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 - 에코의 위대한 강연 (Sulle spalle dei giganti, Collana I fari, Milano, La nave di Teseo)
이 점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르네 데카르트 이후로 철학은 기존의 지식을 백지화하고 절대적인 신인 - 자크 마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 을 자처했다.
오늘날에는 사상가가(시인, 소설가, 화가는 말할 것도 없고) 진지한 관심을 받으려면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직속 선배 사상가들과는 다른 무엇인가를 드러내야 하고, 그게 없으면 그런 척이라도 해야 한다.
그런데 스콜라 철학자들은 완전히 반대로 했다.
그들은 아버지들이 했던 말을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반복한다고 인정하고 그러한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말하자면 가장 극적인 부친 살해를 자행한 셈이다.
아퀴나스는 당시 그리스도교 철학의 혁신가였지만 반박자들(그런 사람들이 있긴 했다)에게 자신은 이미 850년 전에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했던 말을 되풀이했을 뿐이라고 응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말은 거짓도, 위선도 아니다.
단지 중세 사상가는 선조들 덕분에 생각이 명쾌해졌을 때는 선조들의 견해도 여기저기 수정할 수 있다고 여겼을 뿐이다.
바로 여기서 내 강연의 제목으로 삼은 난쟁이와 거인에 대한 아포리즘이 탄생했다.
샤르트르의 베르나르두스는 우리가 거인의 어깨에 올라선 난쟁이 같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거인보다 멀리 볼 수 있으나 이는 우리가 키가 크거나 시력이 좋아서가 아니요, 그들의 어깨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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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문화에서는 17세기 과학이 세계를 뒤흔들고 지식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 출발점이었던 코페르니쿠스 가설은 플라톤주의와 피타고라스주의를 상기함으로써 수립되었다. 바로크 시대의 예수회는 고대의 글과 동아시아 문명을 재발견하면서 코페르니쿠스 모델에 대항하는 대안적 근대성을 수립하려 했다.
악명 높은 이단자 이자크 드 라 페 레르는 (『성경」의 연대표를 무너뜨리고) 아담이 등장하기 전에 중국의 바다에서 세상이 시작됐고 그렇게 보면 그리스도의 강생은 지구의 역사에서 부차적인 일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 주려 했다.
잠바티스타 비코는 인류의 역사 전체가 과거의 거인들에게서 출발해 마침내 순수 정신으로 사유하게 끔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계몽주의는 스스로 급진적이리만치 근대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부수 효과는 루이 16세를 제물로 삼은 명실상부한 부친살해로 나타났다.
『백과전서』를 읽기만 해도 알 수 있는바, 계몽주의자들은 자주 과거의 거인들을 기준으로 삼았다. 백과전서는 새로운 제조 산업을 떠받들고 기계들을 삽화로 많이 보여 주면서도 고대 학설을 되짚어 보는 수정주의자(역사를 다시 읽는 능동적인 난쟁이를 뜻한다)들의 글을 멸시하지 않았다.
19세기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도 여전히 앞서간 과거의 거인들을 내세웠다.
이마누엘 칸트는 데이비드 흄이 있었기에 독단의 잠에서 깰 수 있었다.
낭만주의자들은 중세의 성과 안개를 재발견함으로써 질풍노도 Sturm und Drang 운동을 마련했다. 헤겔은 역사를 버릴 것도 없고 아쉬운 것도 없는, 계속 개선되어 가는 운동으로 보았으므로 새것이 옛것보다 우수하다고 선언했다.
마르크스는 인류의 정신사 전체를 다시 읽으면서 석사 논문에서 다뤘던 고대 그리스의 원자론에서 출발해 자신의 유물론을 세웠다.
찰스 다윈은 유인원을 거인의 반열에 올려놓음으로써 「성경」 속의 아버지들을 죽였다.
인간은 나무에서 내려와 유인원의 어깨 위에서 여전히 야만과 경악에 가득 찬 자신을 발견했고 맞서는 엄지라는 경이로운 진화의 산물을 지배해야 했다.
19세기 후반에는 라파엘 전파에서 퇴폐주의까지 거의 전부가 과거로의 회귀로 요약될 수 있는 예술 혁신 운동이 일어났다.
먼 과거의 아버지들을 재발견함으로써 방직 기계들로 인해 타락해 버린 직속 선대 아버지들에게 반항할 수도 있었다.
조수에 카르두치는 「사탄 찬가」로 근대성의 기수가 되었지만 코무네(자치제) 시대 이탈리아의 신화에서 이상과 근거를 부단히 추구했다.
20세기 초의 역사적 아방가르드는 근대적 부친 살해의 극단을 나타낸다.
이들은 과거에 대한 모든 숭상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했다.
이것은 경주용 자동차가 사모트라케의 니케에게 거둔 승리다. 달빛 살해.
전쟁이 세상의 유일한 보건 위생 규칙으로서 숭배되었다.
입체파의 형태 해체, 추상에 하얀 화폭으로 나아감, 소리나 침묵, 혹은 실험적인 음계가 음악을 대체 했다.
환경을 지배하지 않고 흡수하는 커튼월, <미니멀 아트>를 표방하는 순수한 평행 육면체 비석 같은 건물, 그리고 문학에서는 대화의 흐름과 이야기의 시제 파괴, 콜라주, 백지가 등장했다.
하지만 새로운 거인들이 옛 거인들의 유산을 완전히 거부하려 했던 이 시점에서도 난쟁이들의 숭배가 다시 부상했다. 달빛 살해를 용서받고자 이탈리아 아카데미에 들어간 (달빛을 무척 좋게 보았던) 필리포 마리네티의 얘기가 아니다.
파블로 피카소는 고전주의와 르네상스의 모범들을 깊이 고찰하는 데서 출발해 인간의 얼굴을 일그러뜨리게 되었고 결국은 고대 미노타우로스의 재해석으로 돌아갔다.
마르셀 뒤샹은 모나리자에 수염을 그렸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필요했다. 르네 마그리트는 자기가 그린 것이 파이프 임을 부정하기 위해 아주 꼼꼼하게 사실적으로 파이프를 그려야만 했다.
끝으로, 소설의 역사적 본체에 대한 대대적 부친 살해는 제임스 조이스가 저질렀다.
이 부친 살해는 호메로스의 서사를 모델로 취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오디세우스 역시 거인의 어깨 혹은 돛대 위에 서서 항해를 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렀다.
물론 이 단어는 아무데나, 어쩌면 너무 많은 것에 갖다 붙일 수 있는 다용도 단어다.
그렇지만 소위 포스트모던하다는 다양한 활동에는 공통점이 있고 그 공통 요소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반시대적 고찰’에 대한, 아마도 무의식적인 반작용으로서 탄생했다.
반시대적고찰은 역사적 의식의 과잉을 비판한다.
그러한 의식이 아방가르드의 혁명적 활동으로도 제거될 수 없다면 영향의 불안을 받아들이고 오마주의 형식을 취하되, 실제로는 빈정댈 수 있을 만큼 거리를 두고 과거를 다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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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세대 항거의 마지막 일화인 68혁명을 보자.
