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4일 토요일
밤새 기침을 했다.
낮동안에는 좀 괜찮은가 싶다가 밤이 되면 더 심해지곤 했다.
벌써 한 달째다.
한달 전, 기침이 시작되자 나는 그냥 병원에 갔다.
기침을 멎게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기관지 염증을 없애고 호흡기 전체를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 때는 너무 일에 허덕거리고 있었다. 자연치유도 어느 정도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다.
이런 일로 병원에 가 본지 13년이 지났다.
그 때도 기관지염이 너무 심해서 두 달을 항생제 주사까지 맞았다.
그러나 낮지 않았다.
이러다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만큼 통증이 심해지자
병원에 가는 걸 중단하고
한의원 처방을 따랐다.
맥문동, 도라지, 오미자, 감초...
이 네 가지를 일정 비율로 다려서 물처럼 마시라고 했다.
엄마가 당장 경동 시장에 가셔서 약재로 쓰는 가장 좋은 것들을 사 오셨다.
정확히 사흘만에 기침이 완전히 멎었고
가슴의 통증도 사라졌다.
그리고 그 이후 나는 한 번도 기관지에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너무 시간이 없고 번거로와 그냥 동네 내과에 갔다.
기침을 멈추고 가래를 삭히는 약을 주었다.
기침이 거짓말처럼 멈춰서 일하는 데 더 이상 지장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약이 떨어지자 또 기침이 나기 시작했다.
또 병원에 갔다. 똑같은 약에 잘 때 먹는 기관지 확장제 같은 걸 더해 주었다.
또 일주일이 지났고, 증상은 오히려 깊어졌다.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다. 하지만 약재들을 사서 달여 먹을 자신은 없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는 기침은 내가 들어도 끔찍했다.
그냥 3일 단식을 해?
몇 년 전 이상문 선생님의 책을 읽고 밥물을 하고 단식을 해 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가장 간단한 방법이 3일 단식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단식을 하면서 일을 할 자신은 없었다.
3일은 커녕 단 하루도....
스트레스를 받으니 생전 먹지 않던 간식까지 달고 살던 내가 무슨 수로 단식을 한단 말인가?
금요일까지 일을 하고
토요일 오전에 생강홍차를 끓여 마시다가 문득 밥물을 다시 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전신 거울에 몸을 비춰보니 몸이 말이 말이다. 마치 종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날씬하던 허리는 간 데 없고 배불뚝이 하나가 서 있었다.
일 하고 돌아오면 피곤해서 손 하나 까닥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침대에 누워 인터넷 쇼핑이나 하고 가십 기사나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하는 게 쉬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침에는 출근 시간 두 시간 전 쯤 간신히 일어나 겨우겨우 준비를 마치고 나갔다.
좀비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도무지 이 트랙에서 벗어날 방법을 몰랐다.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너무 피곤했다. 이렇게 살다가 죽을 순 없다는 위기감으로 물건들을 버리고 대청소를 했다. 극단적인 미니멀리스트라는 말을 듣던 내가 이렇게 많은 불필요한 물건들을 소유하고 있었구나.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나를 과시하기 위해 이런 쓰레기들을 안고 살았구나. 옷도 대폭 줄이고, 잡동사니들도 다 덜어내고 나니 뭘 해야 할지가 보였다.
밥따로 물따로
몇 년 전 이 책을 읽고 실천해 본 적이 있었다.
효과가 너무 경이로와서 왜 중단했는지 스스로도 이해가 안 간다.
몸매는 S라인이 되어 버려서 이 나이에 민망할 정도였고
혈관수축성 비염이라고 진단 받은 지병도 말끔히 사라졌고
수 십 년 동안 불치병이라고 여기며 달고 살았던 변비와도 안녕을 고했다.
그리고 몸이 너무 가볍고 에너지가 넘쳤다.
나같은 저질 체력으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가장 놀랐던 것은 코로나에 감염된 언니와 한 집에 1주일 같이 있었는데도 나는 코로나에 걸리지 않은 것이었다. 최대한 격리하려고 했지만 한 집에서 완전 격리는 불가능했는데도 말이다.
나중엔 한 식탁에서 밥도 먹고 했지만 나는 멀쩡했다.
그러고 보니 감기나 독감도 안 걸리네!
생강홍차를 안 마셔도 감기 한 번 안 걸리는 걸 보고 정말 놀랐다.
밥물을 하면 전염병에 안 걸리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설마 그럴 리야....
그런데 인간이란 망각의 동물이란 말이 맞는 것 같다.
주식을 시작했고 주식 공부에 올인하면서 밥물은 흐지부지 되어 버렸다.
대대적인 물건 버리기와 주변 정리가 끝나자
제일 먼저 든 생각이 밥물을 다시 하자는 거였다.
사실 계속 콜록거리며 다닐 수도 없었다.
가래 끓는 기침을 해야 한다는 건 여자로서 정말 곤란한 일이다.
오전에 생강홍차를 마셔 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시작해 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점심으로 어제 빨강다람쥐에서 포장해온 떡볶이를 먹었다. 한살림 당면을 넣었는데
도저히 다 먹을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버렸다. 양이 많긴 정말 많았다.
식사가 끝난 시간을 체크하고 두 시간 후에 물을 마셨다.
엄마 집에 가서 대하 소금구이에 온갖 요리가 가득해서 배가 터져라 먹었다.
두 시간 후, 언니 동생들과 설맥이라는 곳에 가서 맥주를 마셨다.
먼저 물을 마시고, 맥주는 반 잔 정도 마시는 시늉만 하면서 계속 물을 마셨다.
특이한 건, 나도 모르게 계속 예민하고 짜증이 났다는 것이다. 평상시에 친절하고 상냥한 성격인데
이 날은 이상하게 통제가 안 될 만큼 짜증이 났다.
엄마 이야기도 잘 들어 드리지 못하고 왜 의사 말만 듣고 자꾸 그러시냐고 뭐라고 했다.
과식을 한 데다 목이 마르니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낸 건지....
배부르게 먹고 마실 땐 몰랐던 나의 실체라니....
이고식이라는 게 있다고 해서 주문을 했다.
월요일에 배송해 준다고 한다.
2일 째 (11월 5일 일요일)
12시에 두레생협에서 사 온 대나무 밥과 연잎밥, 견과류와 마른 베리들이 잔뜩 든 멸치 조림, 생김치 등으로 식사를 했다.
2시에 배 한 조각, 콜라 반 잔, 생수 등을 마셨다.
7시에 아구찜 집에 가서 아구찜을 먹었다. 밥을 먼저 먹으라고 해서 밥을 먼저 먹고 아구찜을 먹었다.
식사가 8시가 다 되어 끝났기 때문에 부득이 10시에 물을 마시고 생강꿀차 한 잔을 마셨다.
첫댓글 힘내셔요~
공을 들이시니 좋은 결과 있으실 거예요~^^
감사합니다. 과일을 물 시간에 먹고 있는데 맞는지 모르겠어요. 열심히 하다 보면 이렇게 응원해 주시는 분도 생기고 의문점도 풀려 나가겠지요. 비건 휴정님도 평안한 하루 되세요 :)
@폭등요정 과일은 밥 먹을 때 사과 반쪽 분량 정도로~ 그렇게 먹는 게 좋다고 들었습니다~^^
@비건 휴정 친절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
저도 다시시작해야하는데 너무 동기부여되는 글이네요~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어요.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