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향기
차세대 명창 꿈꾸는 시각장애인 최예나 양과 어머니
- “장애 장벽 넘어 희망을 전하는 소리꾼이 되고 싶어요”
국악방송에 출연한 최예나 양이 고수의 북 장단에 맞춰 소리와 아니리(사설), 발림(몸짓)을 선보였다. 그러자 청취자들은 “시원시원하고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아름답다” “스튜디오 안이 소리로 꽉 차 있다”며 응원했다.
중학교 2학년 때 ‘대한민국장애인예술경연대회’에서 최연소 나이로 종합대상을 수상한 예나 양은 이제 성인이 되었다. 올 초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 판소리 전공으로 입학, 전문 소리꾼이 되려는 본격적인 발걸음도 뗐다. “시각장애라는 불편함을 넘어서는 진정성 있는 소리”라는 찬사 속에 그는 “오랜 시간 지지해 주고 뒷받침해 준 어머니가 있기에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다”며 모든 공을 어머니께 돌렸다. 목청을 가다듬으며 연습에 매진하는 최예나 양과 그의 어머니 정화심 씨를 만났다.
Q. 두 분 모두 반갑습니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최예나)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 재학 중인 판소리 전공 최예나입니다. 입학 후 전문적인 커리큘럼을 통해 다양한 학문과 경험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연습하다 보면 지칠 때도 있지만 새로운 것을 익히는 설렘이 저를 들뜨게 만듭니다. 현재 울산광역시 청소년 판소리 예술단장을 맡고 있기도 해요. 종종 북채를 잡고 고수 역할을 하면서 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후배이자 같은 길을 걷는 친구들과 교류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A. (어머니) 지면을 통해 독자들과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늘 좋은 정보와 따스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어 참 좋았는데, 예나가 나오게 되어 영광입니다.
Q. 학교 생활을 좀 더 듣고 싶어요. 한예종 전통예술원은 어떤 곳인가요?
A. (최예나) 우선 한예종은 전문예술인을 양성하는 국립예술학교입니다. 전통예술원 등 6개의 독립된 원이 있는데 전통예술원은 전통예술을 보존하고 계승하도록 수학하는 곳으로, 한국예술학과, 음악과, 무용과, 연희과, 한국음악작곡과로 나뉘어 있어요. 전통예술원에 시각장애인이 입학한 것은 제가 처음이라 학사 일정이나 학습 도우미 등 여러모로 신경 쓸 부분이 많았습니다. 강의 녹음을 허락해 주시는 등 교수님들의 배려로 잘 적응할 수 있었지요. 전통극 연기실습 과목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판소리는 음악과 노래, 무용 등 다양한 요소가 어우러진 종합 예술이기 때문에 표정 연기나 전통 춤사위를 익혀야 하는데, 시각장애를 가진 저에게는 그 부분이 다소 벅찼어요. 교수님께서 이를 알고 20여 분 동안 1:1로 지도해 주셨는데, 두려움을 넘어 의욕이 샘솟더라고요. 시창·청음 수업 같은 경우에는 원래 음을 듣고 말하는 시창과 그 음계를 악보로 그리는 청음 둘 다 이루어져야 하지만, 악보를 직접 그릴 수 없는 시각장애 특성을 고려해 구두 테스트로 대신하거나 학습 도우미의 지원을 받았어요. 시각장애를 낯설어하던 동기들도 팔꿈치 위를 잡고 길을 안내하는 등 시각장애인 안내법이나 에티켓에 많이 능숙해졌어요.
Q. 판소리 입문을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A. (어머니) 예나는 시각장애를 갖고 태어났어요. 장애 정도를 나타내는 기준으로 보면 심한장애에 속하지요. 어릴 때부터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그러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음악적 흥미로 이어졌습니다. 특수학교인 울산 혜인학교에 입학하면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3학년 때 학교에서 연락이 왔어요. 음악 시간 외부 강사로 오시는 국악 선생님이 예나의 자질을 눈여겨보고 있다며, 무료로 가르쳐 보고 싶다고 하셨지요. 우리 딸에게 이런 재능이 있구나 놀라는 한편, 부모로서 뒷받침해 줄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어요. 안정적인 직업으로 특수교사가 낫지 않을까 생각했던 때이기도 했고요. 중요한 건 예나의 마음이라 슬쩍 물어보니 “정말 재미있다. 해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에 결심을 굳히고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기로 했습니다.
