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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 대림 제2주일 / 인권 주일(2016-12-04) |
인권 주일, 사회 교리 주간 인간 존중과 인권의 신장은 복음의 요구이다. 그럼에도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고 짓밟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에 따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1982년부터 해마다 대림 제2주일을 ‘인권 주일’로 지내기로 하였다. 교회는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존엄한 인간이 그에 맞갖게 살아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보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권 주일로 시작하는 대림 제2주간을 2011년부터 ‘사회 교리 주간’으로 지내 오고 있다. 현 시대의 여러 가지 도전에 대응하며 새로운 방식으로 복음을 전해야 할 교회의 ‘새 복음화’ 노력이 바로 사회 교리의 실천이라는 사실을 신자들에게 깨우치려는 것이다.
오늘 전례 ▦ 오늘은 대림 제2주일이며, 한국 교회가 정한 인권 주일이고 사회 교리 주간입니다. 인류를 구원하러 오시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며,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가 존중되는 사회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또한 사회를 보는 올바른 눈을 가지게 하는 사회 교리를 배우고 익혀 시대의 징표를 예민하게 읽고 복음의 가르침에 따라 행동하는 신앙인이 됩시다.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기념 없음> |
[주일미사 추천성가] :
입당 성가 : 89번 주 하느님 자비로이
예물준비 성가 : 212번 너그러이 받으소서
219번 주여 몸과 맘 다 바치오니
220번 생활한 제물
영성체 성가 : 169번 사랑의 성사
178번 성체 앞에
160번 하느님의 어린양
파견 성가 : 481번 요르단 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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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 대림 제2주일 / 인권 주일(2016-12-04) | 미사 전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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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당송] : 이사 30,19.30 참조
보라, 시온 백성아. 주님이 민족들을 구원하러 오신다. 주님의 우렁찬 목소리를 듣고, 너희 마음은 기쁨에 넘치리라. <대영광송 없음>
■ [본기도] :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 저희가 세상일에 얽매이지 않고 기꺼이 성자를 맞이하여, 천상의 지혜로 성자와 하나 되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성부와 …….
■ [말씀의 초대] :
그날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고 이사야는 예언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기꺼이 받아들이신 것처럼 여러분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서로 기꺼이 받아들이라고 권고한다(제2독서). 세례자 요한은 회개를 외치며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베풀면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분을 예고한다(복음).
■ [제1독서] : <그는 힘없는 이들을 정의로 재판하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11,1-10 그날 1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 2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니,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함이다. 3 그는 주님을 경외함으로 흐뭇해하리라. 그는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판결하지 않고, 자기 귀에 들리는 대로 심판하지 않으리라. 4 힘없는 이들을 정의로 재판하고, 이 땅의 가련한 이들을 정당하게 심판하리라. 그는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막대로 무뢰배를 내리치고, 자기 입술에서 나오는 바람으로 악인을 죽이리라. 5 정의가 그의 허리를 두르는 띠가 되고, 신의가 그의 몸을 두르는 띠가 되리라. 6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7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뜯고, 그 새끼들이 함께 지내리라.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8 젖먹이가 독사 굴 위에서 장난하며,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밀리라. 9 나의 거룩한 산 어디에서도, 사람들은 악하게도 패덕하게도 행동하지 않으리니, 바다를 덮는 물처럼 땅이 주님을 앎으로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10 그날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리라. 이사이의 뿌리가 민족들의 깃발로 세워져, 겨레들이 그에게 찾아들고, 그의 거처는 영광스럽게 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화답송] : 시편 72(71),1-2.7-8.12-13.17(◎ 7ㄴㄷ 참조)
◎ 주님, 이 시대에 정의와 평화가 꽃피게 하소서. ○ 하느님, 당신의 공정을 임금에게, 당신의 정의를 임금의 아들에게 베푸소서. 그가 당신 백성을 정의로, 가련한 이들을 공정으로 다스리게 하소서. ◎ ○ 저 달이 다할 그때까지, 정의와 큰 평화가 그의 시대에 꽃피게 하소서. 그가 바다에서 바다까지, 강에서 땅끝까지 다스리게 하소서. ◎ ○ 그는 하소연하는 불쌍한 이를, 도와줄 사람 없는 가련한 이를 구원하나이다. 약한 이, 불쌍한 이에게 동정을 베풀고, 불쌍한 이들의 목숨을 살려 주나이다. ◎ ○ 그의 이름 영원히 이어지며, 그의 이름 해처럼 솟아오르게 하소서. 세상 모든 민족들이 그를 통해 복을 받고, 그를 칭송하게 하소서. ◎
