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하늘 끝이라도.
양상태
도보 여행을 해 보셨나요? 그것도 아들과 함께, ‘걸음‘하면 아장아장이라는 의태어가 떠오르고 ’걷기‘를 말하면 운동과 건강을 생각하게 된다. 나는 걷는 것을 썩 좋아하지는 않아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제주도에서 올레길을 여러 차례 걸어 보았다.
어릴 적 눈이 많이 내렸던 날에 외갓집에서 큰집까지 30여 리를 아버지를 따라서 걸어간 적이 있다. 장화를 처음으로 신어 보니 신이 나서 따라나섰는데 잘 걸어갔다고 들었다. 그래도 걷기가 싫을 때도 있었다. 군대에서 졸면서도 가야 하는 야간행군이었다.
아들 녀석이 진학으로 마음고생하던 어느 여름날에 전주에서 출발하여 남원까지 70여 ㎞를 걷기로 하였다. 조금은 긴장된 마음으로 이른 아침에 ‘백제교’ 아래에서 아들과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비스듬히 내리쬐는 햇볕은 이른 아침인데도 따갑게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하천을 따라 걷던 우리는 ‘좁은 목 약수터’에서부터는 국도인 ‘춘향로’로 올라와 마주 오는 차량을 보면서 왼쪽 길로 걸었다. 가끔 지나는 바이커들도 있었지만 부럽지도 눈여겨보지도 않았다.
아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걷고 있었지마는 더위가 나를 자주 눌러 앉혀 무척이나 힘들게 하였다. 경운기에 농약을 싣고 뿜어 대는 농약 방울들마저 살갗에 시원하게 느낌을 줄 정도로 유·무해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한때, 사람들로 북적이던 시절은 잊었는지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슬치 휴게소에 다 달았을 때 갑자기 소나기가 뿌렸다. 비를 피하기보다는 시원해서 비를 맞이하며 즐겼다. 땅을 보며 걷다가 우수로 雨水路를 따라 흐르던 물줄기 속에 번뜻 보이는 것이 있어서 아들에게 주워라 했더니 오천 원권 지폐였다. 빛깔은 오만 원권과 유사했지만, 그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다시 걸음을 재촉하여 젖은 옷이 마를 무렵 ‘관촌 역’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식당이 두 곳이어서 망설이다가 ‘원조집’이라 써놓은 식당을 택하여 들어갔으나 맛은 그리 탐탁하지 않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옆집이 고기 양도 많고 맛이 더 좋다고 했다. ‘원조’ ‘시조’라는 입간판을 신뢰하지 않기로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도 가급적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가지 않는다.
아들 녀석은 자주 나에게 “아버지, 괜찮으세요?” 하며 물어와 “너는 어때?”라고 대답을 하면 괜찮다는 답이 왔다. 가끔 대답마저 하기 싫을 때도 있었다.
추억이 오롯이 깃든 임실역 앞에 도착했다. 내가 어렸을 때 남원에서 낯선 남자에게 유괴誘拐되어 이곳에서 구출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열차 안에서 아이가 계속 울어 대자 역무원의 기지奇智로 동행자를 다그치는 과정에서 그 남자는 도망을 가고 나는 역 앞의 어느 할머니 집에 맡겨졌다고 했다. 저녁 밥상에 미역국을 끓여주자 “머리카락 국을 주었다”라고 했다 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아들에게 들려주었다.
임실읍으로 들어가서 하룻저녁을 묵을까 했으나 내일 또 나와야 하기에 역 앞 등나무 그늘 아래 평상에 누워 오수午睡를 즐겼다. 번뜩 잠에서 깨어 아들과 앞서거니 옆 서거니 하면서 충견의 고장 오수 읍에 도착하였다.
동산에서 잠이 든 주인을 불길에서 구하고자 스스로 몸에 물을 적셔 불길을 막아 주인을 살리고 죽은 충견의 이야기가 서려 있는 고장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OO탕이 유명하다. 저녁으로 대신했다.
최명희 작가의 대하소설 ‘혼불’의 배경이 된 남원시 사매면 노봉마을과 서도역을 지나쳐 “엄마 나 강아지 눌은밥 줘” 하며 어머니를 보채던 춘향 고을 남원에 도착 했다.
남원에서 자기 사업을 하는 막냇동생에게 전화했다. 무슨 일인가 하며 반갑게 맞아주는 동생과 함께 광한루 후문 근처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밥값은 물론, 조카에게 용돈을 주는 버릇은 여전했다.
대학교 진학에 많은 고민이 있었던 아들과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은 몸은 피곤하지만, 서로가 걱정해 주고 위로하며 마음을 열고 대화로 풀어감으로써 나에게도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다.
아들은 가끔 그때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나의 길이 있고 물론 아들 녀석의 길도 따로 있다. 서로 다른 길이 선택되어 있지만 잠시라도 몸과 마음을 같이 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워 주었다.
아들과 함께 다시 걸어 보고 싶다. 그곳이 하늘 끝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