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6일
우리집 뒤에는 마안산(대포산)이 있다.
산아래 입구에서 북장대까지 15분정도의 거리로 매우 낮은 산이다.
부지런한 사람은 건강을 위해 매일매일 산을 오르지만 나는 게을러서 일주일에 한번 동래문화회관에 서예를 배우러 갈 때 산을 넘어간다.
산을 올라서 성벽을 따라 걷다보면 광장이 보이고 광장 아래에 장영실 과학동산과 북문이 있다.
광장에는 잔디가 깔려있는데 개념없는 주민들이 개를 데리고 와서 출입금지 구역인데도 불구하고 운동시키고 용변까지 보게할 때도 있다.
이광장 한구석에 작은 홍매화나무 한그루가 있는데 아직 작아서 볼품은 없지만 꽃이 이뻐서 사진 찍어놓으면 볼만하다.
광장 주위에는 흰매화도 몇그루 있는데 피려면 한참 있어야 될것 같다.
변강쇠전(작자미상)
1편
중년(中年)에 비상(非常)한 일이 있던 것이었다. 평안도 월경촌(月景村)에 계집 하나 있으되, 얼굴로 볼작시면 춘이월(春二月) 반개도화(半開桃花) 옥빈(玉빈)에 어리었고, 초승에 지는 달빛 아미간(蛾眉間)에 비치었다. 앵도순(櫻桃脣) 고운 입은 빛난 당채(唐彩)주홍필(朱紅筆)로 떡 들입다 꾹 찍은 듯, 세류(細柳)같이 가는 허리 봄바람에 흐늘흐늘, 찡그리며 웃는 것과 말하며 걷는 태도 서시(西施)와 포사(포사)라도 따를 수가 없건마는, 사주(四柱)에 청상살(靑孀煞)이 겹겹이 쌓인 고로 상부(喪夫)를 하여도 징글징글하고 지긋지긋하게 단콩 주어 먹듯 하것다.
열다섯에 얻은 서방(書房) 첫날밤 잠자리에 급상한(急傷寒)에 죽고, 열여섯에 얻은 서방 당창병(唐瘡病)에 튀고, 열일곱에 얻은 서방 용천병에 펴고, 열여덟에 얻은 서방 벼락맞아 식고, 열아홉에 얻은 서방 천하에 대적(大賊)으로 포청(捕廳)에 떨어지고, 스무 살에 얻은 서방 비상(砒霜) 먹고 돌아가니, 서방에 퇴가 나고 송장 치기 신물난다.
이삼 년씩 걸러 가며 상부를 할지라도 소문이 흉악(凶惡)해서 한 해에 하나씩 전례(前例)로 처치(處置)하되, 이것은 남이 아는 기둥서방, 그남은 간부(間夫), 애부(愛夫), 거드모리, 새호루기, 입 한번 맞춘 놈, 젖 한번 쥔 놈, 눈 흘레한 놈, 손 만져 본 놈, 심지어(甚至於) 치마귀에 상척자락 얼른 한 놈까지 대고 결단을 내는데, 한 달에 뭇을 넘겨, 일 년에 동반 한 동 일곱 뭇, 윤달든 해면 두 동 뭇수 대고 설그질 때, 어떻게 쓸었던지 삼십 리 안팎에 상투 올린 사나이는 고사(姑捨)하고 열다섯 넘은 총각(總角)도 없어 계집이 밭을 갈고 처녀가 집을 이니 황(黃) 평(平) 양도(兩道) 공론(公論)하되, "이 년을 두었다가는 우리 두 도내(道內)에 좆 단 놈 다시 없고, 여인국(女人國)이 될 터이니 쫓을 밖에 수가 없다." 양도가 합세(合勢)하여 훼가(毁家)하여 쫓아 내니, 이 년이 하릴없어 쫓기어 나올 적에, 파랑 봇짐 옆에 끼고, 동백(冬柏)기름 많이 발라 낭자를 곱게 하고, 산호(珊瑚) 비녀 찔렀으며, 출유(出遊) 장옷 엇매고, 행똥행똥 나오면서 혼자 악을 쓰는구나.
"어허, 인심 흉악하다. 황 평 양서(兩西) 아니며는 살 데가 없겠느냐. 삼남(三南) 좆은 더 좋다더고."
노정기(路程記)로 나올 적에 중화(中和) 지나 황주(黃州) 지나 동선령 얼핏 넘어 봉산(鳳山), 서흥(瑞興), 평산(平山) 지나서 금천(金川) 떡전거리, 닭의우물, 청석관(靑石關)에 당도하니, 이 때에 변강쇠라 하는 놈이 천하의 잡놈으로 삼남에서 빌어먹다 양서로 가는 길에 년놈이 오다가다 청석골 좁은 길에서 둘이 서로 만나거든, 간악(姦惡)한 계집년이 힐끗 보고 지나가니 의뭉한 강쇠놈이 다정히 말을 묻기를,
"여보시오, 저 마누라 어디로 가시는 거요."
숫처녀 같으면 핀잔을 하든지 못 들은 체 가련마는, 이 자지간나희가 훌림목을 곱게 써서,
"삼남으로 가오."
강쇠가 연거푸 물어,
"혼자 가시오."
"혼자 가오."
"고운 얼굴 젊은 나이인데 혼자 가기 무섭겠소."
"내 팔자 무상(無常)하여 상부하고 자식없어, 나와 함께 갈 사람은 그림자뿐이라오."
"어허, 불상하오. 당신은 과부요, 나는 홀애비니 둘이 살면 어떻겠소."
"내가 상부 지질하여 다시 낭군(郞君) 얻자 하면 궁합(宮合)을 먼저 볼 것이오."
"불취동성(不取同姓)이라 하니, 마누라 성씨가 누구시오."
"옹(雍)가요." "예, 나는 변서방인데 궁합을 잘 보기로 삼남에 유명하니, 마누라 무슨 생이요." "갑자생(甲子生)이오."
"예, 나는 임술생(壬戌生)이오. 천간(天干)으로 보거드면 갑은 양목(陽木)이요, 임은 양수(陽水)이니, 수생목이 좋고, 납음(納音)으로 의논하면 임술계해 대해수(壬戌癸亥 大海水) 갑자을축 해중금(甲子乙丑 海中金) 금생수(金生水)가 더 좋으니 아주 천생배필(天生配匹)이오. 오늘이 마침 기유일(己酉日)이고 음양부장(陰陽不將) 짝 배자(配字)니 당일 행례(行禮)합시다."
계집이 허락한 후에 청석관을 처가로 알고, 둘이 손길 마주 잡고 바위 위에 올라가서 대사(大事)를 지내는데, 신랑 신부 두 년놈이 이력(履歷)이 찬 것이라 이런 야단(惹端) 없겠구나. 멀끔한 대낮에 년놈이 홀딱 벗고 매사니 뽄 장난할 때, 천생음골(天生陰骨) 강쇠놈이 여인의 양각(陽刻) 번쩍 들고 옥문관(玉門關)을 굽어보며,
"이상히도 생겼구나. 맹랑히도 생겼구나. 늙은 중의 입일는지 털은 돋고 이는 없다. 소나기를 맞았던지 언덕 깊게 패였다. 콩밭 팥밭 지났는지 돔부꽃이 비치였다. 도끼날을 맞았든지 금바르게 터져 있다. 생수처(生水處) 옥답(沃畓)인지 물이 항상 고여 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옴질옴질 하고 있노. 천리행룡(千里行龍) 내려오다 주먹바위 신통(神通)하다. 만경창파(萬頃蒼波) 조개인지 혀를 삐쭘 빼였으며 임실 (任實) 곶감 먹었는지 곶감씨가 장물(臟物)이요, 만첩산중(萬疊山中) 으름인지 제가 절로 벌어졌다. 연계탕(軟鷄湯)을 먹었는지 닭의 벼슬 비치였다. 파명당(破明堂)을 하였는지 더운 김이 그저 난다. 제 무엇이 즐거워서 반쯤 웃어 두었구나. 곶감 있고, 으름 있고, 조개 있고, 연계 있고, 제사상은 걱정 없다."
