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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알바트로스
제45차
정기합평회
(2022. 8. 11.)
순서 | 제목 | 작가 | 합평 담당 |
1 | 끊었다 | 최선화 | 김영희 |
2 | 귀한 몸 | 이미란 | 김정래 |
3 | 잠의 체위 | 채정순 | 김정실 |
4 | 가로수를 보면서 | 엄옥례 | 김치주 |
5 | 콩깍지와 콩 | 옥경자 | 김현지 |
6 | 빠지다 3 | 백금태 | 노아영 |
7 | 너를 보낸다 2 | 서소희 | 백금태 |
8 | |||
9 |
끊었다 / 채선화
1. 신문을 끊었다. 그뿐만 아니라 지상파 방송 몇 개와도 담을 쌓았다. 그동안 같이 했던 시간이나 도움을 생각해 보면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계속 접한다는 것이 꽤나 불편했다.
2. 특히 신문을 하루 이틀 쌓아 두었다가 넘치게 안고 분리수거함을 향할 때면 이 상황이 실감나지 않았다. 그러다 드디어 매스컴이라는 것과 거리를 두는데 성공했다.
3. 거의 1년여를 고민한 것 같다. 혹자는 신문 하나를 보고 안 보고 결정하는데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했냐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랬다. 제일 고민이 되었던 것은 새벽을 가르고 오갔을 그 누군가의 밥줄에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서였다. 오지랖이라 해도 할 수 없다.
4. 주변 사람들의 눈길도 부담스럽기는 했다. 땅바닥에 흘리면서 까지 새신문을 안고 나오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니 말이다. 손도 안대고 버릴거면 애초에 안 받으면 될 텐데 웃기는 사람이라고 보는 듯 해서다. 시시콜콜 지금 내 속을 끄집어내 보여줄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없는 시간에 도둑고양이처럼 오가는 것도 우습기는 마찬가지여서 과감히 결정했다.
5. 그동안 배달된 신문은 거실의 구석진 곳에 나이순대로 쌓여 있었다. 답답한 공부방에서 그나마도 공기 좋은 거실까지 진출한 셈이다. 방 보다는 부담이 덜 했다. 많은 양이 쌓이기 전에 들고 나가 버리는데 시간도 덜 걸렸다. 그러다보니 예전보다 버리는 것으로 부터의 부담이 확실히 줄어 들었다.
6. 그렇다고 고민도 아닌 고민으로부터 완전 해방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불편함이나 문제에도 답은 또 있었다. 방에서 나와 거실의 구석 진 곳에 자리를 잡았듯이 더 밖으로 나가면 될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문제의 신문들을 둘 제2의 장소를 본격적으로 찾다가 현관 입구를 떠올렸다.
7. 그날부터 신문은 받자마자 현관 구석진 곳에 두었다. 물론 현관은 신발들로 전쟁터가 되기 쉬운 곳이어서 문제가 있기는 하다. 그뿐만 아니라 오가는 이들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오기에 다소 낯선 느낌이 드는 것도 맞다. 또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눈에 드는 장면이 하나 더 늘어나기에 환경이라는 면에서 보면 생뚱맞기도 하다. 그래도 거실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은근슬쩍 가져다 놓았다.
8. 뉴스 시청도 끊었다. 라디오랑 TV도 음악방송이나 자연취향의 프로그램으로 모두 바꿨다. 이렇게 방송과 담을 쌓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거짓과 조작된 뉴스를 만들어 내 보내는데 그런 뉴스들을 가까이한다는 것에 염증이 생겨서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방송의 사회자로부터 전문가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낯선 얼굴들 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에는 전문가 집단을 밀어내고 어설픈 아마츄어들이 제 목소리를 높이는데 질렸다.
9. 그들은 웃자고 하니 죽자고 짖어댄다며 싸구려 장돌뱅이 같은 말도 심심찮게 했다. 특히 몇몇 지상파 방송은 브레이크가 없는지 거침없는 말로 선동까지도 여사로 했다. 이는 뒷배를 믿고 함부로 행동한 것이자 그들만의 리그를 보여주는것 같아 한숨이 나왔다.
10. 방송이나 신문은 공정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내로남불을 미화하거나 모른 척 하기도 한다. 보기에 따라서는 지성인의 입을 깡그리 막아 버릴 때도 많았다. 얼마나 저속하고 전문성이 떨어지면 개 덜된 것이 들에 가서 짖는다는 말이 떠오를 정도다.
11. 입으로 죄를 짓고 감당을 어떻게 하려는지 되묻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하물며 기울대로 기운 운동장과 같은 신문을 신문이라고 읽어야 할 것이며 방송 또한 처연하게 봐야할는지. 드디어는 내 의식이 더 이상 함몰되기 전에 이 논쟁의 도가니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12. 신뢰가 없는 외골수 좌 편향이나 우 편향을 그대로 둘 수가 없어서 일단 외면하는데 성공했다. 핑계 같지만 신문이나 방송 등과 동행하다 그 기차에서 내린것은 편파적인 소식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마음에 남을 것 같아서 억지로 찾은 방패이기도 하다.
