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길생/건국대학교 총장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
갚아야 할 빚이 많은 삶
내가 운영하는 동물자원연구센터가 정부지정 우수연구센터로 선정되면서부터는 정부
각 부처로부터 협조요청도 많아졌다. 나는 과학기술부.교육부.산업자원부.농림수산부
등 정부부처 산하 30여개 위원회에서도 봉사했다.
1981년 가을.미국 위스콘시 대학에서의 연구년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에는 국내 의료계
로부터 시험관아기(test tube baby)생산기술을 전수해 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이 기술
은 사람뿐 아니라 동물의 발생학연구에도 핵심적인 기술인데 당시 국내에서는 이 기술을
체득한 연구자가 전무했다.
위스콘시대학에서 내가 이 기술의 이론과 실기를 익히고 돌아오자 금세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나는 배우기를 희망하는 의사들을 연구실로 초빙해 6개월 정도씩 교육과 실습을 시켜 돌려보냈다
그리고 그들이 시험관아기 시술소를 개설하면 그 일에 숙달된 대학원생들을 보내 도와주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많은 시험관아기 시술소가 있는데 그 대부분이 내 연구실에서 훈련받고
돌아간 의사나 교수들이 개설한 것이다 그리고 그 시설들의 실무진 또한 내 연구실 출신의 석사
나 박사들이 많다
오늘날 이들에 의해 출산되는 시험관 아기가 국내에서만 연간 일만명이 넘고 이 일에 종사하는
자연계 출신 박사들도 수백 명에 이른다.나의 작은 봉사가 많은 불임여성들의 아픔을 해결해주고
국가의 인구증가에 기여하며 나아가 자연계출신 젊은 박사들이 의료계에서 일할 수 있는 새로운
직업 영역을 하나 창출할 줄은 그때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었다.
내가 부총장직까지 수행하게 되자 주변에서 자연스레 총장선거에 입후보해보라는 권유가 많아졌다
탄탄한 학문적 기반과 오랜 보직 경력뿐 아니라 건국대학교가 장학금으로 키운 졸업생이라는 점이
나를 총장 후보로 추천하는 이유였다.
나 또한 그것이 고마운 모교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제 16대 건국대학교 총장이 되었다 2002년 총장 취임식에서 많은 분들의 축사를 들으며
나의 오늘이 있게 해준 모교의 중흥을 위해 신명을 바쳐 노력하리라 스스로에 다짐했다.
중간생략~~~~
2006년 대학에서는 성대한 총장 이임식을 열어주었다. 퇴임식이 끝난후 캠퍼스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마지막으로 나의 영원한 스승이자 은인이신 건국대학교 설립자 유석창(劉錫昶)
선생의 묘소를 찿아 작별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47년간 몸담았던 건국대학교를 떠나왔다
선진 과학한국을 꿈꾸며
하나의 여정이 일단락되었지만 아직 끝은 아니었다. 총장으로 정년을 마친 나에게 한림원
회원들이 원장에 입후보하기를 권하면서 내 삶의 또 다른 막이 올랐다
계속
/계간. 철학과 현실
http://cafe.daum.net/daum1000
공감/책속의 한줄
첫댓글 우리나라 시험관아기 기술을 처음으로 국내에 선을 뵌분이군요.
제가 사실은 무자식 입니다.
전처가 운동을 좋아해서,중학교는 배구선수로
그리고 고등학교부터 대학까지는 검도 선수로
일본 대표까지 하고 전일본 검도시합에서 동메달까지 ..
졸업후에는 변리사로 지금껏 살아 가고 있지요.
그런데 학창시절 그렇게 운동을 많이 하다가 사회생활 하면서
운동량이 적어지니,살이 찌기 시작 했읍니다.
그러더니 그것이 나중에 아이를 가지기 힘든 불임을..
그래서 제가 한국 불임여성들은 한국의술이 좋아서 불임은
그리걱정 안한다고,한국으로 가서 불임 치료를 받아 보자 했더니
거절을 하더군요.
그러면서 솔직히 한국기술은 못믿겠다면서....