저 여인 살짝 웃으며 갚음을 하느라고 강쇠 기물 가리키며,
"이상히도 생겼네. 맹랑이도 생겼네. 전배사령(前陪使令) 서려는지 쌍걸낭을 느직하게 달고, 오군문(五軍門) 군뇌(軍牢)던가 복덕이를 붉게 쓰고 냇물가에 물방안지 떨구덩떨구덩 끄덕인다. 송아지 말뚝인지 털고삐를 둘렀구나. 감기를 얻었던지 맑은 코는 무슨 일인고. 성정(性情)도 혹독(酷毒)하다 화 곧 나면 눈물난다. 어린아이 병일는지 젖은 어찌 게웠으며, 제사에 쓴 숭어인지 꼬챙이 구멍이 그저 있다. 뒷절 큰방 노승인지 민대가리 둥글린다. 소년인사 다 배웠다, 꼬박꼬박 절을 하네. 고추 찧던 절굿대인지 검붉기는 무슨 일인고. 칠팔월 알밤인지 두 쪽이 한데 붙어 있다. 물방아, 절굿대며 쇠고삐, 걸낭 등물 세간살이 걱정 없네."
강쇠놈이 대소하여,
"둘이 다 비겼으니 이번은 등에 업고 사랑가로 놀아 보세."
저 여인 대답하기를,
"천선호지(天先乎地)라니 낭군(郞君) 먼저 업으시오."
강쇠가 여인 업고, 가끔가끔 돌아보며 사랑가로 어른다.
"사랑 사랑 사랑이여, 유왕(幽王) 나니 포사 나고, 걸(桀)이 나니 말희(末喜) 나고, 주(紂)가 나니 달기(달己) 나고, 오왕(吳王) 부차(夫差) 나니 월 서시 나고, 명황(明皇) 나니 귀비(貴妃) 나고, 여포(呂布) 나니 초선(貂蟬) 나고, 호색남자(好色男子) 내가 나니 절대가인(絶對佳人) 네가 났구나.
네 무엇을 가지려느냐.
조거전후 십이승 야광주(早居前後 十二乘 夜光珠)를 가져 볼까.
십오성(十五城) 바꾸려던 화씨벽(和氏璧)을 가져 볼까.
천지신지 아지자지(天知神知 我知子知) 순금덩이 가져 볼까.
부도재산(浮道財産), 득은옹(得銀甕) 은항아리 가져볼까.
배금문 입자달(排禁門 入紫달)의 상평통보 가져볼까.
밀화불수(密花佛手), 산호비녀, 금가락지 가져볼까.
네 무엇을 먹고 싶어. 둥글둥글 수박덩이 웃봉지만 떼버리고 강릉(江陵) 백청(百淸) 따르르 부어 은간저로 휘휘 둘러 씨는 똑 따 발라 버리고, 불근 자위만 덤뻑 떠서 아나 조금 먹으려냐. 시금털털 개살구, 애 서는 데 먹으려나. 쪽 빨고 탁 뱉으면 껍질 꼭지 건너편 바람벽에 축척축 부딪치는 반수시 먹으려나. 어주축수애산춘(漁舟逐水愛山春) 무릉도화(武陵桃花) 복숭아 주랴. 이월 중순 이 진과(眞瓜) 외가지 당참외 먹으려나."
한참을 어르더니 여인을 썩 내려놓으며 강쇠가 문자하여,
"여필종부(女必從夫)라고 하니 자네도 날좀 업소."
여인이 강쇠를 업고, 실금실금 까불면서 사랑가를 하는구나.
"사랑 사랑 사랑이야. 태산같이 높은 사랑. 해하(海河)같이 깊은 사랑. 남창(南倉) 북창(北倉) 노적(露積)같이 다물다물 쌓인 사랑. 은하직녀(銀河織女) 직금(織錦)같이 올올이 맺힌 사랑. 모란화 송이같이 펑퍼져버린 사랑. 세곡선(稅穀船) 닷줄같이 타래타래 꼬인 사랑. 내가 만일 없었으면 풍류남자(風流男子) 우리 낭군 황 없는 봉이 되고, 임을 만일 못 봤으면 군자호구(君子好逑) 이내 신세 원 잃은 앙이로다. 기러기가 물을 보고, 꽃이 나비 만났으니 웅비종자요림간(雄飛從雌繞林間) 좋을씨고 좋을씨고. 동방화촉(洞房華燭) 무엇하게, 백일향락(白日享樂) 더욱 좋다. 황금옥(黃金屋) 내사 싫으이. 청석관이 신방(新房)이네."
년놈 작난 이러할 때, 재미있는 그 노릇이 한두 번만 될 수 있나. 재행(再行)턱 삼행(三行)턱을 당일에 다 한 후에 살림살이 살 걱정 둘이 앉아 의논한다.
"우리 내외 오입(誤入)장이 벽항궁촌(僻巷窮村) 살 수 없어 도방 살림이나 하여 보세."
"내 소견(所見)도 그러하오."
년놈이 손목 잡고, 도방 각처 다닐 적에 일 원산(元山), 이 강경(江景)이, 삼 포주(浦州), 사 법성(法聖)이 곳곳이 찾아 다녀, 계집년은 애를 써서 들병장사 막장사며, 낮부림, 넉장질에 돈냥 돈관 모아 놓으면, 강쇠놈이 허망하여 댓 냥내기 방때리기, 두 냥 패에 가보하기, 갑자꼬리 여수(與受)하기, 미골(尾骨)회패 퇴기질, 호홍호백(呼紅呼白) 쌍륙(雙六)치기, 장군 멍군 장기두기, 맞혀먹기 돈치기와 불러먹기 주먹질, 걸개두기 윳놀기와, 한 집 두 집 고누두기, 의복 전당(典當) 술먹기와 남의 싸움 가로막기, 그중에 무슨 비위(脾胃) 강새암, 계집치기, 밤낮으로 싸움이니 암만해도 살 수 없다. 하루는 저 여인이 강쇠를 달래며,
"집의 성기(性氣) 가지고서 도방 살림 하다가는 돈을 모으기 고사(姑捨)하고 남의 손에 죽을 테니, 심산궁곡(深山窮谷) 찾아 가서 사람 하나 없는 곳에 산전(山田)이나 파서 먹고, 시초(柴草)나 베어 때면 노름도 못 할 테요, 강짜도 안 할 테니 산중으로 들어갑세."
강쇠가 대답하되,
"그 말이 장히 좋의. 십 년을 곧 굶어도 남의 계집 바라보며, 눈웃음하는 놈만 다시 아니 보거드면 내일 죽어 한이 없네."
산중을 의논한다.
