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학회협의체 교육 정책 포럼 개최
저출산으로 인한 급격한 학생 수 감소와 코로나19로 심화된 재정난으로 우리 대학은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나라 출생아 수는 2000년대에 이미 1970년대 초의 절반으로 감소했고, 코로나19로 인해 출생아 수가 더욱 줄어들어 내년에는 1/4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학령인구의 지속적인 감소로 몇 년 전부터 상당수 대학의 신입생 수가 부족한 상황이 본격화됐고, 지역 대학들이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입고 있다. 더욱이 현재의 신입생 부족 사태는 지역 대학만이 아니라 모든 대학이 향후 수년 내에 겪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대학의 기초 역량 강화 및 장기적 성장 방안을 논의하는 장이 마련됐다. 지난 6월 4일 ‘지역대학 위기의 현실과 해결방안 모색’을 주제로 한 기초과학학회협의체 교육 정책 포럼이 기초과학학회협의체(회장 정옥상, 이하 기과협)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회장 이우일, 이하 과총)의 주최로 개최됐다.
정옥상 기과협 회장(부산대학교 화학과 교수)은 환영사에서 “최근의 대학 입학 정원 미달 사태가 지금까지 지역 사회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지역 대학의 소멸과 축소를 초래해 국가 균형 발전을 저해하는 폐단이 우려된다”며 “정부 대책은 대학 구조조정이라는 명목 하에 시행된 정원 감축 이외에는 눈에 띄지 않는다. 신입생이 줄어드는 만큼 정원을 줄이면 정원 미달은 막을 수 있지만 대학의 연쇄적인 몰락을 막는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표명했다.
이우일 과총 회장은 축사에서 “교육부에 따르면 2021학년도 대학 정원 충원률은 91.4%로 총 4만여 명이 미달했는데 이는 지난해의 3배에 달하는 수치이며 미충원의 75%가 지방 대학에서 발생했다”며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고등교육 생태계의 위기는 비단 지방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근간인 인재 양성과 배출 시스템을 뒤흔드는 중대한 문제”라고 진단했다.
지역 대학 기초과학연구소와 연구자 중심 지원 절실
포럼 첫 번째 주제발표는 홍기민 충남대학교 물리학과 교수가 ‘지역대학 자연과학 분야의 연구 환경’을 주제로 진행했다. 홍 교수는 “전국적으로 48개의 자연과학대학이 남아 있고 이 가운데 지역 대학이 22개”라며 “거점국립대의 학부생은 교수 당 16.5명으로 서울대, 과학기술 특화대, 수도권 사립대에 비해 많지만 대학원생은 교수 당 2.1명으로 가장 적다. 대학원생을 위주로 하는 연구보다 학부생을 가르치는 교육에 훨씬 더 비중이 큰 상황”이라고 짚었다.
아울러 홍 교수는 “연구 지원 시스템을 봐도 자연과학 계열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중소벤처기업부의 지원을 받는 공학 계열과 보건복지부, 농림축산식품부, 환경부의 지원을 받는 생명·의약학 계열과 달리 오직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만을 놓고 다른 과학 분야와 경쟁해야 하는 열악한 상황”이라고 보고했다. 또 “자연계 교수들의 연구비 선정률은 지원자 대비 약 20%에 불과해서 연구 및 실험의 단절이 벌어지고, 2~3년 이상 지원 받지 못하면 연구를 포기하는 사태에까지 이른다. 신진 연구자에 대한 지원도 굉장히 제한적인데 지역 대학으로 가면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홍 교수는 “일본의 교실비 성격의 ‘풀뿌리 연구비’ 지원이 필요하다. 지속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안정적인 재원을 마련해야 하고 과제 중심형에서 연구자 중심형으로 지원 방법을 변경해야 하며 박사후과정 지원 제도도 개선해야 한다”면서, “대학마다 설립된 기초과학연구소가 예산과 인력의 부재로 실질적인 기능을 상실했는데, 이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내용을 그 동안 교육부에 제안해 왔다. 특히 지역 대학 자연과학대학의 연구 중심축 기능 회복을 위해 기초과학연구소 활성화 사업들을 제안해 왔다”고 밝혔다.