기분은 좀 언짢았지만 그냥 없던일로 했읍니다.
전처는 나름대로 불임에 좋다는것은 무었이던 찿아 다니며
좋다는 약,병원등등 몇년을 지냈는데도 아기소식은 깜깜이더군요.
결국은 양자얘기도 나왔었는데, 그건 또 싫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래 그럼 우리는 그냥 무자로 살자 했읍니다.
그래도 혹시나 임신 소식이 없을까,기다렸지만,아무런 반응이 없었네요.
아마 제팔자에는 자식운이 없어서 그런가 봅니다.
그당시 전처와 진작에 저분 찿아 갔었으면 지금은 자식이 한 두명쯤은
낳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제 본격적인 여름으로 들어 갔읍니다.
더우니 찬음식을 많이 찿게 되는데, 주의를 해야겠지요. 좋은꿈 꾸세요. ^^
그러셨군요.한국의 의술은 대단한것 같습니다.지프님 사연.고맙습니다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요,지금은 어떻게 지내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지금은 아기를 갖지 않는 젊은 부부가 의외로 많습니다.
불임때문이 아니라 아기로 인해서 부부사이는 멀어진다는 겁니다
우리 여동생 아들부부가 그렇습니다,미국며느리입니다 3년차 살고 있는데
마음이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둘이 서로 직장생활하며 주말에 둘이 여행하고
식사는 서로도와 분담하고 아내월급은 일체 대학졸업빚갚느라고 미국친정에
보낸답니다.아껴주는 마음이 대단합니다.더구나 10살이나 아래인 아주 예쁜32세!!
미국며느리와 대화하기위해 69세 시엄니 영어공부
@공감 에 불붙어 이제는 서로 대화도 잘합니다. 나이가 젊어서 혹 실수해서라도
아기가 생겼으면 하고 부모는 바라고 있지요.게다가 36세 딸은 음악선생인데
아예 결혼생각없고 현재행복지수최고! 독신주의자.!음악에 빠져서 사는데...
배우자와 살면 그 생활이 깨져버릴것이라는 거죠.결혼안하고 사는것이
삶의 새로운 형태!로 자리잡는 듯 합니다.
@공감 잃는것이 있으면,얻는것도 있군요.
며느리덕에 뒤 늦게라도 소통을 위한 영어 공부를..
이제는 대화가 가능...손주가 아직이라는것은 유감이지만
그 어려운 영어 공부 며느리덕에,,그나마 다행 입니다.
요즘 주위를 둘러 보면은 올드 독신들이 생각보다 많더군요.
주위에 지인들 자녀중에 독신들이 몇명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에 제나름대로
중매도 해보고 그랬었는데,그것이 생각처럼 잘 안되더군요.ㅎ
저도 사실 한국에 돌아와서 만난 사람 비록 한순가에 운명을 달리하였지만
그런대로 제가 지금까지 잘견디였던것은 사이버 덕도 크다면 큽니다.
그리고 제가 취미로 피아노를 한 45년정도 치다 보니 그것이 많은 도움과 위로가 되였구요.
@지프 음악을 통해서 제가 배운것도 많았어요.
그러다가 보니 또 더더욱 음악을 좋아 하며 사랑하게 되였구요.
제가 결혼 하고 사흘만에 전처랑 피아노를 사러 갔었지요.
전에 한국에서 쓰던것은 갖고 갈수가 없기에 그냥 집에 나두기도 그렇고 해서
팔아 버렸지요.
피아노를 사가지고 돌아온 그날 저녁에 전처 한테 그랬어요.
사실 나는 당신보다 피아노를 더 많이 사랑 하고 있다고요.
그랬더니,전처가 그냥 씨익~웃고 말더군요.
음악이 없는세상 상상 하기도 싫지만은, 어떤 장르의음악이건
음악은 우리에게는 반듯히 필요한 삶의 일부분이고, 없어서는 안될 빛과 같은 존재가 아닌가 합니다.
좋은글 많이 올려 주셔서 나름 공부 많이 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