"동 금강(金剛) 석산(石山)이라, 나무 없어 살 수 없고, 북 향산(香山) 찬 곳이라, 눈 쌓이어 살 수 없고, 서 구월(九月) 좋다 하나 적굴(賊窟)이라 살 수 있나. 남 지리(智里) 토후(土厚)하여 생리(生利)가 좋다하니 그리로 찾아가세."
여간(餘干) 가산(家産) 짊어지고 지리산중 찾아가니 첩첩(疊疊)한 깊은 골에 빈 집이 한 채 서 있으되, 임진왜란(壬辰倭亂) 팔년간과(八年干戈) 어떤 부자 피란(避亂)하자 이 집을 지었던지 오간팔작(五間八作) 기와집이 다시 사람 산 일 없고, 흉가로 비어 있어서 누백년 도깨비 동청이요, 뭇귀신의 사랑(舍廊)이라. 거친 뜰에 있는 것이 삵과 여우 발자취요, 깊은 뒤꼍 우는 소리 부엉이, 올빼미라. 강쇠놈이 집을 보고 대희(大喜)하여 하는 말이,
"순사또는 간 데마다 선화당(宣化堂)이라 하더니 내 팔자도 방사(倣似)하다. 적막한 이 산중에 나 올 줄을 뉘가 알고, 이리 좋은 기와집을 지어 놓고 기다렸노."
부엌에 토정(土鼎) 걸고, 방 쓸어 공석(空石) 펴고, 낙엽을 긁어다가 저녁밥 지어 먹고, 터 누르기 삼삼구(三三九)를 밤새도록 한 연후에 강쇠의 평생 행세(行勢) 일하여 본 놈이냐. 낮이면 잠만 자고, 밤이면 배만 타니, 여인이 할 수 없어 애긍히 정설(情說)한다.
"여보 낭군 들으시오. 천생만민필수지직(天生萬民必授之職) 사람마다 직업 있어 앙사부모하육처자(仰事父母下育妻子) 넉넉히 한다는데 낭군 신세 생각하니 어려서 못 배운 글을 지금 공부할 수 없고, 손재주 없으시니 장인(匠人)질 할 수 없고, 밑천 한푼 없으시니 상고(商賈)질 할 수 있나. 그 중에 할 노릇이 상일밖에 없으시니 이 산중 살자 하면 산전을 많이 파서 두태(豆太), 서속(黍粟), 담배 갈고, 갈퀴나무, 비나무며 물거리, 장작(長斫)패기 나무를 많이 하여 집에도 때려니와, 지고 가 팔아 쓰면 부모 없고 자식 없는 단 부처(夫妻) 우리 둘이 생계가 넉넉할새, 건장한 저 신체에 밤낮으로 하는 것이 잠자기와 그 노릇 뿐. 굶어 죽기 고사하고 우선 얼어죽을 테니 오늘부터 지게 지고 나무나 하여 옵소."
강쇠가 픽게 웃어,
"어허 허망(虛妄)하다. 호달마(胡達馬)가 요절(腰折)하면 왕십리 거름 싣고, 기생(妓生)이 그릇되면 길가의 탁주(濁酒) 장사, 남의 말로 들었더니 나 같은 오입장이 나무 지게 지단 말가. 불가사문어타인(不可使聞於他人)이나 자네 말이 그러하니 갈밖에 수가 있나." 강쇠가 나무하러 나가는데 복건(복巾)쓰고, 도포(道袍) 입었단 말은 거짓말. 제 집에 근본(根本) 없고 동내(洞內)에 빌 데 있나. 포구(浦口) 근방 시평(市坪)판에 한참 덤벙이던 복색(服色)으로 모자 받은 통영(統營)갓에 망건(網巾)은 솟구었고, 한산반저(韓山半苧) 소창의(小창衣)며, 곤때 묻은 삼승(三升) 버선 남(藍) 한 포단(布緞) 대님 매고, 용감기 새 미투리 맵시있게 들멘 후에, 낫과 도끼 들게 갈아, 점심 구럭 함께 묶어 지게 위에모두 얹어 한 어깨에 둘러 메고, 긴 담뱃대 붙여 물고 나뭇군 모인 곳을 완보(緩步) 행가(行歌) 찾아 갈 때, 그래도 화방(花房) 퇴물(退物)이라 씀씀이 목구성이 초군(樵軍)보다 조금 달라, "태고(太古)라 천황씨(天皇氏)가 목덕(木德)으로 즉위(卽位)하니 오행중(五行中)에 먼저 난 게 나무 덕이 으뜸이라. 천 지 인(天 地 人) 삼황(三皇)시절 각 일만 팔천세를 무위이화(無爲而化) 지내시니, 그 때에 나 낳았으면 오죽이나 편켔는가. 유왈유소(有曰有巢) 성인 인군 덕화(德化)도 장할씨고. 구목위소(構木爲巢) 식목실(食木實)이 그 아니 좋겠는가. 수인씨(燧人氏) 무슨 일로 시찬수교인화식(始鑽燧敎人火食) 일이 점점 생겼구나. 일출이작(日出而作) 요순(堯舜) 백성 어찌 편타 할 수 있나. 하 은 주(夏 殷 周) 석양 되고, 한 당 송(漢 唐 宋) 풍우 일어 갈수록 일이 생겨 불쌍한 게 백성이라. 일년 사절(四節) 놀 때 없이 손톱 발톱 잦아지게 밤낫으로 벌어도 불승기한(不勝飢寒) 불쌍하다. 내 평생 먹은 마음 남보다는 다르구나. 좋은 의복, 갖은 패물(佩物), 호사(豪奢)를 질끈 하고 예쁜 계집, 좋은 주효(酒肴), 잡기(雜技)로 벗을 삼아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살쟀더니 층암절벽(層岩絶壁) 저 높은 데 다리 아파 어찌 가서, 억새폭, 가시덩굴 손이 아파 어찌 베며, 너무 묶어 온짐 되면 어깨 아파 어찌 지고, 산고곡심무인처(山高谷深無人處)에 심심하여 어찌 올꼬." 신세 자탄(自歎) 노래하며 정처 없이 가노라니. 이 때에 둥구마천 백모촌에 여러 초군 아이들이 나무하러 몰려 와서 지게 목발 뚜드리며 방아타령, 산타령에 농부가(農夫歌), 목동가(牧童歌)로 장난을 하는구나. 한 놈은 방아타령을 하는데, "뫼에 올라 산전방아, 들에 내려 물방아, 여주(麗州) 이천(利川) 밀다리방아, 진천(鎭川) 통천(通川) 오려방아, 남창 북창 화약(火藥)방아, 각댁(各宅) 하님 용정(용精)방아. 이 방아, 저 방아 다 버리고 칠야삼경(漆夜三經) 깊은 밤에 우리 님은 가죽방아만 찧는다. 오다 오다 방아 찧는 동무들아, 방아 처음 내던 사람 알고 찧나 모르고 찧나. 경신년 경신월 경신일 경신시(庚申年 庚申月 庚申日 庚申時) 강태공(姜太公)의 조작(造作)방아 사시장춘(四時長春) 걸어 두고 떨구덩 찧어라, 전세대동(田稅大同)이 다 늦어간다." 