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eview MDCCLXXXIV / 아르볼 3번째 리뷰] '금지된 사랑'을 주제로 한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통해 너무도 많다. 그래서 너무 식상한 주제일 것도 같은데, 최신 유행가 가사만 보아도 '사랑타령'은 여전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인간이 살아가는 곳이면 어느 곳에서나 그럴 것이다. 그만큼 인간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인 모양이다. 그런데 '금지된 사랑'이라고 하면 오늘날에는 '불륜'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과거에는 '아름다운 사랑'을 이야기한 것이 더 많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도 원수 가문인 탓에 서로 사랑에 빠질 수 없는 두 남녀가 죽음에 이를 지경까지 이르는 사랑이야기를 담았고, <춘향전>에서도 양반과 기생이라는 신분차이를 뛰어넘어 사랑을 하는 두 청춘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담았다. 이 두 이야기가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까닭은 '사랑을 방해하는 요소'가 있고,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운영전>에서도 이런 '방해요소'와 '극복노력'이 담겨 있다.
<운영전>의 주인공은 곧 과거급제를 할 유망한 청년 '김진사'와 안평대군의 궁궐, 수성궁에 살고 있는 궁녀 '운영'이란 두 남녀다. 이 둘의 사랑을 방해하는 요소는 바로 여주인공인 운영이 안평대군의 '궁녀'이기 때문이다. 아직 혼인도 하지 않은 처녀의 몸이건만 왜 '궁녀'이라서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일까? 그건 바로 '궁 안에 살고 있는 여자'는 궁의 주인에게 속한 여자인 까닭이다. 다시 말해, 운영은 안평대군의 수성궁에 살고 있는 까닭에 이미 '안평대군의 여자'인 셈이다. 정식 부인은 아니지만 '부인이 될 가능성'이 있는 여자라서 '외갓남자'와 마주쳐서도 안 되고 심한 경우에는 '궁궐밖으로' 한발짝도 나설 수 없는 감옥 아닌 감옥에 살고 있는 것처럼 갇혀서 살아갈 운명이다. 그래서 운영은 안평대군을 지아비로 섬기는 '후궁'이 되는 길이 아니고서는 평생 정절을 지키고 수절하는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
그런데 이런 운명을 지닌 여인이 외갓남자인 '김진사'와 운명적인 만남이 성사된다. 안평대군이 심심풀이 삼아 운영을 비롯한 열 명의 궁녀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시를 짓는 교육을 베풀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여인의 신분으로 글공부를 하게 되어 실력을 갖추게 되었지만, 밖에 나가 실력을 뽐내지는 못하고 오직 '수성궁' 안에서만 글을 짓는 것이 허락된 것이다. 그런데 애초에 배우지 않았으면 모르겠으나 이미 글을 배우고 학문을 읽혔으니 자연스레 '바깥세상'에 대한 동경이 생길 수밖에 없다. 비록 궁궐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는 없지만, 글을 통해서나마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글을 짓는 실력이 나날이 늘어 안평대군을 기쁘게 해주었지만, 거기까지였다. 이에 운영을 비롯한 아홉 명의 궁녀들은 시를 통해서나마 자신의 심사를 드러내는 안타까운 일이 계속된다. 그러다 어느 날, 수성궁에 바깥 손님들이 찾아왔고 안평대군의 명을 받아 손님들이 시를 짓는 시중을 들도록 열 명의 궁녀들을 부른다. 그렇게 마주한 김진사와 운영은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지고, 그 만남에서 '잘못 떨어진 먹물 한 방울'이 인연이 되어 둘은 남몰래 사랑의 감정이 싹트게 된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것 말이다. 비록 김진사의 붓끝에서 운영의 손가락으로 떨어진 '먹물 한 방울'이지만, 운영은 그 먹물을 지우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먹물을 떨어뜨린 김진사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코 사랑한다는 감정을 말하지 못하는 '궁궐의 여인'이자 '안평대군의 여자'인 운영에게 할 수 없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 남녀는 말 없이 서로의 감정을 확인한다. 그리고 사랑에 빠져서 서로를 그리워하며 나날이 야위워만 갈 뿐이었다.
그러다 김진사가 먼저 용기를 내어본다. 용한 무당의 도움으로 수성궁 안으로 소식을 전할 방법을 찾아본 것이다. 그렇게 어찌어찌 소식을 전했지만, 어디 사랑에 빠진 남녀가 그것만으로 만족할 리가 있겠는가. 이번에는 김진사의 노비 특의 도움을 받아 수성궁의 담장을 넘어 운영과 직접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수성궁의 높은 담을 넘어 둘의 만남은 계속 이어지니 이보다 더한 기쁨은 없음이라. 허나 새벽닭이 울기 전에 다시 담장을 넘어야 하는 김진사와 담장을 넘지 못하고 그저 멀어지는 님의 모습만 바라봐야하는 운영의 마음은 점점 더 애달퍼지기만 하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 안평대군에게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둘은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을 알기에 비밀스런 만남은 그렇게 몰래몰래 어둠을 빌어서만 이루어졌을 뿐이다.
