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전 5:1, 여러분은 함께 일하고 함께 영광에 참여할 자입니다
여러분, 우리나라 말에 “우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에도, “나의 엄마”나, “나의 교회”라고 말하지 않고, “우리 엄마”, “우리 교회”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군요! ‘빛나라 은수’라는 드라마에서 쌍둥이 아빠가 나오는데, 그 쌍둥이 이름이 ‘우리’와 ‘나라’입니다. 세쌍둥이 아빠 송일국의 자녀들도 ‘대한민국만세’입니다. ‘우리’라는 말이 얼마나 정감이 있는지 모릅니다.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는 ‘나와 너’라는 책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것에 불과한 것이 사랑하게 되는‘너’로 다가옵니다. 이런 관계를 ‘나와 너’의 관계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인격적인 만남이 있기 전에는 ‘나와 그것’의 관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관계는 그냥 사물이나 물건에 지나지 않는 그런 관계로 불과합니다”.
여러분과 예수님의 관계에서, 예수님은 단지 “그것”에 불과하지는 않습니까?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이루어짐으로 “나와 너”의 관계가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서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15:4~8,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성도의 신앙생활은 바로 이런 ‘나와 너’의 친밀한 관계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것을 “함께 장로 된 자”요, “함께 증인된 자”요, “함께 영광에 참여할 자”라고 표현했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그 날에 여러분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그 영광에 함께 참여하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나는 여러분과 함께 장로 된 자입니다.
이 말은 베드로 사도가 장로들에게 한 말입니다.
사실 베드로 사도는 장로라기보다는 사도입니다.
그러나 전략적으로 자신을 장로들과 함께 된 자라고 표현합니다. 여러분도 이런 전략이 필요합니다.
우리 학생들이 열심히 찬양할 때에,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너희 찬양팀과 함께 찬양하는 자”라고 말입니다. 여러분이 사실은 찬양에 소질이 없고, 찬양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하는 자입니다. 식당에서 봉사하거나, 교회 청소를 하거나, 부흥회에 참석하거나, 또는 연합활동으로 부활절 오후예배에 무을지역이 함께 연합예배들 드릴 때에,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일하는 자요, 함께 예배하는 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모든 것이 사실은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예수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포도원인 교회에서 포도를 수확하는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함께 일하는 자들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일이지만, 동시에 예수님을 믿는 우리 모두의 일입니다. 교회라는 포도원은 하나님 나라를 상징합니다. 포도원을 가꾸는 것은 목사님의 일이 아닙니다. 장로님의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믿는 예수님의 일입니다.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 종려주일에 십자가를 지시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고난당하신 주님의 일입니다. 주님은 부활하시고, 하나님 나라 우편 보좌에 앉아계시지만, 지금 여러분 안에서 여러분과 함께 고난을 당하고 계시면서도 부활하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로 여러분을 도와주십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고난에 함께 참여한 자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처럼 살고,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처럼 영광을 받을 사람들입니다.
4: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둘째, 함께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믿으면 첫째로 나타나는 증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이 만난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성령을 받으면, 땅 끝까지 가서 복음의 증인이 될 것이라”(행 1:4, 8)고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 되면, 성령이 충만히 역사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막 13:11,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여러분은 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역사하지 않는 이유는 성령을 거스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거역하면 용서받을 수가 없다고 까지 말씀하셨습니다.
눅 12:10,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성령 하나님이 예수님을 믿게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성령을 받습니다.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이제 증인된 삶을 살게 됩니다. 그것은 즐겁고 기쁜 일입니다. 하나님을 체험하는 일입니다. 증인된 삶을 살 때에, 성령이 여러분과 함께 일하십니다. 고난은 영광의 복입니다.
4: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5: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마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셋째, 나타날 영광에 함께 참여할 자입니다.
옛 선지자들도, 1: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했습니다. 예수님도 자신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는 것처럼, 그를 믿는 여러분도 고난을 받게 될 것이고, 그 후에 영광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눅 6: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롬 8:17~18,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심지어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분의 고난은 여러분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고난입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은 곧 여러분의 영광입니다. 장로들만이 아니라 여러분 모두가 받을 영광입니다.
4:1,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1: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