한 놈은 산타령을 하는데, "동 개골(皆骨) 서 구월 남 지리 북 향산(香山), 육로(陸路) 천리 수로(水路) 천리 이 천리 들어가니 탐라국(耽羅國)이 생기려고 한라산(漢拏山)이 둘러 있다. 정읍(井邑) 내장(內藏), 장성(長城) 입암(笠岩), 고창(高敞) 반등(半登), 고부(古阜) 두승(斗升), 서해 수구(水口) 막으려고 부안(扶安), 변산(邊山) 둘러 있다." 한 놈은 농부가를 하는데, "선리건곤(仙李乾坤) 태평시절(太平時節) 도덕 높은 우리 성상(聖上) 강구미복(康衢微服) 동요(童謠) 듣던 요(堯)임금의 버금이라. 네 다리 빼여라 내다리 박자. 좌수춘광(左手春光)을 우수이(右手移). 여보소, 동무들아, 앞 남산(南山)에 소나기 졌다. 삿갓 쓰고 도롱이 입자." 한 놈은 목동가를 부르는데, "갈퀴 메고 낫 갈아 가지고서 지리산으로 나무하러 가자. 얼럴. 쌓인 낙엽 부러진 장목(長木) 긁고 주워 엄뚱여 지고 석양산로(夕陽山路) 내려올 제, 손님 보고 절을 하니 품안에 있는 산과(山果) 땍때굴 다 떨어진다. 얼럴. 비 맞고 갈(渴)한 손님 술집이 어디 있노. 저 건너 행화촌(杏花村) 손을 들어 가리키자. 얼럴. 뿔 굽은 소를 타고 단적(短笛)을 불고 가니 유황숙(劉皇叔)이 보았으면 나를 오죽 부러워하리. 얼럴." 강쇠가 다 들은 후, 제 신세를 제 보아도 어린 것들 한가지로 갈키나무 할 수 있나. 도끼 빼어 들어 메고 이 봉 저 봉 다니면서 그 중 큰 나무는 한두 번씩 찍은 후에 나무 내력(來歷) 말을 하며, 제가 저를 꾸짖는다. "오동나무 베자 하니 순(舜)임금의 오현금(五弦琴). 살구나무 베자 하니 공부자(孔夫子)의 강단(講壇). 소나무 좋다마는 진시황(秦始皇)의 오대부(五大夫). 잣나무 좋다마는 한 고조 덮은 그늘, 어주축수애산춘(漁舟逐水愛山春) 홍도(紅桃)나무 사랑옵고. 위성조우읍경진(渭城朝雨邑輕塵) 버드나무 좋을씨고. 밤나무 신주(神主)감, 전나무 돗대 재목(材木). 가시목 단단하니 각 영문(營門) 곤장(棍杖)감. 참나무 꼿꼿하나 배 짓는 데 못감. 중나무, 오시목(烏?木)과 산유자(山柚子), 용목(榕木), 검팽은 목물방(木物房)에 긴(緊)한 문목(紋木)이니 화목(火木)되기 아깝도다." 이리저리 생각하니 벨 나무 전혀 없다. 산중의 동천맥(動泉脈) 우물가 좋은 곳에 점심 구럭 풀어 놓고 단단히 먹은 후에 부쇠를 얼른 쳐서 담배 피어 입에 물고, 솔 그늘 잔디밭에 돌을 베고 누우면서 당음(唐音) 한 귀 읊어 보아, "우래송수하(偶來松樹下)에 고침석두면(高枕石頭眠)이 나로 두고 한 말이라, 잠자리 장히 좋다." 말하며, 고는 코가 산중이 들썩들썩, 한소금 질근 자다 낯바닥이 선뜻선뜻 비슥이 눈 떠 보니 하늘에 별이 총총, 이슬이 젖는구나. 게을리 일어나서 기지개 불끈 켜고 뒤꼭지 뚜드리며 혼잣말로 두런거려, "요새 해가 그리 짧아 빈 지게 지고 가면 계집년이 방정 떨새." 사면을 둘러보니 둥구마천 가는 길에 어떠한 장승 하나 산중에 서 있거늘 강쇠가 반겨하여, "벌목정정(伐木丁丁) 애 안 쓰고 좋은 나무 저기 있다. 일모도궁(日暮途窮) 이내 신세 불로이득(不勞而得) 좋을씨고." 지게를 찾아 지고 장승 선 데 급히 가니 장승이 화를 내어 낯에 핏기 올리고서 눈을 딱 부릅뜨니 강쇠가 호령(號令)하여, "너 이놈, 누구 앞에다 색기(色氣)하여 눈망울 부릅뜨니. 삼남(三南) 설축 변강쇠를 이름도 못 들었느냐. 과거(科擧), 마전(馬廛), 파시평(波市坪)과 사당(寺黨) 노름, 씨름판에 이내 솜씨 사람 칠 제 선취(先取) 복장(腹腸) 후취(後取) 덜미, 가래딴죽, 열 두 권법(拳法). 범강(范彊), 장달(張達), 허저(許저)라도 모두 다 둑 안에 떨어지니 수족(手足) 없는 너만 놈이 생심(生心)이나 방울쏘냐." 달려들어 불끈 안고 엇둘음 쑥 빼내어 지게 위에 짊어지고 유대군(留待軍) 소리 하며 제 집으로 돌아와서 문 안에 들어서며, 호기(豪氣)를 장히 핀다. "집안 사람 거기 있나. 장작 나무 하여 왔네." 뜰 가운데 턱 부리고, 방문 열고 들어가니 강쇠 계집 반겨라고 급히 나서 손목 잡고 어깨를 주무르며, "어찌 그리 저물었나. 평생 처음 나무 가서 오죽 애를 썼겠는가. 시장한 데 밥 자십쇼." 방 안에 불 켜 놓고, 밥상 차려 드린 후에 장작 나무 구경 차로 불 켜 들고 나와 보니, 어떠한 큰 사람이 뜰 가운데 누웠으되 조관(朝官)을 지냈는지 사모(紗帽) 품대(品帶) 갖추고 방울눈 주먹코에 채수염이 점잖으다. 여인이 깜짝 놀라 뒤로 팍 주잕으며, "애겨, 이것 웬 일인가. 나무하러 간다더니 장승 빼어 왔네그려. 나무가 암만 귀하다 하되 장승 패여 땐단 말은 언문책(諺文冊) 잔주(注)에도 듣도 보도 못한 말. 만일 패여 땐다면 목신 동증(動症) 조왕(조王) 동증, 목숨 보전 못 할 테니 어서 급히 지고 가서 선 자리에 도로 세우고 왼발 굴러 진언(眞言) 치고 다른 길로 돌아옵소." 강쇠가 호령하여, "가사(家事)는 임장(任長)이라 가장(家長)이 하는 일을 보기만 할 것이지, 계집이 요망(妖妄)하여 그것이 웬 소린고. 진(晉) 충신 개자추(介子推)는 면산(면山)에 타서 죽고, 한 장군 기신(紀信)이는 형양(滎陽)에 타서 죽어, 참사람이 타 죽어도 아무 탈(탈)이 없었는데, 나무로 깎은 장승 인형을 가졌은들 패여 때여 관계한가. 인불언귀부지(人不言鬼不知)니 요망한 말 다시 말라." 밥상을 물린 후에 도끼 들고 달려들어 장승을 쾅쾅 패어 군불을 많이 넣고, 유정(有情) 부부 훨썩 벗고 사랑가로 농탕(弄蕩)치며, 개폐문 전례판(開閉門 傳例板)을 맛있게 하였구나. 