Q. 익힐 때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A. (어머니) 판소리를 제대로 배우려면 개인 사사를 받아야 하는데, 정보가 부족해 고심이 많았습니다. 울산시각장애인복지관이 떠올라 찾아가 도움을 청했고 감사하게도 국립부산국악원 김미진 선생님과 인연을 맺도록 도와주었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울산에서 부산으로 오가며 판소리를 배울 수 있었지요. 연습 과정을 지켜보는 게 퍽 힘들었어요. 판소리를 할 때 부채로 흥을 살리곤 하는데, 그것을 꼭 오른손으로 들어야 하거든요. 북 치는 고수가 무대 좌측에 자리하기에 왼손으로 부채를 들면 시선이 분산되고 구도가 좋지 않기 때문이죠. 그런데 예나가 주로 왼손을 쓰는 탓에 오른손으로 부채 잡는 법을 익히느라 애를 먹었어요. 닳고 낡아지고 망가져 가는 합죽선의 수만큼 자세는 좋아졌지만 힘들어하는 것 또한 알기 때문에 대신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습니다.
A. (최예나) 초반에는 소리 가사를 암기해 연습했지만 차츰 점자 악보의 필요성이 커졌어요. 판소리 가락의 이해, 이론적인 부분을 알아야 하니까요. 점자 악보를 쉽게 구할 수 없어 인쇄한 악보를 들고 복지관을 찾아가 점자 악보 제작을 부탁했습니다. ‘한 명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는데요, 오늘의 제가 있기까지 부모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어요. 다시금 감사를 전하고 싶어요.
Q. 국악에 관심을 기울이는 젊은이들이 많아진 것 같아요.
A. (최예나) 판소리를 전공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기쁜 현상이지요. 판소리는 어렵다고 여기는 분들도 많은데요, 판소리를 접할 기회가 없었던 분들이나 판소리 공연 관람 예정인 분들을 위해 감상 노하우를 알려드리고 싶어요. 공연 관람 전이라면 판소리가 어떤 이야기의 어떤 대목인지 꼭 찾아보시길 권해요. 심청전이나 춘향전 등 고전에 나온 부분이기에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지만 분명 다른 면모가 있거든요. 그 점을 찾아보는 것이 깨알 재미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연을 적극적으로 즐기는 태도입니다. 판소리 고수 장단에 맞춰 창자가 숨 쉬는 부분에서 “얼쑤! 좋다!” “이여차!” 등 추임새를 넣고 어깨춤도 춰 보세요. 무대와 객석 사이의 장벽을 허물고 모두가 만들어 가는 참 재미를 느낄 수 있어요. 관객이 그런 적극적인 반응을 보일 때 고수와 창자 역시 흥이 나요.
Q. 가장 좋아하는 대목과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무엇인가요.
A. (최예나) 애착이 가는 판소리 대목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심청가에서 심봉사가 딸 심청이와 재회하면서 눈 뜨는 대목이 아닐까요. 서사적 인물인 심청이와 심봉사의 마음에 공감하기 때문이겠지요. 눈이 보였으면 하는 마음, 사랑하는 사람을 두 눈으로 담고 싶은 마음이 저도 크니까요.
A. (어머니) 2018년 ‘대한민국장애인예술경연대회’에서 종합대상을 받았던 게 떠오릅니다. 참가자 중 최연소자였는데, 무대에 오르니 유독 더 작아 보이더군요. 그런데 부모의 걱정과 달리 어찌나 당당하게 자기 역량을 발휘하던지…. 가슴 뭉클했던 순간은 또 있어요. 바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수시 시험을 치르고 나오던 때였지요. 심사장에 혼자 들어간 예나를 5시간 가까이 기다렸는데, 혹여 넘어지지는 않을까, 불편한 곳은 없을까, 실수를 하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했지요. 시험 후 씩씩하게 나오는 예나를 보면서 어느새 한 명의 소리꾼으로서 나아가려 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Q. 앞으로의 목표와 이루고 싶은 꿈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A. (최예나) 먼저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도록 매 학기 열심히 공부할 거예요. 명창이 되는 건 평생을 두고 이뤄야 하는 목표라고 생각해요. 궁극적으로는 저의 무대를 통해 희망과 위안을 전하는 소리꾼이 되고 싶습니다. 요즘은 재즈와 힙합 등 다양한 음악 장르와 협업하는 판소리 공연이 많아졌어요. 해외에서 활동하는 명창과 명인 덕분에 판소리를 접하는 외국인도 늘었고요. 판소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힘, 국가의 장벽을 넘어 공감하는 힘을 지녔다고 생각해요. 어린 시절 제가 장애·비장애를 떠나 신나게 즐길 수 있는 판소리 특유의 자유로움에 빠져든 것처럼요. 삶의 기쁨과 위로를 전하는 음악인, 물리적·심리적 장벽을 허무는 소리꾼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수정·신혜령 기자
* <손끝으로 읽는 국정> 제191호에서 발췌