어른 사회에 반항하는 새로운 젊은이들의 분명한 예다.
그 젊은이들은 이제 서른 살 넘은 사람은 믿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허버트 마르쿠제의 메시지에서 영감을 받은 미국의 플라워 파워는 별개로 하고, 이탈리아인 행렬이 외친 구호 ‘마르크스 만세! 레닌 만세! 마오쩌둥 만세!’는 좌파 의회의 아버지들에게 배신감을 느낀 저항 세력이 얼마나 거인들의 회복을 필요로 했는지 보여 준다.
또한 늙은 젊은이 체 게바라 아이콘도 전면에 내세웠다.
체 게바라는 젊어서 생을 마감했으나 그 죽음으로 인해 모든 옛 미덕의 메신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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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거의 항상 기술적으로만 이루어질 뿐이다.
그래서 오늘날 혁신은 나이든 사람들이 이끄는 국제적인 생산 중심지에서 나온다.
이 혁신이 유행을 만들어 내고 젊은이들은 그 유행을 따라간다.
휴대전화와 이메일이 젊은이들의 새로운 언어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나는 10년 전에 나온 글들을 보여 주고 싶다.
새로운 도구를 만든 장 본인들과 그들을 연구한 나이 지긋한 사회학자, 기호학자들은 그때 이미 그런 도구가 새로운 언어와 표현을 낳고 실제로 널리 퍼뜨릴 것이라고 예견하는 글을 썼다.
빌 게이츠가 일을 벌이기 시작한 젊은 시절(지금은 젊은이들에게 어떤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지 일러 주는 원숙한 사내가 되었다), 그는 세대 반란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와 아들을 동시에 사로잡을 수 있는 방안을 주도면밀하게 연구했다.
주변화된 청년들이 마약으로 도피하면서 가족에 대항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도피도 19세기의 인공 낙원에서 기원한, 아버지들이 제안했던 모델이다.
신세대는 국제적인 마약 조직원들에게서 정보를 얻는데, 그 조직원들도 어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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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아버지는 계속 아들을 잡아먹어야 하고, 아들은 계속 아버지를 죽여야 하는가?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모두 마찬가지인바, 끊임없이 혁신이 일어나고 모든 개인들이 그 혁신을 수용하는 것은 다른 난쟁이들이 바글바글 올라서기만 하는 위험 상황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실을 직시하자.
예전 같으면 세대 교체가 일어나고, 나는 지금쯤 현역에서 물러났어야 한다.
잘됐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새로운 시대에 들어섰다.
이데올로기는 쇠퇴하고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의 전통적 경계가 흐려지고 세대 갈등 또한 완전히 희미해졌다.
하지만 아들의 반란이 아버지가 제시한 반항 모델에 피상적으로 순응한 결과일 뿐이거나, 아버지가 아들에게 잡다한 주 변화의 여지를 제공함으로써 아들을 잡아먹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바람직할까?
부친 살해의 원칙 자체가 위태로울 때 <나쁜 시기가 닥친다 mala temp ora currunt>.
사실 어느 시대나 최악의 진단은 그 시대에 속한 사람들이 내리는 법이다.
나의 거인들은 좌표 없는 과도적 공간, 미래가 잘 보이지 않고 이성의 간계나 시대정신의 교묘한 음모가 아직 파악되지 않는 그런 공간이 있다고 가르쳐 주었다.
어쩌면 부친 살해의 건실한 이상은 이미 다양한 모양새로 떠오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미래 세대에는 복제인간 아들들이 아직은 예측할 수 없는 방법으로 그네들의 적법한 아버지이자 정자 기증자에게 반항을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인들이 이미 우리 난쟁이들의 어깨에 올라탈 태세로 어둠 속에서 배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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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 개념을 몇 번이나 다시 숙고했던 지난 50여 년의 기간을 고려하건대, 그때나 지금이나 아우구스티누스가 시간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고서 했던 대답을 나 역시 반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누가 물어보지 않을 때는 아는데, 막상 질문을 받고 설명하려고 애쓰는 순간부터는 알 수가 없습니다.>
1973년에 디노 포르마조의 예술에 대한 정의를 읽고서 미의 정의에 대한 나의 불확실성에 위안을 얻었다.
「ISEDI 철학 사전」이라는 작은 책에서 그는 예술 개념을 이렇게 정의했다.
<예술은 인간이 예술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이다.〉
그래서 나도 말해 보련다.
<아름다움은 인간이 아름다움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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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편으로, 13세기에 성 토마스는 단지 수학적 비율만 염두에 두고 <비례>를 미의 세 기준 중 하나로 꼽았던 것이 아니다.
그에게 비례는 단순히 질료가 적절하게 배치된 것이 아니라 질료가 형상에 완벽하게 적응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의 이상적 조건에 잘 맞는 인체는 비례가 맞는 셈이다.
또한 비례에는 윤리적 가치도 있다.
덕행은 이성의 법에 따라 말과 행동의 비례를 구현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도덕적 미(혹은 도덕적 추)도 언급해 야 한다.
비례는 사물의 의도된 목적에 맞는 것이다.
그래서 토마스는, 수정 망치는 겉보기에 아름답지만 망치 본연의 기능에 부적합한 소재로 만들어 졌으므로 추하다고 본다.
비례는 사물들 간의 합력이므로 서로 떠받쳐 주면서 건물을 견고하게 지하는 돌들의 상호 작용은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비례는 지성과 그 지성이 이해하는 사물 간의 관계다.
요컨대 비례는 우주의 통일성 자체를 설명하는 형이상학적 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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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미래의 방문객은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아방 가르드 미술 전시회를 관람하고 <이해할 수 없는> 조각품을 구매하거나 해프닝에 참여하
는 사람들도 옷은 유행에 맞게 입는다.
그들은 브랜드 의상이나 청바지를 입고 대중매체가 제안하는 미의 모델에 맞게 화장을 한다.
그렇게 상업적 소비 세계가 띄워 주는 미의 이상을 그대로 따르는데, 사실 그 세계야말로 아방가르드 예술이 50년 넘게 맞서 싸워 왔던 상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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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맹위를 떨치는 공포나 자연의 장엄한 사건들을 숭고의 경험으로 떠받들었던 바로 그 시대에 미적 초연함이 가장 강조되었음을 지적하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공포조차도 우리에게 너무 가까이 오지만 않으면 기분 좋은 것일 수 있다.
숭고미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보아서 기분 좋은 것을 아름답다고 한다.>
겪지 않고 보기만 할 때는 아름답다.
숭고의 경험을 가장 높이 산 화가는 아마도 카스파르 다피트 프리드리히일 것이다.
그는 숭고미를 표현할 때 거의 항상 자연을 바라보면서 숭고미를 만끽하는 인물을 화폭에 배치했다.
인물은 뒷모습만 보인다.
일종의 무대 연출에 따라서 숭고가 무대를 차지하고 인물은 무대 전면에 놓인다.