이 때에 장승 목신 무죄(無罪)히 강쇠 만나 도끼 아래 조각 나고 부엌 속에 잔 재 되니 오죽이 원통(寃通)켔나. 의지(依持)할 곳이 없어 중천(中天)에 떠서 울며, 나 혼자 다녀서는 이놈 원수 못 값겠다. 대방(大方) 전에 찾아가서 억울함 원정(原情) 하오리라. 경기(京畿) 노강(鷺江) 선창(船艙) 목에 대방 장승 찾아가서 문안(問安)을 한 연후에 원정을 아뢰기를, "소장(小將)은 경상도 함양군에 산로 지킨 장승으로 신지(神祗) 처리(處理) 한 일 없고, 평민 침학(侵虐)한 일 없어, 불피풍우(不避風雨)하고, 각수본직(各守本職) 하옵더니 변강쇠라 하는 놈이 일국의 난봉으로 산중에 주접(柱接)하여, 무죄한 소장에게 공연히 달려들어 무수(無數) 후욕(후辱)한 연후에 빼어 지고 제 집 가니, 제 계집이 깜짝 놀라 도로 갖다 세워라 하되, 이 놈이 아니 듣고 도끼로 쾅쾅 패여 제 부엌에 화장(火葬)하니, 이 놈 그저 두어서는 삼동(三冬)에 장작감 근처의 동관(同官) 다 패 때고, 순망치한(脣亡齒寒) 남은 화가 안 미칠 데 없을 테니 십분(十分) 통촉(洞燭)하옵소서. 소장의 설원(雪寃)하고 후환 막게 하옵소서." 대방이 대경(大驚)하여, "이 변이 큰 변이라. 경홀(輕忽) 작처(酌處) 못 할 테니 사근내(沙斤乃) 공원(公員)님과 지지대(遲遲臺) 유사(有司)님께 내 전갈(傳喝) 엿쭙기를 '요새 적조(積阻)하였으니 문안일향(問安一向)하옵신지. 경상도 함양 동관 발괄(白活) 원정을 듣사온 즉 천만고 없던 변이 오늘날 생겼으니, 수고타 마옵시고 잠깐 왕림(枉臨)하옵셔서 동의작처(同意酌處)하옵시다.' 전갈하고 모셔 오라." 장승 혼령(魂靈) 급히 가서 두 군데 전갈하니, 공원 유사 급히 와서 의례 인사한 연후에 함양(咸陽) 장승 발괄 내력 대방이 발론(發論)하니 공원 유사 엿쭙되, "우리 장승 생긴 후로 처음 난 변괴(變怪)이오니 삼소임(三所任)만 모여 앉아 종용작처(從容酌處) 못 할지라, 팔도 동관 다 청하여 공론(公論) 처치하옵시다." 대방이 좋다 하고 입으로 붓을 물고, 통문(通文) 넉 장 썩 써 내니 통문에 하였으되, "우통유사(右通喩事)는 토끼가 죽으면 여우가 슬퍼하고, 지초(芝草)에 불이 타면 난초가 탄식(歎息)키는 유유상종(類類相從) 환란상구(患難相救) 떳떳한 이치로다. 지리산중 변강쇠가 함양 동관 빼어다가 작파(斫破) 화장하였으니 만과유경(萬과猶輕) 이 놈 죄상 경홀 작처할 수 없어 각도 동관전에 일체(一切)로 발통(發通)하니 금월 초 삼경야에 노강 선창으로 일제취회(一齊聚會)하여 함양 동관 조상(弔喪)하고, 변강쇠놈 죽일 꾀를 각출의견(各出意見)하옵소서. 년 월 일." 밑에 대방 공원 유사 벌여 쓰고, 착명(箸名)하고, 차여(次餘)에 영문(營門) 각읍(各邑) 진장(鎭將) 목장(牧將) 각면(各面) 각촌(各村) 점막(店幕) 사찰차(寺刹次) 차비전(差備前) 차의(差議)라. "통문 한 장은 진관천 공원이 맡아 경기 삼십사관(三十四官), 충청도 오십사관, 차차 전케 하고, 한 장은 고양(高陽) 홍제원(弘濟阮) 동관이 맡아 황해도 이십삼관, 평안도 삼십이관 차차 전케 하고, 한 장은 양주(楊州) 다락원 동관이 맡아 강원도 이십육관, 함경도 이십사관 차차 전케 하고, 한 장은 지지대 공원이 맡아 전라도 오십육관, 경상도 칠십일관 차차로 전케 하라." 귀신의 조화(造化)인데 오죽이 빠르겠나. 바람 같고 구름같이 경각(頃刻)에 다 전하니, 조선 지방 있는 장승 하나도 낙루(落漏)없이 기약(期約)한 밤 다 모여서 쇄남터에 배게 서서 시흥(始興) 읍내까지 빽빽하구나. 장승의 절하는 법이 고개만 숙일 수도 없고, 허리 굽힐 수도 없고, 사람으로 의논하면 발 앞부리를 디디고 뒤측만 달싹 하는 뽄이었다. 일제히 절을 하고, 문안을 한 연후에 대방이 발론하여, "통문사의(通文事意) 보았으면 모은 뜻을 알 테니 변강쇠 지은 죄를 어떻게 다스릴꼬." 단천(端川) 마천령(摩天嶺) 상봉(上峰)에 섰는 장승 출반(出班)하여 엿쭙기를, "그 놈의 식구대로 쇄남터로 잡아다가 효수(梟首)를 하옵시다." 대방이 대답하되, "귀신의 성기(性氣)라도 토풍(土風)을 따라가니 마천 동관 하는 말씀 상쾌(爽快)는 하거니와, 사단(事端) 하나 있는 것이 놈의 식구란 게 계집 하나뿐이로되, 계집은 말렸으니 죄를 아니 줄 테요, 강쇠라 하는 놈도 부지불각(不知不覺) 효수하면 세상이 알 수 없어 징일여백(懲一勵百) 못 될 테니 여러 동관님네 다시 생각하옵소서." 압록강가 섰는 장승 나서며 엿쭙되, "출호이자 반호이(出乎爾者 反乎爾)가 성인의 말씀이니 우리의 식구대로 그 놈 집을 에워싸고 불을 버썩 지른 후에 못 나오게 하였으면 그 놈도 동관같이 화장이 되오리다." 대방이 대답하되, "흉녕(凶녕)한 그런 놈을 부지불각 불지르면 제 죄를 제 모르고 도깨비 장난인가 명화적(明火賊)의 난리런가 의심을 할 테니 다시 생각하여 보오." 해남(海南) 관머리 장승이 엿쭙되, "대방님 하는 분부(分付) 절절이 마땅하오. 그러한 흉한 놈을 쉽사리 죽여서는 설치(雪恥)가 못 될 테니 고생을 실컷 시켜, 죽자해도 썩 못 죽고, 살자해도 살 수 없어 칠칠이 사십구 한달 열 아흐레 밤낮으로 볶이다가 험사(險死) 악사(惡死)하게 하면 장승 화장한 죄인 줄 저도 알고 남도 알아 쾌히 징계(懲戒)될 테니, 우리의 식구대로 병 하나씩 가지고서 강쇠를 찾아가서 신문(신門)에서 발톱까지 오장육부(五臟六腑) 내외없이 새 집에 앙토(仰土)하듯, 지소방(祗所房)에 부벽(付壁)하듯, 각장(角壯) 장판(壯版) 기름 결듯, 왜관(倭館) 목물(木物) 칠살같이 겹겹이 발랐으면 그 수가 좋을 듯 하오." 