13. 바보들은 남의 탓이나 핑계만 댄다고 한다. 제발 남의 탓이 아니라 내 탓이자 내 잘못이라 말하는 이, 말 할 줄 아는 통 큰이가 많았으며 좋겠다. 그때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런 분위기가 뿌리내리면 끊었던 신문이나 외면했던 매스컴과 다시 친해질 참이다.
귀한 몸 / 이미란
1. 친정집 마루에 앉아 쓸려나가는 물건을 멍청히 바라본다. 철거업체의 손을 빌려 엄마의 손때가 묻은 살림살이를 정리한다. 버릴 물건이 산더미다. 새로운 것에 밀려 옛것들은 저 차로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2. 하나하나가 풀뿌리 같은 추억이 깃든 소중한 물건들이다. 아련한 고향의 추억도, 엄마의 추억도 고향이라는 단어를 지탱하고 있던 많은 것들이 함께 쓸려나간다. 그렇다고 저 물건들을 내가 가져가 사용할 수도 없다. 아린 가슴 아픈 멸정 滅情의 마음이 일어난다.
3. 많은 물건을 정리하는데 도와줄 일꾼을 구하려니 삼 이웃에 이리저리 수소문해도 없다. 친정 동네에는 일할 수 있는 젊은 사람들이 귀하다. 시대가 바뀌니 살아가는 모양새도 많이 바뀌었다. 어릴 때 마을에는 젊은 일꾼들이 넘쳐났었다. 어떻게라도 잘 보여 하루 일을 마치고 일당을 챙기거나 인심 좋은 집 머슴살이를 하고 싶어 경쟁할 정도였다. 당일 새벽에 나가도 어렵사리 수십 명씩 모아왔다. 하지만, 요즘은 젊은이들이 힘든 일을 꺼려 모두 객지로 떠나고 그 당시 일꾼들은 늙고 병들거나 먼 여행을 떠나버렸다.
4. 친정 동네에서는 허드렛일을 부탁할 수 있는 일꾼은 온 동네에 통틀어 딱 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반벙어리로 언어 전달도 청취도 거의 되지 않는다. 같이 생활하는 사람만이 손짓과 발짓으로 의사 전달이 겨우 이루어지는 장애자다. 서로 불편하니 아무도 이 사람을 돌아보지도 않고 일도 시키지 않아 할 일 없이 마을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반거충이였다. 지금은 친정 마을에 유일한 젊은 일꾼이다. 귀한 몸이 되어 몸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가며 수입이 쏠쏠하다. 도시의 일반 직장인 월급보다 월 수익이 많다고 한다.
5. 더구나 유일한 일꾼이다 보니 자기가 일한 집이 조금만 맘에 안 들면 다시는 그 집안일은 말도 못 꺼내게 하는 배짱 장사다. 일을 시키려면 좋아하는 음식을 챙겨 바치며 정승 대접을 하며 비위를 맞춰야 귀한 몸이란다. 언니가 중참으로 커피를 좋아한다고 커피를 쟁반에 바쳐 대령하고 과일도 색깔 맞춰 극진히 대접한다.
6. 철거업체를 도와주는 일꾼이 필요해서 어렵게 모셔서 온 귀한 몸의 일꾼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일꾼은 아무 말 없이 혼자서 친정 집 안 구석구석을 누비며 고물 정리를 한다. 비록 부족한 점이 있고 일 시키기에는 불편한 사람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못하는 허드렛일을 하는 동네 유일한 일꾼이다 보니 저렇게 대접받는 귀한 몸이다.
7. 괄시받던 장애자가 극진히 대접받는 상황이 물론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마을의 앞일 이 걱정이다. 그 많던 장정들이 사라지고, 마을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모두 노인들이라 앞으로 동네의 일들은 어떻게 하나. 바쁘게 뛰어다니던 사람들의 그림자도, 막걸리를 마시고 흥겹게 떠들던 소리도 모두 옛이야기로 자리바꿈을 하였다. 마을 전체에 침묵의 무리가 여기저기 좌정하고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이 문제다.
8. 고래 등 같던 고가들이 조금씩 사그라지듯 내려앉는다. 마을의 기세도 그 모양새로 점점 움츠러들고 있다. 왜 이렇게 가슴에 찬바람이 일까. 마을이 황혼기에 접어들고 내 삶의 여행지도도 노을에 물들고 있으리라. 자꾸 귀퉁이 자리가 눈에 들어오고 그 곳이 편하다. 디지털 세대들의 신지식에 움츠려드는 아날로그 세대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걸까. 노력해 봐도 힘들다.
9.나에게는 타고난 소질은 아니어도 젊은 세대들에게는 없는 갈고 닦은 칠십 년 연륜이 있지 않냐. 찾아보면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있을 것이다. 자식들에게도 귀찮은 짐이 아닌 필요한 사람이고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꼰대 소리를 듣지 않고 그들을 위해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나 또한 귀한 몸이 되지 않을까. 찾아보자.