■ [제2독서] :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여 주십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15,4-9 형제 여러분, 4 성경에 미리 기록된 것은 우리를 가르치려고 기록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서 인내를 배우고 위로를 받아 희망을 간직하게 됩니다. 5 인내와 위로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의 뜻에 따라 서로 뜻을 같이하게 하시어, 6 한마음 한목소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을 찬양하게 되기를 빕니다. 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기꺼이 받아들이신 것처럼, 여러분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서로 기꺼이 받아들이십시오. 8 나는 단언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께서 진실하심을 드러내시려고 할례 받은 이들의 종이 되셨습니다. 그것은 조상들이 받은 약속을 확인하시고, 9 다른 민족들은 자비하신 하느님을 찬양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그러기에 제가 민족들 가운데에서 당신을 찬송하고, 당신 이름에 찬미 노래 바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복음환호송] : 루카 3,4.6
◎ 알렐루야. ○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 알렐루야.
■ [복 음] :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12 1 그 무렵에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 유다 광야에서 이렇게 선포하였다. 2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3 요한은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바로 그 사람이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하였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4 요한은 낙타 털로 된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둘렀다. 그의 음식은 메뚜기와 들꿀이었다. 5 그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요르단 부근 지방의 모든 사람이 그에게 나아가, 6 자기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7 그러나 요한은 많은 바리사이와 사두가이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독사의 자식들아,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 주더냐? 8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9 그리고 ‘우리는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고 말할 생각일랑 하지 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하느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드실 수 있다. 10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 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 11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시다.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12 또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하시어,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리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신경>
■ [보편지향기도] :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 형제 여러분,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고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세상이 되도록 하느님 아버지께 간절히 아룁시다.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창조주이신 주님, 물질의 풍요와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 삶의 가치가 변하고 있는 이 세상을 주님의 진리로 이끌어 주시고, 교회가 그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게 하소서. ◎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2. 세계 지도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평화의 주님, 총성이 멈추지 않는 세상을 굽어보시어, 어린이들까지 군인으로 내모는 추악한 전쟁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주님의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소서. ◎
3. 미혼모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생명의 주님, 낙태의 유혹을 물리치고 출산을 결심한 미혼모들을 보호해 주시며, 예수 성탄을 기다리는 저희가 미혼모를 돕고 생명의 귀중함을 알리는 일에 힘쓰게 하소서. ◎
4. 교구(대리구, 수도회)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인도자이신 주님, 저희 교구(대리구, 수도회) 공동체를 굽어살피시어, 각자의 권리와 의무를 존중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주님 보시기에 좋은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 † 사랑과 용서의 주님, 주님의 자녀들이 드리는 이 기도를 즐겨 들어주시고 청하지 못한 은혜도 베풀어 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 [예물기도] :
주님, 비천한 저희가 드리는 기도와 제물을 굽어보시어, 아무런 공덕이 없는 저희를 너그러이 보호하시며 도와주소서. 우리 주 …….
■ [감사송] : <그리스도의 두 차례 오심>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 비천한 인간으로 처음 오실 때에는, 구약에 마련된 임무를 완수하시고, 저희에게 영원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나이다. 그리고 빛나는 영광 중에 다시 오실 때에는, 저희에게 반드시 상급을 주실 것이니, 저희는 지금 깨어 그 약속을 기다리고 있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 거룩하시도다! …….