대방이 대희하여, "해남 동관 하는 말씀 불번불요(不煩不擾) 장히 좋소. 그대로 시행(施行)하되 조그마한 강쇠놈에 저리 많은 식구들이 정처 없이 달려들면 많은 데는 축이 들고 빠진 데는 틈 날 테니 머리에서 두 팔까지 전라, 경상 차지하고, 겨드랑이서 볼기까지 황해, 평안 차지하고, 항문(肛門)에서 두발(頭髮)까지 강원, 함경 차지하고, 오장육부 내복(內腹)일랑 경기, 충청 차지하여 팔만 사천 털 구멍 한 구멍도 빈틈없이 단단히 잘 바르라." 팔도 장승 청령(廳令)하고, 사냥 나온 벌떼같이 병 하나씩 등에 지고, 함양 장승 앞장 서서 강쇠에게 달려들어 각기 자기네 맡은 대로 병도배(病塗褙)를 한 연후에 아까같이 흩어진다. 이적에 강쇠놈은 장승 패여 덥게 때고 그 날 밤을 자고 깨니 아무 탈이 없었구나. 제 계집 두 다리를 양편으로 딱 벌리고 오목한 그 구멍을 기웃이 굽어보며, "밖은 검고 안은 붉고 정녕(丁寧) 한 부엌일새, 빡금빡금하는 것은 조왕동증 정녕 났제." 제 기물(己物) 보이면서, "불끈불끈하는 수가 목신동증 정녕 났제. 가난한 살림살이 굿하고 경 읽겠나, 목신하고 조왕하고 사화(私和)를 붙여 보세." 아적밥 끼니 에워 한 판을 질끈하고 장담(壯談)을 실컷하여, "하루 이틀 쉰 후에 이 근방 있는 장승 차차 빼어 왔으며는 올봄을 지내기는 나무 걱정할 수 없지." 그날 저녁 일과(日課)하고 한참 곤케 자노라니 천만의외 온 집안이 장승이 장을 서서 몸 한 번씩 건드리고 말이 없이 나가거늘 강쇠가 깜짝 놀라 말하자니 안 나오고 눈 뜨자니 꽉 붙어서 만신(萬身)을 결박(結縛)하고 각색(各色)으로 쑤시는데, 제 소견도 살 수 없어 날이 점점 밝아 가매, 강쇠 계집 잠을 깨니 강쇠의 된 형용(形容)이 정녕한 송장인데, 신음(呻吟)하여 앓는 소리 숨은 아니 끊겼구나. 깜짝 놀라 옷을 입고 미음을 급히 고아 소금 타서 떠 넣으며 온몸을 만져 보니, 이를 꽉 아드득 물고 미음 들어갈 수 없고, 낭자(狼藉)한 부스럼이 어느새 농창(濃瘡)하여 피고름 독한 내가 코를 들을 수가 없다. 병 이름을 짓자 하니 만가지가 넘겠구나. 풍두통(風頭痛), 편두통(偏頭痛), 담결통(痰結痛) 겸하고 쌍다래끼 석서기, 청맹(靑盲)을 겸하고, 이롱증(耳聾症) 이병(耳鳴)에 귀젓을 겸하고, 비창(鼻瘡), 비색(鼻塞)에 주독(酒毒)을 겸하고, 면종(面腫), 협종(頰腫) 순종(脣腫) 겸하고, 풍치(風齒), 충치(蟲齒)에 구와증 (口와症)을 겸하고, 흑태(黑苔), 백태(白苔)에 설축증(舌縮症)을 겸하고, 후비창(喉痺瘡), 천비창(穿鼻瘡)에 쌍단아(雙單蛾)를 겸하고, 낙함증(落함症), 항강(項强)에 발제(髮際)를 겸하고, 연주(連珠) 나력(나력)에 상감(傷感)을 겸하고, 견비통(肩臂痛), 옹절(癰癤)에 수전증(手戰症)을 겸하고, 협통(脇痛), 요통(腰痛)에 등창을 겸하고, 흉결(胸結) 복창(腹脹)에 부종(浮腫)을 겸하고, 임질(淋疾), 산증(疝症)에 퇴산(퇴疝)불을 겸하고, 둔종(臀腫), 치질(痔疾)에 탈항증(脫肛症)을 겸하고, 가래톳 학질(학疾)에 수종(水腫)을 겸하고, 발바닥 독종(毒腫)에 티눈을 겸하고, 주로(酒로) 색로(色로)에 담로(痰로)를 겸하고, 육체(肉滯), 주체(酒滯)에 식체(食滯)를 겸하고, 황달(黃疸), 흑달(黑疸)에 고창(鼓脹)을 겸하고, 적리(赤痢), 백리(白痢)에 후증(後症)을 겸하고, 각궁반장(角弓反張)에 괴질(怪疾)을 겸하고, 자치염, 해수(咳嗽)에 헐떡증을 겸하고, 섬어(섬語), 빈 입에 헛손질을 겸하고, 전근곽란(轉筋藿亂)에 토사(吐瀉)를 겸하고, 일학(日학), 양학(兩학)에 며느리심을 겸하고, 드리치락 내치락 사증(邪症)을 겸하고, 단독(丹毒), 양독(陽毒)에 온역(瘟疫)을 겸하고, 감창(疳瘡), 당창(唐瘡)에 용천을 겸하고, 경축(驚축), 복음(伏飮)에 분돈증(奔豚症)을 겸하고, 내종(內腫), 간옹(肝癰)에 주마담(走馬痰)을 겸하고, 염병(染病), 시병(時病)에 열광증(熱狂症)을 겸하고, 울화(鬱火), 허화(虛火)에 물조갈(燥渴)을 겸하여 사지가 참을 수 없고 온몸이 쑤셔서 굽도 잦도 꼼짝달싹 다시는 두 수 없이 마계틀 모양으로 뻣뻣이 누웠으니, 여인이 겁을 내여 병이 하도 무서우니 문복(問卜)이나 해여 보자. 경채(經債) 한 냥 품에 넣고 건너 마을 송봉사(宋奉事) 집 급히 찾아가서, "봉사님 계시오." 봉사의 대답이란 게 근본 원수(怨讐)진 듯이 하는 법이었다. "게 누구라께." "강쇠 지어미오." "어찌." "그 건장(健壯)하던 지아비가 밤새 얻은 병으로 곧 죽게 되었으니 점(占) 한 장 하여 주오." "어허, 말 안 되었네. 방으로 들어오소." 세수를 급히 하고, 의관(衣冠)을 정제(整齊)한 후에 단정히 꿇어 앉아, 대모산통(玳瑁算筒) 흔들면서 축사(祝辭)를 외는구나. "천하언재(天下言哉)시며 지하언재(地何言哉)시리오마는 고지즉응(叩之卽應)하나니 부대인자(夫大人者)는 여천지합기덕(與天地合其德)하며 여일월합기명(與日月合其明)하며 여사시합기서(與四時合其序)하며 여귀신합기길흉(與鬼神合其吉凶)하시니, 신기영의(神其靈矣)라, 감이수통언(感而遂通焉)하소서. 금우태세(今又太歲) 을유이월(乙酉二月) 갑자삭(甲子朔) 초육일(初六日) 기사(己巳) 경상우도(慶尙右道) 함양군 지리산중거여인(智里山中居女人) 옹씨 근복문(謹伏問). 