그는 장면 안에 있으면서도 - 관객의 입장에 있는 우리가 보기에는 - 장면 밖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한다.
우리는 그를 통해 보고, 그의 자리에서 보며, 그가 보는 것을 보기 때문에 장면과 거리를 두게 된다.
이로써 우리 자신도 그 인물처럼 대자연 앞에서는 미미한 존재임을 느끼는 동시에 우리를 위협하거나 파괴할 수 있는 자연의 힘으로 부터 벗어난다.
그렇다, 나는 유구한 세월 속에서도 아름다움은 늘 이런 식으로 체험되었다고 생각한다.
뒤돌아서서, 우리에게 속하지 않고 어떻게든 소유하려고 하지도 않는 것을 마주하면서. 바로 이 거리에 미의 경험과 다른 종류의 정념을 구분하는 희미한 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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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세기 동안 미와 마찬가지로 추도 상대적임을 말하는 텍스트가 여럿 나왔다.
13세기에 비트리의 제임스는 이렇게 썼다.
<눈이 하나뿐인 키클롭스가 눈이 두 개인 우리 인간을 보면 우리가 그들을 보고 놀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놀랄 것이다. 우리는 피부가 검은 에티오피아인을 보고 놀라지만, 그들 사이에서는 피부가 가장 검은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통한다.>
몇 세기 후에 볼테르도 맞장구를 쳤다.
<두꺼비에게 미가 무엇인 지 물어보라. 그러면 작은 머리통에서 튀어나온 왕방울 같은 두 눈, 넓적하고 평평한 낯짝, 노란 배, 갈색 등의 암컷 두꺼비가 아름답다고 할 것이다.
악마에게 물어보라. 그러면 불 한 쌍, 발톱 네 개, 꼬리 하나가 아름답다고 할 것이다.〉
찰스 다윈은 경멸, 멸시, 혐오를 표현하는 다양한 몸짓이 세계 어느 곳에서나 동일한 듯하다고 했다. <극도의 혐오는 토하기 일보 직전과 비슷한 입의 움직임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그는 이 말도 덧붙인다.
티에라델푸에고에서 <한 원주민은 내가 야영지에서 먹고 있던 통조림 냉육 조각을 손가락으로 건드려 보고는 그 물렁한 감축에 진저리를 치며 극심한 혐오를 드러냈다.
나는 나대로 벌거벗은 야만인이, 비록 그의 손이 더러워 보이지는 않았지만, 내 먹을거리를 만지자 심한 반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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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 시체
기억해 보라, 내 영혼아, 우리가 보았던 것을,
그토록 화창하고 아름답던 여름 아침,
오솔길 모퉁이 조약돌 깔린 자리에
드러누워 있던 추악한 시체를.
음탕한 계집처럼 두 다리를 쳐들고
독기를 뿜어내며 불타오르고
태평하고 파렴치하게,
썩은 냄새 풍기는 배때기를 벌리고 있었다.
태양이 이 썩은 시체 위로 내리쬐고 있었다.
알맞게 굽기라도 하려는 듯,
위대한 자연이 합쳐 놓은 것을
백 곱절로 되돌려 주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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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추의 역사가 가르쳐 주었듯이 추는 파악되고 이해되고 정당화되어야 한다.
그래서 퀜틴 마세이스의 초상화와 함께 17세기의 이 놀라운 글을 보아 주기 바란다.
로버트 버턴의 「멜랑콜리의 해부학』(1624)에서 발췌한 글이다.
사랑은 눈이 멀었다.
사랑에 빠진 남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여인을 찬양한다.
그 여자가 아무리 이상하게 생겼어도, 못생겼든, 주름투성이든 , 여드름이 많든, 창백하든, 불그스름하든, 누렁든, 그을렸든, 밀랍처럼 핏기가 없든, 얼굴이 넙데데하고 사기꾼처럼 부었든, 얼굴이 좁고 마르고 뾰족하든, 얼굴에 잡티가 많고 이목구비가 삐뚤어졌든, 대머리든, 소처럼 눈이 튀어나왔거나 눈빛이 흐리고 험상궂든, 찌그러진 고양이를 닮았거나 머리가 삐뚤어졌든, 눈이 움푹 들어가고 눈 주위가 시커멓거나 누렇든 , 입이 귀까지 찢어진 것처럼 크든, 페르시아인의 매부리코를 가졌든, 코가 여우 콧등을 닮았거나 시뻘렇거나 중국인처럼 크고 납작하든 (…)
혹은 코가 깎아지른 절벽 같거나, 토끼 이빨이거나, 썩은 이, 시커먼 이,삐뚤삐뚤한 이, 갈색 이든, 이마가 툭 튀어나왔거나, 마녀 수염이 달렸거나, 사방에 악취를 풍기고 다니거나, 여름이고 겨울이고 콧물을 줄줄흘리거나, 턱 밑에 갑상선종이 있거나, 주걱턱이거나, 귀가 축 늘어졌거나 너무 길거나 삐뚤어졌거나, 젖가슴이 축 처졌거나 (…....) 손가락이 갈라 지고 보라색을 띠거나, 손톱을 잘 깎지 않아 너무 길고 더럽거나, 손이나 손목이 궤양의 흔적으로 뒤덮였거나, 피부가 거무죽죽하거나, 매독에 걸렸거나, 몸을 아예 반으로 접고 걸을 만큼 등이 굽었거나, 다리가 휘어서 절름거리거나, 허리는 젖소 같고 통풍을 앓고 발목이 신발 밖으로 넘칠 만큼 굵거나, 발 냄새가 고약하거나, 기생층이 있거나, 자연에 위배되는 진짜 괴물, 완전히 혐오스러운 덜떨어진 난쟁이라 해도, 목소리가 걸걸하거나, 행동거지가 상스럽거나, 태도가 천박하거나, 몸매가 기름병 같거나 , 박색이거나, 게으름뱅이거나, 술통 같거나, 뚱뚱한 암퇘지 같거나, 허수 아비 같거나, 말라빠진 장작 같거나, 벌레 같거나 (……….) 햇살 아래 드러난 똥처럼 역겨워 그 누구도 마음이 끌리기는커녕 미움과 혐오밖에 떠오르지 않을지라도, 그 얼굴에 침을 뱉거나 그 웃옷에 코를 풀고 싶어질지라도, (…) 다른 사람에게 그 여자는 사랑의 감정을 완전히 죽이는 년,더러운 년, 갈보, 수다스럽고 어리석은 년, 더럽고 냄새나고 짐승만도 못한 못된 년, 외설적이고 천박하고 비굴하고 똥 같고 바보 같고 무식하고 고약한 년일 뿐이어도,사랑에 빠진 남자는 이 모든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찬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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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는 무한을 유한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악마의 교만이라 생각했기에 처음부터 그 실패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였고 실패의 시를 씀으로써 시의 실패를 면했다.
실패의 시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시가 아니라 말하기의 불가능성을 말하는 시다.
