 정치, 경제, 문화가 발달했는데, 고대의
도시들, 이를테면, 장안(長安), 낙양(洛陽), 개봉(開封) 및 상구(商丘),
안양(安陽) 등이 모두 황하의 중, 하류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긴 황하는 화북(華北)평야에 들어오면서 오랜 세월을 두고 운반한
진흙이 점점 퇴적되어 이루어진 넓은 평야를 지난다.
여기서 홍수기에 서쪽에 있는 민둥산에서 이루어진 대산맥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많은 황토의 퇴적물을 동반하여 빛이 누런 강을
만들고 , 이로써 황하라는 이름이 생겼다. 그 결과, 황하는 강 바닥에
진흙이 가라앉아 바닥이 높아지기 때문에 제방을 쌓지 않으면 안되었다
. 물무게의 1/3이 진흙인 황하는 강바닥의 높이가 평야지대보다 높은
경우도 있다. 때문에 역대로 중국정부는 황하의 제방을 쌓고 홍수를
조절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2000년동안 황하의 제방이 범람한
횟수가 1593차례나 되고 그중에 26차례나 물길을 바꾸었다고 한다.
황하는 중화문명의 또 다른 요소에도 영향을 미쳤다. (황토, 지형적
요소, 기후, 황색에 대한 애호, 문명의 동향성 등.)
장강유역은 중국문화의 기원이 되는 또 하나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기에 제2의 요람이라고 부를 수 있다. 장강은 "길다(長)"과
"크다(大)"라는 개념과 구분하여 생각할 수 없다.
장강을 고대에는 "江"이라고 불렀다.
한, 위, 육조시대이후에는 "大江", "長江"이라고 호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대"와 "장"의 특성은 중국 수천년의 역사를 통해 중국의
문화, 경제, 사회 등 여러 방면에 그 영향을 끼쳤다.
장강은 중국 최장의 강이고 유량이 가장 많은 강이다. 또한 유역의
면적이 가장 넓은 하천이기도 하다.장강의 화물운송량이 가장 많으며
수력 자원이 가장 많은 하천이다. 뿐만 아니라 담수어의 산량이 가장
풍부한 유역이기도 하다.
이러한 물리적 요인 외에도 장강은 중화문명을 배태해 내었다.
장강유역의 신석기문화유적이 분포되어 있다. 장강 중하류 지역은
벼농사를 대표로하는 수전농업문화가 발달했다. 위진남북조시대 때
영가(永嘉)의 난과 진(晉)왕실의 남천으로 중원의 인사들이 대규모로
장강 일대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중국민족의 기원과 구성
중국민족의 기원에 대해서는 그들 중화민족은 염황자손(炎黃子孫)이라고
칭하면서 중국인들은 염제(炎帝)와 황제(黃帝)를 한족의 조상으로 여겨왔다.
(중국 신화 인물 중 염제와 황제 참고)
중국이라고 하면 보통 우리는 한족이 지배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마치 단일
민족인 것처럼 알고 있지만 사실은 단일 민족이 아닌 수많은 민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국가이다.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은 한족을 제외한 55개의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진,
56개 민족이 어울려 살고 있는 국가이다. 현재 중국은 93.3%가 한족이고
6.7%가 55개 소수민족이다. 그 중에 인구 천만이 넘는 민족은 장족(壯族)
뿐이며 백만이상으로는 회족(回族), 위구르족, 묘족(苗族), 만주족(滿洲族),
티베트족, 몽고족(蒙古族), 조선족(朝鮮族) 등 14개 민족이 있다.
소수민족이 살고 있는 지역은 동북, 서북, 서남의 변방지역으로 그들
대부분의 지역이 자치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몽고, 녕하회족(寧夏回族),
신강(新疆)위구르, 티베트, 광서장족(廣西壯族)등 5개 자치구(自治區)와
31개 자치주(自治州), 80개의 자치현이 그것이다.
그러나 역사상으로 민족의 이동, 변방수비, 왕조의 교체등으로 민족이
뒤섞이게 되어 내몽고, 영하회족, 광서장족의 자치구에는 한족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신강위구르에는 13개 민족이, 운남성에는 23개 민족이
거주하고 있다.
현재 중국에는 각 민족의 평등, 단결, 상호원조를 강조하고 있지만 소수
민족과 한족을 비교해보면 경제, 문화면에서의 불평등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농업 등 개발면에서도 큰 격차가 있다.