‘너희들이 아냐. 우리들 노땅들의 힘을!!’ (9.8)
잠의 체위 / 채정순
1잔칫날, 새벽부터 서둘러 미용실에 갔다. 미용실이 쉬는 날이라며 원장 홀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슥한 나이의 원장은 과연 명성대로 장인이라 할 만큼 손끝이 야물었다. 동생과 나의 올림머리를 고대기까지 써가며 섬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았다. 머리칼을 만져보니 철사 같이 단단하고 손거울에 비친 뒤통수도 바가지를 엎어 놓은 듯 봉긋했다.
2시간이 파장한 시골 장터처럼 텅 비어 그를 채워 넣기 위해 동생 집으로 갔다. 동생과 함께 거실에 앉았는데 내 눈이 자꾸 감겼다. 어제 종일 마늘을 캤고 오늘은 신 새벽에 일어났음이 환기되었다. 당장 뒤통수를 쓸 수 없으니 눕거나 기댈 수가 없어 곤란했다. 인체를 다 눕혀도 머리는 쳐들려서 잠시 버티기가 힘들어 오던 잠도 달아 날 판이었다.
3궁하면 통하는가 보았다. 바닥에 평형자세로 엎디었다. 이마와 입술과 광대뼈가 아프다고 징징거렸다. 무엇보다 코가 숨을 못 쉬겠다 야단이라 금방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몸을 길게 뻗었다. 이제는 옆 한쪽 머리카락이 구겨져 운다고 머리 덮게 근육이 아우성을 쳤다. 하릴없어 앉은뱅이 탁자에 대고 꾸벅꾸벅 절만하다 성 행위에 여러 체위가 있듯이 잠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이 인생의 삼분의 일을 차지한다니 방법이 많을 수밖에, 그러고 보니 저문 이 나이까지 나는 얼마나 많은 잠을 잤을까 싶다.
4아기 때는 반듯하게 눕혀준 대로 두 팔을 머리위로 벌린 나비잠이 주를 이루었을 터였다. 어머니의 자궁 속처럼 평화로웠으리라 유아기 때는 계집에가 얌전하지 않고 누운 자리에서 빙빙 돌며 돌꼇잠을 잔다고 어머니께 지청구를 들었다. 얼핏 아랫목에 놓인 밥그릇을 엎은 기억이 난다. 의식이 들고 이성이 자리를 잡고부터는 때와 장소에 따라 잠을 선택할 줄 알았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내용을 번복하거나 설명을 지루하게 하면 책을 세워서 도적잠을 잤다. 수잠이라 스릴이 있었다. 원두막지기 일 때는 부모님이 두 눈을 부릅뜨고 서리꾼을 지켜라 했지만, 온몸을 말아서 살짝 도둑잠을 잤다. 얼마나 맛있는지 꿀잠이었다.
5학교에서 상을 받아와서 칭찬소리가 집안을 맴돌면 부끄러워 일어나지 못하고 꾀잠을 잤다. 그러다 정말로 그루잠이 들어 꿈속을 헤맸다. 잘 못하여 야단을 맞을 조짐이 보이면 그와 비슷한 헛잠도 잤다. 결국엔 폭풍을 맞긴 했지만 말이다. 시험 기간엔 벼락공부를 하느라 책상 앞에 꼿꼿이 앉아서 깜빡깜빡 말뚝잠을 잤다. 마음을 놓지 못해 조마조마 했으니 사로잠이기도 하다. 꽃다운 나이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병마에 잡혀 비온 뒤에 나온 지렁이 꼴로 퍼져 있었다. 이웃들이 온 가정을 먹구름에 휩싸이게 하는 이승잠이라고 수군거렸다. 부모님은 불안해 바로 눕지 못하고 새우잠을 잤다.
6입대하는 친구를 위로 한다고 밤을 낮 삼아 놀다가 통행검지 시간이 되어서 여관방을 구해서 잤다. 비좁아 포개질 듯 모로 누워서 칼잠을 잤는데 화장실 볼일로 일어나버리면 자리가 없을 것 같아 참았다. 망년이나 명절같은 이름 있는 날은 친구들과 과수원 방에서 게임을 하거나 노래와 춤을 추면서 놀다가 새벽녘에는 개잠이 들었다. 한창때라 속잠에 들기도 했다. 이웃들과 설악산 봉정암에 올랐다가 방을 차지하지 못해 탑이 바라보이는 처마 밑에서 한뎃잠을 잤다. 이웃들은 불자라 철야기도라도 하지만 크리스천인 나는 잠만이 목적이라 오들오들 떨면서 선잠을 깨고 나니 삭신이 쑤시고 아팠다. 집에 올 때는 여독과 잠 부족으로 고단해서 차에서 등걸잠을 잤다. 겉옷을 다 입은 체여서 불편해 자다 깨다 노루잠이었다.