단테가 (위 디오니시우스나 쿠자누스처럼) 신앙인이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라.
절대를 믿으면서 절대는 생각할 수도 없고 정의할 수도 없다고 주장할까?
절대에 대한 사유 불가능성을 절대의 <감정>, 요컨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인>믿음으로 대체하기로 한다면 응당 그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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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교의라고 부를 수 있는 상대주의는 19세기 실증주의와 함께 등장했다
실증주의는 절대를 파악할 수 없는 것으로 규정하고 단지 과학적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인식의 한계는 변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검증 가능하고 모두에게 타당한 과학적 진리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실증주의자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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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무관하게 상대주의를 비판한 견해들은 주로 문화 상대주의의 남용을 지적했다.
마르첼로 페라는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과 공동 집필한 책 『뿌리 없음』(2004)에서 문화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은 잘 알지만 서양 문화의 어떤 가치들(민주주의, 정교 분리, 자유주의 등)은 우월성이 드러났다고 말한다.
물론 이런 가치들과 관련해서는 서양 문화가 더 진보해 있다고 말할 만한 근거가 있다.
하지만 페라가 이 우월성이 보편적으로 자명하다고 주장하면서 펼치는 논증에는 이의를 제기할 만하다.
<B문화의 구성원들이 A문화에 대한 선호를 자유로이 드러내고 그 반대의 경우는 없다면, 예를 들어 이슬람 문화권 사람들이 서양 문화권으로 대거 이주하는데 그 반대 방향의 이동은 거의 없다면, A문화가 B문화보다 낫다는 믿음에는 근거가 있다.>
19세기에 미국으로 대거 이주한 아일랜드인들의 경우를 생각할 때 이 논증은 설득력이 약하다. 아일랜드인들은 가톨릭을 믿는 모국보다 개신교 국가 미국이 좋아서가 아니라, 감자 대기근 사태로 굶어 죽을 지정이었기에 이주를 선택했다.
페라의 문화 상대주의에 대한 거부는 다른 문화에 대한 관용이 항복으로 변질되고 이민자들이 쇄도한 결과 서양에서 외부 문화가 압도적으로 우세할지도 모른다는 염려에서 나왔다.
페라의 논점은 절대의 옹호가 아니라 서양의 옹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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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시피 진리의 두 가지 개념이 대립적으로 드러난다.
하나는 발화체의 의미론적 속성으로서의 진리이고, 다른 하나는 신의 속성으로서의 진리다.
이 대립은 『성경』에서부터(적어도 우리가 이해하는 번역에 따르면) 진리가 두 가지 개념으로 제시되기 때문에 나온다.
어떨 때는 진리가 <말하는> 것과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의 일치를 뜻한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에서는 <내가 정말로 말한다>라는 의미였다).
또 어떨 때는 진리가 신의 내재적 속성을 가리킨다(<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이 때문에 초기 교부 중에도 라칭거 추기경이 상대주의라고 비난할 법한 입장을 취했던 이들은 꽤 많았다.
그 교부들은 진리라고 부를 만한 유일한 진리, 즉 구원의 메시지에 집중하는 것이 핵심이므로 세상에 관한 어떤 주장이 사물의 존재 방식과 일치하는지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지 구가 둥근지 납작한지를 가리는 논쟁에서 둥글다는 주장에 좀 더 끌리는 듯 했으나, 그런 앎은 영혼의 구원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어느 쪽 이든 마찬가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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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예술은 (그와 더불어 신화도)
<끊임없이 새로운 치환, 은유, 환유를 도입하여 개념들의 구획과 항목을 어지럽힌다.
예술은 깨어 있는 인간의 현 세상에 매혹적이고 영원히 새로운 형상을, 꿈의 세계만큼이나 불규 칙하고 엉뚱하며 부조리한 색색의 형상을 부여하려는 욕망을 부단히 드러 낸다.>
전제가 이러하다면 현실을 피하기 위해 꿈으로 도피할 가능성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니체는 예술이 삶을 지배한다면 더없이 즐겁긴 하겠지만 속임수일 것이라고 인정했다.
이는 니체가 후대인들에게 전한 진정한 가르침이었다.
예술은 어떤 근거 없이 그 자체로 존재하므로 어떤 정의도 받아들일 수 있고 자기가 할 말을 할 수 있다.
니체에게 이 존재의 소멸은 신의 죽음과 일치한다.
그래서 어떤 신자들은 이 죽음에서 가짜 도스토옙스키적 결론을 도출했다.
만약 신이 존재하지 않거나 이미 죽었다면 뭐든지 허용되리라는 결론을.
하지만 신앙이 없는 사람이야말로 천국과 지옥이 없기 때문에 지상에서 친절, 이해, 도덕법을 수립함으로써 우리를 구원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2006년에 에우제니오 레칼다노의 「신 없는 윤리학」이 나왔다.
이 책은 엄선된 자료를 풍부하게 제시하면서 신을 제쳐 놓았을 때만 도덕적 삶이 가능하다는 주
장을 편다.
내가 여기서 레칼다노와 그가 엄선한 저자들이 옳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신의 부재가 윤리적 문제를 제거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음을 지적하고 싶다.
밀라노에 비신자들을 위한 설교를 마련했던 마르티니 추기경은 그 점을 알고 있었다.
그 후 마르티니 추기경이 교황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은 콘 클라베의 신성한 영감을 의심하게 하지만, 이런 문제는 내 소관 밖이다.
나는 그저 이 사실을 환기하고 싶다.
엘리 위젤의 말마따나, 뭐든 허용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신이 죽었다고 믿은 게 아니라 자기가 신이라고 믿었다 (그게 크고 작은 독재자들의 공통된 결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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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모든 현대 사상은, 사실은 없고 해석만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대부분은 니체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반론을 제기한다.
(1) 사실은 없고 해석만 있다면 해석은 무엇에 대한 해석인가?
(2) 해석에 대한 해석이상호적으로 이루어지더라도 최초 해석을 불러일으킨 대상이나 사건은 있어 야 할 것이다.
(3) 나아가 존재가 정의될 수 없어도 존재를 은유적으로 말하는 우리가 누구인지는 밝혀야 할 것이다.
참인 것을 말하는 문제는 인식 대상에서 인식 주체로 이동할 것이다.
신은 죽었을 수도 있지만 니체는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면 니체의 현존은 어떤 근거로 입증할 것인가?
니체는 은유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함으로써? 니체도 은유일 뿐이라면 그 은유는 누구에게서 나왔는가? 비록 우리가 현실을 자주 은유로 말한다고 해도 은유를 만들어 내려면 단어들이 필요하다. 그 단어들은 문자적 의미가 있고 우리가 경험으로 아는 사물을 외연적으로 지시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사람 다리와 발의 형태 및 기능에 대해서 비은유적 개념을 갖고 있지 않다
면 탁자에서 상판을 떠받치는 부분을 <다리>라고 부르지 못할 것이다.