■ [영성체송] : 바룩 5,5; 4,36
예루살렘아, 일어나 높은 곳에 서서, 하느님에게서 너에게 오는 기쁨을 바라보아라.
■ [영성체 후 묵상] :
오늘 세례자 요한은 유다 광야에서 회개하라고 외칩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회개하라는 요한의 외침이 선뜻 들어오지 않습니다. 살아가며 크게 잘못한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험한 세상을 살아가느라 힘들기만 하지요. 이런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보상은커녕 고통을 안겨 주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회개해야 합니까?
요한이 원하는 회개는 하느님께서 안 계신 것처럼 살던 사람이 하느님께서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모든 일을 인간적 시각이 아니라, 하느님의 시각으로 보고 판단하겠다는 결심이 회개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여도 끝내 외면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 것입니다.
오늘 요한의 외침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려면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고통 속에서도 주님에 대한 확고한 신뢰심이 필요합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의 주관자는 하느님뿐이라는 것을 드러내시려고 우리에게 까닭 모를 어려움마저 겪게 하신다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이 지은 죄를 대신하여 속죄하려고 고통을 겪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이유 없는 고통까지도 주님 뜻으로 받아들이고, 끝내 이를 잘 극복한 분들은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고통과 행복의 의미를 하느님의 시각에서 새롭게 생각하지요. 오늘 세례자 요한의 외침대로 주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나와 하느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이 무엇인지 묵상해야 하겠습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 [영성체 후 기도] :
하느님, 이 신비로운 제사에 참여한 저희를 생명의 양식으로 기르시니, 저희에게 지상 것을 슬기롭게 활용하며, 끊임없이 천상 것을 찾도록 가르쳐 주소서. 우리 주 …….
■ [파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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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 대림 제2주일 / 인권 주일(2016-12-04) | 미사 강론 [Lectio Divina & Comtemplation] * 제1독서 : 이사 11,1- 10 / 제2독서 : 로마 15,4 -9 / 복음 : 마태 3,1 -12 * |
[주일강론-1] : 주님, 어서 오소서!
대림 둘째 주일을 맞이하여 교회공동체는 첫째 독서로 이사야 예언서 11장의 말씀을 읽습니다. 여기서 예언자는 자신이 환시하는 메시아 왕국에 대해 노래하는데, 그 왕국의 묘사에 앞서 예언자는 우선 그가 누구인가를 1-2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메시아는 우선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돋아나는 햇순, 즉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인 다윗임금의 혈통입니다. 그것은 메시아의 적통성에 대한 언급입니다. 2절에서는 그 메시아에게 “주님(야훼)의 영”이 머무른다고 말하면서, 그 영의 속성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 속성은 모두 6가지인데, 지혜(sapientia),슬기(intellectus), 경륜(consilium), 용맹(fortitudo), 지식(scientia) 그리고 경외(timor)입니다. 여기에 효경(pietas)이 더해지면 성령칠은이 됩니다.
3절에서는 2절의 마지막인 “경외”에 대해 반복하여 언급하면서, 메시아는 하느님을 경외하기에 자기의 눈에 보이거나 귀에 들리는 대로, 즉 자신의 편의대로 심판하지 않을 것이라 말합니다. 그리고 그 3절이 무슨 의미인지를 4-5절은 부연하여 설명합니다. 그것은 장차 메시아가 강한 자들과 타협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힘없고 약한 사람들의 편에 서서 “무뢰배를 내리치고” 악인을 처벌하는 정의로운 심판자가 될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6절부터 등장하는 대목은 진정 경이로운 묘사입니다. 메시아를 통해 이루어지는 정의와 함께 “늑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닐 것이며,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뜯고 그 새끼들이 함께” 지내는… 그런 정의로움이 그 메시아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언자는 선언합니다. 그것은 메시아를 통해 이루어지는 정의가 단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의미를 뛰어넘어 우주적인 차원으로 확장됨을 의미하며, 하느님의 정의로움이 단지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넘어, 인간과 세상의 관계에서도 역시 실현될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9절에서 그 경이로운 정의로움의 출발점은 바로 “주님을 앎”이라고 예언자는 밝힙니다. 여기서 이사야 11장이 전하는 메시아의 본질적 정체가 드러납니다. 메시아는 바로 “하느님은 과연 누구인가?”라고 묻는 세상 한가운데에서 하느님의 공의로움을 선포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선포된 정의로운 하느님 나라에서 (이스라엘뿐 아니라) 모든 겨레와 온 우주가 평화를 누릴 것이라는 일종의 영광송과 함께 오늘의 독서는 마무리됩니다.
