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기침과 가래가 멎지를 않아 어쩔 수 없이 단식을 결심했다. 처음에는 일을 안 하는 주말에만 하기로 했는데 후기들을 읽어보니 72시간 단식이 기본이라고 해서 월요일 저녁까지 하게 되었다.
토요일은 그런 대로 지나갔지만 이틀 째인 일요일에는 힘도 없고 온 몸이 쑤시고 앉지도 서지도 못할 만큼 괴로왔다. 세탁기만 돌려도 도중에 누워야 할 정도였다. 그런데 월요일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너무 가볍고 속이 편안해서 이대로 계속 먹고 마시지 않아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거울에 비쳐 보니 그동안 있는지도 몰랐던 허리라는 아이가 굴곡을 드러내고 있었다. 얼굴은 리프팅이라도 한 듯 올라붙어 있고.... 정상적인 몸이 된 게 너무 기뻐서 보고 또 보고 했다.
며칠 더 할까 하고 의욕이 앞섰지만 기운이 너무 빠져서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았다.
저녁에 이고식 3포를 1시간에 걸쳐 조금 씩 먹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쩐지 팔 쪽이 가려웠다. 양 팔이 벌겋게 되도록 긁으며 뭐가 원인일까 생각해 보았다. 단식 전에는 괜찮았는데 극도로 예민해져 있으니 필리핀산 바나나가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평소에 제주산 무농약 아니면 긁고 난리가 나서 초록마을 바나나도 안 먹었으니 말이다. 극소량이 들어 있어 평상시에는 괜찮다가 이렇게 위가 싹 비어진 상태에서 들어오니 알러니 반응이 생긴 것 같다. 이고식까지 못 먹게 되면 도대체 뭘 먹고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식 후 막걸리를 마시는 것 같아 느린마을 막걸리를 사려고 했는데 오리지널은 없고 방울톡이라는 새 제품만 있었다. 아스파담은 안 들어 있어도 뭔가 성분이 복잡하기에 찜찜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샀다. 날도 추운데 막걸리 하나 사러 먼 데까지 가고 싶지는 않았다.
퇴근 후, 음양탕 한 잔 마시고, 느린마을을 마셨다. 오리지널과 맛도 다르고 차라리 송명섭이나 해창을 사 올걸 후회가 되었다.
다행히 별 다른 알러지 반응은 없었지만, 내 몸이 알았다. 쌀과 누룩만으로 만든 게 아니라는 걸.....
9시 쯤 잠 들어 다음 날 8시까지 죽은 듯이 잤다.
다음 날 컨디션은 최상
몸은 가볍고 정신은 맑았지만 기운이 너무 없었다.
본넷을 못 닫아서 다른 선생님께 부탁을 해야 할 정도.....
그래도 느리게 움직이며 에너지를 잘 관리했다.
이고식 한 포와 홍영선 볶은곡식 조금, 서리태 볶음, 블루베리 말린 것을 먹었는데 블루베리는 토할 것 같았다.
퇴근 후 물 시간에 음양탕을 마신 후 진저비어(술이 아니고 진저에일 비슷한 탄산음료다)를 마셨는데 마시면서 이거 아닌데 하는 생각을 했다. 냉기가 확 끼쳐 오는 느낌.
그 다음에 어제처럼 또 잘 자고 싶은 욕심에 3분의 2쯤 남은 느린마을 방울톡을 소주 잔 한 잔 분량 정도를 와인잔에 따라 마셨다.
그동안 기침과 가래는 거의 없어졌었는데
새벽 2시쯤 폐가 찢어지는 듯한 통증으로 깨서
기침을 하고 가래를 뱉어냈다.
뭐가 문제지?
진저비어와 막걸리일까?
블루베리인가?
이상하다 싶으면 먹지 말아야 하는데
꾸역꾸역 먹는 나의 어리석음에 치가 떨렸다.
당장 블루베리를 개수대에 쏟아 버리고 진저비어와 막걸리(반 병 밖에는 없었지만)를 다 버렸다.