(4) 마지막으로, 증명의 상호 주관적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느라 우리가 망각한 것이 있다. <때때로> 우리 밖에 있는 것(니체가 끔찍한 힘이라고 부른 것)은 그것을 은유적으로라도 표현하려는 우리의 시도와 대립한다.
가령 염증 치료는 플로지스톤설을 적용했을 때 효과를 보지 못했지만 항생제로는 효과를 보았다. 다른 것들보다 더 나은 의학 이론은 분명히 있다.
따라서, 절대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혹은 존재하더라도 생각할 수 없거나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해석을 떠받치거나 반박하는 자연의 힘들은 존재한다.
트롱프로유(트릭아트) 기법으로 그려진 문을 진짜 문인 줄 알고 넘어가려고 한다 치자.
벽을 통과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이 해석을 폐기할 것이다.
<사물의 존재 혹은 진전에는 어떤 방식이 있어야 한다.>
그 증거로,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뿐 아니라 벽을 통과하려고 하면 코가 부러진다는 사실도 있다.
죽음 혹은 그 벽이 우리가 의심할 수 없는 유일한 형태의 절대다.
우리가 벽이 없다고 해석하려고 할 때 “아니”를 외치는 그 벽의 자명함이 절대의 수호자들에게는
너무 소박한 진리의 기준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키츠의 문장을 조금 바꾸어 말하자면 <그것이 지상에서 알 수 있는 전부요, 알아야 할 전부>다.
절대에 대해서 할 얘기는 좀 더 있겠지만 지금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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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에는 비례, 명료성, 광휘 같은 개념들이 미에 대한 생각을 지배했다.
영화와 롤플레잉 게임은 중세가 <암흑의> 시대였다고, 은유적으로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어두운 그림자와 밤의 색이 지배했다고 믿게 하는 경향이 있다.
천만의 말씀이다.
물론 중세인들은 어두운 장소, 숲, 성 안의 공간, 벽난로 불빛이 전부인 좁은 방에서 살았다.
하지만 그들은 일찍 잠자 리에 들었고 밤보다 낮에 익숙했다
(나중에 낭만주의자들은 밤을 더 좋아했다).
뿐만 아니라 중세는 늘 눈부시게 환한 색조로 자기 자신을 표현했다.
시인들에게는 늘 이 찬란한 색에 대한 감각이 있다.
풀은 초록색이고, 피는 붉고, 우유는 하얗고, 귀도 귀니첼리에게 아름다운 여인은 <점붉게 물들, 눈 처럼 새하얀 얼굴>이었다
(나중에 페트라르카는 <맑고, 신선하고, 감미로운 물>을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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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바에스는 『책 파괴의 세계사」(2004)에서 불이 책을 없애는 지배적 수단이 된 이유를 파헤친다. 그 답은 다음과 같다.
‘요컨대 불은 인류를 구원했다.
그렇기 때문에 거의 모든 종교는 불을 자기네가 섬기는 신의 몫으로 거룩히 여긴다.
생명을 대속하는 이 힘은, 새삼 지적할 가치가 있는바, 파괴적인 힘이기도 하다.
인간은 불을 파괴의 도구로 쓰면서 생사의 불을 다스리는 신을 흉내 낸다.
그리하여 정화와 태양 숭배는 대대적인 파괴의 신화와 동일시되었는데, 파괴는 언제나 막판에 다 불살라 버리는 에크피로시스로써 이루어진다.
불을 사용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불이 작품의 정신을 물질로 환원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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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극적으로 강연의 결론으로 나아가고 있고 인간이 지구에서 펼쳐 온 모험, 또는 우주에서 지구가 펼쳐 온 모험도 - 상당한 시간이 있긴 하 지만 - 막바지에 이르렀다.
우주를 구성하는 세 원소가 지금처럼 위기였던 적은 없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공기는 공해와 이산화탄소에 망가졌고, 물은 오염된 데다 점점 부족해지고 있다.
오직 불만이 지구를 사막화하고 계절을 교란시키고 만년설을 녹여 해수면을 상승시키며 위세를 떨친다. 우리는 미처 깨닫지 못한 채 최초의 진짜 에크피로시스로 다가가고 있다.
조지 W. 부시와 중국이 교토 의정서 비준을 거부하는 와중에, 우리는 불에 타죽을 운명으로 나아
간다. 우리가 전멸한 후에 세상이 재생할지 어떨지는 중요 하지 않다.
어차피 그 세상은 우리 것이 아닐 테니까.
부처님은 「불의 설교」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도자들아, 모든 것이 불타는구나. 그 모든 것이 무엇이냐?
눈이 불탄다. 물질의 모양이 불탄다. 시각의 분별이 불탄다. 시각과 접촉하는 것이 불 탄다. 시각적 접촉이 원인이자 조건인 감각이 불탄다.
그 감각이 쾌락이든, 고통이든, 혹은 그 어느 쪽도 아니든 상관없다.
무엇이 이 불을 일으키느냐?
이것은 욕망의 불, 혐오의 불, 무지의 불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는 탄생과 노화와 죽음의 불이다.
번민과 한탄과 고통과 비참과 절망의 불이다.
귀가 불탄다. 소리가 불탄다. 코가 불탄다. 냄새가 불탄다. 혀가 불탄다. 맛이 불탄다. 만질 수 있는 것이 불탄다. 촉각이 불탄다. 접촉이 불탄다. 정신이 불탄다. 관념이 불탄다.
의식이 불탄다. 의식과 닿는 것이 불탄다.
이 가르침을 듣고 이해한 고귀한 제자는 시각에 휘둘리지 않고, 물리적 사물에 휘둘리지 않고, 시각의 분별에 휘둘리지 않고, 시각의 접촉에 휘둘리지 않는다.
또한 시각적 접촉이 원인이자 조건인 감각에도 휘둘리지 않으니 그 감각이 쾌락이든, 고통이든, 그 어느 쪽도 아니든 마찬가지다.
그는 청각에 휘둘리지 않고, 소리에 휘둘리지 않고, 청각의 분별에 휘둘리지 않고, 청각적 접촉 에 휘둘리지 않는다.
또한 청각적 접촉이 원인이자 조건인 감각에도 휘둘리지 않으니 그 감각이 쾌락이든, 고통이든, 그 어느 쪽도 아니든 마찬가지다.
그는 후각에 휘둘리지 않고, 냄새에 휘둘리지 않고, 혀에 휘 둘리지 않고, 맛에 휘둘리지 않고, 미각의 분별에 휘둘리지 않는다.
또한 미각적 접촉이 원인이자 조건인 감각에도 휘둘리지 않으니 그 감각이 쾌락이든, 고통이든, 그 어느 쪽도 아니든 마찬가지다.
하지만 인류는 냄새와 맛, 소리에 대한 애착과 감촉이 주는 즐거움을 포기하지 못할 것이며 마찰을 통해서 불을 일으키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어쩌면 불은 신들의 권한으로 남겨 놓고 우리는 그저 가끔 번갯불의 형태로만 경험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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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에 알렉상드르 뒤마는 가리발디 장군에게 합류하려고 시칠리아로가던 중에 마르세유에 정박해 이프 성을 둘러보았다.