7나는 너무 피곤하면 귀잠을 들지 못하고 뒹굴뒹굴 구르며 온방을 헤매면서 잔다. 어떤 땐 나의 엉덩이 뒷간이 남편의 입 식당 앞에 와 있다고 밀쳐지기도 한다. 옛날처럼 자리끼가 있었으면 백발백중 쏟았을 터였다. 어릴 때부터 여태껏 밤잠은 한잠을 잤지만 낮잠만은 토끼잠을 잤다. 꿈도 꿔가며 실컷 잤다 싶어도 정확히 십오 분 되면 눈이 절로 떠졌다. 산후조리 할 때도 십오 분을 자고 깼다가 또다시 십오 분을 번복해 자면서 하릴없이 낮 시간을 때웠다. 만약 그 시간을 넘게 자 버린 겨우는 몸에 이상이 있다는 뜻이다. 몸살이 났거나 열병에 걸렸을 때는 세상모르게 잔다. 이럴 때마다 내 생체 메커니즘이 궁금하다
8나는 내 잠의 체위를 보지 못한다. 동물은 누구나 유체이탈이 되지 않으면 불가는 할 터이다. 사람은 서있는 자세 그대로 자는 게 제일 좋다고 하지만 역류성 식도염이나 심장이 두근거릴 때도 옆으로 자야 한다. 단골인 식도염으로 나는 일부러 시위잠을 자기도 한다. 막 잠들 쯤에는 이리 저리 움직이다 이불깃을 얼마나 돌리는지 자다보면 발치에 가 있다. 그래서 내 잠 체위가 짐작이 되기는 하다.
9잠은 산자를 튼실하게 지키는 생물학적인 장치다. 최소한의 생명을 유지하는 활동을 제외하고는 모두 휴식에 들어가 무의식으로도 보내는 경우다. 일회용 삶에서 의식 없는 상태가 너무 많은 시간을 차지해 낭비하는 느낌이 든다. 잠시간을 효율 있게 쓰는 것이 인생의 관건인 것 같다. 잠과 잘 타협해 분투하면 분명 경쟁에서 이기고 출세하리라고 믿지만 나는 건강이 좋지 않아 잠을 적게 자면 안 된다. 무슨 일을 하느라 잠에 무리수를 두는 사람들이 한없이 부럽다. 자유롭고 상큼한 삶을 유지 할 수 있는 잠시간의 마일리지는 얼마일까
10다양한 체위의 잠이 우리네 모습으로 다가온다. 많은 직업 중 개인의 적성과 형편에 맞춰 선택해 살아가듯이 휴식인 잠 또한 그렇다. 건강과 마음 상태 또한 환경에 따라 무의식이 발로해 체위를 만드니까.
가로수를 보면서 / 엄옥례
1.울적한 마음을 벗어보려고 길을 나선다. 고개를 들어보니 길 좌우로 도열한 가로수가 눈에 들어온다. 겨우내 앙상했던 나뭇가지가 연둣빛으로 번진다. 봄 햇살에 부지런히 새순을 틔우는 중이다.
2.나도 봄이 되면 한 해 동안 꾸려 갈 일을 구하려고 나름대로 여기저기 도전해 본다. 때로는 각종 기관으로부터 몸담고 있는 모임으로 강사 요청이 들어오면 파견되기도 한다. 이번에도 파견 요청이 있는데, 회장이 교사자격증 소지자를 추천한다고 한다. 나는 전문 자격증을 가지고 십 년 이상 활동하고 있지만 교사자격증은 없다. 우리가 하는 일에, 굳이 교사자격증이 왜 필요한지 묻고 싶지만, 가슴 한켠에 허허로운 바람이 분다.
3.나는 문학 치료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사십 대 중반, 삶의 파고를 넘다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상처 난 마음을 치유하려고 문학 치료 과정에 발을 들여놓았었다. 글을 읽고 쓰면서 상처가 아물고 자격증을 취득하여 직업이 되었다. 노인병원, 다문화센터, 군부대, 소년원 등 주로 비탈에 서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불편한 마음을 다독여주고 희망과 꿈 찾는 일을 도와주고 있다.
4.소명을 부여받은 것처럼 마음을 다하고 보람을 느끼며 꾸준히 활동 중이었다. 뜬금없이 회장이 교사자격증 있는 강사를 추천한다는 말에 안 그런척 하지만 사실은 주눅이 든다. 회장의 말이 방아쇠가 되어 학력으로 상처받은 일들이 마음속 골짜기에서 잠자다가 하나, 둘 깨어난다.
5.싱싱하게 물오른 나이 스물.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갔다. 사무실 여직원이 쉰여 명 되는 회사였는데, 의무실 간호사 말고는 전부 고졸 출신이었다. 사회초년생인 그녀들은 나이가 나이니만큼 연애 사업에, 또는 자신을 예쁘게 꾸미는 일에만 관심을 쏟았다.
6.하지만 나는 그런 일들이 시답잖았다. 벽촌에서 작은 땅덩이를 일구는 집안의 딸이었고, 공부 잘하는 동생을 여럿 두었기에 꿈을 접은 채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은 여고에 가고 교대에 진학했다. 그러니 직장을 다녀도 공부에 대한 갈증이 사라지지 않아 직장동료들과 어울리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 결국, 그 이듬해에 방송통신대학교 83학번 학생이 되었다.