현재 중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주요 민족을 간략히 소개한다.
(1) 한족(漢族)
한족이란 명칭은 한(漢)제국의 건국으로 시작되었다. 한족은 본래 황하
유역에 정착하여 거주하다가 나중에 차츰 번식하여 남쪽 해양의 많은 섬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다. 따라서 중국의 역사상 몇 차례의
이민족이 중국을 지배한 것을 제외하고는 한족이 중국을 통치해 왔으므로
중국에서는 일반적으로 한족이 중국을 다스려야 한다는 관념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상고시대로 올라가게 되면, 우리나라 전설 같은 것을 보아도 상고
시대에는 한국 민족의 조상으로 생각하는 족속(東夷族)들이 오히려 중국을
지배한 때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황제시대, 혹은 요순(堯舜)시대로
내려와서도 그러한 이야기가 상당히 많이 나온다. 물론 이 시기의 역사는
증명할만한 문헌기재가 없는 전설상의 시대이다. 한족은 많은 다른
족속들을 문화적으로 동화시켜 다른 종속의 본래의 특색을 말살시키고
한족과 같은 방향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동화력으로 한족의 세력을
확대시켜 갔다.
(2) 만주족
만주족이라는 것은 동호(東胡) 또는 퉁그스족을 말하는데, 이 민족의 주
근거지는 만주다. 역사적으로 볼때 거란, 요(遼), 여진족(女眞族)들이 모두
이 민족에 속한다. 청대 만주족이 중국을 260년간 지배했지만 완전히 동화
됨으로써 만주족 고유의 문화적 특성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지금의 만주족은
한족과 다름없다. 만주를 지금 중국사람들은 동북지방이라고 하지만, 만주를
중국에 포괄시킨 것은 상당히 후대의 일이다.
(3) 몽골족
몽고족은 본래, 몽고, 열하(熱河), 영하(寧夏) 등지에서 정착하여 살았는데
옛날에는 흉노(匈奴)라고 하였다. 몽고족과 한족은 일찍부터 오랫동안
접촉해 왔으며, 13세기에는 몽고의 세력이 전례없이 강성해져 송을 멸망
시키고 원나라를 건국했다. 그러나 몽고족이 중국을 통치하기는 했지만
한족과의 혼혈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명나라가 세워져 몽고족이 중국
본토에서 축출될때에도 다시 북쪽 몽고지방으로 옮겨 갔을 뿐이며
한족에 동화되지는 않아서 지금도 몽고족이 계속 존재하고 있고 한족과
몽고족은 각기 자기 정부를 가지고 있다.
(4) 회족
회족은 옛날의 돌궐족이다. 돌궐이란 터키를 음역한 것인데, 회족은 정령
(丁零), 월지, 돌궐, 회홀, 사타(沙陀)등 여러가지 명칭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본래 몽고 등지에서 정착하여 거주하다가 나중에 신강, 감숙(甘肅), 섬서
(陝西) 등지로 펴져 나갔다. 이 회족이라는 명칭은 그들의 신앙이 마호메트교,
즉 회교를 신봉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5) 장족(藏族)
장족은 티베트족인데 이들은 서장(西藏), 청해(靑海), 서강(西康)등지에서 살았다
. 한족이 티베트족을 지배하려고 무섭게 잔인한 정책도 많이 썼다. 그러나
티베트족은 라마교라는 자체의 신앙을 가지고 고유의 생활습관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최근까지도 중국정부당국에
대한 망명 티벳트인들의 자유를 위한 투쟁은 계속 되고 있다.
(6) 묘족(苗族)
묘족도 지금 남아 있기는 하지만 많이 한화(漢化)되었다. 묘족은 사천(四川),
운남(雲南), 귀주(貴州), 광서(廣西), 호남(湖南) 등지의 넓은 지대를 차지하고
살았는데, 이 묘족 가운데 지금도 상당히 원시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족속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현재 한족의 문화에 동화되어 수가 많이 줄어들었고 산
속에만 일부 남아 있는데, 민속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곳에 들어가
답사를 하고 있다. 묘족은 세력이 원래는 컸지만 그들은 자체문화를 유지
하면서 한족이 이룩한 문화를 대항할만한 힘이 없었기 때문에 자연히
많이 동화될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