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버님께
아버님, 부르기만 해도 눈물이 날 것만 같은 이름이네요. 아버님이 돌아가신지도 벌써 두 달이 다 되어 갑니다. 사람이 떠나도 우리의 일상은 늘 그렇듯 평화롭고 평범하며 지극히 반복적인 것 같아요. 아버님 없이는 못 살 것처럼 울던 우리 남편도, 저도 아이들도 너무 빨리 일상으로 돌아간 것이 못내 씁쓸하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우리가 누리는 이 평범한 행복을 아버님은 더 바라시고 계시겠지요.
아버님 무덤 앞에서 목 놓아 울며 우리 아이들 잘 키우겠다고 다짐했었지요. 소중한 우리 석영이, 하린이 잘 키우겠습니다. 남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건강하고 바르게 아버님의 자랑스러운 손자, 손녀로 키울게요. 13년 전, 아버님을 처음 뵈었을 때 아버님은 참 인자한 미소를 보여주셨어요. 저를 진심으로 환영해 주시던 아버님 덕분에 저는 참 마음이 편안해졌고 시댁에 놀러갈 때마다 할아버지를 만나는 마음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 아버님이 떠나고 나니 저는 이제 어떤 마음으로 시댁을 가야 할까요? 아버님, 너무 보고싶습니다.
사실 저는 아버님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현실이 허락하지 않아 많은 것을 해 드리지 못해 그저 죄스러움 뿐입니다. 이유없는 난임으로 7년 만에 당신께 석영이, 하린이를 안겨드렸지요. 그 7년의 시간이 결코 짧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도 제게 왜 아이를 갖지 않느냐 말씀하신 적이 없었지요. 누구보다 손주를 기다렸을 당신임에도 저에게 조금의 부담도 주지 않은 그 마음의 깊이를 제가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요? 저는 아버님이 휴대폰을 갖고 있지 않아서 늘 마음이 아파 결혼하자마자 아버님 휴대폰부터 사드렸지요. 전화를 걸 때도 항상 어머님보다 아버님께 먼저 연락을 드렸었어요. 당신이 집안의 어른인데 너무 어머님 위주로 돌아가는 것이 안스러워 제 나름의 배려였었는데 아버님께 제 진심이 전해졌는지 모르겠어요. 어머님이 가끔 무섭게 말씀하셔도 아버님은 항상 제 편이었고 저를 칭찬하고 격려해주신 거 압니다. 그런 아버님이 계셔서 저도 시댁을 불편해하지 않고 좋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버님이 돌아가신 뒤 당신의 물건들을 정리하며 저희들은 또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어요. 너무 많은 약봉지와 너무 많이 외로웠을 아버님의 흔적들이 저와 남편을 주저앉게 만들었어요. 멀리 산다는 이유로 한 달에 한번 밖에 찾아뵙지 못하고 아버님 병원도 늘 형님과 아주버님이 맡아서 해 주셨지요. 저희는 정말 아무것도 해 드린게 없어서 죄송한 마음에 고개만 숙입니다. 불효자라 웁니다.
아버님이 즐겨 앉으시던 흔들의자가 너무 낡아 새 것으로 사드리려고 장바구니에 넣어놓기만 하고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던 제가 너무 원망스럽습니다. 조금 더 좋은 거 해드려야지 하는 마음으로 미루다 보니 그저 속절없이 시간이 흘러가 버리고 아이를 키운다는 허울좋은 핑계에 결국 의자 하나 사드리지 못했네요. 아버님이 안 계신 지금에서야 가슴을 치며 후회합니다. 그래도 딱하나 다행인 건 아버님, 어머님 모시고 괌으로 가족 여행을 간 것입니다. 아버님의 처음이자 마지막 해외여행을 제가 함께일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기억하시나요? 제가 아버님께 ‘ 아버님,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너무 좋아해요. 김씨라서 그런가 피가 당기나봐요. ’라고 말씀드렸더니 당신이 그러셨지요. ‘다 네가 교육을 잘 시켜 그런 거다. 세상에 교육 않고 아는 법이 없다’라고 하시며 저를 보며 웃어 주셨지요. 저는 그때 참 감사했어요. 저를 항상 그렇게 칭찬해주고 북돋아주셨지요. 너무도 부족한 저에게 아이들을 건강하고 바르게 잘 키워주어 고맙다고 하시며 고생 많다며 저에게 힘을 주셨지요.
애들 아빠가 중학교 때 방황하며 집을 나갔을 때도 아버님은 애들 아빠에게 믿는다며 따뜻하게 안아주셨다고 들었어요. 혼내고 윽박지를 법도 한데 아버님의 그 교육법은 제가 따라갈 수가 없어요. 그런 아버님의 진심 때문에 지금 애들 아빠가 이렇게 직장 생활 잘하고 반듯한 사람으로 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다 아버님 덕분 같아요.
아버님... 얼마 전 어머님 다니시는 절에서 49재를 지낼 때 저는 너무 슬펐답니다. 정말 그 날이 아버님과의 마지막 같았거든요. 이제는 진짜로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다른 곳에서 당신이 떠나는 것 같아 이별을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온 것 같았거든요.
아버님, 살아 계실 때 당신이 다 누리지 못한 많은 것들에 대한 한과 미련이 얼마나 많을까요?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것을 떠나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누리길 기도합니다. 아버님을 알게 된 13년의 세월을 저는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아버님이 농사지은 달디 단 복숭아는 더 이상 맛볼 수 없지만 당신의 며느리라서 참 좋았습니다. 아버님을 가끔은 그리워하며 눈물도 흘리겠지만 그만큼 어머님께 효도하며 살겠습니다. 어머님의 말투가 아버님과 달라 제 마음에서 진정으로 어머님을 사랑하지는 못했습니다. 때로는 상처도 받겠지만 아버님을 생각해서라도 제가 더 마음을 크게 먹고 어머님께 다가가겠습니다. 그래야 아버님도 마음이 놓이실 것 같아요. 그리고 먼 훗날 우리가 다시 만나는 날, 아버님을 처음 만났던 그 날처럼 환한 미소 보여주세요.
당신을 그리워하는 며느리가 올리는 참회의 편지입니다. 건강하세요.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날이면 아버님을 떠올리겠습니다. 햇빛이 눈부신 날이면 아버님을 기억하겠습니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