7.그때 방송통신대학교는 여름과 겨울에 일주일씩 ‘출석 수업’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대구 학생들은 K 대학에서 출석 수업을 했다. 1학년 여름, 하루 수업을 마치고 벅찬 가슴으로 동기생들과 캠퍼스의 싱그러움과 낭만스런 기분을 느끼며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운동복에 공을 든 한 무리의 남학생들이 뒤따라왔다. 그중에 한 명이 달려와서 길을 막아서더니 우리 일행과 날 잡아서 미팅을 하자는 것이었다. 우리도 넷, 남학생들도 넷이니 딱 맞긴 했다.
8.그러나 사달이 나고 말았다. 자기들은 이 학교 체육과 학생들이라면서 우리에게 무슨 과냐고 묻는 것이었다. 난처한 질문에 당황스러워 머뭇거리는데, 옆에 있던 동기가 내 등을 미는 통에 얼떨결에 대답하고 말았다.
“미대 인대요”
어릴 적부터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끄적거렸고 미술대회도 자주 나갔었기에 미대에 가려던 꿈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무의식적으로 미대라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그런데 내 말이 떨어지자 남학생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기네끼리 쳐다보면서 “우리 학교에 미대 있나?” 하는 것이었다.
9.우리 일행은 거짓말을 했기에 지레 겁을 먹고 꽁지 빠지듯 도망쳐서 그 웃픈 상황을 모면했다. 사실, 그 시절 K 대학교에는 미대가 없었다. 나와 동기생들은 출석 수업을 하는 동안 그 남학생들과 마주칠까 봐 가슴을 졸이며 다녔다.
10.지금은 대학교마다 방송 강좌가 활발하지만, 그때 방송대학은 어떤 이유든 일반 대학에 갈 형편이 못 되는 사람들이 다녔다. 직장을 다니면서 공부도 한다고 스스로 위무해보지만, 학교만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의기소침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11.결혼하여 가정생활을 할 때는 학력에 대한 콤플렉스를 잊고 지냈다. 삶의 부침을 겪은 후, 사회생활을 하고부터 다시 학력에 대한 열등감을 겪곤 한다. 특히 이력서를 쓸 때 그렇다. 일반대학 출신이 아니라는 것에 비애가 몰려온다. 스펙의 결핍이 있기에 첫사랑을 할 때 마음으로 일을 대하고 동료들에게 뒤질세라 수업 연구는 물론 토론 준비도 2배속으로 한다.
12.내가 그만큼 노력해도 3배속으로 앞장서는 동료를 보면 열등감과 질투심이 뒤섞여 포말을 일으켰다. 그럴 때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며 공부를 더 해볼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엄마는 도전정신이 남달라서 웬만한 곳은 뚫고 들어가잖아요.” “당신은 어디든 발만 들여놓으면 인정받잖아.” 마음이 콩죽처럼 끓을 때마다 가족의 다독임으로 이내 평정을 찾곤 했다. 하지만 이번 일로는 공부를 더 하느냐 마느냐는 갈등이 오래 지속되었다.
13.가로수 둥치를 살펴보니 여기저기 베어진 자리가 불룩하다. 상처를 안으로 말아 껍질로 감쌌다. 매연 속에서도, 가지가 잘려도 인정받은 특장점으로 제 소임을 다하기 위해 부지런히 잎을 키우고 있다.
14.그렇다. 갖추지 못한 것 때문에 의기소침할 게 아니라 부여받은 자격으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나를 응원하는 듯, 가로수 잔가지가 실바람에 사운거린다.
콩깍지와 콩 / 옥 경 자
(1) 친정어머니의 잦은 입원으로 형제들 간에 마찰이 생겼다. 처음 입원했을 적에는 혼자 할 만해서 그냥저냥 넘어갔다. 여러 번 이런 일이 생기니 나 혼자 감당하기에는 힘에 벅찼다.
(2) 고민 끝에 동생들을 불렀다. 직장을 쉬고 교대로 간병을 할 수도 없고 누나가 그냥 하면 안 되겠냐는 동생의 말에 그동안 쌓인 감정들이 한꺼번에 봇물 터지듯 터져 버렸다. 혼자 하기에는 힘이 드니 이제는 교대로 하던지 간병사를 쓰던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의논 끝에 간병사를 쓰기로 했다.
(3) 간병사 비용이 만만찮았다. 남동생이 올케의 눈치가 보느라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나 살기도 빠듯한데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돈 문제가 생기니 못 살겠다는 올케의 불만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렇지만 부모님인데 어쩌겠는가. 이런 말을 하는 내가 올케에겐 밉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어쨌든 악역을 맡았다. 원망은 내게로 쏠렸다. 그냥 하던 대로 내가 간병을 했으면 하는 눈치다.
(4) 나도 나이가 이제 만만찮다. 내 집안일에다 홀로 계신 친정아버지도 챙겨야 하고 힘이 들어 숨이 턱까지 올라 올 때도 있었다.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맏이라는 책임감으로 살았던 것도 사실이다. 환경적인 요인도 있었지만 전업주부라는 시간적인 여유도 있었다.