남들이 괜찮다고 나한테는 독이 되는 음식을 입에 집어 넣다니....
내게는 음식이 아니라 독인 걸.....
다같이 외식을 해도 나 혼자 밤새도록 잠 못자고 벅벅 긁고 있는 걸....
고통은 오롯이 나 혼자의 몫인 걸....
언니가 암환자라고 해서 언니 눈치 보며 억지로 고기를 먹었던 일
엄마가 정성들여 만들어 주셨는데 싶어 어쩔 수 없이 생선이나 해산물 요리를 먹었던 일
다들 즐거워 하니 나도 덩달아 나에게는 맞지 않는 온갖 음식들을 위장에 쓸어 담은 일.....
나는 고기, 생선, 달걀, 우유가 음식으로 보이지 않는다.
미원투성이의 식당 음식들도....
이제 누가 뭐라고 해도 내 몸은 내가 지켜야겠다는 확고한 결단을 내렸다.
니 그러다 죽는다.
하며 걱정하시는 엄마의 눈물로도 내 의지를 꺽지는 못 할 것이다.
내가 못 살겠는데 어쩌겠는가?
기침 가래가 다시 생긴 이유가 뭘까 한참 생각 하다 보니
음식도 음식이지만 공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 그나마 공기 좋은 곳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경기도 북쪽으로 조금만 올라가 봐도 숨쉬기가 훨씬 편해진다.
하와이 새벽의 그 맑은 공기가 새삼 그리웠다.
공기가 달디단 게 어떤 건지 느껴 본지도 너무 오래 되었다.
하와이로 다시 돌아가는 것 보다는
지리산 어딘가에 타이니 하우스 하나 지어서
맑은 공기 마시고 맑은 물을 마시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다.
단식을 통해 건강도 되찾게 되지만 인생을 맑은 정신으로 바라 볼 수 있는 힘도 생기게 되는 것 같다.
몸은 가볍게 정신은 맑게
제 정신으로 살자.
첫댓글 자세한 후기 잘 읽었습니다.
단식 성공 축하드려요~^^
3일이라도 쉽지 않은 일인데
훌륭하게 해내셨네요.
막걸리 버리신 건 잘하신 듯해요.
육체적으로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영적 차원에서는 해로운 걸로
되어있는 것 같더라구요.
예수님이나 부처님,
모두
술을 경계하셨거든요.
부처님께서 계율로까지
금하신 깊은 이유가 있을 거예요'
밥물 일정에 박수 보내드려요.
제가 어렴풋이 느꼈던 걸 확실하게 말씀해 주시네요. 혈행과 숙면에는 좋을지 몰라도 뭔지 모를 찜찜함이 있었는데 그게 성분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았어요. 간청소까지 했는데 굳이 알코올을 집어 넣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다음 단식 때는 안 마시는 걸로 :) 늘 따뜻하게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단식을하고싶은데
저녁때만되면배가고파요
지금도
누룽지 2봉이랑
만두10개쪄서먹고
살은밤먹을려고
입맛다시고있어요
내일모레병원가서
검사받아야할환자인데요
그것 참 큰 일이네요. 본인 의지로 안 되면 단식원 도움을 받아 보시는 건 어떨까요? 밥물 단식원은 더 이상 운영되지 않는지.... 이상문 선생님 유지를 받들어 계속 운영이 되면 많은 분들에게 유익이 되지 않을까요? 저는 워낙 예전에 금식을 밥 먹듯 했던 사람이라 그나마 성공한 것 같아요. 그래도 금수는 차원이 다르더라구요. 힘은 들었지만 몸도 가벼워지고.... 금식으로 3일만에 허리 잘록해지는 건 불가능하지 않나 싶어요.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것 같아 앞으로는 단식만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한 번 단식하고 보니 위장도 줄어 들고 식탐도 확 줄었어요. 제비님도 꼭 성공하셔서 후기 올려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