그의 작중인물 에드몽 당테스가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되기 전에 도형수 신분으로 14년을 지내면서 파리아 신부를 만났던 바로 그 성이다.
뒤마는 이 성을 둘러보다가, 먼 훗날 가이드는 관광객들에게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독방을 보여 주면서 백작과 파리아 신부가 실존 인물인 것처럼 말하겠지만 정작 그 성이 실존 인물 미라보가 수감되었던 곳이라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그리하여 뒤마는 「회고록에 이렇게 썼다.
<역사가의 인물을 죽이는 인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야말로 소설가의 특권이다.
역사가는 그저 유령을 소환할 뿐이지만 소설가는 뼈와 살로 이루어진 생생한 인물을 창조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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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물들은 유동적이지만 자기 운명에 빼도 박도 못하게 고정되어 있다.
물론 그들의 사연에 슬퍼하면서 그 사연이 다르게 펼쳐지기를 바랄 수는 있다.
오이디푸스가 테베로 갈 때 다른 길을 택해서 자기 아버지와 마주치지 않기를, 그가 아테네에 가서 아름다운 창녀 프리네와 정분이 나기를,
햄릿과 오필리어가 결혼해 덴마크의 왕과 왕비가 되어 행복하게 살기를,
히스클리프가 이런저런 굴욕을 참고 폭풍의 언덕에 눌러앉아 결국은 캐서린과 결혼하고 완벽한 <컨트리 젠틀맨>이 되기를,
안드레이 공작이 죽지 않기를,
라스콜니코프가 노파를 죽일 마음을 꾹 참고 어떻게든 학업을 마치고 존경 받는 공무원이 되기를,
그레고르 잠자가 흉측한 벌레가 된 순간 공주가 그 방에 들어와 그에게 키스를 하고 그는 프라하에서 가장 부유한 사내로 변신 하기를.....
지금은 컴퓨터가 이런 이야기를 우리 구미에 맞게 다시 쓰는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이야기를 다시 쓰고 싶은가?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인물의 운명을 바꿀 수 없음을 안다는 것이다.
보바리 부인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면 <보바리 부인은 자살했다>라는 주장이 반박 불가능한 진리의 모델이라는 위안 어린 확신을 더 이상 갖지 못할 것이다.
소설의 가능한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은 영원히,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우리의 욕망이 닿지 않게, 일은 다 일어났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이 좌절을 받아들이고 그로써 숙명에 전율해야 한다.
나는 이 <운명fatum>에 대한 교육이 문학의 주요 기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 교육이 허구 속의 인물들, 속세의 성인들과 신자들의 성인들이 지닌 패러다임적인 가치다.
안나 카레니나는 죽었고 이를 돌이킬 수는 없다는 사실만이 그녀를 우리네 삶의 애수 어린 동반자로- 감정을 건드리며, 절대적으로, 강박적으로 -만들어 준다.
비록 안나 카레니나는 물리적으로 실존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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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레츠를 특히 좋아하는 건 인정한다.
그래도 그의 역설 중 하나로 이 글을 끝맺고 싶다.
늘 잘 지켜지지는 않았지만 내 인생의 길잡이요, 여러분에 게도 그러한 길잡이기를 바라는 역설이다.
생각하기 전에 성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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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기호에 대한 나의 정의는 매우 제한적이다.
<거짓을 말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는 모든 것, 좀 더 정확하게는 <현실 세계의 진실이 아닌 것>을 말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문학이 우리의 세계와는 다른, 가능한 세계에서의 진실을 말하듯,
거짓말은 단지 현실 세계의 진실이 아닌 것을 말하는 여러 방식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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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주장은 분명히 진실이 아니었다.
그는 <착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주장했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는 바의 반대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프톨레마이오스는 진심으로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믿었다.
그럼 이제 프톨레마이오스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믿었던 아리스타르코스의 제자 일파에 들어가고 싶어 했다고 상상해 보자.
그래서 그는 「확실히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돕니다」라고 했다.
그는 우리에게 진리인 것을 말했지만 자기가 믿는 바의 반대를 말했으니 거짓말을 한 것이다.
따라서 거짓을 말하는 것은 진리성의 문제 - 진리aletheia 개념과 상관이 있다는 뜻이다 - 이고, 거짓말을 하는 것은 윤리 혹은 도덕의 문제다.
자기가 한 말이 진리인가 아닌가와는 별개로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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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비록 자주 오류를 범하지만, 어떤 것이 참이라고 판단하면서 웬만큼 안정적으로 세계에서 진화하는 데 성공했을 뿐 아니라 거짓말하거나 위조하는 사람을 거의 항상 잡아낼 수 있었다.
물론 지금 미술관에 걸린 작품 중에도 위작이 수두룩할지 모르고 카이사르가 알레시아 공방전에 대해서 거짓 기록을 남겼을지도 모른다.
네로가 진짜로 로마에 불을 지른 미치광이였는지 아니면 역사가들의 악의 어린 진술의 피해자였는지 우리로서는 확실히 알 길이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문헌학에 힘입어 콘스탄티누스가 기증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실히 안다.
정치인이 조세 감면을 약속해 놓고 실행 하지않으면 수많은 사실이 그가 거짓말을 했음을 입증한다. 한나 아렌트는이렇게 인정한다(『정치에서의 거짓말」, 1971).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는 정당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비밀 - 외교적으로 신중 혹은 아직도 <통치 기밀arcana imperi>이라고 부르는 것 - 속임수, 의도적 위조, 단순한 거짓말은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의 일부다.
진실성은 정치적 미덕에 해당한 적이 없고 거짓말은 정치적 사업에서 언제나 완벽하게 정당화되는 수단이었다.’
하지만 아렌트는 결국 거짓말은 옹호될 수 없다고 판단한다.
아렌트는 미국 정부가 베트남 전쟁에 대해 어떻게 다양한 거짓말을 했는지 조목조목 자료를 제시하는 저 유명한 「펜타곤 문서」를 대하고는 그런 면들은 사실의 비교에서 배겨 날 수 없고 이 거대하고 체계적인 거짓말이 사실성에 대한 침해요, 그런 형태의 거짓말이 일반화되면 정치를 병들게 한다고 보았다.
순수하고 확고한 사실들과 비교해 보면 사담 후세인이 핵무기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CIA의 주장은 거짓말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사실들의 부인 앞에서 충동적으로 거짓말을 한 사람은 모순들에 노출될 수밖에 없고, 바로 그렇기때문에 거짓말은 오래 못 간다고들 하는 것이다.
조너선 스위프트는 ‘정치적 거짓말의 기술'이라는 소책자 - 정말로 그가 쓴 글인지는 다소 불분명하므로 다른 누군가가 스위프트의 입장에서 썼을 지도 모르지만 -에서 (우리 시대가 아니라) 자기가 살았던 시대를 두고 이 점을 상기시킨다.