그는 또 김근배 전북대 교수의 제안을 인용하며 “대학 중심의 기초과학 연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단과대학 단위의 연구비 지원을 신설해서 안정적인 연구 기반을 제공하자”고 제언했다. 홍 교수는 “강의와 실험 내실화를 위해 강의 조교와 실험 조교를 도입해 실험 실습 환경을 개선하고, 교육부에 학술진흥재단의 기능을 회복해 기초과학연구소를 지원하고 연구자 중심의 풀뿌리 연구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국인 유학생, 미래 노동력과 기초과학 육성 기회로 접근해야
다음으로 이동현 전북대학교 화학과 교수가 ‘지역 대학의 위기와 묻지마 유학생 유치, 약인가? 독인가?’를 주제로 국내 외국인 유학생 현황과 미래에 대해 발표했다. 이 교수는 “교육부는 최근 수도권 대학을 포함해 대학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예고했다”며 “거의 모든 대학이 사활을 걸고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유학생은 정원 외이기 때문에 정원이 감축되더라도 감소되는 재정을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주요 국가별 고등교육기관 유학생 순유·출입 수를 보면 영어권 국가는 순유입 국가이고 중국, 인도는 순유출 국가다. 우리나라는 최근 유학생이 늘면서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고 있음에도 순유출 국가이며, 이는 국가 경쟁력에 해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일본은 학령인구가 계속 줄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난 20년간 신생 대학이 300개나 된다. 결국 작년 일본 지방 사립대학은 1/3 정도 미달 사태를 겪었다. 다만 일본은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고자 취업과 연계한 유학생 유치 전략을 쓰고 있어 우리보다 유학생 유치가 용이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국내 외국인 유학생이 급격하게 증가한 2010년대 후반은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있었지만 한류로 인해 한국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아졌을 때다. 또 2010년도 반값 등록금 정책 시행으로 등록금이 동결되면서 대학 재정이 고갈됐고, 이에 따라 대학이 유학생 유치에 더 발 벗고 나선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이 교수는 유학생의 출신 국가를 분석하면서 “중국(44.4%), 베트남(23.4%) 등 특정 국가 출신들이 많고 그 학생들이 특정 전공에 쏠리고 있다”고도 분석했다. 또 “학사, 석사 과정 유학생의 70%가 한국어교육, 한국문화, 경영학 등 인문사회 계열이고 자연과학은 6%에 불과하다. 이공계 학사 정원이 많으면 졸업 후 자연스럽게 대학원 진학으로 이어져 부족한 이공계 연구 인력 수급에 도움이 되고, 오랜 시간 한국 체류로 취업도 용이하니 여러 면에서 도움이 되겠지만, 지원자가 적어 아직까지 그런 선순환 구조는 만들어지지 않았다”라고도 진단했다.
이 교수는 “유학생 유치는 경제적 효과가 커서 하나의 산업으로 여겨진다”면서도 “불법체류, 한국어 능력과 수학능력 부족, 수업 질 하락과 문화적 갈등이라는 위협적인 요인도 있다”고 장단점을 짚었다. 그는 “유학생 유치를 필요악으로 볼 필요는 없다”며 “현재는 재정 위기의 타개책으로 보는 시각이 팽배하지만 일본의 경우처럼 미래 노동력 부족에 대한 대안이 될 수도 있고 우리 기초과학이 살아날 수 있는 자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제언했다.
“이제는 산·학 협력보다 지(자체)·학 협력의 시대”
세 번째 발제는 ‘지역 대학 위기의 진실과 지·학 협력의 미래’를 주제로 양진오 대구대학교 한국어문학부 교수가 진행했다. 양 교수는 “교육부의 대학 지원 방식은 일률적 기준에 의한 예산 배분과 정원 감축인데, 그런 설계가 다양한 설립 정신을 갖고 있는 지역 사학들에 대해 지나치게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과 안타까움이 든다”고 밝혔다. 아울러 양 교수는 “광주에서 지역과 지역 대학이 상생하자는 취지 속에서 대학발전협력단이 출범했는데, 다른 지자체에서도 벤치마킹했으면 좋겠다”면서 “교육부는 대학 재정 지원 정책의 방향을 지자체와 연계하는 방향으로 설계하고 있다. 이는 지역 대학생들이 일자리 문제로 대부분 수도권으로 옮겨가는 상황 속에서, 학생들의 지역 내 정주와 일자리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기에 지속되었으면 한다”라고 밝혔다.