오늘의 독서를 거꾸로 읽으며 요약해 본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신학적 명제를 만나게 됩니다. “진정한 평화는 정의로움에 기초하며, 참다운 정의는 공의로운 하느님에 대한 앎에서 출발하고, 하느님을 알게 되는 것은 주님의 영을 통해서이다.” 이사야의 예언은 이루어졌고, 메시아는 사람이 되시어 우리와 함께 계셨습니다. 그리고 성령과 함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며 교회공동체는 2000년이 넘는 시간을 세상 안에서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평화롭지도 또 정의롭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2010년 대한민국의 서점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인문서의 제목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사실은 우리가 어떤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대변합니다.
그것이 오늘 대림 2주를 맞으며 우리 온 교회공동체가 우리와 함께 계셨던 메시아를 그리워하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하는 까닭이겠습니다. 마라나타(주님 어서 오소서)!..............◆
[말씀자료 : 최승정 신부 / 편집 : 까따꿈바 묵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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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론-2] : 광야에서 외치다
대림환에 초가 하나 더 밝혀졌습니다. 초 하나의 밝기만큼 세상도 더 환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미 오셨고 세말에 다시 오실 그분을 기다리는 우리 마음은 언제나 설레입니다. 그 설레임은 네 자루의 초가 다 켜졌을 때 온전한 기쁨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벌써 대림 두 번째 주일이자 인권주일입니다. 오늘 전례에서 교회는 회개하라고 외치는 예언자를 만나게 됩니다. 세례자 요한은 광야 한 가운데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그 광야는 유혹의 장소인 동시에 하느님을 향한 선택과 결단의 장소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곳은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곳이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온갖 외적인 허례허식과 소음과 번잡함 등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입니다.
그 광야에서 요한은 낙타 털옷을 입었고 허리에 가죽띠를 둘렀습니다. 주님의 길을 닦고 고르게 하기 위한 예언자의 결연한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메뚜기와 들꿀을 먹는 모습에서는 물질의 결핍을 통해 하느님으로 충만해지는 그의 내공을 느끼게 됩니다. 주님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는 그의 겸손은 한 해 동안 세상 일에만 마음을 두었던 우리 자신을 부끄리게 합니다.