(5)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한두 번으로 끝나리라는 병원비에 이제는 간병비까지 부담이 가니 나 역시도 무리가 아닐 수 없었다. 동생에게 전화를 걸면 이제는 아예 올케가 전화를 받았다. 대놓고 돈 얘기면 저한테 하라고 하니 형제지간에 미운털이 박힌 시누이가 돼 버렸다.
(6) 이렇게 나오니 난들 고운 정이 날까. 올케가 이해는 되지만
“우리도 곧 노인이 될 것이다.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으면 좋겠지만 장담할 수 없는 미래다.”
하며 쓴소리를 해야만 했다. 그 말이 고깝게 들렸는지 올케는 아예 친정집엔 오지 않는다.
(7) 자식 간의 마찰을 눈치채신 아버지께서 이제부터 간병비와 병원비는 당신이 내시겠다고 했다. 괜한 걱정으로 형제간에 우애가 상할 뻔했다고 동생과 올케에게서 미안하다는 전화가 왔다. 그래도 시아버지 반찬은 정성스럽게 몇 가지씩 들려 보냈으니 고마웠다고 말하고 화해를 청했다.
(8) 삼국지에서 조조의 아들 중 조비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유일한 경쟁자였던 동생 조식을 처단하기로 하고 그에게 일곱 걸음을 걸을 동안에 시를 한 편 지어내면 살려 주겠다고 했다. 여기에서 탄생한 시(詩)가 칠보 시(詩)이다.
“콩깍지는 솥 밑에서 불타고 콩은 솥 안에서 우는구나. 같은 뿌리에서 나서 서로 볶아대기를 이리도 서두르는가.” 하는 내용이다. 조식처럼 쓸데없는 노파심에 동생들을 들볶은 건 아닌지 나 자신을 뒤돌아보는 계기가 됐었다.
빠지다 3 / 백금태
1) 그가 그윽한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잠잠하던 심장이 꿈틀거린다. 헤 벌어진 입술 틈새로 웃음이 비실비실 삐져나온다. 그는 달력 속 가수 사진이다.
2) 우리 집 거실 벽에는 큼지막한 달력이 걸려있다. 장롱문의 반쪽은 될 만한 크기다. 거기에는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모습이 다달이 바뀌어 나타난다. 이마를 반쯤 덮은 머리 맵시에 도톰한 입술이 웃을 듯 말 듯 미세하게 떨린다. 청재킷을 걸친 풋풋함에 나마저 30대 시절로 돌아간 듯 에너지가 솟아난다. 그 달력이 벽에 걸리고부터는 하루가 여삼추다. 하루하루가 후딱 지나가기만 기다린다. 그래야 달력이 한 장 넘어가고. 거기엔 가수의 새로운 모습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3) 어느 날 택배 상자가 배달 되었다. 길쭉한 상자의 겉면에 붙은 발신자를 확인하는 순간 두 눈을 의심했다. ‘000 달력’ 그 가수의 이름이 커다랗게 클로즈업되어 내 눈에 확 들어왔다. 나머지 글을 확인할 새도 없이 면도칼로 상자를 죽 그어 내용물을 끄집어냈다. 돌돌 말린 달력을 펴는 손길이 덜덜 떨렸다. 입시 합격증을 받던 그때의 두근거림처럼 심장이 콩닥거렸다.
4) 몇 달 전, 모 방송국에서 그 가수의 단독콘서트 방청권 신청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얼굴을 직접 대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에 몇 며칠 밤을 지새우며 사연을 적어 보냈다. 가슴 졸이며 당첨을 기다렸지만 낙방이었다. 오륙 만 명 신청에 고작 오백 명도 안 되게 뽑았다니 언감생심 어찌 그런 행운이 나에게 온단 말인가. 허탈감에 빠져 있을 때 달력이 배달된 것이다. 한 장, 그리고 또 한 장 넘길 때마다 표정을 바꾸어 다가오는 그를 가슴으로 폭 안았다. 설레다 못해 황홀함에 휩싸여 정신마저 혼미해졌다.
5) 누가 달력을 보냈을까. ‘방송국이나 가수 소속사 측에서 보냈나. 사연을 보냈는데 뽑아주지 못했으니 미안해서 보냈을 거야. 아니! 몇만 명이란 많은 사람에게 다 보낼 수 없을 텐데’ 그때 서야 의심이 들어 상자의 겉면을 다시 살폈다. ‘상자를 개봉할 때 동영상을 찍어놓지 않으면 반품/교환이 안 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어라! 이건 돈을 벌기 위한 사기꾼의 짓이 분명해 보였다. 달력을 팔아먹기 위한 술수로밖에 볼 수 없었다. 동영상이라니, 그냥 죽 뜯어서 꺼냈는데. 본래의 모습대로 만들 수도 없었다.
6) ‘당했구나!’ 등골이 써늘했다. 조금 전의 설렘과 황홀함이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달력을 돌돌 말아 찢어진 비닐봉지에 싸서 다시 택배 상자에 넣었다. 여차하면 반품하기 위해서였다. 비록 비닐이 찢어지고, 택배 상자가 훼손되었지만 내가 주문한 것이 아니니 떼를 쓰면 반품할 수도 있으리라.