양 교수는 지역 인문대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전공, 학과, 단과대, 대학 개념에 대해 해체적이고 비판적으로 성찰을 해왔다. 규모의 방식으로 운영되어온 대학이 미래에도 존재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현대문화연습’이라는 교과목 명칭을 ‘스토리텔링캡스톤디자인’으로 바꿨다. 지자체, 지역 협동조합 현장에서 요구하고 있는 스토리텔링의 전문가들을 양성하고자 하는 취지에서다. 교육내용도 내가 배운대로 가르치는 것이 아닌 학생 중심으로 바꾸고 여러 전공 교수들과 교수법을 공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 “‘대구 북성로 대학’이라는 인문학 커뮤니티를 만들고 인문대학 학생들이 대구 지역을 잘 알 수 있도록 인근 전문가들과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양 교수는 “이제는 산·학 협력의 시대가 아니라 지자체와 대학이 대학 혁신의 상호 주체로 나서는 ‘지·학 협력’의 시대”라고 선언했다. 그는 “캠퍼스라는 공간을 지역과 공유·상생하는 방식으로 활용하지 않으면 지역 대학이 존재하기 어려울 수 있다. 지·학 협력은 캠퍼스 공간, 교육과정, 교육 내용, 교육 대상을 지역과의 연계 속에 재구조화하는 것으로, 물리적인 캠퍼스가 아닌 네트워크 캠퍼스, 원도심 자체가 캠퍼스가 될 수 있다. 또 평생 학습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학 자체 노력과 함께 지역 연계 협력 시스템 필요
이어진 지정 토론에서는 박진해 충남대학교 수학과 교수, 조성래 울산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황의욱 경북대학교 생물교육과 교수, 정은희 강릉원주대학교 화학신소재학과 교수가 참여했다.
박진해 충남대학교 수학과 교수는 지역대 위기 극복을 위해 “충남대는 학부생을 대상으로 교수 연구실 특수 실험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대학원 진학을 유도하고 있는데, 일부 학과에서 성공적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학습자 중심의 교과과정, 융·복합 교과과정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지자체-대학-지역 협력 체계 구축(RIS) 사업에 기초과학 분야가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대학과 정부 출연 연구소의 긴밀한 협력을 통한 대학원생들의 연구소 취업 연계와 해외 대학과의 교류를 통한 해외 우수 학생 유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성래 울산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는 “물리학과는 연구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생존법이라고 생각하여 연구 활동에 몰두했다. ‘가장 우리다운 연구가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세계 제일보다 세계 유일을 추구했다. 그 결과 국가지정연구실(2006,2007), 대학중점연구소(2009), BK21 PLUS 사업단(2013), 기초연구실(2015,2018), 대학중점연구소 후속사업(2019), BK21 FOUR 교육연구단(2020)에 선정됐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조 교수는 분자선 결정 성장시스템(MBE) 장치를 직접 설계·제작하여 연구에 활용하고 특허 출원해 심사 중에 있다. 조 교수는 “학부 교육만으로 양질의 취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학부생 1인이 1특허가 가능하도록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있다”고 전했다.
황의욱 경북대학교 생물교육과 교수는 “인구 감소 등 급격하게 외부 환경이 바뀌는 상황에서 예산 자체가 얼마 되지 않는 대학이 홀로 학령인구 위기를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국가가 다 책임지기도 어렵다”면서 “유일한 해결책은 지역이 사랑하는 대학을 만드는 것이다. 지역이 필요로 하는 대학이 되지 않으면 앞으로 지역 대학은 살아남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황 교수는 “RIS 사업을 정부에서 구체적으로 지원해야 하고 지역세로 지역 인재를 양성하여 지역에서 일자리를 갖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은희 강릉원주대학교 화학신소재학과 교수는 “교육부의 현재 대학 평가 방법은 신입생과 재학생 충원률만 강조한다. 그러면 입학 충원률이 저조한 자연과학대학은 폐과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평가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고전적인 학과명을 응용성을 함유한 현대적인 학과명으로 바꾸어서 입학 충원률을 높이고, 융합 교육과정 개설, 학과와 전문 과정 간 연계 등을 통해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과 학사 구조로 혁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