오늘 우리는 회개와 개심을 재촉하는 요한의 외침에 귀를 귀울여야 합니다. 그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입니다. 메시아께서 당신 말씀의 씨를 뿌릴 수 있도록, 땅을 일구고 흙덩이를 깨는 요한의 사명은 회개에의 초대인 것입니다. 진정으로 회개한다는 것은 나의 삶을 근원적으로 되돌리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전인적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회개(**noia)란 본질적으로 궤도를 수정하여 나의 꼴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고, 영혼의 거울을 마주보며 변화된 삶을 살기로 다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로워져야 하고 삶의 구체적인 증거가 회개의 열매로 드러나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물로 세례를 받고 진노를 피하려고만 하는 사두가이나 바리사이와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생명의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참 생명을 주시기 위해 당신 아드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그 아드님은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시기에 우리의 근본적인 회개가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낮추지 않으면 결코 우리는 구세주의 강생의 신비에 초대받지 못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오늘 전례의 본기도에서도 "세상 일에 얽매이지 말고 기꺼이 성자를 맞이하여, 천상 지혜를 받아 성자와 하나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세상 일이 아니라 천상의 지혜를 청하는 은혜로운 대림시기를 보내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더 늦기 전에 함께 광야로 나아갑시다. 촛불이 네 개 다 켜지기 전에...............◆
[말씀자료 : 정승환 신부 / 편집 : 까따꿈바 묵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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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론-3] : 말씀을 담는 '소리'
개인적으로 조금 창피한 고백이기도 하지만 나는 음악에 대해서 거의 문외한이다. 박자 감각과 음감이 없어 어릴 때도 지금도 노래를 잘 못하는 편이다. 사실 부활 때 찾아오는 긴 부활찬송 노래는 나에게 적지 않은 곤혹을 준다(그렇게 긴데도 전례서에는 ‘짧은’부활찬송이라고 쓰여 있는 것이 더 민망스럽다). 음악에 관심을 많이 두고 있지도 않고, 잘 듣지도 않기에 오디오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어떤 오디오가 좋은 오디오인지 어떤 스피커가 좋은 음을 내는 스피커인지 구별하지를 못한다. 그러나 음악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그 소리들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바로 음악 원곡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소리가 왜곡된 소리이고, 어떤 소리가 잡음이고, 어떤 소리가 정확한 음인지를 알 수 있다.
같은 음악을 듣고도 감동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아마 그것은 그 음악 안에 들어 있는 많은 내용 즉 정보를 잘 받아들였는가와 그렇지 아니한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소리는 매질을 통한 공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소리 안에 어떤 정보가 담겨져 있는가에 따라서 그것은 소리 이상의 것이 되어 사람들을 감동시키기도 하고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기도 한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자신을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라 칭한다. 그러나 요한이 칭한 그 ‘소리’는 단순한 음파의 진동이 아니다. 예수님이라는 ‘말씀’을 담을 그릇을 의미한다. 어찌 보면 세례자 요한의 겸손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어떠한 위치이고 하느님께 어떤 소명을 받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요한은 모든 유대인들의 존경과 관심을 한꺼번에 받는 그 당시의 소위 슈퍼스타였고 모든 사람이 요한이 메시아가 아닐까 생각하였지만 그는 겸손하게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줄 자격조차 없다(마르 1,7)”라고 말하며 말씀이신 예수님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기를 원하셨다.
어찌 보면 세례자 요한의 그 소리는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온다고 준비하라는 경보로서의 소리였다. 우리는 집 현관문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 밖을 살펴본다. 잘 살펴보지 않으면 그 소리가 도둑을 알리는 경보음인지 반가운 손님의 소리인지 알 수가 없다. 이처럼 오늘 복음에서 나오는 바리사이와 사두가이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그 소리를 듣고 오지만 그 소리의 의미를 깨닫지 못해 그 소리의 내용인 말씀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소리 안에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 아무런 의미 없는 잡음이 될 수도 있고, 감동을 주는 음악도 될 수 있으며, 타인을 비방하고 죽이는 말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사랑의 목소리가 될 수도 있다. 더 나아가서는 세상을 창조한 그리스도 자체인 말씀(요한 1,1-4 참조)이 담기는 거룩한 소리도 될 수 있다.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평화를 구하는 기도에서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라고 자신을 봉헌한다. 또한 바오로 사도는 “우리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성전입니다.(2코린 6,16)”라고 가르쳐 주고 있다. 우리는 말씀을 담는 ‘소리’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구원의 역사하심을 이루는 ‘도구’로,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성전’으로 살아가고자 다짐하며 다가올 말씀 자체이신 그리스도를 목말라 기다리는 대림시기를 살아가야 하겠다............◆
[말씀자료 : 박제성 신부 / 편집 : 까따꿈바 묵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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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 합니다. 행복 하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