가부(家夫) 임술생신(壬戌生身) 변강쇠가 우연 득병(得病)하여 사생(死生)을 판단(判斷)하니 복걸(伏乞) 점신(占神)은 물비(勿秘) 괘효(卦爻) 신명(神明) 소시(昭示), 신명 소시. 하나 둘 셋 넷." 산통을 누가 뺏아 가는지 주머니에 부리나케 넣고 글 한 귀 지었으되, "사목비목(似木非木) 사인비인(似人非人)이라, 나무라 할까 사람이라 할까, 어허, 그것 괴이(怪異)하다." 강쇠 아내 이른 말이, "엇그제 남정네가 장승을 패 때더니 장승 동증인가 보이다." "그러면 그렇지, 목신이 난동(亂動)하고 주작(朱雀)이 발동(發動)하여 살기는 불가망(不可望)이나 원이나 없이 독경(讀經)이나 하여 보소." 강쇠 아내 이 말 듣고, "봉사님이 오소서." "가지." 저 계집 거동 보소. 한 걸음에 급히 와서 사면에 황토(黃土) 놓고, 목욕하며 재계(齋戒)하고, 빤 의복 내어 입고, 살망떡과 실과(實果) 채소(菜蔬) 차려 놓고 앉았으니 송봉사 건너온다. 문 앞에 와 우뚝 서며, "어디다 차렸는가." "예다 차려 놓았소." "그러면 경 읽지." 나는 북 들여 놓고 가시목 북방망이 들고, 요령(요鈴)은 한 손에 들고, 쨍쨍 퉁퉁 울리면서 조왕경(조王經), 성조경(成造經)을 의례(依例)대로 읽은 후에 동증경(動症經)을 읽는구나. "나무동방(南無東方) 목귀살신(木鬼殺神), 남무남방(南無南方) 목귀살신, 남무서방(南無西方) 목귀살신, 남무북방(南無北方) 목귀살신." 삼칠편(三七篇)을 얼른 읽고 왼편 발 턱 구르며, "엄엄급급(奄奄急急) 여율령(如律令) 사파하(娑婆하) 쒜." 경을 다 읽은 후에, "자네, 경채를 어찌 하려나." 저 계집 이르는 말이, "경채나 서울빚이나 여기 있소." 돈 한 냥 내어 주니, "내가 돈 달랬는가, 거 새콤한 것 있는가." "어, 앗으시오. 점잖은 터에 그게 무슨 말씀이오." 송봉사 무료(無聊)하여 안개 속에 소 나가듯 하니 강쇠 아내 생각하되 의원(醫員)이나 불러다가 침약(鍼藥)이나 하여 보자. 함양(咸陽) 자바지 명의(名醫)란 말을 듣고 찾아 가서 사정(事情)하니 이진사(李進士) 허락하고 몸소 와서 진맥(診脈)할 때, 좌수맥(左手脈)을 짚어본다. 신방광맥(腎肪胱脈) 침지(沈遲)하니 장냉정박(臟冷精薄)할 것이요, 간담맥(肝膽脈)이 침실(沈失)하니 절늑통압(節肋痛壓)할 것이요, 심수맥(心水脈)이 부삭(浮數)하니 풍열두통(風熱頭痛)할 것이요, 명문삼초맥(命門三焦脈)이 이렇게 침미(沈微)하니 산통탁진(酸通濁津)할 것이요, 비위맥(脾胃脈)이 참심(참심)하니 기촉복통(氣促腹痛)할 것이요, 폐대장맥(肺大腸脈)이 부현(浮弦)하니 해수 냉결(冷結)할 것이요, 기구인영맥(氣口人迎脈)이 내관외격(內關外格)하여 일호륙지(一呼六至)하고 십괴(十怪)가 범하였으니 암만해도 죽을 터이나 약이나 써보게 건재(乾材)로 사오너라. 인삼(人蔘), 녹용(鹿茸), 우황(牛黃), 주사(朱砂), 관계(官桂), 부자(附子), 곽향(藿香), 축사(縮砂), 적복령(赤茯笭), 백복령(白茯伶), 적작약(赤芍藥), 백작약(白芍藥), 강활(羌活), 독활(獨活), 시호(柴胡), 전호(前胡), 천궁(川芎), 당귀(唐歸), 황기(黃기), 백지(白芷), 창출(倉朮), 백출(白朮), 삼릉(三稜), 봉출(蓬朮), 형개(荊芥), 防風(방풍), 소엽(蘇葉), 박하(薄荷), 진피(陳皮), 청피(靑皮), 반하(半夏), 후박(厚朴), 용뇌(龍腦), 사향(麝香), 별갑(鱉甲), 구판(龜板), 대황(大黃), 망초(芒硝), 산약(山藥), 택사(澤瀉), 건강(乾薑), 감초(甘草). 탕약(湯藥)으로 써서 보자. 형방패독산(荊防敗毒散), 곽향정기산(藿香正氣散), 보중익기탕(補中益氣湯), 방풍통성산(防風通聖散湯), 자음강화탕(滋陰降火湯), 구룡군자탕(구龍君子湯), 상사평위산(常砂平胃散), 황기건중탕(黃기建中湯), 일청음(一淸飮), 이진탕(二陳湯), 삼백탕(三白湯), 사물탕(四物湯), 오령산(五靈散), 륙미탕(六味湯), 칠기탕(七氣湯), 팔물탕(八物湯), 구미강활탕(九味羌活湯), 십전대보탕(十全大補蕩). 암만써도 효험(效驗)없어 환약(丸藥)을 써서 보자. 소합환(蘇合丸), 청심환(淸心丸), 천을환(天乙丸), 포룡환(抱龍丸), 사청환(瀉淸丸), 비급환(脾及丸), 광제환(廣濟丸), 백발환(百發丸), 고암심신환(古庵心腎丸), 가미지황환(加味地黃丸), 경옥고(瓊玉膏), 신선고(神仙膏)가 아무것도 효험없다. 단방약(單方藥)을 하여 볼까. 지렁이집, 굼벵이집, 우렁탕, 섬사주(蟾蛇酒)며 무가산(無價散), 황금탕(黃金湯)과 오줌찌기, 월경수(月經水)며 땅강아지, 거머리, 황우리, 메뚜기, 가물치, 올빼미를 다 써 보았지만 효험없다. 침이나 주어보자. 순금장식(純金粧飾) 대모침통 절렁절렁 흔들어서 삼릉(三稜)을 빼여들고 차차 혈맥(穴脈) 집퍼 줄 때, 백회(百會) 짚어 통천(通天) 주고, 뇌공(腦空) 짚어 풍지(風池) 주고, 전중(전中) 짚어 신궐(神闕) 주고, 기해(氣海) 짚어 대맥(帶脈) 주고, 대저(大저) 짚어 명문(命門) 주고, 장강(長强) 짚어 간유(肝兪) 주고, 담유(膽兪) 짚어 소장유(小腸兪) 주고, 방광(膀胱) 짚어 곡지(曲池) 주고, 수삼이(手三里) 짚어 양곡(陽谷) 주고, 완골(腕骨) 짚어 내관(內關) 주고, 대릉(大陵) 짚어 소상(小商) 주고, 환도(環跳) 짚어 양능천(陽陵泉) 주고, 현종(懸鍾) 짚어 위중(委中) 주고, 승산(承山) 짚어 곤륜(崑崙) 주고, 신맥(申脈) 짚어 삼음교(三陰交) 주고, 공손(公孫) 짚어 축빈(築賓) 주고, 조해(照海) 짚어 용천(涌泉) 주어, 만신(萬身)을 다 쑤시니, 병에 곯고 약에 곯고 침에 곯아 죽을 밖에 수가 없다. 