7) 거실 구석에 밀쳐놓은 택배 상자로 자꾸만 눈길이 갔다. ‘비좁은 곳에서 얼마나 답답할까.’ 애잔했다. 다시 택배 상자를 뜯었다. 달력을 꼭 껴안았다. 그를 껴안은 듯 심장이 요동쳤다. 사기꾼이면 어떤가! 이런 행복을 안겨 주다니! 소중한 것을 보내 준 사기꾼이 도리어 고마웠다.
8) 사기꾼의 연락을 기다렸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잠잠했다. 답답한 마음에 딸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제가 인터넷으로 구매해서 보냈는데요. 콘서트에도 못 가셔서 얼마나 상심이 크실까 싶어서요.”
“보냈다고 말을 해야지. 사기꾼 짓인 줄 알았잖아.”
“우리 집에서 그 가수에 관한 걸 보낼 사람은 저뿐이잖아요.”
그렇다. 우리 집에서 내가 그 가수에 빠져 있는데 호의적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미 도를 넘어 못 말리는 상태라 그냥 무관심하게 내버려 두고 있을 뿐이다. 그 가수의 콘서트는 코로나로 줄줄이 취소되었지, 방청권 신청에서도 떨어져 어깨가 축 처진 엄마를 보기가 안쓰러웠는지 딸이 큰 선심을 쓴 게 분명했다.
9) 달력을 앞으로 뒤로 말아가며 편편하게 폈다. 그리고 거실벽에 걸린 가족사진 액자를 떼어내고 그 자리에 달력을 걸었다. 집에 들렀던 언니가 벽에 턱 버티고 있는 달력을 보고는 며느리가 욕한다며 떼란다. “무슨 소리냐. 내 집에서 내 맘대로 하는데 누가 감히” 한마디로 거절했다. 언니도 갈지 못할 동생의 팬심에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가버렸다.
10) 낮이나 밤이나 그를 올려다본다. 그가 나를 보고 웃는다. 나도 그를 보고 웃는다. 그는 다달이 표정을 바꾸면서도 언제나 한마음으로 웃어준다. 그가 뿜어내는 눈빛에 눈이 부신다.
너를 보낸다 2
1. 너를 입고 수영을 했어. 물속에서 너를 봤지. 파랑과 빨강의 작은 조각들이 물속에서 묘한 빛깔을 뿜어내고 있었어. 마치 보석이 자글자글 빛을 내는 것 같았어. 여전히 예쁘더구나.
2, 빛깔은 처음 입었던 때의 그 느낌은 아니었지. 그래, 물속에 들어간 횟수만큼 퇴색되고 낡아 있었던 거야. 혹시 낡아서 찢어지지 않을까 살짝 걱정도 됐단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 하지만 이제는 보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어.
3, 너의 이름은 나노 수영복이지. 나노, 그것은 십억 분의 일을 나타내는 단위야. 그 만큼 작은 조각이 보석처럼 빛을 낸다는 느낌으로 만들었는지 몰라. 네가 예뻐서 같은 것을 색깔별로 다 사버렸지. 빨강, 파랑, 주홍, 초록 그리고 파랑과 빨강이 섞인 것, 모두 다섯 가지 색깔이었지. 나는 그날의 기분에 따라 색깔을 선택해 입었어.
4, 너희는 곁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지 않았어. 예쁜 것들은 왜 그리 일찍 늘어나고 색깔이 빨리 퇴색되는 것일까. 늘어나고 빛깔이 희미해진 것을 하나 둘 떠나보내야 했어. 그럴 때는 내 심장도 찡 소리를 냈단다.
5, 다섯 개의 수영복 중 네가 마지막이야. 너를 특히 아꼈단다. 아끼면 똥 된다는 데, 그래도 오래 갖고 있고 싶어 자주 입지는 않았어. 가장 좋아하는 파랑색과 빨강이 섞인 것이었으니까. 너 만큼 예쁜 것은 드물었으니까.
6, 너를 입기 전에는 까만색의 수영복만 입었지. 모두들 무슨 교복처럼 비슷비슷한 것을 입을 때였어. 내가 나노를 입기 시작했을 때 아마 사람들이 수영복에 눈을 뜬 시기가 아닐까 싶어. 예쁜 수영복은 어깨끈도 얇고 가슴선도 많이 내려온단다. 등에도 두서너 개의 끈으로 앞을 잡아줄 뿐이야. 사람들이 하나, 둘 그런 것을 입기 시작했어. 물론 나이든 어르신들이 쯧쯔 혀를 차는 경우도 있었어. 어떤 사람은 “아예 훌러덩 벗고 하지 그래?” 하며 쓴 소리를 하기도 했단다.
7, 나도 야하다는 생각에 처음엔 많이 망설였단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언제 입어 볼까 싶어 과감하게 입었지. 너를 처음 입었던 날이 기억난단다. 수영장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보는 시선이 느껴졌어. 정확히 너를 봤겠지. 눈에 확 띄는 색깔이니까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당연했어. 사람들이 “수영복이 이뿌네”라고 하더군. 그 말이 듣기 좋았어. 그리고 수영하는 것이 더 신났지.
