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박남철
고등학교 다닐때
버스 안에서 늘 새침하던
어떻게든 사귀고 싶었던
포항여고 그 계집애
어느 날 누이동생이 그저 철없는 표정으로
내 일기장 속에서도 늘 새침하던
계집애의 심각한 편지를 가져왔다.
그날 밤 달은 뜨고
그 탱자나무 울타리 옆 빈터
그 빈터엔 정말 계집애가 교복 차림으로 검은 운동화로
작은 그림자를 밟고 여우처럼
꿈에서 서 있었다 나를 허연 달빛 아래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밤 얻어맞았다.
그 탱자나무 울타리 옆 빈터
그 빈터에서 정말 계집애는
죽도록 얻어맞았다 처음엔
눈만 동그랗게 뜨면서 나중엔
눈물도 안 흘리고 왜
때리느냐고 묻지도 않고
그냥 달빛 아래서 죽도록
얻어맞았다.
그날 밤 달은 지고
그 또 다른 허연 분노가
면도칼로 책상 모서리를
나를 함부로 깎으면서
나는 왜 나인가
나는 왜 나인가
나는 자꾸 책상 모서리를
눈물을 흘리며 책상 모서리를
깎아댔다.
박남철 1953. 10. 17.
출생지
국내 경상북도 영일
데뷔
1979. 문학과지성에 「연날리기」외 3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
1953년 10월 17일 경북 영일 출생. 경희대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79년 『문학과지성』에 「연날리기」외 3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1982년 공동시집으로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를 간행한 이후 시집 『지상의 인간』(1984), 『반시대적 고찰』(1988), 『생명의 노래』(1992), 『자본에 살어리랏다』(1997), 『바다 속의 흰머리뫼』(2005) 등을 간행한 바 있다. 첫 개인 시집 『지상의 인간』은 야유와 풍자와 욕설을 통해 세계의 비틀려 있음을 고발하고 있으며, 『자본에 살어리랏다』는 풍자와 익살을 통해 자아의 본질을 응시하고 현실을 포용하고 있다. 박남철은 기존 질서나 도덕률, 시 형식 등을 파괴하는 해체와 인용과 패러디의 시를 통해 세상에 대해 항의하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첫사랑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기본적으로 아름답고 설레이는 뭔가가 마음속에 울렁이는 기분이 느껴질것이다. 그러나 이시의 시인은 첫사랑의 다른 면모를 표현하였다
'나'의 일기장에 적혀있는 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계집애,계집애의 심각한 편지속에는 둘의 만남을 제안하는 글이 적혀있는 것이다. 그날 밤 허연 달빛 아래 서 있던 계집애에게 '나'는 두근거리는 고백대신 원망이 섞인 폭력을 가했다.
어떻게 사귀고 싶었던 사람인데 그사람에게 주먹을 쓰게 됬을까? 첫사랑으로 인해 열병을 앓던 사건속에서 사랑은 점차 분노와 좌절을 담아내고 그것은 원망으로까지 번져버린것이다.
그러한 원망이 무의식적으로 계집애 얼굴의 상처로 담긴것이다. '나'의마음속에는 이미 수천,수만의 흉이 남겨져 있으니.
그후 나는 책상모서리를 깎으며 나는왜 나인가 나는왜 나인가 후회를 하며 죄책의 눈물을 흘린다.
그렇게 '첫'이든 아니든 사랑이라는 것은 이렇게 무서운 감정이다. 생각해보니 나에게도 있어서 첫사랑이란 좋은감정보다는 우울.외로움.분노 원망등의 감정이 더 많이 떠오른다그와 같은 감정으로 얼마나 오랜시간을 나를 갉아먹었는지 모르겠다. 이렇듯 나를 깎는것 나를 갉아버리고 짓밟는 것. 그것은 얄팍한 설정위 숨어있는 사랑의 정면은 아닐런지.
이시를 읽고 사랑에 대한 감정에 대해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 볼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