이진사 하는 말이, "약은 백 가지요, 병은 만 가지니 말질(末疾)이라 불치외다." 하직(下直)하고 가는구나. 의원이 간 연후에 침약의 힘일런지 목신의 조화인지 강쇠가 말을 하여 여인 옥수 (玉手) 덤벅 잡고 눈물 흘리며 하는 말이, "자네는 양서 사람, 내 몸은 삼남 사람. 하늘이 지시하고 귀신이 중매하여 오다가다 맺은 연분(緣分) 죽자사자 깊은 맹세 단산(丹山)에 봉황(鳳凰)이오 녹수(綠水)에 원앙(元鴦)이라. 잠시(暫時)도 이별 말고 백년해로(百年偕老) 하쟀더니 일야간에 얻은 병이 백 가지 약 효험 없어, 청춘소년 이 내 몸이 황천(黃天) 원로(遠路) 갈 터이니 생기사귀(生寄死歸) 성인 말씀 나는 서럽지 않거니와 생이사별(生離死別) 자네 정경(情景) 차마 어찌 보겠는가. 비같이 퍼붓던 정이 구름같이 흩어지면 눈같이 녹는 간장 안개같이 이는 수심(愁心). 도리화(桃李花) 피는 봄과 오동잎 지는 가을 두견(杜鵑)이 서럽게 울고 기러기 높이 날 때, 독수공방(獨守空房) 저 신세가 잔상이 불쌍하다. 자네 정경 가긍하니 아무리 살자 하나 내 병세 지독(至毒)하여 기여이 죽을 터이니 이 몸이 죽거들랑 염습(斂襲)하기, 입관(入棺)하기 자네가 손수 하고, 출상(出喪)할 때 상여(喪輿) 배행(陪行), 시묘(侍墓) 살아 조석 상식(上食), 삼년상을 지낸 후에 비단 수건 목을 잘라 저승으로 찾아오면 이생에서 미진(未盡) 연분 단현부속(斷絃復續) 되려니와 내가 지금 죽은 후에 사나이라 명색(名色)하고 십세전 아이라도 자네 몸에 손대거나 집 근처에 얼씬하면 즉각 급살(急殺)할 것이니 부디부디 그리하소." 속곳 아구대에 손김을 풀쑥 넣어 여인의 보지 쥐고 으드득 힘 주더니 불끈 일어 우뚝 서며 건장한 두다리는 유엽전(柳葉箭)을 쏘려는지 비정비팔(非正非八) 빗디디고, 바위 같은 두 주먹은 시왕전(十王前)에 문지기인지 눈위에 높이 들고, 경쇳덩이 같은 눈은 홍문연(鴻門宴) 번쾌(樊쾌)인지 찢어지게 부릅뜨고, 상투 풀어 산발(散髮)하고, 혀 빼어 길게 물고, 짚동같이 부은 몸에 피고름이 낭자하고 주장군(朱將軍)은 그저 뻣뻣, 목구멍에 숨소리 딸깍, 코구멍에 찬바람 왜, 생문방(生門方) 안을 하고 장승 죽음 하였구나. 여인이 겁이 나서 울 생각도 없지마는 저놈 성기(性氣) 짐작하고 임종(臨終) 유언(遺言) 있었으니 전례곡(傳例哭)은 해야 겠거든 비녀 빼어 낭자 풀고 주먹 쥐어 방을 치며, "애고애고(哀苦哀苦) 설운지고, 애고애고 어찌 살꼬. 여보소, 변서방아 날 버리고 어디가나. 나도 가세 나도 가세. 임을 따라 나도 가세. 청석관 만날 적에 백년해로 하자더니 황천객 혼자 가니 일장춘몽(一場春夢) 허망하다. 적막산중(寂寞山中) 텅빈 집에 강근지친(强近之親) 고사하고 동네 사람 없으니 낭군 치상(致喪) 어찌 하고 이내 신세 어찌 살꼬. 웬년의 팔자로서 상부복을 그리 타서 송장 많이 보았지만 보던 중에 처음이네. 애고애고 설운지고. 나를 만일 못 잊어서 눈을 감지 못한다면 날 잡아가, 날 잡아가. 애고애고 설운지고." 한참 통곡한 연후에 사자(死者)밥 지어 놓고, 옷깃 잡아 초혼(招魂)하고 혼잣말로 자탄(自嘆)하여, "무인지경(無人之境) 이 산중에 나 혼자 울어서는 낭군 치상할 수 없어 시충출호(屍蟲出戶)될 터이니, 대로변에 앉아 울어 오입남자 만난다면 치상을 할 듯하니 그 수가 옳다." 하고 상부에 이력 있어 소복(素服)은 많겠다, 생서양포(生西洋布) 깃저고리, 종성내의(鍾城內衣), 생베 치마, 외씨 같은 고운 발씨 삼승보선 엄신 신고 구름같이 푸른 머리 흐트러지게 집어 얹고 도화색(桃花色) 두 뺨 가에 눈물 흔적 더 예쁘다. 아장아장 고이 걸어 대로변을 건너가서 유록도홍(柳綠桃紅) 시냇가에 뵐듯 말듯 펄석 앉아 본래 관서 여인이라 목소리는 좋아서 쓰러져가는 듯이 앵도를 따는데 이것이 묵은 서방 생각이 아니라 새서방 후리는 목이니 오죽 맛이 있겠느냐. 사설(詞說)은 망부사(望夫詞) 비슷하게 염장(斂章)은 연해 애고 애고로 막겠다. "애고애고 설운지고. 이 내 신세 가긍하다. 일신이 고단(孤單)키로 이십이 발옷 넘어 삼남을 찾아오니 사고무친(四顧無親) 객지(客地)로다. 오행궁합 좋다기에 육례 (六禮)없이 얻은 낭군 칠차(七次) 상부 또 당하니 팔자 그리 험굿던가. 구곡간장(九曲肝腸) 이 원통을 시왕전에 아뢰고저. 애고애고 설운지고. 여심상비(余心傷悲) 남물흥사(男勿興事) 보는 것이 설움이라. 류상(柳上)에 우는 황조(黃鳥) 벗을 오라 한다마는 황천 가신 우리 낭군 네 어이 불러오며 화간(花間)에 우는 두견 불여귀(不如歸)라 한다마는 가장 치상 못한 내가 어디로 가자느냐. 동원도리편시춘(東園桃李片時春)에 내 신세를 어찌하며 춘초년년(春草年年) 푸르른데 낭군 어이 귀불귀(歸不歸)오. 애고애고 설운지고. 염라국(閻羅國)이 어디 있어 우리 낭군 가 계신고. 북해상(北海上)에 있으며는 안족서(雁足書)나 부칠 테오. 농산(롱山)이 가까우면 앵무소식(鸚鵡消息) 오련마는 주야(晝夜) 동포(同抱)하던 정리(情理) 영이별(永離別) 되단 말인가. 애고애고 설운지고." 애원한 목소리가 화주성(華周城)이 무너질 듯 시냇물이 목메인다.
1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