‘정치적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다른 거짓말쟁이들과 구별되는 점은 기억력이 짧고 사실 그래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저런 기회에 매 순간 자기 자신과 달라져야 하고 어떤 사람들을 상대하느냐에 따라 모 순되는 두 면을 똑같이 진실로 생각하는 듯 맹세한다.
그의 빼어난 재능은 끝없는 정치적 거짓말이라는 자산에 있을 뿐이다.
그는 무슨 말을 하는 순간마다 그 자산을 펑펑퍼다 쓰고 자기가 한 거짓말을 실로 관대하게 잊어버리므로 잠시 후면 바로 자가당착에 빠진다.
그는 어떤 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 결코 알려고 하지 않고 단지 상황과 청중에 맞춰서 그 명제를 긍정하든가 부정하든가 한다.
따라서 그가 반대로 발언한 바를 해석하면서 그의 생각을 정확히 알려고 했다가는, 마치 꿈을 해석할 때처럼, 그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든 반대로 받아들이든 착각을 하게 된다.
게다가 여러분은 그 인물이 매번 앞뒤가 안 맞는 두 측면을 따라가는 주제에 맹세를 하려고 할 때 느낄 법한 공포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나는 그가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들먹이더라도 거짓 맹세를 했다고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그가 하느님이든 그리스도든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주, 꽤 명백하게 사람들에게 암시했기 때문이다.’
자, 이번에는 스위프트가 진실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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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음악을 혐오하라. 하지만 경멸하지는 말라. 사람들이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로 잘 부르기까지 하니까. 심지어 좋은 음악보다 더 열정적으로 부르니까.
그런 음악이 사람들의 꿈과 눈물로 차츰 채워졌으니까. 그 점에서 존중할 만하다.
이 음악은 예술사에서 존재감이 없지만 사회의 감정사에서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사랑이 아니라 존중이라는 말을 쓴 이유는, 시시한 음악이 우리가 고상한 취미의 자선 혹은 그러한 취미의 회의주의라고 할 만한 형태가 아닌, 음악의 사회적 역할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예 가가보기에는 아무 가치가 없는 노래가 얼마나 낭만적이고 사랑에 빠진 수많은 젊은이들의 심금을 울리는 곡이 되었던가!
「금반지」와 「오, 오래도록 잠들어 있기를」 같은 노래의 악보가 매일 저녁 유명 인사들의 떨리는 손
을 거치고, 세상 가장 아름다운 눈에서 흐르는 눈물에 젖어, 가장 순수한 음악의 대가조차 그 애
수 어린 관능의 명예를 부러워한다.
순진하고 영감에 가득 찬 이 노래들은 아픔을 고귀하게 높이고 꿈을 자극하며 사람들의 열렬한 비밀을 받아들인 대가로 도취 어린 아름다움의 환상을 준다.
서민, 부르주아, 군인, 귀족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똑같은 우편배달부에게서 부고와 행복한 소식을 받는다.
보이지 않는 사랑의 전령과 모두의 소중한 고해 신부가 있으니, 그들이 바로 보잘것없는 음악가다.
고급 음악에 익숙해진 예리한 귀가 곧바로 듣기 싫어하는 그 후렴이 수많은 영혼이라는 보물을 받았고, 수많은 삶의 비밀을 지켜 준다.
그 후렴이 그들에게는 살아 있는 영감, 언제나 준비되어 있는 위로다.
늘 피아노 악보대 위에 펼쳐져 있는 꿈꾸는 우아함이자 이상이다.
어떤 아르페지오, 어떤 <반복>은 수많은 연인 혹은 몽상가의 영혼에 천상의 화음, 혹은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너무 많이 연주해서 너덜너덜해진 시시한 로망스 악보가 어떤 묘지 혹은 어떤 마을처럼 우리의 감정을 건드릴 것이다.
그 마을의 집들이 제법하지 않으면 어떻고, 그 묘지의 비석이나 장식이 악취미이면 또 어떤가.
기꺼이 공감하고 존중할 만한 상상력 앞에서 잠시 미학적 경멸을 내려놓으면 이 먼지 사이에서 아직 청신한 꿈을 부리에 머금은 한 떼 영혼들이 날아오를 수 있다.
다른 세상을 느끼게 했고, 그 세계 속에서 즐기거나 눈물 흘렸던 영혼들이.’
나는 프루스트의 이 글로 불완전에 대한 불완전한 찬사를 마무리하련다.
어째서 불완전 과거라는 시제에는 그런 명칭이 붙었을까?
뭔가가 일어나는 중이고, 일어났고, 일어날 것임을 알려 주는 모든 동사 시제 중에서(명령형조차도 우리가 미래를 보게 한다), 어떤 일이 오래전에 일어났거나 얼마 전에 일어났는데 시간의 어느 지점에 위치시키는 시제의 일반적 기능을 하지 않는, 혹은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시제가 있다는 게 우연은 아닐지도?
그 시제는 우리를 사건의 시간적 상황에 대해서 불확실한 상태로 내버려 둔다.
그래서 아이들조차도 자기가 실제로 겪지 않은 일, 겪어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겪지 않을 일은 불완전 과거로 표현한다 (「있잖아, 지금부터 나는 인디언 추장이고 넌 버펄로 빌이야.).
프루스트는 『독서에 관하여』에서 귀스타브 플로베르를 두고 이런 말을 했 다.
<반과거(이탈리아어의 불완전 과거) 직설법의 사용은 나에게 알 수 없는 슬픔의 마르지 않는 원천으로 남아 있다. 이 잔인한 시제는 삶을 뭔가 덧없고 수동적인 것으로 제시한다.
그래서 우리의 행동을 돌아볼 때조차도 이 시제는 환상을 불어넣고 과거에서 사라지게 하면서 활동의 위안을 결코 완벽하게 남겨 두지 않는다.>
불완전이 예술에서 중요해진 내력은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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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십자회 오컬티스트 조제핀 펠라당이 말한 대로 입문의 비밀은 드러나는 순간 쓸모가 없어진다. 하지만 대중은 비밀을 탐하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비밀을 쥐고 있는 것 같은 사람에게 권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언제 그 비밀을 폭로해 버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잘 알수록, 혹은 잘 알고 있음을 드러낼수록 권력을 쥐게 된다.
지구의 절반에서는 이것이 경찰과 첩보 활동의 원칙이었다.
비밀을 가지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첩보 활동은 정부의 기밀문서가 공개될 때, 혹은 위키리크스 같은 단체가 기밀을 파고드는 데 성공했을 때 무너진다.
이때 우리는 첩보원들과 대사들이 작성한 보고서가 신문 스크랩 수준에 불과하며 폭로되기 전부터 웬만큼 알고 있었던 내용임을, 대사에서부터 말단 경찰까지 월급 값도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에겐 가위와 풀로 스크랩을 하는 재주밖에없다.
그렇다면 비밀이 공개되지 않게 함으로써 비밀의 소유에서 나오는 권력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공허한 비밀을 노출시키는 방법이 있다.