허나 오래되면 비밀도 탄로가 나는 법이라, 운영의 마음에 변화가 있음을 안평대군이 짐작하게 된다. 바로 운영이 지은 시의 내용에 '따로 정을 통한 연인이 있다'는 내용을 짐작한 것이다. 평소 시는 마음 깊은 곳에 감춰진 본심이 드러나기 마련이라 입버릇처럼 말했던 대군이기에 더욱 심증을 굳혔다. 그렇게 운영을 추궁하자 드디어 진실이 밝혀지며, 운영이 외갓남자와 정을 통했다는 사실까지 발각이 되고 만다. 이에 죽을 일만 남게 된 운영은 대군에게 잘못을 고하고 자결을 하려 하나 다른 궁녀들이 나서서 운영을 감싸고 도니 안평대군은 그런 운영을 용서하게 된다. 허나 용서를 받았다고해서 운영과 김진사가 백년해로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회적인 제약 때문에 둘의 사랑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운영은 끝내 자결을 하였고, 김진사도 곡기를 끊고 '죽음'에 이르러서야 둘은 저승에서 만나 사랑을 이루게 된다. 애초에 둘은 천상의 선남선녀였는데 옥황상제의 노여움으로 인간세상의 고통을 겪으러 내려왔다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고통'을 맛보고나서야 천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는 뻔한 핑계와 함께 말이다.
비록 '금지된 사랑'을 주제로 다루었으나 <운영전>에서는 비교적 해피엔딩으로 끝맺음을 하였다. 살아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지만, 죽어서는 사랑을 이루었으니 말이다. 다만 조선이라는 '현실'에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기에 '꿈속에서(몽유록계 소설)' 이룰 수 있었다는 전제조건을 달았다. 그런 제한적 조건을 달지 않고서는 허락되지 않은 '꽉 막힌 사회'였던 것이다. 특히 '여인들'에게 야박한 족쇄를 채운 것을 잘못되었다 여기기까지 꽤나 오랜 시일이 지나야만 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게 왜 안타까운 일일까? 조선시대에 여성들은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도 '사회적 활동'을 전혀 할 수가 없었다. 바깥일은 어디까지나 '남성의 몫'이었지, 여성들은 '집안에만' 갇혀지내며 남성들의 '부속품' 쯤으로 천하게 여기는 것이 당연시 되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여성의 재주를 인정해주는 유일한 직장이 바로 '궁녀'였다. 요즘말로 하면 '궁녀=직장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전문직으로 인정받을 정도로 대단한 일을 하는 궁녀일지라도, '궁궐안에서'만 생활을 해야하는 여인들의 숙명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또한 궁녀는 원천적으로 '왕의 여자'였기에 마음대로 사랑에 빠지고 혼인을 할 수도 없었다. 예외적으로 나이가 차서 더는 궁궐 일을 할 수 없거나 공을 세워서 혼인을 허락받은 궁녀가 아니고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궁녀가 유일하게 혼인할 수 있는 경우는 '왕의 첩지'를 받아 후궁이 되는 일이었다. 한마디로 '왕의 첩'이 되어 왕자를 생산(?)하는 것이 유일한 탈출구였던 것이다. 허나 구중궁궐 속 수많은 궁녀들 가운데 임금의 승은을 받아 '후궁'이 되는 일은 정말 흔치 않는 일이다. 그러니 대부분의 궁녀의 운명은 평생 처녀의 몸으로 늙어 죽는 일이었다. 남몰래 '사랑'에 빠지게 되면 행복한 결말은커녕 쥐도 새도 모르게 죽임을 당하는 일뿐이었고 말이다. 감히 '왕의 여자'가 다른 남자를 마음에 품는 것만으로도 죽을죄였던 것이다.
이토록 궁녀에게 '사랑'은 금기시 되던 일이다. 그게 설령 '안평대군'일지라도 '궁녀 운영'은 허락되지 않은 일이다. 왜냐면 왕족이 사대부 가문의 여인이 아닌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조차 허락치 않았기 때문이다. 설령 왕족의 욕정에 의해 범해졌다하더라도 천한 궁녀쯤이야 언제든지 내다버릴 수 있는 '권력'을 지녔고, 이를 용납하는 사회분위기였기 때문에 안평대군 또한 몸가짐을 반듯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섣부른 행동거지로 인해 애꿎은 여인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안평대군이 운영의 잘못을 용서해준 것도 애초에 대군이 '운영'을 사사로이 좋아하는 감정이 있었기 때문이란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열 명의 궁녀에게 글을 가르칠 때에도 유독 운영의 재주에만 관심을 보였으며, 운영의 시를 통해서 '운영의 마음'을 엿보려 들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미 '안평대군의 여인'인 궁녀였기에 대군과 함께 동침을 하며 사랑을 나누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운영은 대군을 사랑한 적이 없다. 그렇기에 안평대군도 운영에게 목을 매는 일도 없었고, 사랑을 구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런 운영이 김진사와 사랑에 빠졌을 때 심각하게 질투심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만약, 이렇게 '삼각관계'를 다루기라도 했다면 <운영전>은 전근대를 넘어 현대적인 사랑이야기로 초월하는 기염을 토했을 것이다. 왕자와 선비의 사랑을 독차지한 위풍당당한 궁녀의 러브스토리라면서 말이다. "왕비냐, 마님이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명대사가 <운영전>에서 먼저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운영전>은 묘한 고전소설이다. 일면 대단히 단순한 소설 같고, 뻔한 사랑이야기를 담아놓은 것 같은데도, 그 이야기에 덧붙여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다른 책을 통해서 '또 다른 이야기'를 좀더 찌끄려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