8, 옛말에 ‘친구를 잘 사귀어야 된다’는 말이 있지. 친구를 잘못 사귀었던 것일까. 아니면 잘 사귀었던 것일까. 함께 수영하는 친구와 동생들이 매일이다시피 새 수영복을 입고 왔어. 난리였지. 수영장이 마치 수영복 자랑을 위한 장소 같았어.
9, 수영복이 그나마 저렴한 운동복인 줄 알았어. 그것도 아닌 모양이더라. 나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 그것이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새끼를 치기 시작 했지. 하나가 둘이 되고 곧 셋이 되었어. 이것만, 요것만 하던 것이 이제는 스무 개가 넘는단다. 그 시간이 길지 않았어.
10, ‘더 늙기 전에, 나잇살이 찌기 전에’ 라는 말로 핑계를 대며 사 모았어. 어쩌면 중독 되어갔다는 말이 더 맞는 것 같아. 인터넷에 예쁜 것이 보이면 사고 싶어서 손가락이 근질 거렸지. 탁탁탁 손안의 전화기에 대고 숫자만 누르면 금방 결제까지 끝이 났어. 돈이 내 손을 거치지 않고 파는 사람에게 전달되었지. 돈을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야. 그래서 일까. 돈이 돈 같지 않았어. 그냥 숫자일 뿐이었어. 그래서 아마 쉽게 중독되어 갔는지 몰라.
11, 옷장에는 수영복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었지. 매일 운동을 해도 몇 달 동안 입지 않는 것도 있었단다. 늘어나는 수영복의 숫자, 그만 멈추고 싶었어. 허나 멈추어지지가 않았어. 중독이란 그런 것인가 봐. 아마 멈추고 싶다고 멈출 수 있다면 그것은 중독이 아닐 거야. 그것에서 벗어나려면 아주 강한 충격이 필요하단다.
12, 불행하게 우리에게 코로나가 터졌어. 전 세계에 불어 닥친 감염 병이었지. 전염성이 강하고 걸리면 지독히 아팠기 때문에 나라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숫자를 제한했지. 물론 수영장도 문을 닫았어. 한 달 혹은 두 달이면 끝날 줄 알았던 사태가 길어졌지. 사람들은 수영을 할 수 없으니 자연스럽게 수영복 사기에 주춤 할 수밖에 없었어.
13, 몇 달 후, 수영장이 다시 문을 열었고 사람들은 다시 수영복을 사 모으기 시작했어. 하지만 그때처럼 뜨겁지는 않았어. 아직 코로나에 대한 걱정 때문에 수영을 꺼리는 사람도 많았기 때문이야. 음, 또 예전처럼 예쁜 수영복이 드물기도 하고.
14, 강한 충격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해 볼만큼 해서 일까. 나도 어느 정도 중독의 불이 꺼져가고 있는 것 같아. 아마 사오 년을 수영복 사는 것에 빠져있었나 봐. 생각해보니 역시 친구를 잘 사귀었던 모양이야. 뭐든지 해 보고 싶을 때 미친 듯이 해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 인생이 뭐 별것 있겠니. 그런 재미도 있어야하지 않을까. 실컷 해 보고 나니 더 나이 들기 전에 잘 해봤다는 생각을 한단다. 무엇보다 그 시간이 행복했어.
15, 이제 수영복에 크게 욕심나지 않아. 뭔가를 갖고 싶고 해보고 싶은 것은 젊었다는 증거일지도 몰라. 한 해 또 한 해 나이가 쌓여가며 가지고 싶은 것도 해 보고 싶은 일도 점점 사라지고 있어. 이것만은 꼭 해보고 싶다는 것도 딱히 생각나지 않는단다. 감정이 메말라 가고 있는 것 같아. 혹시 마음이 먼저 늙어가는 것은 아닐까. 늙으면 귀찮아서 만사가 다 시들해진다는데, 즐거운 일도 별로 없다는데 지금이 딱 그래. 무언가에 흠뻑 빠져있었던 중독의 시간이 가끔 그립단다. 그때는 사는 게 재미있었어.
16, 너를 통해 즐거웠어. 입고 헤엄치는 재미가 좋았지. 한번만 더, 이번만 더 하며 입었던 것이 한 달이 되어가. 하지만 언제 갑자기 찢어질지 혹은 낡아서 엉덩이가 훤히 드러날지도 모른단다. 물속에서 나오며 결심했단다. 이번을 마지막으로 보내주자. 어쩌겠니. 너는 너무 낡아버렸어.
17, 너에게는 행복했던 나의 사십대 끝자락이 박제되어 있단다. 그래서 놓아버리는 것이 쉽지 않아. 쉽지 않다고 평생 끼고 살수도 없는 노릇이지. 이제 그만 너를 보낼게.
18, 그동안 행복했어. 그리고 고마웠어. 아쉽고 미련이 남지만 여기서 마지막 인사를 할게. 안녕······. 정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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