비밀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건 극단적 형태의 조심성일 뿐이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비밀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비밀에 관하여 거짓말을 하는> 것이 된다.
지멜은 말한다.
<<난 이거 아는데 너 는 모르지>라고 거만하게 떠벌리는 어린아이들이 그렇다.
이런 경우는 너무 흔하다.
사실 비밀을 갖고 있지 않은데도 형식적으로 이런 말을 하면서 허세를 부리고 상대를 얕본다.>
어린아이의 가짜 비밀은 다른 아이에게만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여러 입문 집단(혹은 첩보 기관)의 가짜 비밀은 비밀을 알고 싶어 하며 비밀이 있다고 기꺼이 인정하는 어른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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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진짜 비밀로 마무리를 하자.
침해할 수 없고 다다를 수 없는 비밀을 악착같이 추구하는 것은 장황한 욕망이다.
알카에다의 몇몇 자살 특공대원이 쌍둥이 빌딩을 무너뜨렸다는 사실을 아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모두가 눈으로 본 것에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우리는 서툴고 불량한 조물주의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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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모든 음모론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존재하지 않는 위험으로 끌고 가서 진짜 위협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놈 촘스키를 인용하자면 <음모론의 음모>를 상상하는, 즉 음모에 대한 열광에서 커다란 이익을 얻을 만한 제도 및 기관은 음모론이 겨냥하는 바로 그 제도 및 기관이다.
부시가 이라크 침공의 명분을 얻으려고 쌍둥이 빌딩 테러를 기획했다고 상상하고 이런저런 환
영 사이를 헤매다 보면 부시가 이라크에 개입하고 싶어 하는 진짜 이유와 수법, 그와 신보수주의 정치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한 분석은 놓치기 십상이다.
이 말인즉슨, 내가 여기서 다루고 싶은 것은 누구나 보고 아는 비밀 신드롬의 전파가 아니라 그 기법, 가짜 기호학이라고 부를 만한 그 방식이다.
음모는 그 기법을 통해서 입증되고 정당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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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르샤토의 경우는 전설을 <아예 처음부터> 지어내기가 얼마나 쉬운지, 또한 역사학자와 법정과 기타 기관이 거짓임을 입증한 전설조차 얼마나 힘이 셀 수 있는지 보여 준다.
그래서 우리는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의 아포리즘을 떠올리게 된다.
<인간이 더는 신을 믿지 않을 때는 아무것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뭐든지 믿을 태세이기 때문에 그렇다.>
포퍼의 관찰과도 일치하는 이 아포리즘은 음모 신드롬에 대한 성찰의 명구로 안성맞춤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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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침묵하는 신의 양태도 없고 형상도 없는 심연을 이야기하며 자기 안에 아무도 없는 내밀함을 통해 단순한 토대, 침묵의 사막에 들어가고자 한다.
그곳에는 다양성이 없고 성부, 성자, 성령도 없다.
거기서 이 빛이 충족되고 토대는 부동의 단순한 침묵이기 때문에 빛은 그 자체 이상이다.
이렇게 해서 영혼은 무한 개념에서 아찔한 현기증을 느낀다.
영혼은 업도 없고 이미지도 없는 황량한 신성으로 파고들 때에만 지복을 누릴 수 있다.
요하네스 타울러는 「설교집에 이렇게 썼다.
‘정화되고 변모된 정신은 신성한 어둠, 고요한 침묵, 상상할 수 없고 표현 할 수도 없는 합일에 빠진다.
이 탕진 속에서 닮음과 닮지 않음이 다 사라진다.
이 심연 속에서 정신은 자기 자신을 잃고 신도, 자신도, 닮음도, 닮지 않음도, 그 무엇도 알지 못하게 된다.
그는 신과의 합일에 빠져들었고 모든 구별이 사라진 바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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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역에서 신학적 인간학은 지각 또는 <환시>를 세 가지 형태로 구분한다.
감각의 환시는 외적이고 신체적인 지각이다.
그리고 내적 지각과 영적 환시visio sensibilis-imaginativa-intellectualis가 있다.
루르드, 파티마 등에서의 환시가 일반적이고 외적인 감각 지각의 문제가 아님은 분명하다.
보이는 모습과 형태는, 나무나 집처럼 어떠한 공간에 놓여 있지 않다.
이는 매우 명백한 사실로 (•…) 특히 함께 있던 모든 사람이 본 것이 아니라 <환시를 보는 자>만 보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더욱 고차원적인 신비주의에서 발견되는 것처럼, 이미지가 없는 지성의 <환시> 가 아니라는 점도 분명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루는 것은 중간 범주, 즉 내적 지각이다. (…•)
내적 환시는 주관적인 상상의 표현에 불과한 환상과 다르다.
내적 환시는 영혼이, 감각을 초월해 실제적인 어떤 것과 접촉하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그 어떤 것은 감각을 초월하는 것, 감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영혼의 <내적 감각>을 통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 ……)
따라서 아이들이 이러한 발현의 주된 수신자가 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영혼은 아직 변질되지 않았으며, 그들의 내적 지각 능력 역시 별로 손상되지 않았기 때
문이다. (…....) <내적 환시>는 환상이 아니다. 그것은 한계가 있다.
외적 환시에도 주관적인 요소는 있다.
우리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우리 안에서 해석 작용을 하는 감각이라는 여과기를 통해 본다. 이 점이 내적 환시의 경우에 더욱 분명하다.
특히 그 자체로 우리의 지평을 초월하는 실체들에 대해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환시를 보는 주체는 더욱 강력히 몰입한다.
그는 구체적 가능성으로써, 자신에게 가능한 표상과 인식의 형태로써 본다.
내적 환시에서는 해석 과정이 외적 환시의 경우보다 훨씬 광범위하다.
이 환시의 주체는 나타난 것의 형상을 만드는 데 본질적으로 참여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역량과 가능성에 한해서만 이미지에 이를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환시는 내세를 그대로 보여 주는 <사진>이 아니며, 지각하는 주체의 잠재 능력과 한계를 반영한다.
성인들의 위대한 환시에서도 이 점은 입증될 수 있다.
파티마 아이들의 환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묘사한 이미지는 단순한 환상의 표현이 아니라, 드높고 내적인 데서 비롯된 실제 지각의 결과다.
하지만 그러한 환시를, 마치 다른 세계에 드리워진 베일이 일순간 벗겨져, 우리가 훗날 하느님과 궁극적으로 하나가 될 때 보게 되기를 희망하는 그 하늘 나라가 순수한 실체로 나타난 것처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러한 이미지들은, 말하자면 높은 곳에서 오는 자극과 그 자극을 받아들일 수 있는 주체, 곧 환시를 본 아이들의 능력이 종합된 것이다.’
좀 더 세속적으로 말해 보자면, 환시를 보는 자는 자기 문화가 보라고 가르쳐 주고 상상하라고 허용한 것만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내가 보기에는 추기경의 승인이 성스러움의 성상학에 대한 나의 간략한 고찰을 마땅히 뒷받침 해 주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